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9화 〉 천변만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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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구역의 어느 비좁은 길목.
그곳에서 어셔 헤이즈가 손에 들린 자그마한 종이를 보며 길을 찾고 있었다.
앞으로 나아가는 어셔의 옆에는 불만이 있어보이는 모습의 네이가 그를 지켜보고 있는 채였다.
네이는 종이를 바라보고 있는 어셔에게 바싹 달라붙어서는,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셔. 이런걸 말없이 결정하면 어쩌자는거야.”
“치안대에 보여줄만한 성과가 필요한거 아니었나?”
“그거야 그렇긴한데…….”
네이가 한숨을 내쉬며 주머니 속의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렸다.
이번 외출은 본부와의 사전협의없이 독단으로 결정해버린 사안이었다.
어셔의 관리를 맡고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네이의 권한이었다.
어셔의 부탁이라면 어지간해서 들어주는 네이지만, 이번일은 네이로서도 쉽게 이해하기 힘든 것이었다.
상대가 자그마치 특급수배범이었던 것이 그 원인이었다.
특급수배범은 치안대조차 막대한 피해를 감안해가며 토벌작전을 진행해야 하는 상대였다.
고작해야 두 사람으로 특급수배범을 잡는다는 것은 지나치게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였다.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지원은 불러두었으니까.”
“……지원을 부른거야? 네가?”
네이가 의아한 눈으로 어셔를 바라보았다.
어셔의 말을 듣고 움직일 사람은 치안대에 없다.
그는 어디까지나 형기를 채우기 위해 치안대의 사냥개로 일하는 신세였다.
범죄자의 말에 귀를 기울여줄 사람이 치안대에 존재할리가 없었다.
“당연히 치안대는 아니다.”
“그럼 그렇지. 설마 용병이라도 고용한거야?”
“그렇게 보더라도 무방하겠군.”
고개를 끄덕인 어셔의 눈이 계속해서 종이를 훑었다.
어셔가 들고 있는 종이는 집행자의 일원이었던 전령에게 받은 것이었다.
그는 변신술사를 찾는데 이 종이가 꼭 필요할거라며 그에게 전해주었다.
종이에 적혀있는 것은 어떤 인물의 이름과 주소였다.
평소같았으면 정보의 진위여부를 의심했겠지만, 이번에는 구태여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
이유야 단순했다.
어셔의 직감이 정보가 사실이라고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굳이 직감에 의지하지 않더라도, 이성적으로 생각해서 집행자들이 그를 함정에 빠뜨릴만한 이유는 없었다.
그들이 결사와 적대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어셔를 적으로 돌려서는 안되는 일이었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들어가도록 하지.”
선두에 선 어셔의 발걸음이 골목길의 사이로 접어들었다.
네이 역시 어셔를 따라 골목길로 들어갔다.
담배냄새와 함께 골목 특유의 눅눅한 분위기가 그들을 맞이했다.
네이는 주위에서 느껴지는 진득한 시선에 몸서리치며, 앞장서던 어셔에게 불만을 토로했다.
“어셔. 너 요즘에 이상한거 알아?”
“나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나.”
“최근의 너라면 누가 보더라도 그렇게 생각할거야.”
네이의 이야기에 어셔의 발걸음이 한박자 더 빨라졌다.
귀찮은 이야기를 떨쳐버리기 위함이었다.
허나 네이는 한층 빨라진 발걸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어셔에게 바짝 따라붙으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요즘 들어서 수상한 점이 너무 많아.”
“수상한 점?”
“혼자서 계속 생각에 잠겨있는 것도 그렇고, 나도 모르게 이루어지는 일들이 많이 있잖아.”
네이가 모르는 사이에 이루어지는 일이라.
아마도 손에 쥐어져있는 쪽지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거기에 대해서 변명을 늘어놓자면, 어셔로서도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지 않았다.
자신조차도 흐름을 보지 못해 끌려다니는 신세가 아니었던가.
알지 못하는 진상을 이야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별 대단한 일이 아니다.”
“이상하지 않아? 분명 하루종일 너와 붙어있었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정보가 생긴다는게 말이야.”
“조력자에게 받았다.”
“조력자라니, 누가…….”
한순간의 이명.
그 직후 어셔를 추궁하던 네이가 잠잠해졌다.
한동안 쌓인 불만을 털어내버린 네이의 변화는 지나치게 빠른 것이었다.
어셔는 근처에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 전령이 무언가의 수작을 부렸음을 이해했다.
“그래, 알았어.”
“…….”
“이번 한번만 넘어가는거야.”
어느 정도는 불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효과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니었다.
네이와 불쾌한 대화를 계속 이어가봤자 문제가 생길 가능성만 높아질 뿐이다.
어셔는 좋은게 좋은거라고 생각하며 납득하기로 했다.
어느새 목표로 하던 장소에 다다른 어셔가 발걸음을 멈춰세웠다.
골목 한복판에 위치한 자그마한 건물.
사람이 살기도 복잡한 이곳이야말로 어셔가 들고 있는 종이에 적혀있는 목적지였다.
“드디어 도착한건가.”
“목적지라는게 여기였어? 여기에 뭐가 있는건데?”
“도박에 미친 인간 하나가 숨어있다더군.”
“우리가 찾던 인물이랑 상관없지않아?”
“녀석을 이용해 사람을 하나 꾀어낼 생각이다.”
공용현관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 어셔는 곧장 계단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터벅. 터벅.
