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1화 〉 타협 (3)
* * *
정보상인을 관둔지 어느덧 2주가 흘렀다.
처음에야 가진게 정보밖에 없어서 선택한 일이었지만, 여유가 되니까 막상 그렇지만도 않았다.
돈이라면 많이 벌었다.
사고 싶은 것이라면 대부분 살 수 있다.
이제는 딱히 일을 하지 않아도, 먹고사는데 지장이 없는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해서 일에 매달려왔다.
그게 자신의 천직이라도 되는 것마냥 말이다.
어째서 그렇게까지 일에 집착했던가.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면 나 자신조차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이 많이 있었다.
돈이라면 전부 해결할 수 있을거라 믿었던 것일까.
이런 세상이라도 돈으로 해결되지 않는 일은 얼마든지 존재하는데 말이다.
물론 정보상인을 그만둔 지금은 그때와는 다르게 넘쳐나는게 시간이었다.
일이 없다. 그렇다고 곤란하지도 않다.
대부분의 시간을 아지트에서 보낼까도 생각해봤지만, 그것도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얼굴을 가린 채 움직여야하는 장소다.
하루종일 그런 짓을 벌이고 있는 것도, 굉장히 답답한 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일단은 그냥 무작정 돌아다니기로 했다.
돈이 필요한 일은 얼마든지 지불할 수 있다.
헤러넌츠 은행의 예금은 사용하지 못하겠지만, 그걸 제외하더라도 아직 돈은 많이 남아있었다.
여유가 있으니 쉬지 못할 이유도 없었다.
자신에게 주는 나름대로의 휴식기다.
정체를 들킬만한 번화가는 가급적 피하고, 외곽구역 위주로 돌아다니기로 계획한 것이다.
“맛있네요.”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지금의 상황이었다.
시넬은 자신의 손에 들려있던 꼬치를 베어물면서 나를 바라보았다.
길거리에서 팔던 것을 구매한 것이다.
나와 검성의 손에도 시넬과 마찬가지로 꼬치가 들려있었다.
당연히 내가 돈을 지불한 물건이었다.
시넬의 옆에 있던 검성 역시 꼬치를 베어물면서 나에게 말했다.
“확실히 맛있네.”
“이 근처에서는 인기가 많은 곳이니까.”
무슨 이유에서인지 노점의 인기가 지나치게 좋아서, 꼬치를 구매하려는 줄이 제법 길게 형성되어있었다.
나 역시도 꼬치를 구매하기 위해 줄을 서야만 했다.
결국에는 이렇게 꼬치를 손에 넣었지만 말이다.
먹으면서 느끼기에도 상당히 괜찮은 맛이긴 했다.
이거 먹자고 그렇게까지 줄을 서야만 했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말이다.
“있잖아, 퍼시발.”
“듣고 있다.”
“이렇게 여유롭게 있어도 되는거야?”
집행자로 활동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대부분 이런식으로 시간을 보냈기 때문일까.
슬슬 불안함을 느낀 검성이 나에게 물었다.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검은 검성이 매고 있는 기타케이스 안에 들어있는 채였다.
가끔은 이렇게 여유로운 생활도 나쁘지 않은 법이다.
비밀조직의 일원이 너무 열심히 움직여봐야, 정체가 노출될 가능성만 높아지기 마련이었다.
나는 꼬치를 베어물면서 그녀에게 되물었다.
“여유로운게 뭐가 문제지?”
“평소랑 너무 비교되서 그래.”
“평소와 비교된다고?”
“평소에는 사무실에서 놀고있으면 바로 현상범 잡아오라고 밖으로 내쫓았잖아.”
“…….”
이야기만 들으면 내가 악덕사장이 된 기분이었다.
물론 정예병력을 놀리고 있기는 부담스러워서, 그녀가 혼자 상대할 수 있는 현상범을 붙여주긴 했다.
그것도 꽤나 자주 말이다.
실적과 상관없이 월급은 정해져있으니, 가능하면 검성을 밖으로 내보내려고 하는게 당연했다.
그래도 나 정도면 괜찮은 고용주라고 생각한다.
월급을 조금 적게준다는 점을 제외하면, 문제가 될만한 점이 아예 없지 않은가.
“그렇게 다니다가 이러고 있으려니까, 갑자기 너무 어색해져서 그래.”
“데이트가 마음에 들지 않았나요.”
꼬치를 전부 비운 시넬이 막대기를 쓰레기통에 던져넣으며 말했다.
시넬의 말에 검성은 당황하며 허공에 손을 내저었다.
“데, 데이트라니, 나는 그냥…….”
“괜찮지 않나요. 월급도 나오는데.”
“그… 그거야 그렇긴 한데?”
“그러면 됐네요.”
마지못해 수긍하는 검성이었다.
그나저나 월급을 주는 데이트였다니.
도대체 언제부터 그런 인식이 되어있었나 싶은 기분이었다.
그냥 유급휴가같은 분위기를 생각했는데 말이다.
“뭐, 원한다면 월급정도는 올려주도록 하지.”
“진짜?”
“그래.”
암흑상인이라는 이름을 쓰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그녀들에게 돈을 지급하지 않는 일은 없을 것이다.
게다가 검성같은 경우에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집에 돌아가기 힘들어진 상황이었다.
정체를 숨긴 생활도 가볍게 여길만한 것은 아니다.
각자 나름대로의 고충이 있는 만큼, 금전적인 여유정도야 신경써줄 필요가 있었다.
돈이 부족한 것도 아니니까 말이다.
“갑자기 무슨 일이야? 몇달동안은 박봉으로 내버려뒀잖아.”
“이제는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뭐가?”
