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5화 〉 커튼콜 (2)
* * *
“어셔. 오늘은 진짜 힘들었어.”
골목길을 걷던 네이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윌턴을 따라갔던 회의를 마치고서, 몇가지 서류마저 끝낸 후에야 네이의 일은 전부 끝이 났다.
하루종일 본청에서 시달렸던 네이의 투덜거림에, 걸음을 맞춰서 걷던 어셔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셔는 네이를 향해 짧게 위로의 말을 전했다.
“고생했다, 네이.”
“너도 알아주는구나.”
“치안대원이 고생해야 시민들이 편해지는거겠지.”
“음, 그건 그래.”
어셔의 말에 네이는 곧장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녀가 치안대에 직접 몸을 담은 이유도, 사람들에게 보다 나은 세상을 선물하기 위함이었다.
고귀한 혈통에게는 그에 따른 의무가 존재하는 법이다.
그녀는 사람들에게 보다 평화로운 세상을 선물하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고 믿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틈만 나면 어셔에게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편이기도 했다.
“그래서, 오늘 일은 잘 처리했나?”
“어, 음… 글쎄?”
“뭔가 문제라도 있는건가?”
“저기 그, 장의사라고 불리는 집행자 있잖아.”
장의사라는 이름을 들은 어셔의 머릿속에 방독면을 쓴 집행자의 모습이 스쳐지나갔다.
이미 어셔와 여러차례 합을 맞춰본 사이다.
여러모로 못미더운 면이 있기는 하지만, 어셔가 보는 한 성실하다고 평가할만한 인물이었다.
어셔는 그에 대한 이야기에 흥미를 가지며, 네이에게 다음 내용을 캐물었다.
“장의사라. 그와 관련해서 무언가 일이 있었던 모양이군.”
“응.”
“무슨 일이 있었던거지?”
“팀장님이 장의사를 특급 수배범에 올리겠다고 하잖아.”
특급 수배범.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어셔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특급 수배범은 막대한 재산 및 인명피해를 입혔거나, 그만한 위험성이 있는 범죄자에게 내리는 수배등급이었다.
그런데 이전에 마주했던 집행자를 상대로 특급 수배를 진행하겠다고 했다니.
어셔로서도 순서가 이해가지 않는 상황이었다.
“……대단하군.”
“그렇지?”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가 그렇게까지 유해한 인물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일전에 보았던 장의사의 모습을 떠올린 어셔가 말했다.
어셔가 아는 한, 장의사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힐만한 인물은 아니었다.
어째서 그런 인물이 집행자에 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나름대로의 신념을 가지고 일에 임하고 있는 것은 틀림없었다.
그리고 그런 인물이 있기에, 어셔가 조금이나마 집행자에게 마음을 허물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어셔의 말에 네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
“적어도 사람에게 해를 끼칠만한 인물은 아닌 것 같더군.”
“의외의 평가네.”
“태우는 것도 시체가 전부 아니었나. 위생이나 윤리면에 있어서는, 그리 나쁜 일은 아니겠지.”
네이는 멍한 눈으로 상념에 잠겼다.
어셔의 시선이 그런 네이를 바라보았다.
눈앞의 소녀 역시 항상 제멋대로인 모습을 보이지만, 누군가에게 해를 끼친 기억은 없었다.
일을 늘려준 것이 해가 아니라고 한다면 말이다.
네이를 지켜보던 어셔가 남은 담배를 확인하기 위해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있잖아, 어셔.”
“…….”
“……어셔?”
하지만 그는 이내 무언가를 느끼고서는, 조용히 주변을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막대한 마력의 흐름이 주변에서 느껴졌다.
마법의 전조증상이다.
누군가 근처에서 마법을 사용한 것이 분명했다.
어셔의 눈이 주변을 훑으며 마법을 사용한 마법사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네이. 움직이지 마라.”
“응?”
“주변에 누군가 있다.”
길을 가다 기습당하는 것도 그리 드문 일만은 아니었다.
경계심 가득한 시선이 움직였다.
마법사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어셔가 마주한 주변의 풍경에서 위화감이 느껴졌다.
이런 상황에서 섣불리 움직이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었다.
어셔는 네이를 멈춰세우기 위해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네이. 아무래도 무작정 움직이는건 그만두는게 좋을 것 같군.”
“…….”
“네이?”
이름을 불러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지형지물을 살피던 어셔가 고개를 돌려 네이가 있어야 할 방향을 바라보았다.
방금 전까지 네이가 있던 자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네이 본인의 흔적은 커녕, 마법의 잔재조차도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어셔는 다급한 목소리로 네이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네이! 어디에 있지?”
“…….”
“네이 테르도스! 대답해라!”
네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방금 전에 누군가 사용했다고 생각한 마법이 네이에게 영향을 끼친 모양이었다.
네이는 도시를 움직이는 테르도스 가문의 하나뿐인 아가씨다.
그녀를 노릴만한 가치는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네이를 잃어버린 어셔의 다리가 움직였다.
그는 혹시나 골목사이에 있을 네이를 찾기 위해 모퉁이를 향해 다가갔다.
“이건 대체…….”
모퉁이 앞에 선 어셔의 발걸음이 그 안으로 들어가는 일은 없었다.
어셔는 자신의 앞에 존재하는 골목길을 향해 손을 뻗었다.
