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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능력배틀물 보이스피싱-137화 (137/156)

〈 137화 〉 어셔 헤이즈 (6)

* * *

웅장한 도시의 일면을 장식하듯이, 일렬로 늘어서있는 거대한 마천루.

그런 마천루들이 내려다보이는 도시의 트레이드마크에 발을 딛고있던 남자가 뒤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남자의 이름은 레닐 바이츠.

제국 최강의 전력인 근위대의 일원이면서, 도시에 파견된 근위대의 지휘를 맡고 있는 근위대장이었다.

레닐은 자신을 찾아온 남자를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보면서 물었다.

“임무는 성공했나?”

“……실패했습니다.”

“얼굴이 엉망진창인데, 전투라도 있었던 모양이지?”

레닐의 얼굴은 눈앞의 남자를 보고있지만, 그의 손은 바닥에 쓰러진 적들을 노리고 있었다.

피슉—!

소음기가 씌워진 권총이 바닥에 있던 적의 잔당을 향해 격발되었다.

상대는 이미 죽어있던 모양이었는지, 권총을 맞고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레닐 역시 확인사살을 위해서 쏜것이었을뿐, 상대가 살아있을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레닐은 다음 사람을 향해 총구를 겨누면서, 입을 다물고 있는 부하에게 고갯짓을 했다.

“집행자들 중 하나와 교전이 있었습니다.”

“집행자? 네 임무는 미행이었을텐데.”

“……면목이 없습니다.”

피슉. 다시 한차례 레닐이 방아쇠를 당겼다.

쓰러져있던 괴한 하나가 단말마를 내뱉었다.

레닐의 탄환이 아직 숨이 붙어있던 적 하나를 끝장낸 것이다.

확인사살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순간이었다.

레닐이 방아쇠를 당길 때마다, 레닐을 바라보던 근위대원의 얼굴 역시 굳었다.

그는 자신의 미래를 보고있는 것 마냥, 불안한 시선으로 레닐의 총구를 지켜보았다.

“그리고 하나 더. 전투가 있었는데 살아돌아왔군.”

“…….”

“전투에서 졌나?”

“전령이라는 이름의 집행자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졌나보군.”

다시 한차례 총성이 이어졌다.

“죄송합니다.”

“……전령이라. 그 녀석은 집행자에서 지위가 높아보이는 사람이었나?”

“본인의 입으로 자신이 집행자들의 의사를 대행한다고 밝혔습니다.”

“생각보다 높은 사람이었던 모양이군.”

그렇지만 그것이 패배의 이유가 될 수는 없다.

그것이 레닐 바이츠의 생각이었다.

근위대는 황실의 뜻을 대변하는 무력집단이다.

황제의 자리에 누가 앉아있다고 하더라도, 근위대는 황제의 뜻을 관철해야만 했다.

그 대상이 기존의 궤를 벗어난 인공정령이라고 하더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고작 이런 도시 하나에 애를 먹는 인물이라면, 근위대에 남아있을 자격따위는 없었다.

“그리고… 전령이 단장님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무슨 말을 남겼지?”

“다음에 걸리는 녀석은 목만 돌아가게 될거라고…….”

“하.”

말을 꺼내면서도 주눅들어있는 부하의 모습에 레닐은 헛웃음이 나왔다.

상대는 누가 작전을 지휘하는지 명백하게 알고 있었다.

근위대의 감찰활동이 도시에 발각당했다.

아마도 그 이유는 눈앞의 멍청한 부하가 쓸데없이 입을 열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름대로 고문에 대한 훈련도 받았을텐데, 고작해야 변방의 범죄자들을 상대로 술술 불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이었다.

“자네는 혹시 머리가 없나?”

“……죄송합니다.”

“그냥 순수하게 궁금해서 하는 말이야. 보통 머리가 있으면 생각이란걸 하고 살텐데.”

“…….”

“우리는 근위대가 아니었나? 범죄자에게 쳐맞고와서 빌빌대는 애새끼가 아니라, 자랑스러운 제국의 근위대가 아니었냐고.”

자리에서 일어난 레닐이 눈앞의 근위대원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터벅. 터벅.

