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1화 〉 천변만화 (3)
* * *
“이제 협조할 마음은 들었나?”
어셔가 한쪽 팔을 잃어버린 알프레드를 바라보며 말했다.
알프레드는 한쪽 팔이 잘려나간 채로 바닥을 나뒹구는 모습이었다.
두 사람이 몇분간 벌였던 치열한 사투의 결과였다.
잘려나간 옷소매로 절단면을 압박하면서, 알프레드가 살기어린 눈으로 어셔를 노려보았다.
“지랄맞은 소리를, 윽… 하고 앉았군.”
“나머지 팔도 떼어내야 마음이 편해질 모양이군.”
“기왕이면 머리도 떼지 그러냐?”
알프레드의 도발에 어셔가 고개를 저었다.
이전의 싸움이라면 알프레드의 말대로 움직였겠지만, 이제와서 굳이 그럴만한 이유가 없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고작해야 알프레드 따위가 아니라 변신술사였으니 말이다.
“나는 너를 죽일 생각이 없다.”
“개소리도 정도껏… 해야지. 가만 놔두면… 으윽, 출혈로 죽겠구만.”
코웃음을 친 알프레드가 입술을 깨물었다.
최대한 태연한 척을 흉내내고는 있지만, 제아무리 알프레드라도 통증을 참는 것은 힘들었다.
애시당초 살면서 이만한 상처를 입어볼만한 경험이 드물었다.
고작해야 칼침이나 총탄 하나 박히는게 고작이었으니 말이다.
“상처나 잘 붙잡고 있어. 살려서 감옥에 넣어줄테니까.”
“너는 뭔데… 아무것도 안, 해놓고… 폼잡고 있냐?”
알프레드가 어셔의 옆에 서있는 네이에게로 향했다.
네이는 전투가 끝난 이후에 화장실을 빠져나와, 줄곧 알프레드를 향해 총을 겨누고 있었다.
불쾌한 목소리로 내뱉은 알프레드의 말에 네이가 저도 모르게 흠칫하며 답했다.
“지, 지원 하고 있는데?”
“별 희안한 소리를… 다 들어보겠군. 차라리 담배에 불이라도 붙여주는게 어떠냐?”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알프레드에게 겨누어져있던 네이의 총구가 떨렸다.
계속해서 방아쇠를 어루만지는 네이의 모습에, 어셔가 그녀의 기분을 덜어주기 위해 나섰다.
“네이. 녀석과 어울려줄 필요는 없다.”
“쟤가 자꾸 이상한 말을 하잖아!”
“명문가의 체통이란게 있지 않나. 어중간한 도발에 흔들리지 않는게 좋을거다.
“그거야 뭐… 그렇긴 하지?”
그제서야 권총을 붙잡고 있던 손에 들어가는 힘을 뺀 네이였다.
알프레드는 코웃음을 쳤고, 네이는 얼굴을 보기 싫다는 듯이 고개를 돌렸다.
어느쪽이든 봐줄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다만 비웃고 있던 알프레드가 다시 고통에 몸서리치는 바람에, 둘의 대립은 생각보다 맥없이 끝을 맺었다.
알프레드는 가래가 낀 목소리로 혼자 중얼거렸다.
“흐으… 치안대도 갈때까지 갔군.”
상처를 틀어막은 알프레드의 손은 이미 피로 물들어있는 채였다.
옷감 너머로 새어나온 피가 묻어난 것이다.
어셔의 시선이 고통에 인상을 찌푸리는 알프레드를 훑고 지나갔다.
“변신술사를 위해 죽을 생각인가?”
“내가 지금, 그럴만한 사람으로 보이냐?”
“아마도 아니겠지.”
“당연히 그렇지. 내가 씨발, 다른 사람 살려주자고… 으윽, 구조요청을 안 할, 그런 위인은 못되지.”
허심탄회하게 제 할말을 다한 알프레드가 입맛을 다셨다.
그는 고개를 돌려 죽은 부하들을 바라보고서, 그 다음에는 멀쩡히 서있는 어셔와 네이를 바라보았다.
