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2화 〉 어셔 헤이즈 (1)
* * *
유일하게 남은 삶의 이유를 위해서 자신을 불태우는 이들이 있다.
제7특별기동대 소속의 어셔 헤이즈 역시 그러한 인간이었다.
어셔는 불이 붙은 담배를 입에 문 채로, 인기척이 드문 옥상의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중심구역의 변두리에 위치한 건물의 근처에는 사람이 많이 지나다니지 않았다.
긍정적인 의미로는 조용한 편이었고, 부정적인 의미로는 치안이 좋지 않은 장소였다.
어셔 자신이 아니었다면 네이가 이런 곳에 집을 구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어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어?”
어셔의 시선이 허공을 바라보았다.
그와 닮은 소녀 하나가 반투명한 모습으로 어셔의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리엘 헤이즈.
지금은 죽어버린 어셔의 여동생이었다.
그리고 어셔 자신의 존재이유를 끊임없이 상기시켜주는, 지독한 저주와 같은 존재이기도 했다.
어셔는 스스로 짊어진 저주를 바라보면서 희뿌연 담배연기를 내뿜었다.
“슬슬 머리가 아파와서 말이지.”
“결사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거야?”
“녀석들이 네 죽음과 모종의 연관이 있는 건 틀림없을거다. 하지만… 뭘 해도 쉽게 흔적이 잡히지가 않는군.”
결사.
도시를 배후에서 뒤흔들고 있는 정체불명의 조직.
어셔는 네이와 함께 그들의 흔적을 쫓아왔지만, 시간이 지나도 거리감이 좁혀지는 일은 없었다.
찾아낼 수 있는 것은 그들이 벌인 악행에 대한 흔적들이 전부였다.
결사라는 곳은 어셔의 생각이상으로 신출귀몰한 곳이었다.
필요할 때만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고, 필요 이상으로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다.
문제가 된다면 특급 수배범에 해당하는 전력조차도 가차없이 내쳐버린다.
조금만 더 나아가면 손에 잡힐듯 하면서도, 그 실마리가 명확하게 잡히는 일은 없었다.
“확신하고 있구나?”
“확실한 증거는 없다. 대부분이 직감에 근거한 내용이니까.”
“그래도 어셔의 감은 예민하잖아. 아마 어셔가 생각하는 내용이 맞겠지.”
어셔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본인의 감은 날카로운 편이었다.
타인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타인이 느끼지 못하는 것을 느낀다.
타고난 육감이 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어셔의 감각은 지금까지 무수한 상대와의 전투에 도움을 주었다.
그럼에도 직감 하나만으로 파악가능한 정보에는 한계가 있다.
결사의 윤곽을 확실하게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는 확실한 증거가 필요했다.
네이도 치안대도 명확한 근거 없이 쉽게 움직일 수 있는 존재는 아니었다.
“지금보다도 더 상세한 정보가 필요하다. 조금만 더 나아가면 붙잡을 수 있을텐데, 이제는 그 조그마한 실마리조차 더 이상 보이지 않아.”
“다른 사람의 힘을 빌려보는건 어때?”
“다른 사람?”
“결사에 대해 아는 사람이야 많이 있잖아. 전에 만났던 암흑상인이라거나.”
“암흑상인은 결사에 대해 이야기하는걸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어셔의 시선이 비어있는 허공을 훑었다.
암흑상인. 그는 이름에 걸맞게 무수한 중요 정보들을 알고있는 정보상이었다.
결사와도 모종의 연결고리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유독 결사에 대해서만큼은 이야기하는 것을 꺼리고는 했다.
그 이유마저도 이야기하는 본인과 어셔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는 것이었다.
어떻게든 설득해본다면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분명 그만한 대가를 치뤄야만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제 더 이상 암흑상인을 만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었다.
“이제는 완전히 일선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모습을 감췄다고?”
“6서클의 용병 하나를 죽이고 잠적했다더군.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얼마 전에 벌어진 사건으로 암흑상인은 현상수배 대상에 이름을 올렸다.
그에 대한 분류는 특급 수배범.
까다로운 마법을 가지고 있거나, 대량의 피해를 일으킨 범죄자들에게 내리는 수배등급이었다.
사실상 추적을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6서클의 대마법사였던 검귀를 쓰러뜨린 것을 참고해, 암흑상인을 특급 수배범 명단에 올렸을 것이다.
치안대에서 수사를 허락할 일도 없고, 그를 따로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을 찾는게 낫지 않아?”
“다른 사람이라고?”
“전에 만났던 사람들 있잖아. 집행자라고 하던가.”
“집행자 녀석들을 말하는건가.”
리엘의 말에 어셔가 얼마 전에 만났던 새부리 가면의 남자를 떠올렸다.
자신을 집행자 소속의 ‘전령’이라고 칭하던 남자는 어셔를 향해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겨내고는 했었다.
처음 만난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전령에게서 느낀 분위기는 어셔에게 어딘가 익숙한 것이었다.
자신만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한 태도.
그리고 어셔 자신과 안면을 트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를 꺼내는 말투.
어셔에게 있어 전령은 일전의 암흑상인을 떠올리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전령이라는 사람도 자기는 심상치 않다는 듯이 계속 떠들었잖아.”