툭.
손길의 끝자락에 무언가 걸렸다.
길이 있다고 생각한 위치에 존재하는 것은 무형의 벽이었다.
눈에 보이는 것과 손으로 만지는 것 사이에 커다란 괴리감이 있었다.
“눈을 속이는 마법인가.”
어셔의 손이 계속해서 벽을 훑었다.
블링크를 사용하면 일정거리를 이동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무모하게 남발하다가는 벽에 끼일 가능성이 높았다.
무엇보다도 어셔 본인은 네이와 일정거리 이상 떨어질 수 없는 운명이었다.
네이가 범위 내에서 벗어나는 것을 감지한 순간, 어셔의 목걸이가 즉결처형을 집행할 것이다.
정체불명의 공간에서 함부로 탈출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것이었다.
꽉 틀어막힌 상황에 답답함을 느낀 어셔가 주머니에서 단말기를 꺼내들었다.
‘필요하다면 사용해야겠지.’
변신술사와의 싸움이 벌어지기 직전, 집행자의 전령이 자신에게 주고 간 물건이었다.
지난 작전에서도 이 물건을 사용해 통신했던 만큼, 연락을 넣는다면 높은 확률로 답이 돌아올 것이다.
어셔는 단말기에 현재 위치를 첨부해 집행자들에게 구원요청을 보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보험이었다.
집행자들이 자신을 도와주러 올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런 가능성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심정이었다.
삐빅.
짧은 송신음과 함께 메시지가 발송되면, 어셔의 근처에서 발걸음 소리가 울려퍼졌다.
단말기를 보던 어셔의 시선이 발걸음 소리가 울려퍼지는 방향으로 향했다.
“처음 보는군, 어셔 헤이즈.”
터벅—. 터벅—.
여유로운 걸음걸이로 어셔의 앞에 나온 남자가 어셔에게 인사를 건넸다.
처음 보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어셔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다.
누가 봐도 이 상황의 범인이 틀림없었다.
어셔의 눈이 자신을 마주한 남자의 모습을 훑었다.
“너는 누구냐.”
“내 이름은 레닐 바이츠. 제국 황실 근위대의 제 4 근위대장, 레닐 바이츠다.”
“근위대장이라고……?”
근위대장이라는 이름을 들은 어셔의 눈이 커졌다.
근위대는 제국에서도 최강이라고 여겨지는 전력이다.
더욱이 근위대장이라는 이름은 가볍게 사칭할 수 없는 이름이었다.
그런 근위대장이 도시에서 활동하면서, 그 정체를 어셔 자신에게 사실대로 밝혔다니.
어셔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믿기 어려운가? 하기야, 정직하게 정체를 이야기할거라고는 생각도 못했겠지.”
“……어떻게 나에 대해 알고 있지?”
“근위대가 네 신상명세를 알아내는 것쯤이야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걸 말하는게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을텐데. 굳이 근위대가 나에게 접근할 이유가 뭐냐고 묻고 있는거다.”
어셔 이외에도 사냥개는 얼마든지 있다.
오히려 사람에 대한 가치라면, 어셔 자신보다는 네이에게 더 무게가 쏠릴 것이다.
그럼에도 레닐은 굳이 어셔에게 접근해왔다.
어셔로서는 레닐의 태도 하나마저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날카로운 시선으로 쏘아붙이는 어셔의 모습에, 레닐은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왜 주목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지?”
“무슨 소리냐.”
“너는 절름발이 브루노와 함께 치안대에 둘밖에 없는 특별 감시 대상이다.”
“……특별, 감시 대상?”
“그래. 특별 감시 대상. 절름발이 브루노가 잠잠한 지금은, 치안대장인 아벨 테르도스가 유일하게 예의주시하는게 너라는 이야기다.”
아벨 테르도스. 그리고 특별 감시 대상.
갑작스러운 이야기에 어셔의 머리가 사고를 멈췄다.
들어서는 안될 이야기를 들은 기분이었다.
단순히 그를 눈여겨보고 있다는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어셔의 직감은 그 너머에서 불쾌한 냄새를 느꼈다.
어셔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어두운 이야기가 뒤에 숨어있을 것 같았다.
“……그렇군.”
“이제 대화를 할 마음이 들었나.”
“[블링크].”
멍하니 레닐을 바라보던 어셔가 레닐이 있는 장소를 향해 블링크를 사용했다.
레닐의 뒤에서 나타난 어셔는 곧장 그를 향해 손을 뻗었다.
후욱——.
어셔가 뻗은 손이 레닐을 가르고 지나갔다.
어셔의 손에 닿은 레닐의 모습이 사라지더니, 그는 이내 어셔가 원래 있던 자리에 나타났다.
“급한 성격이군.”
“……대화를 원한다면 잡아놓은 인질부터 해방하는게 우선이다.”
“깊게 보자면 틀린 말은 아니겠지. 오늘 나는 단순히 이야기만 하려고 온게 아니니까 말이야.”
“뭐가 목적이냐, 근위대장.”
“내 목적? 생각보다 단순한 목적이야.”
벽에 기대어 선 레닐이 어셔를 바라보았다.
그는 손가락으로 총모양을 만들고서는, 어셔를 향해 쏘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결사를 이끌고 있는 계승자, 아벨 테르도스를 네 손으로 죽여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