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8화 〉 어셔 헤이즈 (7)
* * *
“……하.”
어셔 헤이즈는 땀에 젖은 채로 악몽에서 깨어났다.
의식을 되찾은 그는 곧바로 이마를 짚으며 숨을 골랐다.
후우, 하——.
짧은 심호흡이 어셔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자리에서 일어난 어셔가 곧장 고개를 돌려 옆자리를 바라보았다.
머리를 풀고있는 네이가 그의 옆에 잠들어 있었다.
“으응…….”
어셔와는 다르게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모습이었다.
어셔는 아직 깨어나지 않은 네이를 보며 안심했다.
꿈은 어디까지나 꿈에 불과한 것이다.
어셔가 마주하는 현실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호흡을 가다듬은 어셔가 천천히 몸을 일으키면, 어셔의 옆을 떠돌던 리엘 헤이즈가 그에게 물어왔다.
“또 악몽을 꾼거야?”
“…….”
오랜만에 꾸는 악몽이었다.
머나먼 언젠가의 기억을 배경으로 한, 리엘과 어셔 자신이 주역이 되어 꾸는 꿈이었다.
꿈의 내용은 언제나 비극이었다.
네이와 다시 만난 이후로는 그 꿈을 꾸지 않는 줄로만 알았건만, 어셔에게 다시 악몽이 찾아온 것이다.
그는 더 이상 잠을 자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았다.
흥분한 어셔의 심장이 가슴속에서 쿵쾅거렸다.
밖에 나가서 바람이라도 쐬지 않으면, 좀처럼 이 기분을 가라앉힐 수 없을 것이다.
“어셔?”
“잠시 나가있을 생각이다.”
자리에서 일어난 어셔가 담배와 재킷을 집어들었다.
어느덧 완연한 봄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밤바람은 차가운 상태였다.
외투정도는 챙겨입어야 감기에 걸리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가 애정하는 라이터가 재킷의 주머니에 들어있었다.
재킷을 걸친 어셔는 최대한 조용한 발걸음으로 집을 빠져나갔다.
어셔가 옥상을 향해 올라가는 동안, 새벽의 찬공기와 새하얀 달이 그를 번갈아 맞이해주었다.
“의외인걸. 한동안은 악몽을 꾸지 않는 줄 알았는데.”
“혹시 내 머릿속도 들여다볼 수 있는건가?”
“아쉽게도 그런 짓은 못해.”
“그럼 아무 일도 없었던걸로 하지.”
그는 여동생의 망령을 향해 무심하게 대꾸했다.
어느새 옥상에 다다른 어셔의 손아귀에는 주머니에서 꺼낸 담배가 들려있었다.
후. 새벽의 한기를 마주한 어셔의 입에서 김이 새어나왔다.
담배에 불을 붙이지도 않았는데도, 담배를 태우는 것처럼 보이는 모습이었다.
피식.
헛웃음을 지은 어셔가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나한테는 강한척 하지않아도 괜찮다니까.”
“강한 것도, 강한 척을 하는 것도 아니야. 이제는 잃을게 없어졌을 뿐이지.”
어셔가 반대편 주머니에 손을 넣어 라이터를 꺼내들었다.
어셔의 손에 들려있는 금장 라이터는, 리엘 헤이즈가 그의 생일선물로 챙겨주었던 물건이다.
오래된 뽑기기계에서 얻어냈다고 했던가.
그녀는 이 라이터를 어셔에게 건네주면서, 담배를 끊었으면 좋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담배냄새가 싫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제는 들을 수 없는 여동생의 진심어린 투정이었다.
지금 그에게 남아있는 것은, 어리숙한 치안대원과 여동생을 흉내내는 망령이 전부였으니 말이다.
“리엘. 담배는 아직도 싫어하고 있나?”
“어떤 대답을 원하는데?”
“그냥 내키는대로 이야기해도 상관없다.”
“이제는 별로 상관없어졌어. 어셔가 좋다고 하는데 내가 어떻게 하겠어.”
“……그렇게 됐나.”
리엘의 대답을 들으며 어셔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역시 저 여자와 자신의 여동생은 다르다.
예전에 잃어버렸던 자신의 여동생은, 리엘 헤이즈는 결코 저런 대답을 내어놓지 않을 것이다.
겉으로는 리엘의 모습을 흉내내고 있지만, 본질적으로 무언가 리엘과는 달랐다.
