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0화 〉 천변만화 (2)
* * *
에드만이 연락을 남겼던 것으로부터 1시간 뒤.
잠궈놓았던 철문 밖에서 사람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연락을 받은 알프레드가 부하들을 데려온 것인지, 문을 열지 않아도 떠들썩한 소리가 안으로 전해져올 정도였다.
쾅! 쾅! 쾅!
직전의 어셔와 같이 강하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하나뿐인 화장실에 네이를 숨겨놓은 어셔의 시선이 잠겨있는 문을 향했다.
“빨리 문 열어!”
“기, 기다려 주세요!”
“빨리 안열면 문짝째로 뜯어버린다!”
문밖에서 들려오는 걸걸한 목소리에 에드만의 몸이 움츠라들었다.
빚을 청산한다고 말했는데도 불구하고, 알프레드의 기분이 좋지 않아보이는 모습이었다.
에드만은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어셔를 바라보았다.
불안에 가득한 에드만의 얼굴은 일련의 이야기를 믿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모습이었다.
“정말 괜찮은거 맞나요? 알프레드가 화난 것 같은데요!”
“……신경쓰지마라. 이쪽과 이야기하면 될 문제다.”
“믿고 있으면 되는거죠……?”
반복되는 에드만의 의심에 어셔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에 끼고 있던 장갑을 벗어넣으며, 어셔는 에드만을 향해 이야기했다.
“협회에 대한 믿음이 너무 부족하군. 이런 기회를 얻는게 쉬울 것 같나?”
“아닙니다! 빨리, 빨리 열게요!”
다급한 발걸음의 에드만이 현관문을 향해 다가갔다.
그들이 대화를 나누는 도중에도, 알프레드 일행은 끊임없이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어셔의 시선이 문을 여는 에드만을 지켜보았다.
철컥. 철컥.
수많은 보안장치들이 돌아가며 에드만이 두터운 문을 열기 시작했다.
수평으로 걸려있던 걸쇠.
그리고 강철과 강철사이를 연결하던 단단한 체인.
그 모든 잠금장치들이 해정되면서, 굳게 닫혀있던 방의 현관문이 열렸다.
“야. 문 하나 여는데 뭐 이리 오래걸리냐?”
문이 열리며 선글라스를 쓴 알프레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알프레드는 방안을 한차례 훑어보더니, 웃으면서 에드만을 바라보았다.
퉤. 알프레드가 뱉은 침이 바닥에 튀었다.
무언가의 대답을 원하는 협박이었다.
에드만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알프레드를 향해 항변을 늘어놓았다.
“그, 그게 잠금장치가 많아서…….”
“이거 말이야? 나한테만 빚진게 아니라 그런지는 몰라도, 정말 더럽게 많이 달아놨구만.”
“그래도 오늘부터는, 빚이 하나 줄어들겠죠.”
“그러고보니 신용 무슨 협회? 그 사기꾼 새끼들이 해결해준다고 했다며. 어디에 있냐?”
항상 날이 서있는 알프레드라고 하더라도, 돈을 받으면 만족하는 모습을 보일 것이다.
드디어 찾아올 것이 왔구나, 그런 생각을 한 에드만이 손가락으로 뒤를 가리키며 당당하게 이야기했다.
“저기! 저기에 계신 분이 거기에서 오셨어요!”
“뭐가. 아무도 없잖아.”
“예?”
알프레드의 대답에 에드만의 얼굴이 굳었다.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혹시나 오해를 한게 아닌가 싶어 기다려도, 알프레드의 반응이 바뀌는 일은 없었다.
알프레드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에드만을 비난했다.
“지금 네 뒤에 아무도 없다고. 머저리같은 새끼야.”
“아, 아니… 그럴 리가, 없는데…….”
“뭐가 그럴리가 없어. 뒤에 보이냐?”
알프레드가 에드만의 머리를 붙잡고 뒤를 향해 돌렸다.
강제로 돌아간 에드만의 시야가, 어셔의 온기가 남아있는 간이의자를 눈에 담았다.
알프레드가 말한 그대로였다.
간이의자에는 아무도 앉아있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 있던 어셔가 온데간데 사라진 것이다.
“왜… 진짜 없지…….”
“이제 도박하다가 머리도 따여버린거냐?”
“분명 저기에…….”
“오랜만에 손 좀 제대로 봐야겠어. 안으로 들어가자.”
퍼억.
복부를 걷어차인 에드만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알프레드는 쓰러진 에드만의 머리채를 붙잡고서, 방 안쪽을 향해 질질 끌고 들어갔다.
알프레드를 따라 찾아온 갱단의 부하들 역시 문을 닫고서 방안으로 들어섰다.
도시의 외곽지구는 법과 도리가 통하지 않는 곳이다.
두터운 격벽과도 같은 안전장치가 잠궈진다면, 오늘 이 자리에서 사람이 하나 사라지더라도 모를 일이었다.
에드만은 알프레드의 손에 끌려가며 문을 향해 비명을 내질렀다.
“끄으윽… 사, 살려주세요…….”
“내 돈을 떼먹고도 살아남고 싶은가보지?”
“제바아아알…….”
그렇게 알프레드와 함께 찾아온 조직원들이 전부 안으로 들어간 순간.
누군가 갑작스럽게 문을 열고 들이닥쳤다.
두터운 철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온 것은 어셔였다.
어셔를 마주한 알프레드의 몸이 굳었다.
조직원들 역시 어셔의 갑작스러운 난입에 멈춰섰다.
