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능력배틀물 보이스피싱-135화 (135/156)

〈 135화 〉 어셔 헤이즈 (4)

* * *

“네이. 제한을 풀어라.”

“읍, 읍읍……?”

억제장치의 마력제한을 풀라는 어셔의 말에, 막혀있는 입으로 기이한 대답을 이어나가는 네이였다.

침묵속에서 미묘한 시선의 교환이 이루어졌다.

어셔는 그제서야 네이의 입을 막고 있던 손을 거두었다.

막혀있던 숨을 몰아쉬려는 듯이, 숨이 트인 네이가 크게 심호흡을 했다.

“푸하아…….”

“너무 강했던 모양이군. 미안하다.”

“어느정도로 풀면 되는데?”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일단은 최대한도까지 풀어두는 편이 좋겠지.”

대답을 늘어놓는 동안에도 어셔의 시선은 골목의 한구석에 고정되어 있었다.

끄덕.

고개를 움직인 네이가 어셔의 머플러에 손을 가져다댔다.

그리고는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코드 E172. 특수감시관 네이 테르도스의 이름으로 4단계 제한 해제를 요청한다.”

­ “권한 확인. 승인되었습니다. 해당 임시조치는 3시간동안 유지됩니다.”

치익—. 철컥.

어셔가 차고 있던 억제장치에서 금속의 마찰음이 흘러나왔다.

마력제한이 해제된 어셔는 되돌아온 마력을 점검하기 위해서 몸을 풀었다.

억제되어있던 감각 역시 이전보다 한층 더 예민해진 채였다.

예민해진 어셔의 감각속에서 상대의 기척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숨어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빨리 나와라.”

짧고 명료한 통보.

어셔의 목소리에 주변에 있던 인기척 하나가 움직였다.

방독면을 머리 위에 눌러쓴 채로, 긴 코트를 입고 있는 인물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어셔의 시선이 자신의 앞에 멈춰선 상대를 훑었다.

어둠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상대는 어셔에게 있어서도 낯이 익은 인물이었다.

분명 그의 기억에 ‘장의사’라는 이름으로 남아있는 집행자였다.

“오해를 하고 있군. 나는 굳이 치안대와 싸울 의사가…….”

“다른 하나는 나오지 않을 생각인가?”

잠시동안 넘버 세븐을 살펴보던 어셔의 시선이 그 너머로 되돌아갔다.

어셔는 아무도 없는 빈공간을 바라보면서 다시 한차례 경고했다.

어셔가 찾고 있던 인기척은 하나가 아니었다.

어셔의 말을 들은 넘버 세븐의 시선 역시 자연스럽게 뒤로 향했다.

“나 말고도 하나가 더 있다고?”

“그래. 아까부터 계속 이곳을 훔쳐보는 쥐새끼 하나가 숨어있다.”

넘버 세븐의 질문에 어셔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 직후.

세 사람의 시선이 향하고 있던 장소에서 정체불명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그들의 귓가에 들려온 것은 가느다란 음색을 가진 남자의 목소리였다.

“집행자와 치안대가 함께 있는 광경이라. 누가봐도 흥미로워할만한 광경이야.”

터벅. 터벅——.

어두운 골목길에서 선글라스를 착용한 남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머리를 올백으로 넘긴 선글라스 차림의 남성은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로 어셔 일행의 앞에 멈춰섰다.

어셔의 시선이 새로 나타난 남자를 훑어보았다.

어디선가 많이 본 것 같은 모습이었다.

어셔가 평소에 보는 매체라고 해봐야, 고리타분한 신문이나 범죄자의 수배 전단지가 전부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뉴스에서 본 얼굴은 아닌 것 같으니, 아마도 수배 전단지를 보았을 가능성이 높았다.

“누구냐. 정체를 밝혀라.”

“내 이름 말이야? 나는 알프레드 하버. 13구역 놈들은 나를 보고 도박사 알프레드라고 부르기도 하지.”

“도박사 알프레드……!”

알프레드의 이름을 들은 네이가 경악하는 표정을 지었다.

도박사 알프레드는 13구역에서 제법 유명한 범죄자였다.

그는 13구역의 일부 지하도박장 운영에 관여하며, 불법적인 사채수익을 영위하고 있는 갱단의 두목이었다.

손속이 잔인한 탓에 13구역 내에서는 악명이 높은 인물이기도 했다.

오죽하면 알프레드의 돈을 떼먹느니, 깔끔하게 생을 마감하는 편이 낫다는 이야기가 나돌 정도였다.

“세상이 참 흉흉해졌어. 범죄자가 치안대원을 죽이고도 당당하다니.”

“너무 타박하지는 말자고. 저 양반이 괜히 높으신 분들 밥그릇에 끼어든 탓이니까.”

“대체 무슨 자신감이지? 그 대단한 변신술사가 네 안전이라도 보장해줬나?”

무엇보다도 알프레드의 뒤에는 특급 수배범인 변신술사가 버티고 서있었다.

어셔의 살기어린 시선이 알프레드를 바라보자, 알프레드는 슬그머니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치안대를 눈앞에 두고 있음에도, 알프레드의 움직임에는 여유가 가득한 채였다.

어셔를 마주본 알프레드가 퉁명스러운 말투로 어셔에게 쏘아붙였다.

