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6화 〉 커튼콜 (3)
* * *
벽에 기대어 선 레닐이 어셔를 바라보았다.
그는 손가락으로 총모양을 만들고서는, 어셔를 향해 쏘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결사를 이끌고 있는 계승자, 아벨 테르도스를 네 손으로 죽여라.”
계승자, 아벨 테르도스.
그 이름을 듣기 무섭게 어셔의 얼굴이 굳었다.
의문에 가득찬 시선이 허공을 맴돌았다.
아벨 테르도스는 도시를 운영하는 상임위원들 중 하나면서, 치안을 담당하는 치안대장이기도 한 인물이었다.
무엇보다 네이의 하나뿐인 가족이기도 했다.
그런 그가 결사를 이끄는 수장이라니.
어셔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 내용이었다.
“잠깐. 누가 계승자라고?”
“다시 한 번 말해주지. 상임위원 아벨 테르도스가 결사를 이끄는 계승자다.”
“하…….”
“정보는 도움이 됐나?”
실실 웃으면서 내뱉은 레닐의 말에, 어셔는 탄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와서 부정하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그는 지금이 되어서야 비로소 깨닫고 말았던 것이다.
어째서 지금까지 그들이 결사의 실마리를 찾을 수 없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치안대는 결사의 흔적을 쫓는 일에 막대한 시간과 인원을 할애했다.
그럼에도 이 기나긴 싸움에 결착이 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이유는 하나였다.
아벨 테르도스.
그 빌어먹을 녀석이 결사의 우두머리였으니까.
“내가… 바보처럼 놀아나고 있었군.”
“이제서야 좀 정신이 든 모양이야. 그래서 대답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근위대의 손에서까지 놀아날 생각은 없다.”
어셔의 다음 대답을 기대하던 레닐의 입꼬리가 다시 아래로 내려갔다.
레닐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어셔의 이미지와 차이가 있었기 때문일까.
그는 어셔의 대답에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고개를 까딱인 레닐이 어셔에게 물었다.
“무슨 소리지?”
“그 사실 하나만으로 내가 녀석을 죽이러 갈거라고 생각하나?”
“이걸로는 부족했다는 이야기인가?”
“……그래.”
어셔는 망설임없이 대답했다.
눈앞의 레닐 바이츠가 원하고 있는 것은, 아벨의 제거에 대한 리스크를 전부 어셔가 짊어지는 것이다.
물론 아벨 테르도스의 탓에 치안대의 수사가 제자리에 머물고 있는 것은 맞았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그들 사이에서 해결해되어야만 하는 문제일 뿐이다.
지금 당장 목숨을 내걸어 레닐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따위는 없었다.
“그렇다면 하나 더 말해주지.”
“뒷이야기가 더 있었나.”
“그래. 이번에는 너도 만족할만한 이야기일거다.”
레닐은 느긋하게 어셔를 향해 걸어가며 말했다.
뒤에 이어질만한 이야기라.
그에 대해 생각하던 어셔의 마음이 갑작스럽게 불안해져왔다.
레닐은 어셔 자신을 반드시 움직이게 만들만한 이야기라고 단언했다.
어셔에게 있어 짐작이 가는 이야기라고는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죽은 네 여동생, 이름이 리엘 헤이즈였나?
“……설마.”
“그 여자를 죽인 것도 계승자다.”
“리엘을 죽인게 계승자라고?”
레닐의 이야기를 들은 어셔의 목소리가 커졌다.
끄덕.
격앙된 분위기속에서 레닐이 고개를 움직여 수긍했다.
진실을 들은 어셔의 동공이 떨려왔다.
“물론 계승자 본인이 직접 죽였다고 보기는 어렵겠지. 부하를 통해 죽이라고 시켰으니까.”
“…….”
“설마 이 이야기조차도 가볍게 넘길 생각인가?”
까득.
어셔가 이를 갈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강하게 주먹을 쥔 어셔의 팔에 거센 힘줄이 솟아올랐다.
쿵—. 쿵—. 쿵—.
어셔는 자신의 심장이 거칠게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거센 혈류가 전신을 타고 흐르며, 머리에 피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어셔 스스로 어렴풋이 짐작하는 것과, 실제로 진실을 듣는 것은 전혀 다르다.
