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2화 〉 천변만화 (4)
* * *
텔레파시를 내보낸지 15분이 흘렀다.
패닉에 빠진 사람들은 이 주변을 벗어나기 시작했고, 어느새 주변은 텅 비어있었다.
패러노트의 검은 안개는 사용하는 것만으로 주변 반경을 뒤덮는다.
패러노트에게 죽고 싶은 생각이 아니라면, 일찌감치 멀리 도망가는 것이 최선이었다.
물론 이전에 보낸 텔레파시가 전부 사실이었을 경우의 이야기겠지만 말이다.
“어느정도 정리가 된 것 같습니다.”
옥상에서 주변을 내려다보던 넘버 세븐이 말했다.
나는 넘버 세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시선을 돌려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곳과는 제법 거리가 있는 상공에서, 막대한 규모의 마력이 위압감을 풍기며 움직이고 있었다.
이런 규모의 마력이 움직이고 있다면, 상대의 정체는 확인하지 않더라도 뻔했다.
대마법사가 다가오고 있다.
내가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자,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본 넘버 세븐이 물었다.
“전령? 무슨 일이라도 있는겁니까?”
“슬슬 녀석이 다가오는군.”
“녀석이라면… 변신술사.”
“그래. 이제부터는 우리도 움직여야만 한다. 멈추지 말고 달리도록.”
말을 마친 나는 곧장 아래를 향해 튀어내렸다.
퉁. 투웅—.
벽면에 설치된 파이프들을 순차적으로 밟아 내려온 나는 곧장 텔레파시를 사용했다.
텔레파시의 반경에서 마음의 소리들이 밀려들어오기 시작했다.
아직 변신술사의 것으로 추정되는 목소리는 없었다.
아무래도 텔레파시의 범위가 닿지 않는 모양이었다.
“자, 잠깐만요! 어디로 가는겁니까?”
넘버 세븐은 천천히 파이프에 매달려 내려오면서 나에게 물었다.
어디로 가냐고 묻는다면,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하나뿐이었다.
드래곤 상태에서의 브레스는 상당히 위협적이다.
변신술사가 지상에 상륙하기 전에, 먼저 진행할 폭격에서 벗어나야만 했다.
“곧 공습이 시작될거다. 불타죽고 싶은게 아니라면 움직여야한다.”
이번 텔레파시를 전하는 것은 비단 넘버 세븐뿐만이 아니었다.
나는 건물의 안에 있던 어셔와 네이 일행에게도 같은 메시지를 전했다.
어셔의 경우 블링크를 사용해 이동이 가능한만큼, 우리처럼 다급하게 이동할 필요는 없었다.
텔레파시를 보내며 이동하는 내내, 나는 계속해서 텔레파시의 범위를 체크했다.
같은 행위를 십수번쯤 반복했을까.
범위의 끝자락에서 이질적인 목소리 하나가 섞여들어오기 시작했다.
“알프레드의 생사따위는 내 알바가 아니지.”
“녀석째로 전부 불태워주마.”
익숙한 목소리가 끝나는 순간.
거대한 동체가 반대편 하늘에서 모습을 드러내었다.
햇빛을 반사하는 붉은 비늘.
그리고 몸을 휘감고 있는 방대한 마력.
전설속에 기록으로만 남아있던 드래곤의 모습이었다.
“녀석이 나왔습니다!”
레드 드래곤으로 폴리모프한 변신술사의 모습을 보며 넘버 세븐이 외쳤다.
크르르르르——!
거대한 포효가 사방에 메아리쳤다.
포식자의 선명한 울음소리가 머리를 뒤흔들었다.
드래곤의 울음소리에서 느껴지는 위압감은 대마법사의 프레셔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단순히 마주하고 있는 것만으로 다리에 힘이 풀려올 지경이었다.
“목소리를 줄여라. 정확한 위치가 포착당하는 경우, 직격은 피할 수 없을거다.”
“알겠습니다.”
나는 건물사이에 숨어 움직이면서, 변신술사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했다.
한차례 포효성을 내보인 드래곤은 이내 크게 숨을 들이마쉬기 시작했다.
녀석의 흉부가 크게 부풀어오르며, 주변의 마력이 빨려들어가는게 느껴졌다.
화력에 치중되어있는 레드 드래곤의 브레스다.
이전에 보았던 블루 드래곤의 브레스와는 비교 불가능한 위력일 것이다.
대기가 진동하며 혈류를 움직이던 심장박동이 거칠어졌다.
“…….”
텔레파시를 타고 녀석의 공격범위가 머릿속에 그려지기 시작했다.
우리가 있는 장소를 포함하는 범위다.
공격을 피하려면 가능한 멀리 떨어지는 것도 좋겠지만, 우리의 목적은 회피가 아닌 전투다.
녀석이 내려올 때를 대비해 거리는 적당히 벌려놔야만 했다.
나는 녀석과 넘버 세븐의 움직임을 보며 우리가 이동할 수 있는 거리를 계산했다.
이 속도로 달려나가면 가까스로 범위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머릿속으로 숫자를 세며 목표를 향해 달려나간다.
다섯.
넷.
셋, 둘——.
그리고 하나.
나는 넘버 세븐에게 산개명령을 내리며 모퉁이에 달라붙었다.
“공격이 온다. 숨어라.”
“……네.”
나와 넘버 세븐이 건물의 뒤편에 몸을 숨기는 순간.
주변의 공기흐름이 뒤바뀌었다.