한걸음을 앞으로 내딛을 때마다, 근위대원의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려왔다.

레닐은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권총을 들어올렸다.

아직 완전히 가시지 않은 화약냄새가 레닐의 권총에서 퍼져나갔다.

“그게, 저는…….”

“상대가 전하라는 말을 왜 굳이 다 전하고있지?”

“아닙니다. 단장님의 이름을 알고 있어서…….”

“그것도 네 입으로 불었을테지. 안 그런가?”

철컥.

레닐의 총구가 근위대원의 머리에 겨누어졌다.

총구를 눈앞에 둔 근위대원의 눈동자가 맹렬하게 움직였다.

그는 어느 한곳에 시선을 고정하지 못한 채로, 불안한 눈동자에 주변의 풍경을 담았다.

“아, 아닙니다……. 저는, 저는 정말 하나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근위대원의 긍지를 걸고…….”

“싸움에서 진 개한테 긍지와 명예가 어디에 있지?”

레닐이 총구를 기울이자 근위대원이 더욱 절박한 목소리로 그에게 외쳤다.

“전령! 전령이라는 자는 위험합니다. 정말로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는데, 그 자는 이미 전부 알고있다는 것처럼…….”

“그게 더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예?”

“네가 불었다면 그것만으로 끝나는 문제다. 하지만 말하지 않았는데도 상대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진작에 제 4 근위대 전체의 정보가 암흑가로 넘어갔다는 이야기겠지.”

“…….”

“그러니까 어서 솔직하게 불도록. 누가 정보를 이야기한거지?”

레닐의 이야기를 들은 근위대원의 얼굴이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는 온갖 불안한 생각에 시달리다가, 이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

총구를 눈앞에 두고도 그가 할 수 있는 대답은 하나뿐이었다.

“……저는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그게 네 대답인가.”

“주, 죽더라도 거짓말을 할 생각은 없습니다.”

후우. 짧은 한숨을 내쉰 레닐이 권총을 거두었다.

자신의 부하가 이렇게까지 대답한다면 그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하나뿐이었다.

그는 들고 있던 권총을 품속에 집어넣고서, 근위대원에게서 등을 돌렸다.

자신을 겨누던 총구가 사라지자 근위대원이 의아해하는 얼굴로 레닐을 바라보았다.

“즉결심판은 내리지 않겠다.”

“대장님…….”

“제도로 되돌아가라. 그리고 그곳에서 처분을 기다려라.”

“……알겠습니다.”

주저앉아있던 근위대원이 몸을 일으켰다.

그는 바닥에 떨어진 자신의 단말기를 챙기고서, 조용히 옥상을 빠져나갔다.

레닐은 근위대원이 완전히 빠져나가기를 기다리면서 도시의 야경을 바라보았다.

사방에 환하게 켜져있는 전등빛이 도시의 밤을 수놓고 있었다.

“이제는 정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군.”

결사와 치안대. 근위대. 그리고 집행자까지.

점점 복잡해져가는 도시의 상황을 보며 레닐이 담배를 꺼내물었다.

누구에게나 시간은 유한한 법이다.

레닐 자신의 존재를 들켜버린 지금이라면, 이전보다도 더욱 신중히 움직여야만 했다.

* * * * * *

­ “그래서, 도박사 알프레드를 놓쳤다고 했나?”

8구역에 위치한 집행자들의 요람.

그곳에 도착한 내가 장비들을 점검하며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방독면을 뒤집어쓴 필립이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나 치열한 전투를 벌였는지는 몰라도, 필립의 외투에는 바늘들이 빼곡하게 박혀있었다.

단순히 모양새만 봐서는 벌에 무더기로 쏘인 사람을 보는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필립은 저렇게 무더기로 바늘을 달고 왔지만, 사실은 하나하나가 위험한 물건들이다.

도박사 알프레드의 바늘에는 8구역에서 제조한 상세불명의 신경독이 묻어있다.

스치기만 해도 불가역적인 손상을 야기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레서트 인더스트리의 특제 보호복을 입지 않았더라면, 필립은 틀림없이 싸늘한 시체가 되어 돌아왔을 것이다.