“갑자기 뭐라고 지껄이는거야, 목줄달린 치안대의 사냥개가.”

“…….”

“네가 사람을 쳐죽일때는 괜찮고, 내가 하나 정리하면 안되는거였냐?”

“……나에 대해서도 알고 있는 모양이군.”

“모를리가 없잖아. 그 대단하신 ‘인간도살자’ 어셔 헤이즈를 말이야.”

인간도살자라는 이름에 옆에 있던 넘버 세븐이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반면에 네이는 익숙하게 들어왔던 모양인지, 한숨을 내쉬며 이들의 대화를 지켜보았다.

자신의 과거를 듣는 어셔 헤이즈 역시 나름대로 덤덤한 반응이었다.

물론 알프레드의 말에 어셔가 무언가 제대로 된 대답을 내어놓는 일은 없었다.

그가 도시 한가운데에서 학살을 벌였던 일 역시 틀림없는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생각해보면 참 대단하단 말이야. 인간도살자라니, 대체 사람을 얼마나 죽여야 그런 이름을 얻게되는거냐?”

“나는 단지…….”

“13구역에서 이름 좀 날린다는 나도 고작해야 도박사인데, 어떻게 해야 도살자가 되는지 경이롭단말이야.”

“부풀려진 이름일 뿐이다.”

“하하하! 부풀려지긴 뭘 부풀려져? 같은 자리에서 세자리 수를 쳐죽인 놈이 너말고 얼마나 될거같냐?”

이죽거리던 알프레드가 선글라스를 위로 들어올렸다.

선글라스 아래에 숨어있던 날카로운 눈동자가 어셔를 바라보았다.

자신을 도발하는 알프레드의 모습에 어셔의 시선이 이전보다 매서워졌다.

“그만.”

베일에 쌓여있던 어셔의 과거행적이 무더기로 쏟아져나왔다.

넘버 세븐이 듣기에는 절름발이나 검은 안개가 떠오르는 화려한 행적이었다.

둘 사이의 대화에 아까보다 더 주눅이 들어버린 넘버 세븐이었다.

알프레드는 어셔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우스꽝스러운 제스처를 섞어가며 이야기했다.

알프레드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이전보다 한단계 커져있는 상태였다.

“그만하기는 뭘 그만해? 네가 치안대원이라도 되나? 치안대원이랑 붙어먹다보니 생각이 없어졌구만.”

“그만하라고 했을텐데.”

“그리고 그 잘난 치안대원조차 이미 내 손에…….”

“[블링크].”

어셔의 입에서 흘러나온 묵직한 한마디.

그 직후 어셔의 몸이 알프레드의 뒤로 전이했다.

한순간에 알프레드의 뒤로 이동한 어셔가 알프레드를 향해 손을 뻗으려는 순간.

어셔의 눈이 알프레드의 손가락 사이에 끼워져있던 가느다란 무언가를 포착했다.

씨익. 짙은 웃음을 머금은 알프레드가 손가락을 튕겼다.

“성격도 급하셔라. [매직 미사일].”

피슉—!

짧은 영창과 함께 알프레드의 손가락에 끼워져있던 바늘이 튕겨나갔다.

조악한 마법에 붙잡혀있는 바늘이 어셔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블링크를 한 번 사용한 이후, 다시 블링크를 사용하기까지는 대기시간이 존재한다.

앞으로 2초 동안은 어셔의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이야기였다.

위험을 직감한 어셔가 재빠르게 몸을 뒤로 숙였다.

그런 어셔의 움직임에 반응하려는 듯이, 매직 미사일의 영향을 받는 바늘이 궤도를 비틀었다.

“……!”

“어셔!”

네이가 비명을 지르는 것과 동시에, 궤도를 꺾은 바늘이 어셔의 목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잘못 맞는다면 치명적인 손상으로 이어지게되는 급소였다.

번뜩이는 바늘을 막기 위해 반사적으로 손을 뻗으려던 어셔가 멈춰섰다.

무언가의 직감이 그의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어셔가 제자리에 멈춰선 직후, 궤도를 비틀던 바늘이 어셔의 목덜미를 파고들었다.

“…….”

팅——!

어셔와 충돌한 바늘이 경쾌한 충돌음을 내며 떨어졌다.

사람의 피부가 낼만한 소리는 아니었다.

기대하던 눈으로 어셔를 보던 알프레드의 시선이 바뀌었다.

쯧. 혀를 찬 알프레드가 어셔의 목덜미를 노려보았다.

머플러 너머로 드러난 억제장치에 선명한 흠집이 새겨져있었다.

­ “경고. 본 장치에 치명적인 손상을 야기하는 행동의 경우, 감시관의 판단과 관계없이 즉결처형이 집행될 수 있습니다.”

“이거 아쉽게됐군. 그 대단한 인간도살자를 한번에 죽이나 했는데 말이야.”

말을 마친 알프레드의 손가락 사이에서 바늘 몇개가 더 튀어나왔다.

알프레드가 꺼낸 바늘의 끝자락에는 푸른색의 액체가 묻어있는 모습이었다.

아무리 보아도 독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액체였다.

독바늘을 본 어셔의 시선이 경계심으로 물들었다.

혼자라면 어떻게든 피해보겠지만, 이 자리에 있는 모두를 지키기는 힘들어보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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