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능력배틀물 보이스피싱-136화 (136/156)

〈 136화 〉 어셔 헤이즈 (5)

* * *

독바늘을 본 어셔의 시선이 경계심으로 물들었다.

혼자라면 어떻게든 피해보겠지만, 이 자리에 있는 모두를 지키기는 힘들어보였다.

“허튼 수작은 그만두는게 좋을거야.”

물론 상황을 지켜보던 네이가 가만히 있는 일은 없었다.

철컥. 알프레드를 향해 총구를 겨눈 네이가 그를 노려보았다.

알프레드 역시 자신을 겨누고 있는 총구를 바라보았다.

가까운 거리에서 자신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알프레드가 주눅이 드는 일은 없었다.

“그거, 쏠 생각이냐?”

“쏘지 못할거라고 생각해?”

“내가 죽어도 마법은 멈추지 않아. 그걸 쐈다간 결국 너희도 다 죽는다는 이야기지.”

“고작 바늘따위에…….”

“이 바늘 끝에는 8구역의 프로가 제조한 신경독이 묻어있거든? 아마 스치기만 해도 끔찍한 경험을 하게될거야.”

알프레드가 손가락에 끼워진 바늘을 흔들어보이면서 말했다.

그에 알프레드와 가까이 있던 어셔가 손을 움직였다.

어셔의 옷자락이 펄럭이는 소리에, 알프레드는 어셔를 향해 다시 고개를 움직였다.

여전히 얼굴에 웃음기가 가득한 알프레드가 어셔에게 말했다.

“물론 이 이야기에 해당하는건 너도 마찬가지야.”

“내가 목숨을 아까워할거라 생각하나?”

“네 목숨이 아깝지는 않을지언정, 저 여자의 목숨은 다르겠지.”

“헛소리를 늘어놓는군.”

알프레드가 한발자국을 더 앞으로 내딛였다.

대기를 타고 흐르는 긴장속에서 어셔와 알프레드의 시선이 마주쳤다.

“나는 너같은 놈들을 잘 알고있거든. 자기 몸 걱정은 하나도 안하면서, 목줄을 쥔 주인 목숨은 끔찍하게 아끼는 놈들이잖아?”

“시답잖은 이야기일 뿐이다. 내가 네이를 지킬 생각이 없다면, 네 머리를 순순히 내려놓을 것도 아니지않나.”

“그거야 당연히 뭐, 아무런 확신이 없었다면 이런식으로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았겠지.”

“하고싶은 이야기는 전부 끝났나?”

서로가 서로의 머리에 총구를 겨누고 있는 상황.

평행선에 걸친 대화는 아무런 결과물을 만들어내지 못한 채, 어셔와 알프레드의 거리가 가까워져간다.

어셔와 알프레드 모두 사람을 죽이는 것에 망설임이 없는 이들이었다.

누군가 먼저 움직임을 보이는 것만으로도, 지금의 대치상황은 완전히 무너져내릴 것이었다.

그런 상황을 알고있는 탓인지, 알프레드는 긴장을 늦추지 않은 채로 자신만만한 태도를 고집했다.

“그러고보니 그분도 네 이야기를 자주 하고는 했지.”

“……그분이라니, 누구를 말하는거지?”

“물론 너네가 알고 있는——.”

“[버닝 핸즈].”

알프레드가 무언가를 말하려는 순간.

상황을 지켜보던 넘버 세븐이 마법을 사용했다.

버닝 핸즈. 작열하는 불꽃의 손길을 만들어내는 마법.

허공에 피어오른 불꽃의 손아귀가 알프레드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당황한 탓에 알프레드의 반응이 느려졌고, 불꽃은 한박자 늦게 움직인 알프레드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으악! 이 미친새끼가!”

“[버닝…]——.”

“너는, 너는 상식이란게… 아예 없는거냐?”

아까부터 멍하니 있는 어수룩한 모습에, 넘버 세븐이 움직일거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알프레드였다.

더군다나 서로의 목숨이 걸려있는 대치상황에서, 다 같이 죽자고 움직일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알프레드의 시선이 마법의 영향을 받은 자신의 어깨를 바라보았다.

뜨거운 불꽃이 스치고 지나간 탓에, 양복의 어깨부분이 완전히 날아가버린 상태였다.

그을린 옷감 사이로 드러난 어깨는 화상을 입어 짓물러져 있었다.

알프레드의 어깨 너머에서는 그에게 죽은 치안대원의 시체가 거세게 타오르고 있었다.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죽은 자에게 장례를 치뤄주는게 바로 상식이잖나.”

“큭… 이건 뭔 개소리야. 나를 곧장 죽여버리겠다는 뜻인가?”

“나는 내 일을 하려고 했을 뿐이다.”

암흑가에도 불문율이라는게 존재하는 법이다.

아무리 잔혹한 짓을 일삼는 부류라고 하더라도, 거물들끼리 만났을 때는 최소한의 존중을 보이고는 했다.