그들은 멍하니 안으로 들어온 어셔를 바라보았다.
“금방 다시 보는군.”
“너, 너 이새끼…….”
짧은 대화속에서 대치상황이 이루어졌다.
어셔는 눈앞에 있는 갱단의 조직원들을 바라보면서, 잠금장치를 하나씩 잠궈나갔다.
끼릭, 철컥——.
잠금장치가 하나 돌아갈 때마다 경쾌한 쇳소리가 흘러나왔다.
반복적으로 흘러나오는 쇳소리에 쓰러져있던 에드만이 탄식했다.
스스로 퇴로를 차단하는 어셔의 모습에 조직원들 역시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뭘 가만히 지켜보고 있어, 등신들아!”
하지만 어셔가 가진 마법을 알고있는 알프레드의 반응만은 달랐다.
알프레드는 눈앞에 서서 멍때리고 있는 조직원들을 향해 윽박을 질렀다.
알프레드를 향해 조직원들의 의문가득한 시선이 쏟아져내렸다.
“하지만 보스…….”
“빨리가서 저새끼 잡아!”
다급하게 명령을 내리는 알프레드의 목소리에, 조직원들이 다시 어셔를 바라보았다.
어느새 잠금장치의 절반 가까이가 잠궈진 상태였다.
블링크를 사용할 수 있는 어셔에게는 문제가 없지만, 별 다른 이동수단이 없는 나머지는 아니었다.
어셔의 시선이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조직원들을 훑어보았다.
그들을 보는 어셔의 손에는 나이프가 들려있었다.
“이 자식은 뭐하는 놈인데 보스의 일에 끼어들어?”
어셔의 나이프를 본 조직원 하나가 품속에서 나이프를 꺼낸 채로 어셔를 향해 가까이 다가갔다.
한걸음. 그리고 다시 한걸음.
조심스럽게 둘 사이의 간격이 좁혀져나간다.
그렇게 서로간의 거리가 나이프를 휘두를 수 있을만큼 줄어든 순간.
조직원을 눈앞에 두고 있던 어셔의 모습이 사라졌다.
“[블링크].”
“뭐, 뭣……!”
블링크를 사용한 어셔가 다시 나타난 곳은, 그를 향해 다가가던 조직원의 뒤였다.
나이프를 쥔 어셔의 모습이 나타나는 것과 동시에, 방안에 커다란 비명소리가 울려퍼졌다.
“커허억—!”
“맥스! 무슨 일이야!”
어셔를 향해 다가가던 조직원이 뒤를 돌아보았을 때, 그는 목에 나이프가 꽂힌 동료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어느쪽이든 망설일 시간은 없었다.
죽어가는 동료의 모습을 발견한 조직원이 어셔를 향해 달려들었다.
무심한 어셔의 눈이 조직원을 한차례 훑고 지나갔다.
“이, 미친 새끼……!”
“[블링크].”
그의 나이프가 어셔를 향해 내질러지는 순간.
어셔의 신형이 다시 한차례 사라졌다.
눈앞에 있던 목표물을 잃어버린 조직원은, 의도하지 않게 자신의 몸이 기울어지고 있는 것을 느꼈다.
쿠웅!
좁아터진 방에 둔탁한 충돌음이 울려퍼졌다.
묵직한 통증과 함께 자신의 몸이 완전히 쓰러졌을 때,
그의 눈에는 결코 보이지 말아야 할 자신의 하반신이 보이고 있었다.
“끄으… 으으으윽…….”
“10년정도는 형기가 늘었겠군.”
짧은 단말마와 함께 조직원이 숨을 거뒀다.
어셔는 반으로 나누어진 조직원을 지나쳐 지나갔다.
알프레드의 부하들이 순식간에 어셔에게 정리되었다.
당황한 알프레드의 시선이 어셔의 모습을 훑었다.
알프레드가 변신술사의 오른팔이라고는 하지만, 그를 지금의 자리에 올려놓은 것은 독기와 잔혹함이었다.
전투에 미친 살육광을 상대로 통할만한 이야기는 결코 아니었다.
“……사냥개는 치안대원 없이 혼자서 움직일 수 없을텐데?”
“글쎄. 네가 생각하기 나름이겠지.”
“설마… 처음부터 나를 꾀어내기 위해 함정을 파놓은건가.”
판단을 마친 알프레드가 소매에서 바늘을 꺼내들었다.
바늘에 묻어있던 푸른 액체가 전등빛을 받아 반짝였다.
어셔의 시선이 알프레드의 손에 들려있는 바늘에게로 향했다.
흐으—. 불쾌함을 담은 헛웃음 소리가 알프레드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투항해라. 네 녀석을 죽일 생각은 없다.”
“뭔 개같은 소리야. 나를 잡으려고 찾아온 주제에.”
“너는 앞으로의 작전에 필요한 인물이다.”
평상시에는 말을 늘어놓는 것에 심취해있는 알프레드지만, 지금 같은 순간에 필요한 것은 겨우 말따위가 아니었다.
알프레드는 어셔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바늘을 기울였다.
독이 묻은 바늘이 언제든 쏘아져나갈 준비를 했다.
“닥쳐. 거슬리니까.”
“…….”
침묵속에서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엇나간 호흡속에서 알프레드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알프레드의 손가락은 가느다란 바늘을 짓누르며 수축했다.
투웅.
관절이 뒤틀리는 소리와 함께 알프레드가 손가락을 튕겼다.
“[매직…]——.”
“[블링크].”
그리고 그 직후.
두 사람의 마법이 교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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