검성의 물음에 나는 손에 들린 꼬치를 바라보았다.
어느덧 다 먹어치운 꼬치에는 아무것도 내용물이 남아있지 않았다.
투둑.
나는 손을 움직여 그것을 부러뜨렸다.
“어느쪽도. 어차피 이런 생활이 그리 오래가지는 못할거다.”
서서히 이야기의 종막이 다가오고 있다.
머지않아 세상이 바뀔 것이다.
엑스트라였던 스스로의 운명 역시 바뀔 것이다.
이렇게 있을 수 있는 시간도 그리 길지는 않았다.
시간이 흘러 최후의 순간이 찾아왔을 때, 시넬과 검성은 과연 내 옆에 남아있어줄까.
쉽사리 머릿속에 그려지는 내용은 아니었다.
“오늘밤은 호텔에서 보내도록 하지.”
그럼에도 나는 그들이 남아주기를 바라고 있다.
지금의 내가 움직이는 원동력은 그것뿐이니까.
자신이 어떤 모습으로 변하더라도.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되더라도.
이들만은 끝까지 옆자리에 남아, 이야기의 결말을 확인해주었으면 하는 바램이었다.
* * * * * *
“재미있네. 이거.”
아벨 테르도스는 자신의 앞에 위치한 여자를 보며 중얼거렸다.
아벨의 앞에는 그가 만들어낸 언데드 하나가 서있었다.
양팔이 누더기처럼 기워진 채로, 기괴한 자세로 움직이는 여자의 이름은 리어 아틀라스.
절름발이 브루노가 쓰러뜨려 데려온 것을, 아벨이 개조해 언데드로 만들어낸 것이었다.
아벨이 처음 그녀를 보았을 때는 차마 보기 싫을정도로 처참한 형상이었다.
그러나 그가 시간을 쏟아넣은 지금은 제법 봐줄만한 모습이 되어있었다.
“뭐가 그렇게 마음에 들지?”
언데드를 움직이는 아벨을 지켜보던 브루노가 그를 보며 입을 열었다.
브루노의 손에는 반쯤 채워진 위스키가 들려있는 채였다.
아벨은 브루노가 있는 방향으로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서 대답했다.
“이런 마법은 귀한 편이거든.”
“그게 그렇게 대단한 마법이었나? 상당히 맥없이 쓰러지던데 말이야.”
“절름발이 앞에 서면 누구라도 다 그렇겠지.”
“재미없는 말을 하는군.”
혀를 찬 브루노가 위스키를 홀짝였다.
잔에 들어있던 얼음이 투명한 소리를 내며 기울어졌다.
몇번이고 잔을 기울여온 브루노지만, 그럼에도 그는 위스키의 향취를 느끼지 못했다.
브루노는 위스키를 마시면서 아벨을 계속 바라보다가, 이내 들고있던 잔을 완전히 내려놓았다.
작업을 끝낸 아벨 역시 고풍스러운 걸음으로 자리에 되돌아왔다.
“단독으로 쓰면 많이 아쉬운 마법이야. 그렇지만 무언가랑 섞이면 이만한 마법도 없지.”
브루노의 맞은편에 자리잡은 아벨이 자신의 잔을 들어올리며 말했다.
브루노는 언데드와 아벨을 번갈아보다가, 이내 자리에 앉은 아벨을 향해 물었다.
“무슨 마법이기에 그러는거지?”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보지 못하는 위치를 보여주는 마법이야. 주변 반경에 대해 절대적인 시야를 갖는셈이지.”
“절대적인 시야라.”
“신이 세상을 바라보면 이런 느낌일까 싶은데.”
피식.
브루노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지어졌다.
“지극히 오만한 발언이군.”
“그런 오만함도 존중하는거 아니였던가?”
“그럴만한 능력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지.”
브루노 리트리어.
잔악무도하고 방약무인인 그가 존중을 표하는 상대는 얼마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결사의 계승자는 그 얼마 안되는 예외들 중에 하나였다.
브루노 자신의 목줄이 매여있는 것과는 별개로, 아벨 테르도스는 존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다.
자신과 동류에 가까운 나머지 하나를 제외하고는 유일하다고 보아도 좋은 수준이었다.
“이 마법을 제외하고도, 최근에는 제법 만족스러운 일들이 많아.”
“만족스러운 일들.”
“일단은 세컨더리 비트의 검귀가 죽었지.”
“세컨더리 비트의 애송이가 죽었나.”
아벨은 자신의 잔을 들어 목을 축였다.
브루노와 대비되게 그의 잔에는 아직 내용물이 잔뜩 남아있었다.
“나름대로 계획에 방해가 될만한 인물이었는데, 적당히 잘 정리가 되서 다행이야.”
“누가 그를 죽였지?”
“암흑상인.”
“……암흑상인. 의외의 인물이군.”
“처형집행자를 하나 줬으니까, 그런 결과가 나오는 것도 터무니없는 일은 아니지.”
처형집행자는 아벨이 가지고 있는 수단중에서도 가장 위협적인 물건이다.
그 탄환의 위력을 생각한 브루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한 물건이 있다면 검귀가 죽은 것도 이해하지 못할 일은 아니었다.
비어있는 자신의 잔을 물끄러미 쳐다본 브루노가 그 다음을 물었다.
“그렇다면 나머지는 뭐지?”
“드디어 완성됐어. 우리가 목표로 하던 물건말이야.”
“……설마.”
아벨의 이야기를 들은 브루노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의 짐작대로라면 이번에 나올 것은 앞선 이야기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성과였다.
“그 노괴를 제어하는데 성공했어.”
“…….”
“위대한 지성. 이제 그녀가 우리를 위해 움직이게 될거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