쓰라린 어깨와 자신을 지켜보는 치안대원.
바닥을 나뒹구는 조직원들의 시체.
마지막으로 좁아터진 방안을 가득 채우는 피냄새와 담배냄새까지.
이런 광경이 보기 싫어서 돈을 원했던 과거의 자신이 떠오르는 모습이었다.
“그렇다면 변신술사를 불러내라.”
“……너, 분명 후회하게 될거다.”
“네가 걱정해줄 필요가 뭐가 있지? 어차피 싸움은 우리의 몫일텐데.”
“특급 수배범이 우습게 보이는 모양이야?”
킥. 짧은 비웃음이 터져나왔다.
상념에 젖은 알프레드의 시선이 허공을 맴돌았다.
하지만 알프레드의 생각은 그리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어깨에서 번져나간 통증에 생각의 흐름이 끊겨나간 것이었다.
다시 현실로 되돌아온 알프레드가 어셔를 바라보며 말했다.
“잘 들어. 특급 수배범은 궤가 다른 녀석들이야.”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다.”
“검은 안개. 변신술사. 마약왕. 누구 하나 무작정 달려든다고 잡을 수 있는 인간들이 아니라고.”
“그만두라고 말하고 싶은건가? 그러기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곳까지 와버린 것 같군.”
어셔의 대답은 단호했다.
어디에도 더 이상 물러날 곳은 없었다.
알프레드는 어셔가 태도를 바꿀 생각이 없어보이자, 혀를 차며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래, 뭐. 명색이 도박사라고 불리는데, 이런데라도 배팅 좀 해봐야겠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알프레드가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툭——.
바닥을 타고 미끄러진 휴대전화가 네이의 앞에서 멈춰섰다.
네이는 의아한 시선으로 휴대전화를 바라보았다.
알프레드는 그녀의 앞에 있는 휴대전화를 향해 고갯짓을 하면서, 네이를 다그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거기 치안대원. 가서 전화해. 알프레드가 뒤지기 직전이라고 하면 알아듣겠지.”
“……내가?”
“하는게 없으면 그런거라도 해야지.
“이익……!”
이들의 대화를 지켜본 어셔가 한숨을 내쉬었다.
열받은 네이를 진정시키려면 시간이 제법 필요할 것 같았다.
* * * * * *
13구역. 어느 낙후된 건물의 옥상.
그곳에서 지상을 지켜보고 있던 나는 단말기를 바라보았다.
손에 쥐고 있던 단말기에 어셔로부터의 메시지가 도착해있었다.
원하는대로 처리했다.
알프레드의 제압에 나섰던 어셔로부터의 대답에, 나는 미소를 지으며 단말기를 집어넣었다.
변신술사를 끌어내기 위한 기초적인 준비는 끝났다.
내가 아는 변신술사의 성격이라면, 그는 반드시 이곳에 직접 찾아올 것이다.
결사의 간부라는 녀석들이 죄다 그렇듯이, 변신술사는 자신감과 자존심으로 가득 차있는 인간이었다.
남에게 당하고서 얌전히 넘어갈 성격은 아니라는 말이었다.
그 대상이 치안대원이라고 하더라도, 그는 응당한 보복을 하기 위해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아직까지는 순조롭군.”
“상황이 잘 흘러가는 모양이군요.”
“예상대로라면 아마 별 문제없이 끝날거다.”
나에게 그럴 자신이 없었더라면, 처음부터 이곳에 찾아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별 다른 피해없이 변신술사를 잡을 수 있다.
지금의 나에게는 그만한 확신이 있었다.
적의 방어를 무시할 수 있는 어셔 헤이즈가 팀으로 자리하고 있는데다가, 무엇보다 나 자신의 능력이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향상되었다.
이제는 단순한 정보우위의 전투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자격이 생겼다.
“상대는 결사중에서도 특히나 강하다는 간부인데, 과연 특급 수배범을 문제없이 잡을 수 있을까요.”
“자네는 자신이 없는 모양이군.”