두 사람의 발걸음이 좁아터진 비상계단에 울려퍼졌다.
낡아빠진 건물만큼이나 불쾌한 공간이다.
계단 곳곳에 낙서와 담뱃재가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언제 마지막으로 청소를 했는지 가늠조차 가지 않는 모습이었다.
계단에서 전해져오는 불쾌함을 애써 무시하고서, 네이와 어셔는 2층 복도에 올라섰다.
“이제 어디로 가면 되는거야?”
“205호다.”
어셔의 시선이 2층에 늘어서있는 문들을 훑었다.
그들이 들어가야 하는 곳은 205호였다.
오른쪽에서 세어 네번째 방.
그곳에 어셔가 찾고 있던 숫자가 적혀있었다.
205호의 앞에 가까이 다가간 어셔가 두터운 문짝을 강하게 두드렸다.
쾅. 쾅.
낡은 철문에서 두터운 소리가 울려퍼졌다.
노크치고는 제법 과격한 인사였다.
“밖에 누굽니까?”
낡은 철문의 너머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래가 낀 것처럼 울리는 혼탁한 목소리였다.
어셔는 철문 너머의 남자에게 들리도록, 문에 가까이 붙어 용건을 이야기했다.
“에드만이라는 남자를 찾고 있다.”
“제가 맞기는 합니다만, 무슨 용건입니까?”
“사전에 약속이 잡혀있는 걸로 아는데. 빚을 청산해주기로 하지 않았나.”
어셔가 사전에 들었던 이야기를 꺼내자, 남자는 반가운 목소리로 그에 수긍했다.
“아… 빚을 해결해주신다는 분이셨군요.”
“들어가도 되겠나?”
“그야 물론입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철컥. 금속의 잠금장치를 푸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얼마나 보안을 철저하게 해놓았는지는 몰라도, 에드만이라는 남자가 잠금장치를 푸는데는 제법 시간이 걸렸다.
끼이이이익——.
장치를 전부 풀어낸 에드만이 문을 열어젖히자, 낡은 경첩이 비명소리를 토해냈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 것은 덥수룩한 수염을 기르고 있는 꾀죄죄한 남자였다.
“어서오세요! 안으로 들어오시죠!”
안으로 들어선 어셔의 시선이 주변을 훑었다.
바닥에 술병이 나뒹구는 실내에서는 퀴퀴한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어셔는 바닥에 늘어져있는 물건들을 조심하며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셔와 함께 안으로 들어서던 네이는 반사적으로 자신의 코를 틀어막았다.
“윽…….”
“괜찮나?”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그녀는 안으로 들어가야하는지 잠시동안 망설이다가, 이내 어셔를 따라서 들어가는 것을 택했다.
두 사람이 실내로 들어온 것을 확인한 에드만이 다시 문을 닫았다.
육중한 철문이 닫히면서 바깥과 실내가 완전히 격리되었다.
문이 제대로 닫힌 것을 확인한 에드만이 방안을 훑어보는 어셔를 향해 되물었다.
“저기… 이전에 이야기하셨던 내용 말인데요.”
“빚을 탕감하는거 말인가?”
“맞아요, 그거! 정말 아무 조건 없이 해결해주시는거 맞는거죠?”
도박빚에 허덕이고 있는 에드만의 태도는 실로 절박해보이는 모습이었다.
에드만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인 어셔가 대답했다.
“걱정하지마라. 오늘부로 알프레드가 네 빚을 추궁하는 일은 없을거다.”
“휴우, 그거 다행이네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 에드만을 바라보면서, 어셔는 이번 작전을 세운 전령에게 감탄했다.
오늘 이후로 알프레드가 에드만에게 빚을 추궁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굳이 이 남자가 아니라 어느 누구라도, 13구역에서 알프레드를 만나는 일은 없을 것이었다.
도박사 알프레드는 오늘부로 바깥공기를 쐬지 못할테니까 말이다.
전령이 어디서 이런 남자를 포섭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기가 막힐정도로 악랄한 작전이었다.
“어셔, 찾아온다는게 설마…….”
“가장 먼저 만날 상대는 도박사 알프레드다.”
“알프레드를 여기로 부르겠다는거야?”
“그래. 녀석과는 나누어야 할 이야기가 많이 있지.”
어셔의 시선이 다시 에드만에게로 향했다.
에드만은 이불 위에 놓여있던 낡은 휴대전화를 떨리는 손으로 주워들었다.
전화를 하기 위해서 휴대전화를 확인하면서도, 여러차례 어셔에게 다시 확인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정말, 전화만 하면 되는거겠죠?”
“걱정하지마라. 문제가 될 여지는 없을테니.”
“정말, 정말이죠?”
“……빚을 해결하기 싫은건가?”
살의를 품은 어셔의 시선이 에드만을 향하면, 그는 곧장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닙니다! 지금 당장 전화 걸게요!”
“오늘부로 너는 자유의 몸이 될거다. 13구역 신용구제협회에 감사하도록.”
“아무렴 감사하고 말고요! 걸겠습니다.”
에드만의 손이 다급하게 전화번호를 눌렀다.
어셔는 그 모습을 얌전히 지켜보면서, 목에 차고 있는 머플러를 손으로 어루만졌다.
얇은 천 너머에서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전해져왔다.
하루에 억제장치의 제한을 해제할 수 있는 시간은 3시간이다.
변신술사와의 싸움을 염두해둔다면, 목걸이의 제한을 풀 타이밍은 신중하게 정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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