흘러가던 바람이 한점으로 빨려들어가며, 그 흐름의 끝에서 드래곤이 지면을 바라보았다.
화륵, 화르륵.
콧김에서 옅은 불길이 솟아오르더니, 이내 드래곤이 완전히 입을 열었다.
입이 열리는 것과 동시에 작열하는 불꽃이 바깥을 향해 터져나왔다.
확산하기 시작한 드래곤의 브레스가 지상을 향해 내려꽂혔다.
콰과과과과과과——!
불길을 휘감은 숨결이 주변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뜨겁다. 그리고 장렬하다.
모든 것을 집어삼키려는 기세로, 브레스의 열기는 계속해서 확산해나갔다.
퍼져나가는 적염은 수십채의 건물을 뒤삼켰다.
그리고 그 적염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듯이, 강력한 열풍이 주변을 뒤덮었다.
나는 직격하지 않았음에도 온몸이 녹아내리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윽…….”
주변의 공기가 달아오르며 피부가 붉게 변했다.
타오르는 불꽃의 근처에 있는 것만으로도 숨쉬기가 괴로워진다.
달아오른 공기는 쉬이 들이마실 수 있을만한 물건이 아니었다.
나는 준비해두었던 물수건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아슬아슬하게 피하려고 준비했건만, 벌써부터 피해를 입은 것만 같은 기분이다.
가히 마법의 종주라고 말할만한 종족이었다.
“넘버 세븐. 몸은 괜찮나.”
“아직까지는… 버틸만 합니다.”
“잘하고 있다.”
드래곤이 내뱉은 브레스가 우리에게까지 닿는 일은 없었다.
그럼에도 우리의 컨디션은 멀쩡하지 않았다.
열풍에 휘감긴 몸이 땀으로 뒤덮였으며, 열기를 머금은 피부는 고통을 호소했다.
행동에 지장을 초래할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최선의 상태로 전투에 임하기는 힘들어보였다.
나는 끈적이는 기분을 애써 무시하려고 노력하며, 브레스가 휩쓸고 지나간 골목을 바라보았다.
시커멓게 타버린 잿더미 속에서 꺼지지 않은 잔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이동할 수 있을까요?”
“불가능해도 해야겠지.”
불안에 젖은 넘버 세븐에게 한마디를 내뱉고서는, 하늘을 날던 드래곤의 움직임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드래곤은 날카로운 눈동자로 지면을 바라보면서, 조금씩 아래를 향해 고도를 낮추고 있었다.
한차례 웅장한 폭격을 날렸기 때문일까.
가까이 내려와 그 결과물을 직접 살펴보고 싶은 모양이었다.
불타버린 지상에 완전히 착륙하지는 않더라도, 자세히 보기 위해서 저공비행정도는 필요할 것이다.
나는 고도를 낮추기 시작하는 드래곤의 경로를 머릿속으로 계산하기 시작했다.
변신술사가 직접 머릿속에 그려나가던 궤도와 뒤섞여, 분주해진 사고가 녀석의 움직임을 유추해냈다.
“넘버 세븐. 전투를 준비해라.”
나는 단말기를 꺼내 예상 좌표를 어셔에게 보냈다.
통상적인 숫자 좌표계는 아니고, 주변의 대략적인 특징을 나타낸 정보였다.
어셔에게 정보를 보낸 나는 넘버세븐에게 수신호를 보내며 움직였다.
타닥. 타다다닥.
우리가 벽 뒤에 몸을 숨기며 달리고 있으면, 드래곤은 이전보다 낮은 높이로 마을을 바라보면서 움직였다.
육중한 크기의 몸체가 만들어낸 그림자가 주변에 드리워졌다.
드래곤의 몸이 햇빛을 완전히 가린 것이다.
“…….”
“아직은 제법 높군.”
고도를 낮추었다고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전에 비해 낮췄다는 이야기일 뿐이다.
공격을 하더라도 무언가 의미있는 효과를 거둘 수 있을만한 높이는 아니었다.
날개가 있는 녀석이 굳이 지면에 내려올만한 이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숨을 죽이고서 녀석이 다가오는 것을 기다렸다.
조금 더.
조금만 더 내려오면 그가 움직일 것이다.
그때가 되면 우리는 지상에서 녀석과 싸울 수 있었다.
그렇게 거대한 날갯짓이 바람을 만들어내고, 그 바람이 우리의 뺨을 스쳐지나가는 순간.
익숙한 누군가의 모습이 상공에 나타났다.
“[블링크].”
귓가에 울려퍼지는 마법의 이름.
그와 함께 어셔 헤이즈의 몸이 비행중이던 드래곤의 동체 위에 나타났다.
탁.
깔끔하게 드래곤의 위에 착지한 어셔의 몸이 유려한 비늘을 붙잡았다.
갑작스러운 어셔의 등장에 드래곤의 동공이 가늘어졌다.
크르르르르.
“심하게도 날뛰는군……!”
불어오는 바람과 동체의 움직임 때문인지, 어셔는 균형을 잡는 것조차 힘들어했다.
그러나 우리가 해야하는 일은 명확했다.
어셔는 한쪽 손으로 몸을 고정하고서, 다른 한쪽의 손을 드래곤의 날개죽지에 뻗었다.
매끈한 파충류의 피막을 어셔의 손바닥이 스치고 지나갔다.
아래를 향해 미끄러지던 어셔의 손은 날개의 어느 부근에서 완전히 멈춰섰다.
어셔는 그 부분을 단단히 붙잡은 채, 눈을 부릅뜨고 입을 열었다.
“[블링크]!”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