그렇기에 저것은 저주였다.
아직까지 자신을 움직이고 있는 복수의 칼날이 무뎌지지 않게 하기위한 저주말이다.
“아직도 반대하고 있는 편이 좋은거야?”
“……어느쪽이든 상관없다.”
“결국 우리 둘 다 똑같은 대답이네.”
한때는 가짜에 안주하며 살아가는 것도 괜찮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했던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순간 강제로 진실을 깨닫게되는 순간이 있다.
리엘 헤이즈는 죽었다.
그건 결코 바뀌지 않는 진실이었다.
어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마법으로, 리엘이 가지고 있던 ‘블링크’를 훔쳐내었다.
그녀의 모조품에 불과한 블링크를 사용할 때마다, 어셔는 자신의 나약함을 통감하게 되었다.
자신이 사용하는 블링크의 안에, 리엘이 보여주었던 속도감은 남아있지 않았다.
자신도. 그녀도.
어느쪽이든 리엘 헤이즈를 흉내내고 있을 뿐이었다.
“어셔. 듣고 있어?”
전부 가짜다.
어느곳에도 진짜는 남아있지 않았다.
그녀를 잃어버렸던 어느 지독한 폭우로부터, 어셔가 마주하는 이 세계는 가짜가 되었다.
거짓으로 점철되어있는 세계에서,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모든 것을 내버리고 오로지 복수만을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을 뿐이었다.
“어셔——!”
짧은 정적을 깨부수고서, 어셔의 머릿속에 목소리가 새어들어왔다.
재차 자신을 부르는 리엘의 목소리에, 어셔는 고개를 돌려 다른 방향을 바라보았다.
오로지 자신만이 서있던 옥상.
그곳에 불청객 하나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담배를 태우며 짙은 상념에 젖어있다보니, 누군가 자신을 찾아온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
“너는…….”
어셔의 눈이 자신을 찾아온 불청객에게로 향했다.
전신을 덮고 있는 두터운 코트.
얼굴을 가리고 있는 조악한 새부리 가면.
어중간하게 역병의사를 흉내내고 있는 남자를 바라보며, 어셔가 머금고 있던 담배연기를 내뿜었다.
흐릿하게 퍼져나가던 연기가 흩어져 모습을 감추었다.
“고민은 끝났나?”
“이곳에는 무슨 일이지?”
“아무래도 나를 찾고 있을 것 같아서 말이지.”
여유로운 걸음걸이로 불청객이 그에게 다가왔다.
집행자의 넘버 투, 전령.
정보를 갈망하던 어셔가 그토록 찾아헤매던 인물이면서, 어셔 자신이 기억하는 누군가와 닮은 사람이었다.
지금 어셔에게 필요한 것은 정보였다.
자신의 적이 누구인지 알아차리고, 그런 적을 쓰러뜨릴 수 있는 정보말이다.
어셔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전령을 향해 말했다.
“내가 너를 찾고 있다고?”
“정말로 그게 아니었나? 어셔 헤이즈.”
새부리 가면 너머의 표정은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어셔는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뛰어난 직감이란 그런 것이다.
남들보다 한 수 앞에 있는 무언가를 보고 느낀다.
마법과도 같은 재능이다.
그렇기에 완전하지 못한 재능에 매몰되어, 헤이즈 남매는 꽃을 피우지 못했다.
“부르는 방법이 많이 익숙하군.”
“너무 친근하게 부른건가? 보통은 뭐라고 부르는 편이지?”
“사냥개.”
“그런 이름이 어울리는 사람은 아닌 것 같군. 네 경우는 남의 말을 듣는 성격이 아니지않나.”
전령은 어셔의 옆에 나란히 서서, 옥상에서 보이는 경치를 내려다보았다.
인적이 드문 거리에 밤하늘과 가로등만이 빛을 발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의 이 장소는, 오로지 두 사람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었다.
어셔의 눈이 시대착오적인 역병의사를 꿰뚫어보았다.
“담배는 좋아하나?”
“지금은 사양하지.”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모양이지?”
“이런 차림으로 피우기는 힘들어서.”
가면을 쓰고 피기 힘들다라.
어셔가 듣기에는 너무나도 가벼운 이유였다.
가면이 그렇게 불편하다고 하다면, 지금이라도 가면을 벗어던지면 그만한 이야기였다.
