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능력배틀물 보이스피싱-144화 (144/156)

〈 144화 〉 커튼콜 (1)

* * *

“그래서, 여기에 적힌 내용이 사실이라고?”

“네. 전부 그대로입니다.”

치안대 본청.

회의를 위해 찾아온 윌턴이 손에 들린 서류를 보며 말하면, 윌턴의 앞에 서있던 네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윌턴이 들고 있는 서류는 네이가 어셔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작성한 내용이었다.

피해규모와 체포과정을 생각하면 네이와 어셔가 직접 나섰다고 하기에는 곤란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네이는 자신들에 대한 내용만을 빼어놓고서, 집행자들에 대한 내용 위주로 보고서를 작성한 것이다.

네이가 건넨 서류를 읽어보던 윌턴의 시선이 서류의 어딘가에서 멈춰섰다.

윌턴은 자신이 무언가를 잘못 보았다는 듯이, 눈을 비비고서 해당 내용을 다시 보았다.

“여기있는 장의사 녀석은 뭐지?”

“……네?”

“내 눈이 잘못된게 아니면, 보통 심각한 사안이 아닌 것 같은데.”

장의사. 네이가 몇차례고 만났던 집행자의 이명이었다.

그 이름을 들은 네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장의사에 대해서라면 네이도 어느정도는 알고 있다.

그는 주로 인적이 드문 곳에 방치된 시체를 태우면서 움직이고는 했다.

그러한 방식탓에 해당 집행자에게 장의사라는 이명이 붙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이명이 장의사라는 것과, 네이와 함께 몇차례 전투를 치뤘다는 것을 제외하면 특이할게 없는 사람이었다.

“장의사에게… 무언가 문제라도 있나요?”

“그게 무슨 소리야. 보고서는 자네가 쓴거 아니었나?”

“그거야 뭐어… 맞는 말인데요.”

“여태껏 이자의 행적을 지켜보고서도 그런말을 하다니, 이해할 수가 없군.”

윌턴이 뻣뻣한 종이뭉치를 네이의 얼굴에 들이밀면서 말했다.

네이는 윌턴이 내민 서류를 천천히 훑어보았다.

네이가 제출한 보고서의 안에는 장의사와 엮여있는 사건들이 기재되어 있었다.

골목에서의 추격전. 검은 안개의 테러.

거기에 최근에 일어났던 변신술사의 토벌전까지.

전부 네이가 직접 경험했던 일들이었다.

“……행적이요?”

“그래! 첫줄부터 위협적인 내용이군. 그 마천루의 마법사와 무승부를 벌이고 도망가다니.”

“……으음.”

골목에서 벌어졌던 추격전을 떠올린 네이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6서클의 특급 수배범과의 무승부라.

그야 대마법사를 상대로 무승부를 벌였다고 한다면, 당연히 대단하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첫번째 내용을 들은 네이가 수긍하자, 이번에는 윌턴이 다음줄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지난번에 벌어진 메이지 가드의 테러사건에서는, 검은 안개 패러노트를 단독으로 격퇴했다고 적혀있군.”

“그, 그러네요.”

“패러노트의 무력 자체는 마천루의 마법사보다 아래라고 판단하지만, 그 특수성을 생각하면 위험도는 크게 차이가 없겠지.”

“그러게요……?”

“여기까지의 전적만 보더라도 얼마 전에 나타난 녀석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정도야.”

패러노트가 얼마나 까다로운 상대인지는 네이 역시도 알고 있었다.

검은 안개 패러노트와의 싸움에서, 장의사는 불꽃을 휘두르며 패러노트를 압도했었다.

물론 거기에는 방독면을 착용하고 있다는 상성적인 우위가 작용했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검은 안개를 격퇴했다는 사실만큼은 인정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상관인 윌턴의 모습을 보건데, 이미 그에 대한 판단은 인정하고 말고의 수준을 넘어선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막상 그렇게 강해보이지는 않던데.”

“계속해서 바보같은 이야기를 늘어놓는구만. 이 마지막 항목은 자네가 직접 조사해놓고도 그러는건가?”

“마지막 항목이라면, 어제 있었던 일 말이죠?”

“더 말해서 뭐하겠어.”

윌턴의 손가락이 한줄 더 내려와, 집행자와 변신술사의 분쟁에 대해 적혀있는 항목을 가리켰다.

명목상 어셔와 네이의 이름을 제외한 사건이었다.

사건을 본 네이의 입꼬리가 근질거렸다.

그녀가 생각하기에 전투의 대부분이 어셔에 의해 이루어졌던 탓이었다.

“그게, 그 사건은…….”

“변신술사의 악명이라면 모르는 이들이 없지. 그런데 그런 변신술사를, 장의사라는 녀석이 자신의 손으로 쓰러뜨렸다.”

“…….”

“마천루의 마법사와 호각을 이루고, 메이지 가드의 검은 안개를 격퇴한데다, 결정적으로 변신술사를 쓰러뜨리기까지 했어. 이런 녀석을 3급 수배범에 계속 놔둘수는 없지.”

서류를 가져간 윌슨은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네이에게 이야기했다.

“오늘 회의에 장의사의 특급 수배에 대한 안건을 상정할 생각이다.”

“아니, 그건…….”

“무슨 할말이라도 있나?”

장의사를 특급 수배범으로 만들겠다는 윌턴의 말에, 당황한 네이가 허공에 손을 내저었다.

그러나 이내 자신의 의견을 묻는 말에 입을 다물었다.

일전의 교전으로 건물 수십채가 파괴되었다.

그런 상태에서 어셔에 대한 이야기를 대놓고 꺼내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윌턴의 말을 듣다보니 생각보다 그럴듯한 기분이 들었다.