최소한의 규율조차도 성립하지 않는다면 그 누구도 암흑가에 군림할 수 없을 터였다.

그런데 얼간이 행세를 하던놈이 갑자기 다죽자며 훼방을 놓다니.

알프레드로서는 상상조차 못할 일이었다.

흥분한 상태로 넘버 세븐과 대화를 나누고 있으면, 알프레드는 어깨가 달아오르는 기분을 느꼈다.

짓무른 어깨에서 전해져오는 강렬한 통증에 알프레드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아니, 씨발… 어디서 저런, 정신나간 녀석이 튀어나온거야? 죽는게 두렵지 않은거냐?”

“죽음정도는 이미 각오했다. 나에게 있어 가장 두려운 것은, 내 안에서 타오르는 이 불꽃이 사그라드는 거야.”

“너는 진짜, 진짜로 미친놈이다. 아니 나도 정상은 아닌데, 너는 정말로 내가 보증해주마.”

“그래. [버닝…]——.”

“사람이 말을 하면 좀 쳐들어야지, [매직 미사일]!”

곧장 마법을 사용해오는 넘버 세븐의 움직임에, 알프레드가 바늘을 날리며 대응했다.

이렇게 된 이상 난전을 벌이는 것 이외에 다른 수단은 없었다.

피슉—.

매직 미사일을 추진체로 삼은 바늘이 대기를 꿰뚫었다.

그에 맞추어 불꽃의 손아귀가 주변을 불태우며 쇄도했다.

“[버닝 핸즈]!”

“[매직 미사일]——!”

“[블링크].”

“어셔, 헤이즈으……!”

마력광을 머금은 바늘의 비가 허공을 수놓았다.

뻗어나가던 불꽃의 손아귀는 수많은 바늘들을 집어삼켰다.

마법이 난무하는 난전이 시작되는 것과 동시에, 어셔 역시 블링크를 사용해 알프레드의 뒤를 점했다.

귓가를 뒤흔드는 이명에 알프레드가 고개를 돌렸다.

타앙!

그 순간, 네이 역시 알프레드를 노리고 방아쇠를 당겼다.

애석하게도 그녀의 탄환이 알프레드에게 명중하는 일은 없었다.

“여전히 제대로 맞추질 못하는군.”

“가더라도 한명은 데려가주마! [매직 미사일]!”

이전보다 많은 숫자의 바늘이 알프레드에게서 사출되었다.

무수한 숫자의 바늘이 빛을 내며 어셔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어둠속에서 빛을 뿜어내며 이동하는 바늘의 모습은, 마치 군집한 반딧불의 비행과도 같은 광경이었다.

자신을 노리며 다가오는 바늘의 모습에 어셔가 다급하게 마법을 사용했다.

“[블링크].”

이전처럼 어딘가의 공간으로 이동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에어리어 셰이커(AREA SHAKER).

공간좌표를 제자리에 고정해놓은 채로, 블링크의 위상변화를 최대한 오랫동안 유지하는 방법이었다.

어셔가 일시적으로 적의 포화망을 피할때 사용하는 기술이었다.

카앙! 캉!

목표물을 잃은 바늘들은 허공에서 얽혀 바닥에 추락했다.

그를 노리던 바늘들이 전부 사라진 직후, 어셔는 모습을 감추었던 자리에 다시 나타났다.

“이만 죽어라.”

어셔의 손이 알프레드의 머리를 노리고 뻗어나갔다.

무리하게 바늘을 쏟아내었던 탓에, 알프레드에게는 바늘이 얼마 남지않은 상태였다.

더군다나 네이를 노리고 쏟아냈던 바늘도 넘버 세븐이 모두 막아내었다.

어떻게 알프레드의 바늘을 전부 피해냈는지는 몰라도, 넘버 세븐은 아직까지 멀쩡하게 움직이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제 알프레드에게 남은 수단이라고는 마법과 조잡한 무기만이 전부였다.

“[매직 미사일]!”

어셔의 손이 몸에 닿기 직전, 알프레드가 모아두었던 마법을 사용했다.

한쪽 방향으로 응집해서 쏘아낸 매직 미사일이었다.

짙은 마력광이 번뜩이며 어셔와 알프레드 사이를 가로막았다.

* * * * * *

집행자의 넘버 세븐, 필립은 어안이 벙벙한 채로 앞을 보았다.

한자리에서 기백에 달하는 숫자를 도륙한 전투마법사.

그리고 13구역의 경제를 이끌고 있는 갱단의 두목.

하나같이 쟁쟁한 인물들이 자신의 앞에 서있었다.

집행자라는 이름은 결코 초라한 것이 아니었지만, 이들을 앞에 두고 있는 자신만큼은 초라했다.

어째서 상황이 이렇게 되었던가.

짧은 기억을 돌이켜보면, 태울 수 있을만한 시체를 멀리서 발견한 것이 원인이었다.

