〈 130화 〉 타협 (2)
* * *
“네 부하들의 죽음이 관측당했다.”
“…….”
“혼자서 다닐 생각이 아니라면, 더는 그 이름으로 활동하기는 힘들거다.”
헤리오에게서 그 이유를 듣는 순간, 온갖 착잡한 감정이 가슴속을 스쳐지나갔다.
시넬과 검성의 죽음을 관측당했다.
누군가 이곳에서 벌어진 사건을 목격했으며, 그 대상을 역으로 찾아낼 수도 없다는 의미다.
도시에는 무수한 정보상인들이 존재한다.
그렇기에 도시의 소문은 빠른 편이다.
그녀들을 되살려 대놓고 돌아다닌다면, 마법에 대한 의심이 확산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내 근거지가 한곳에 고정되어있는 이상, 결사는 얼마든지 쉽게 나를 죽일 수 있다.
일전만 하더라도 절름발이 브루노가 찾아와 그 일대를 헤집어놓지 않았던가.
굳이 절름발이가 아니더라도, 변신술사를 포함해 위협적인 간부들은 많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런 상태에서 리저렉션 마법의 존재를 들켰다가는, 나를 포함해 모두가 무사할 수 없었다.
더 이상 이 이름을 유지할 수 없다는 헤리오의 말은 이제 직면하고 있는 현실이 되었다.
“결국에는 이렇게 된건가.”
세컨더리 비트의 핵심전력이 엮여있는 일이다.
더 이상 치안대를 상대로 조용히 지나갈 수 있을 가능성은 없다.
이전에야 미스릴을 원한 계승자가 억지로 사건을 묻었지만, 아무리 그라도 두번은 무리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제는 나에게 유효한 교섭수단이 남아있지 않았다.
자신의 개입으로 인해 사건들이 뒤틀리면서, 의미있던 정보들이 상당히 퇴색되었다.
미스릴 탄환은 몇번이고 얻을 수 있을만큼 흔한 물건이 아니다.
지금으로서는 상황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언젠가는 버려야만 했을 이름이다. 내가 어쩔 수 없이 기사단을 나왔던 것처럼.”
“그렇겠지.”
“악에 맞설 운명이라고 하지 않았나. 이제는 결단을 내려야만 한다.”
——암흑상인.
그 이름 자체는 우연하게 붙인 이름이지만, 그동안 많은 덕을 보았던 것만은 틀림없었다.
그 이름 덕분에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 이름 덕분에 많은 일을 해냈다.
그리고 그 이름 덕분에, 시넬이나 검성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다.
즐거웠던 시간도, 소란스러웠던 하루도.
전부 이곳에서 벌어졌던 일들이었다.
자그마한 단어 하나에 나는 많은 빚을 졌다.
이제와서 놓아주어야 한다니, 착잡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
“아쉬운건가?”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
처음에는 나 스스로가 도망치던 이름이었다.
오글거리는 이름에 적응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언젠가는 그 이름을 마주할 수 있는 순간이 찾아올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이런식으로 갑작스럽게 끝을 맞이하게 될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적은 액수의 크레딧을 벌어들인 것만으로도 기뻐하던 때가 있었다.
외진곳에 저렴한 사무실을 구하고나서 만족하던 때도 있었다.
늘어나는 부하들의 숫자를 보면서, 언젠가는 거대한 세력을 일굴거라고 생각했었다.
보란듯이 3구역에 커다란 사무실을 구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이 공간은 더 이상 우리만의 공간이 아니게 되었다.
이곳은 이름없는 이들이 머물기에는 너무나도 밝은 곳이었다.
뒷세계에 속한 이들에게는 그들과 어울리는 공간이 따로있다.
이런 번화가의 화려한 고층건물이 아니라, 골목속에 쳐박힌 비밀 아지트 말이다.
“물론 해명없이 여기서 도망치는것 역시 나름대로의 리스크가 될거다.”
물론 이곳을 떠나는 것에 있어서도, 리스크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도주에 따른 리스크 역시 존재하고 있다.
나와 헤리오 모두 그 상황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런 종류의 디메리트는 전부 암흑상인이 짊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암흑상인이라는 이름을 ‘버린다’고 표현한 것이었다.
“꼴을 보니 치안대에 수배라도 당하겠군.”
“치안대에게 있어서도 이 사태를 책임질만한 인물이 필요할거다. 그들에게 데런 벨츠는 결코 가벼운 이름이 아닐테지.”
“자칫하면 특급 수배범이 되겠어.”
“……특급 수배범?”
세컨더리 비트의 핵심전력이 이곳에서 전멸했다.
그리고 건물안에 거주하고 있던 이들이 순식간에 전부 행방불명되었다.
치안대로서는 당연히 우리를 의심할 것이다.
이곳에서 도주한다는 것은 그런 의미였다.
누가 먼저 전투를 벌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도시의 시스템은 정당성보다는 합리성에 가까운 방향으로 움직이니까 말이다.
검귀를 죽였다는 누명을 쓰게된다면, 특급 수배범 정도는 우스울 것이다.