“특급 수배범들이 만만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쯤이야, 저도 알고 있다보니…….”
나는 손을 뻗어 넘버 세븐의 어깨를 두드렸다.
상대가 특급 수배범이라고 하더라도, 어셔를 상대로는 별 상관이 없는 이야기였다.
더군다나 나 역시 특급수배범이 되지 않았던가.
특급 수배범과 맞서는 특급 수배범이라.
어느쪽이 강한지는 직접 붙어보면 되는 일이었다.
“걱정하지마라. 우리는 강하다.”
“전령…….”
“그런 강함을 가지고 있지 못했더라면, 결사라는 거대한 어둠과 싸울 생각조차도 하지 못했을거다.”
그렇게 말하며 옥상의 난간을 향해 발을 내딛었다.
아래에서 전해져오는 아찔한 풍경이 나를 맞이했다.
복잡한 뒷골목의 경치와 함께,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 걱정해야하는 것은 우리의 피해가 아니었다.
변신술사와의 전투가 가져올 여파에 대한 것을 걱정해야 했다.
“여기에 있는 이들도 슬슬 움직여야겠지.”
“이 사람들을 전쟁터에서 빼낼 생각입니까?”
“너는 그걸 원하고 있을텐데. 그래서 집행자가 된 것 아니었나?”
내 이야기를 들은 넘버 세븐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그렇다면 구해주마. 여기에 있는 이들 전부.”
“역시… 전령은 대단한 사람이네요.”
“사람들을 쫓아내는 정도야 그리 어렵지 않다. 잘 지켜보도록.”
이대로 계속 있다가는 근처에 있는 사람들이 휘말릴 것이다.
나서서 사람을 구하는 취미는 없다지만, 넘버 세븐을 앞에두고 이들을 버리기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세상을 구하기 위해 집행자가 되었다는 사람 앞에서, 어떻게 사람들을 버리고 갈 수가 있겠는가.
그렇기에 나는 익숙한 이름을 팔아먹기로 마음먹었다.
“——결사에서 너희들에게 알린다.”
넘버 세븐의 귀에 들리지 않도록,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텔레파시를 사용한다.
물론 발언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결사다.
계승자는 결사의 존재가 외부로 들어나는 것을 기피하고 있다.
그런 그에게 강력한 한방을 먹이면서, 이번 사건의 책임소재를 모두 결사에게로 돌리기 위한 수작이었다.
텔레파시를 들은 시민들이 혼란스러운 목소리를 자아냈다.
“방금 그거 뭐야?”
“귀에 이상한 소리가…….”
“방금 뭐였지?”
“우리는 이번에 메이지 가드를 장악하고, 검은 안개 패러노트를 부하로 삼았다.”
결사는 어디까지나 어둠속에 위치한 조직이다.
이들중에서 결사에 대해 아는 이들이 대체 얼마나 되겠는가.
그렇기에 나는 도시를 대표하는 테러리스트, 검은 안개의 이름도 같이 끼워서 팔아먹기로 했다.
당연하게도 그 내용은 말도 안되는 헛소리였다.
“메이지 가드……!”
“이럴수가… 검은 안개라니.”
“그리고 패러노트는 위대하신 계승자님의 명령에 따라 이 부근의 인간청소를 시작하기로 했다.”
“……인간청소!”
“제정신이 아니군.”
“……패러노트 리버? 그 미치광이라면 아무래도 그러고도 남겠지.”
물론 패러노트는 그런 주장을 한 적이 없다.
하지만 아무리 정신나간 소리라도, 패러노트가 이야기했다고 말하면 사람들이 믿었다.
패러노트의 광기에 대해 알고 있던 이들이 주변에서 한소리씩 거들기 시작했다.
나는 그것에 방점을 찍듯이, 패러노트의 목소리로 마지막 한마디를 던졌다.
“이 시간부로 이 부근은 우리의 영토다. 마법사가 아닌 녀석들은 전부 꺼져라.”
텔레파시가 닿는 반경에 패닉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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