“면목이 없네요. 나름대로 노력했지만, 도망치는건 막지 못했습니다.”

­ “도박사 알프레드라고 하면, 결사의 간부 중 하나인 변신술사의 오른팔이다. 부상을 입힌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겠지.”

“그렇습니까.”

­ “무엇보다 변신술사가 직접 개입했다고 하지 않았나.”

필립과 어셔가 알프레드를 놓친 이유.

그것은 변신술사가 이들의 전투에 직접 개입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대놓고 전투를 벌인 것은 아니고, 변신술사가 수작을 부려 알프레드를 구출해냈을 뿐이었다.

필립은 방독면 너머로 열띤 시선을 보이며 당시의 상황을 설명해왔다.

“물론입니다. 녀석의 힘을 빼놓고서 이제 잡으려는 찰나, 하늘에서 비둘기 무리가 날아왔습니다.”

­ “그렇게 비둘기 무리가 시야를 가렸다.”

“제가 오래 살았다고 말은 못하겠지만, 살면서 연막탄을 던지고 다니는 비둘기는 처음봤습니다.”

아무리 훈련을 잘한 비둘기라고 해도, 정확히 조준해 연막탄을 던지기는 쉽지 않다.

누가 보아도 변신술사가 틀림없었다.

비둘기로 변신한 변신술사가 어셔 일행에게 다가와 연막탄을 무더기로 투척했다.

그리고 혼란스러운 틈을 타서 알프레드를 데리고 다른 곳으로 도주했다.

그것이 필립이 전해주는 당시의 사건현장이었다.

아무리 어셔가 감각이 예리하다고 하더라도, 앞이 보이지 않는 상태로 상대를 제압하기는 힘들 것이다.

­ “어셔 헤이즈와 변신술사라. 썩 좋은 그림은 아니군.”

“무언가 문제라도 있는겁니까?”

­ “필연적인 운명이 다가오고 있다. 이번 일이 끝난 다음에는, 근위대가 움직일 가능성이 높겠군.”

전쟁도시의 내용과는 이미 틀어질대로 틀어진지 오래였다.

원래대로라면 6서클에 도달해야했을 어셔는 아직도 5서클에 불과하고, 결사에 대한 힌트마저도 불완전하게 주어졌다.

또한 5서클인 채로 어셔 일행에 합류해야했을 헤리오가 집행자의 일원이 되었다.

그럼에도 도시는 꾸준히 다음 에피소드를 향해서 나아가고 있다.

일어나야만 하는 일은 반드시 일어난다.

그 과정에서 하나나 둘 정도, 계기가 사라지는 정도로는 큰 의미가 없었다.

“필연적인 운명…….”

­ “조만간 변신술사와 전투가 벌어질거다. 가능한 우리쪽 전력을 노출하지 않은 채로 싸울 생각이다.”

“그렇다면…….”

­ “너와 나, 둘이서만 움직일거다.”

집행자의 존재는 일종의 보험이다.

어중간하게 전력을 드러내어, 결사로부터 집중견제를 받을 필요는 없다.

일을 끝내는 것은 어디까지나 어셔여야만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조금만 더 사건을 비틀 수 있다고만 한다면.

도시의 멸망을 한 달이나 두 달 정도는 유예시키는게 가능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변신술사……. 특급 수배범의 토벌이 이루어지는군요.”

­ “그래.”

“위험한 일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최대한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 “기대하도록 하지. 그리고…….”

대화를 나누던 내 시선이 넘버 세븐의 손바닥으로 향했다.

테이블 위에 펼쳐져있는 두터운 방어복.

그곳에 꽂혀있는 바늘들을 필립이 수작업으로 뽑고 있는 중이었다.

필립은 나와 성심성의껏 대화를 나누면서도, 방어복에 꽂혀있는 바늘을 뽑는 것을 잊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 “하나 더 준비해줄테니 그냥 쓰레기통에 버리도록.”

옷장에 널려있는게 방어복이다.

찝찝하게 구멍이 뚫려있는 물건을 사용할바에야, 그냥 새거를 하나 사용하는게 나은 일이었다.

요컨데 독바늘을 하나씩 뽑고있는걸 못봐주겠다는 이야기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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