“특급 수배범 암흑상인이라. 나름대로 멋지지 않아?”
“…….”
“농담을 너무 어려워 하는데.”
아무래도 우리 기사님에게는 너무 어려운 농담이었던 모양이었다.
피식. 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꽉막힌 사람이라고 해야할까.
아니면 순진한 사람이라고 해야할까.
어느쪽이든 헤리오라는 사람을 나타내기에는 충분한 말이다.
“농담이라도 범죄자를 운운하는건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 그렇겠지.”
“그래서, 가기전에 살릴 수 있는 가능성이 있어보이나?”
“마력이야 약간 간당간당하긴 한데. 하나정도는 상관없을 것 같군.”
진지한 얼굴의 헤리오를 내버려둔 채로, 누워있던 검성에게로 다가갔다.
지금 몸에 남아있는 마력으로는 고작해야 한사람을 살리는 것이 전부였다.
둘을 전부 살릴만큼은 남아있지 않았다.
누굴 먼저 살릴지 선택해야만 했다.
“……유엘.”
선호도에 따라 결정할만한 사항은 아니다.
요람에 무사히 도착하기까지의 상황 역시 계산할 필요가 있었다.
아무래도 우선순위를 고르자면 기동력이 좋은 검성쪽이 우선이었다.
본인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으니 말이다.
나는 소매를 걷은 손을 검성에게 뻗었다.
그리고 피가 흐르는 그녀의 가슴팍에 손을 얹고서, 서서히 손바닥에 마력을 끌어올렸다.
“[리저렉션].”
파앗—!
순환하던 마력이 터져나오며 주변이 잠시 환한 마력광으로 물들었다.
한순간이나마 시야를 완전히 가릴 수 있는 수준이었다.
시야를 잠식하던 광채는 금세 모습을 로감추었다.
리저렉션이 시전되자 창백하던 검성의 얼굴에 혈색이 되돌아왔다.
검성의 심장을 꿰뚫었던 오러의 흔적 역시 어느새 모습을 감춘 채였다.
두근. 두근.
검성의 가슴팍에 얹어놓았던 손바닥에서 서서히 심장박동이 전해져왔다.
그녀가 되살아난 것을 알리듯이, 검성의 맥박이 거칠게 요동쳤다.
심박이 돌아온 이후 십수초가 지나면, 완전히 회복된 검성이 미약한 신음소리를 흘렸다.
감겨있던 눈가 역시 살며시 떨려오기 시작했다.
“아으으…….”
“정신이 드나?”
“으…… 퍼시발?”
의식을 되찾은 검성이 두눈을 깜빡였다.
검성의 두 눈동자는 의아함으로 가득차있었다.
아직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모습이었다.
애시당초 그녀의 죽음부터가 눈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길게 설명할 수 있는 시간이 남아있지 않았다.
나는 곧장 검성의 옆에 있던 시넬을 들쳐매었다.
“습격자들은 전부 쓰러뜨렸다. 지금부터 이곳을 벗어날 생각이다.”
“여기를 벗어난다고?”
“곧 치안대가 들이닥칠거다. 계승자도 이곳의 상황을 눈치챘을테니, 빨리 몸을 피할 생각이다.”
검귀와의 싸움에서 처형집행자를 사용했다.
처형집행자를 맞은 적은 언데드가 된다.
그리고 모든 언데드는 스스로의 시야를 계승자와 공유한다.
비록 용병들에게 둘러싸여 자세히 보지는 못했더라도, 이곳에서 전투가 벌어졌다는 사실 자체는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자신의 흔적을 정리하기 위해 사람을 움직여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었다.
“응…….”
“알려줄 수 있는 내용은 여기까지다. 이곳에 다시 돌아올 일은 없을거다.”
“뭐가 대체… 어떻게 돌아가는거야……?”
“자세한 설명은 기지로 돌아가서 마저하도록 하지. 헤리오! 저기 있는 금고를 부탁한다.”
시넬을 들쳐맨 나는 사무실에 있던 금고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무리 급해도 돈은 반드시 챙겨야한다.
범죄자들이 괜히 위험을 감수하고 벌이를 위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었다.
“……지시대로 하겠다.”
고개를 끄덕인 헤리오가 명령했던대로 근처에 있던 금고를 끌어안았다.
이것으로 사무실을 빠져나가기 위한 준비는 전부 끝마쳤다.
이제 남은 것은 정든 사무실을 버리고서 이곳을 떠나가는 것뿐이었다.
나는 창문이 깨져나간 창가에 서서 검성을 향해 이야기했다.
“호응해라. 반대편으로 옥상까지 건너갈거다.”
“응. 알았어.”
이제는 정말로 이 사무실에 작별인사를 고할 시간이었다.
자신이 보냈던 시간들도, 하나씩 골라모았던 중고 가구들도.
전부 이곳에 놔둔채로 떠나야만 한다.
나는 아쉬운 마음을 절반정도 담아, 사무실을 향해 마지막 인사를 고했다.
안녕.
내 아련했던 억만장자의 꿈이여.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