일련의 사건을 모아보면 어중간한 녀석이 벌였다기에는 말이 안되는 내용들이긴 했다.

게다가 네이가 보아왔던 장의사의 모습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한 것이었다.

어쩌면 장의사가 의외로 대단한 인물일지도 모른다 생각하며, 네이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이기로 결심했다.

네이에게서 아무런 이야기가 나오지 않자, 비장한 얼굴의 윌턴이 마지막 한마디를 늘어놓았다.

“그럼 이대로 진행하도록 하지. 새로운 특급 수배범의 출현에 치안대가 술렁이겠어.”

윌턴은 그렇게 말하고서는, 서류를 챙겨 먼저 움직이기 시작했다.

네이의 시선이 복도를 걸어가는 윌턴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 * * * * *

“여유로운 생활도 나쁘지 않네요.”

도시의 전경이 보이는 호텔의 야외테라스.

아래에서 반짝이는 불빛들을 내려다보고 있으면, 옆에서 야경을 바라보던 시넬이 말했다.

항상 애용하던 고글을 벗어둔 채로, 후드점퍼의 후드를 뒤집어쓰고 있는 모습이었다.

일상에 대한 감상을 늘어놓은 시넬이 고개를 기울여 나에게 밀착했다.

이런 모습을 보이는걸 보아하니, 아무래도 검성이 잠시 외출이라도 한 모양이었다.

“느긋하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지.”

“사장님은 이런 삶이 목표였나요?”

가벼우면서도 의미심장한 질문이었다.

무엇을 위해 싸워왔냐고 내게 묻는다면, 자신있게 스스로의 안위를 위해서라고 이야기 할 수 있다.

하지만 평범한 일상을 사는게 내게 바라는 것이냐고 묻는다면, 거기에 대해서는 아직 잘 모르겠다.

우리가 꿈꾸던 일상은 대체 어떤 모습일까.

벌어두었던 돈으로 느긋하게 여행이나 다니면서 호위호식 하는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이전처럼 사무실에서 적당한 현상범을 잡는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으로서는 명확하게 어떤 인생을 바라고 있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다만 한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면, 이런 시간이 오래가지는 않을거라는 점이었다.

“글쎄. 이런걸 원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군.”

“그런가요.”

“적어도 좋아하는 사람과 계속 함께하는게, 내가 바라고 있던 모습이겠지.”

어둠속에서 반짝이는 불빛의 모습이, 찬란하게 빛나던 밤하늘의 별들을 대신하고 있다.

한가하면서도 평화롭다.

매일 아침 일어나 시넬의 얼굴을 마주하고, 검성과 함께 아침식사의 시간을 가진다.

누구 하나 시간에 뒤쫓기지 않는, 여유롭고 느긋한 삶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시간은 영원하지 않다.

피와 시체속에 쌓인 일시적인 평화는 사소한 계기만으로도 완전히 무너져내릴 것이다.

“저도 좋아해요.”

“딱히 고백은 아니었는데.”

“크게 상관은 없어요.”

피식.

시넬의 이야기를 듣자 자연스럽게 미소가 나왔다.

그녀는 언제나 자신의 마음에 솔직한 사람이었다.

항상 마음이 가는대로 움직이고는, 생각한 그대로를 나에게 이야기했다.

그런 사람에게 사랑받는다는 것은, 분명 행운이라고 부를만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자신의 마음에 완전히 솔직해질 수 없는 사람이었다.

이유라고 해봤자 별 대단한 것은 아니다.

언제까지고 해소되지 않을 불안감이 가슴에 남아, 미련하게 자신을 좀먹어가고 있을 뿐이었다.

“시넬.”

“네, 사장님.”

나는 고개를 돌려 시넬을 바라보았다.

시넬의 잿빛 눈동자가 도시의 야경을 비추며 반짝이고 있었다.

계속해서 바라보고 싶어지는 아름다운 눈이다.

선명한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는 시넬에게, 나는 짧은 질문을 꺼냈다.

“언젠가, 내가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 되더라도, 계속 나를 좋아하게 될 것 같나?”

“네.”

그녀는 망설임 없이 답변을 꺼내왔다.

별 다른 고민의 시간따위는 필요해보이지 않았다.

시넬다운 모습이었다.

그런 시넬에게 한가지 질문을 덧붙여본다.

“무고한 이들을 마음대로 죽이고, 세상으로부터 지탄받을 행동을 하고 다닌다고 해도?”

“어려운 질문이네요. 사장님은 그렇게 되어버리나요?”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지.”

머지않아 대단원이 찾아온다.

그리고 지금부터 벌어지는 일들은, 나조차도 제대로 알고있지 못한 이야기였다.

누군가는 정해진 해피엔딩을 마주할 것이다.

그리고 다른 누군가는, 미처 끝내지 못한 이야기의 나머지를 이어나갈 것이다.

언젠가 찾아올 엔딩의 너머에서, 나 자신이 어떤 모습이 되어있을지는 모른다.

그럼에도 그 옆자리에는,

누군가 끝까지 남아주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었다.

“크게, 상관은 없어요.”

“……그러냐.”

“어떤 모습이 되어버려도, 어떤 상황이 되더라도, 사장님의 옆에 있는게 더 즐거울테니까요.”

“…….”

바람이 불어왔다.

시넬의 잿빛 머리카락이 흩날리며, 이윽고 그녀의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세상에서 가장 빠른 마법사가, 속내를 알 수 없는 무표정한 얼굴로 내 손을 붙잡았다.

“그러니까— 나쁜 짓을 해서 지옥에 떨어지더라도, 옆에 한자리는 남겨주세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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