집행자의 임무를 맡아 움직이기 시작한 필립은 어느새 피냄새에 예민한 후각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피냄새를 쫓아 이곳에 왔건만,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예의 치안대원이었다.

“숨어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빨리 나와라.”

괜히 치안대와 마주쳤다가 오해를 살까봐 숨었지만, 그는 자신이 있는 것을 눈치챈지 오래였다.

그렇기에 어쩔 수 없이 필립은 모습을 드러내었다.

하지만 치안대원들이 찾던 것은 자신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후에 나타난 암흑가의 거두야말로 사건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었다.

“집행자와 치안대가 함께 있는 광경이라. 누가봐도 흥미로워 할만한 광경이야.”

도박사 알프레드.

정확히 어떤 인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필립이 보기에도 대단해보이는 인물이었다.

더군다나 다른 한명은 인간도살자라 불리던 무시무시한 인물이 아니었던가.

치열하게 신경전을 벌이는 그들 사이에서, 아직 신출내기인 필립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고작해야 그들의 싸움을 지켜보거나, 어딘가에 있을 넘버 에이트에게 구원을 요청하는게 고작이었다.

‘이래서는… 이래서는 곤란해.’

어셔와 알프레드의 싸움을 지켜보는 내내, 필립의 마음속에는 불안감이 솟아올랐다.

명색이 집행자라는 이름을 가진 비밀요원이다.

그런 자신이 계속해서 주눅이 들어있어야 주변에서 뭐라고 생각하겠는가.

집행자 전체의 명성에 누가 되고 말 것이다.

거물들의 싸움에 적극적으로 관여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자신의 할일은 끝마칠 수 있어야만 했다.

‘그러니까 시체를 태우자.’

그렇기에 필립은 자신의 본분에 충실하기로 했다.

모종의 사고로 죽은 시체를 불태우는 것.

필립이 불을 내는 취미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눈앞의 시체를 불태우는 것은 필립이 해야하는 사명이었다.

필립은 피를 흘린 채 쓰러져있는 시체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자신의 마법을 사용하기 위한 준비를 했다.

두 사람은 신경전을 벌이는 중이라 정신이 없을테니, 지금이라면 조용하게 시체를 태울 수 있으리라는 판단이었다.

“……그분이라니, 누구를 말하는거지?”

“물론 너네가 알고 있는——.”

“[버닝 핸즈].”

그렇게 시체를 겨눈 필립이 마법을 사용하려는 순간.

하필이면 어셔를 향해 다가가던 알프레드가 마법의 궤도에 걸쳐섰다.

화르륵——.

작열하는 손아귀는 재빠르게 목표물을 향해 날아갔고, 그 과정에서 궤도에 서있던 알프레드의 어깨를 스쳐지나갔다.

난데없이 마법에 맞은 알프레드가 발광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으악! 이 미친새끼가!”

쩝. 의도치않게 알프레드를 맞춘 필립이 입맛을 다셨다.

그 너머에서는 머리카락에만 불이 붙은 시체의 모습이 보였다.

알프레드가 맞은 것은 찝찝한 일이었지만, 불길이 잘못 붙은 시체의 모습도 찝찝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마지막 가는 길은 편하게 보내주는 것이 사람의 도리가 아니겠는가.

그렇기에 필립은 다시 마법을 사용하기 위한 준비를 했다.

“[버닝…]——.”

“너는, 너는 상식이란게… 아예 없는거냐?”

상식이 있냐는 알프레드의 질문에, 필립은 곰곰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상식이란 무엇인가.

그는 옳은 것을 행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배웠다.

그것이 왜 옳다고 누군가 물어본다면, 거기에 대해서도 당연하다는 이야기밖에 할 수 없었다.

당연하기에 옳은 것이다.

그게 필립이라는 인물의 자아를 지탱하고 있는 상식이었다.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죽은 자에게 장례를 치뤄주는게 바로 상식이잖나.”

“큭… 이건 뭔 개소리야. 나를 곧장 죽여버리겠다는 뜻인가?”

“나는 내 일을 하려고 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필립은 최대한 알프레드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게 노력했다.

상대를 자극하지 않도록 나름대로 선택한 대답이었다.

물론 필립의 대답을 들었다고 해서, 알프레드가 얌전해지는 일은 없었다.

그는 오히려 격분하면서 필립을 향해 욕을 퍼부었다.

“아니, 씨발… 어디서 저런, 정신나간 녀석이 튀어나온거야? 죽는게 두렵지 않은거냐?”

“죽음정도는 이미 각오했다. 나에게 있어 가장 두려운 것은, 내 안에서 타오르는 이 불꽃이 사그라드는 거야.”

“너는 진짜, 진짜로 미친놈이다. 아니 나도 정상은 아닌데, 너는 정말로 내가 보증해주마.”

필립의 눈앞에 서있는 이들은 비정한 마음을 가진 살인자들이다.

이곳에서 가장 멀쩡한 사람이 자신인데, 자신을 보고 미친놈이라고 하다니.

필립으로서는 심히 억울할 따름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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