그럼에도 상대는 가면의 무게를 짊어지는 것을 선택했다.
어셔 자신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이거나, 혹은 그가 가면의 무게 이상의 것을 짊어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내 뒤를 캐고다녔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
“네 뒤를 캐고다닌게 아니다.”
“나를 노린게 아니라고?”
“우리는 단지, 결사에 대항할 유일한 희망을 쫓고 있는 것 뿐이다.”
후우. 어셔가 다시 연기를 내뿜었다.
입김과 뒤섞인 연기가 현란하게 흩날렸다.
어셔는 눈앞에서 흩어지는 연기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이내 손에 남아있는 담뱃불을 난간에 문질러 꺼트렸다.
퍼석거리는 소리를 내며 쥐고 있던 말단이 부서져내렸다.
부서져내린 불씨는 재가 되어 흩날렸다.
그와 함께 어셔의 마음속에도 재가 흩날렸다.
“내가 그 유일한 희망인가?”
“예상하고 있는 모양이군.”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그렇게까지 잘나지는 않은 것 같은데. 대체 이유가 뭐지?”
결사를 상대하기 위한 유일한 희망이라.
어셔 자신이 생각하기에, 자신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저 인간의 탈을 뒤집어쓰고 있는, 복수에 미친 망령에 불과했으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상대는 어셔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파멸을 쫓는 미치광이의 어디에 그런 것이 남아있다는 말인가.
의문이 가득한 시선으로 전령을 보면, 전령은 옷에 묻은 재를 털어내면서 말했다.
“네가 가진 최강의 마법이 필요하다.”
“……최강의 마법.”
“그래. 네가 가진 마법은 최강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다.”
“블링크가 그렇게 대단한 마법이었나?”
“겨우 블링크 따위가 아닐텐데. 네가 가지고 있는 마법은 말이야.”
말을 하지 않아도 자신에 대해 알고있다.
정보의 비대칭에서 오는 입장의 차이가 크다.
이야기를 할 수록 거대한 수렁에 빠져드는 기분이었다.
그럼에도 자신의 선택으로 시궁창에 발을 내딛여야 하는 순간이 있는 법이었다.
어셔의 눈이 이야기의 다음을 쫓았다.
“그게 전부인가?”
“그럴리가. 가장 중요한 이야기를 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다른 이유도 말하는 편이 낫겠군.”
“그리고 브루노 리트리어를 토벌하는데 있어, 너는 필수불가결한 존재다.”
익숙한 이름이었다.
그리고 무거운 이름이었다.
그것은 도시에 있어서 악몽과도 같은 존재였다.
“……절름발이 브루노.”
“너도 알고 있지 않나. 절름발이는 살아있다.”
절름발이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어셔의 얼굴이 굳었다.
브루노 리트리어. 그는 인간의 규격을 초월한 괴물이다.
브루노 하나를 토벌하기 위해 치안대 대부분이 투입되었다.
그럼에도 치안대는 그를 완전히 처리하는데 실패했다.
절름발이 토벌작전은 그렇게까지 오래 전의 일이 아니었다.
“절름발이를 잡겠다고 했나? 정신이 나갔군.”
그런 괴물을 잡기 위해서 자신이 필요하다니.
어셔 본인조차도 확신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그럼에도 상대는 절름발이의 토벌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전령의 모습에서 실패에 대한 불안감 따위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지금은 아니다.”
“그럼 언제를 말하는거지?”
“조급할 필요는 없다. 모든 일에는 순서가 존재하기 마련이니까.”
“…….”
우스꽝스러운 새부리가면이 어셔를 향해 움직였다.
휘날리는 망토 너머로 전령은 손을 내밀었다.
악수를 요청하는 듯한 손길이었다.
어셔는 긴장한 눈으로 그의 손길을 지켜보았다.
“어셔 헤이즈. 우리의 손을 잡아라.”
“……전령.”
“집행자가 전력으로 앞으로의 토벌작전을 지원하겠다. 그러니 네 손으로 직접 결사를 무너뜨려라.”
나부끼는 바람에 전령의 망토가 펄력였다.
파도와도 같이 물결치는 망토의 너머에서, 어셔는 누군가의 그림자를 보았다.
뺨을 스치는 새벽바람에 몸을 짓누르던 잠기운이 완전히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시작은 변신술사부터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