“분명 무언가를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는 했지.”
“암흑상인이 알려주지 않을 것 같으면, 그 사람한테 가보는게 어때?”
“…….”
전령은 어셔에게 때가 되면 모든 것을 알려주겠다고 이야기했다.
모든 일에 정해진 순서가 있다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어셔는 남의 계획에 따라 끌려다니는 것을 반기는 사람이 아니었다.
특히나 그 이유도 모르는 채라면 더더욱 그러했다.
어셔는 쓴웃음을 지으며 리엘을 향해 이야기했다.
“……그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툭.
어셔가 들고 있던 담배꽁초를 바닥에 내던졌다.
그리고는 그것을 발로 밟아 담뱃불을 껐다.
짧은 상념을 끝마친 어셔의 눈동자에선 이채가 보이고 있었다.
* * * * * *
“아, 잠깐만…….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브라이언 레일.
크로스 네트워크의 정보상인중 최고라고 칭해지던 리만의 조수 출신이며, 그동안 나에게 암흑가의 정보를 제공해주던 정보상인.
그랬던 브라이언이 눈앞의 광경을 보며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브라이언이 이런 태도를 보이는 것도 당연했다.
지금 그가 발을 딛고 있는 곳은, 이번에 새롭게 만들어진 ‘집행자들의 요람’이니까 말이다.
레서트 인더스트리의 비밀지원으로 이전보다 더 크고 비밀스럽게 만들어진 곳이었다.
브라이언의 당황한 시선이 벽에 전시되어있는 온갖 종류의 장비들을 훑었다.
“이게 그렇게까지 당황할 일이었나?”
“아니, 이런 말은 없었잖아…….”
“분명히 커다란 일을 소개해주겠다고 약속했을텐데.”
그런 브라이언이 집행자들의 요람에 발을 들인 이유야 뻔했다.
지금 존재하는 집행자들 중에서 정보를 다루는데 능숙한 사람은 없다.
그와 반대로 브라이언은 암흑가의 생리와 자질구레한 정보들을 꿰뚫고 있는 사람이다.
한마디로 첩보요원에 무척이나 어울리는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그를 집행자의 일원으로 받아들일 생각이었다.
“형씨…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도시의 거대한 비밀과 맞서싸우는 비밀조직은 너무하잖아.”
“설마 마음에 들지 않는건가?”
“비밀을 지켜야만 한다면서. 마음에 안든다고 하면 죽이는거 아니야?”
“그럴리가. 다만 물리적으로 기억을 지워줄 생각이다.”
살벌한 농담을 하며 근처에 있던 장비들을 쓰다듬으면, 기겁한 브라이언이 뒷목을 잡았다.
근처에 있는 장비들이 진짜라는 것은 진작에 눈치챘을 것이다.
브라이언의 눈이 다시 한차례 주변을 훑어보았다.
그는 아지트의 내부를 보며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이내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후……. 나를 높게 사준 제안은 고맙지만 말이지, 나는 그런 인물이 못된다고 생각해서 힘들거같아.”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건가?”
“그래. 그런 이야기야.”
“왜 그렇게 생각하지?”
“아쉽게도 나는 평범한 사람이거든. 어디 첩보영화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고.”
“……전투에 대한 이야기라면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게다가 나는 남들이 모르는걸 알아내고 떠드는걸 좋아하는거지, 무거운 분위기속에서 입다물고 있는걸 좋아하진 않아.”
어느정도는 이해할 수 있는 고민이었다.
그가 집행자의 일원이 되었다고 해서, 집행자에 대한 것을 자유롭게 떠들고 다닐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거대한 비밀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다.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입이 근질거리고, 남들보다 더 무거운 고민을 하게 되어버린다.
“정직해서 다행이군.”
“내가 남의 이야기를 팔아먹기는 해도, 거짓말을 하지 않는게 신조라서 말이야.”
“정보상에게 있어서 신용만큼 중요한 것은 없는 법이지.”
“형씨도 잘 알고 있어서 다행이네.”
끄덕, 끄덕.
고개를 끄덕인 브라이언이 벽에 기대어섰다.
나름대로 완고한 신념이었다.
여태 가입을 제안했던 이들을 별 문제없이 설득해왔기 때문일까.
거절하는 브라이언의 모습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그렇다고 그를 이대로 순순히 놓아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깊은 심연을 자신의 눈으로 들여다 본 이상, 그는 이 심연의 일부가 되어야만 했다.
그렇기에 나는 그를 설득할만한 말을 궁리했다.
아무래도 긴 설득보다는 임팩트 있는 짧은 이야기가 좋을 것이다.
“이대로 나가면 후회할거다.”
나는 곧장 머릿속에 떠오른 간단한 한마디를 던졌다.
짧은 한마디.
그럼에도 상상할 수 있는 대답은 무궁무진하다.
브라이언 역시 내 예상대로 흥미를 가지고 나에게 되물어보았다.
“내가 후회한다고?”
“내가 아는 너라면 분명…….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떠날 사람과는 상관없는 말이겠지.”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방법.
그것은 뒷내용을 궁금하게 만드는 것이다.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관심을 가질 것이다.
그 상대가 평소에도 정보를 캐고 다니는 정보상인이라면 더더욱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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