이제는 더 이상 자신을 멈춰세울 변명이 부족했다.
“……그랬던건가. 이제야 모든게 이해가 가는군.”
“망설일 필요는 없다, 어셔 헤이즈. 이건 단지 네가 원하는대로 하면 그만인 이야기다.”
“내가, 원하는대로.”
“그래도 결단을 내리는게 어렵다고 한다면, 내가 마지막으로 거들어주도록 하지.”
철컥.
레닐의 손에서 권총 한자루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가 들고 있는 권총의 앞에는, 겁먹은 표정의 네이가 존재하고 있었다.
어셔의 시선이 권총의 총구쪽으로 향했다.
레닐은 네이의 관자놀이에 총구를 밀착시키고서는, 어셔를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이러면 답이 됐나?”
“……네이.”
“아벨 테르도스를 죽여라. 그렇지 않으면… 네이 테르도스를 내 손으로 죽이겠다.”
아벨을 죽이지 않으면 네이가 죽는다.
간단명료한 협박이었다.
그리고 이런 협박이 존재하지 않더라도, 어셔의 마음은 이미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평생 복수 하나만을 바라보고서 살아왔다.
그토록 찾아헤매던 원수의 정체를 알아버린 이상, 어떤 이유로도 그를 멈출 수는 없었다.
“어셔, 안돼!”
총구가 겨누어진 네이가 어셔를 향해 외쳤다.
어셔의 싸늘한 시선이 네이를 응시했다.
“…….”
“이 사람의 말이 사실이라는 보장이 없잖아. 무턱대고 오빠를 죽일 생각이야?”
어셔는 네이의 외침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자신의 목을 감싸고 있던 머플러에 손을 가져갈 뿐이었다.
스륵.
어셔의 목을 휘감고 있던 천이 풀려나가며, 그 너머에 있던 억제장치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셔는 머플러를 움켜쥔 손가락으로 자신의 억제장치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나에게 그런 제안을 했다는건, 이 장치의 제한을 풀 수단 역시 가지고 있다는 뜻이겠지.”
“이제야 결심이 선 모양이야.”
“이 장치를 해결해라. 그렇게 하면 네놈이 바라는대로 아벨 테르도스를 죽이고 오겠다.”
레닐이 들고 있던 총구를 되돌렸다.
어셔의 눈동자는 이미 확고한 결심을 내보이는 채였다.
더 이상 총구를 겨누고 있을 이유는 없었다.
“물론, 원하시는대로.”
“어셔! 이 녀석의 말에 속지말란 말이야! 아무리 그래도 죽이는건… 그러면 안되는 거잖아.”
격앙된 네이의 외침이 허공에 울려퍼졌다.
허나 이 자리의 누구도 그녀의 외침을 듣는 일은 없었다.
진실을 마주한 순간.
치안대의 사냥개는 자신의 의지로 목줄을 풀었다.
* * * * * *
“결국 우려하던 일이 터지고 말았군.”
나는 착잡한 마음으로 발을 움직이며 말했다.
지금으로부터 십여분 전, 어셔가 자신에게 보낸 구원요청이 도착했다.
천하의 어셔 헤이즈가 먼저 손을 벌렸다.
그곳에 심상치 않은 상대가 있으리라 짐작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짐작이 가는 상대는 둘이었다.
하나는 계승자의 오른팔인 절름발이 브루노.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근위대장 레닐 바이츠.
어느쪽과 마주했다고 하더라도, 이야기가 곱게 풀리지 않을거라는 것은 확실하다.
그렇기에 구원요청을 확인한 나는 곧장 헤리오를 데리고 어셔를 찾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치안대 내에서도 유별난 사냥개다. 그렇게까지 우려할 일인가 모르겠군.”
“보통이라면 그렇겠지만, 지금은 어느쪽을 마주하더라도 곤란한 상황이다.”
아무런 준비 없이 절름발이 토벌에 나설 수는 없다.
후자 역시 마찬가지다.
이야기의 종막에 다가선 이상, 레닐과 엮이는 것만으로도 흐름이 파국으로 치닫을 것이다.
가급적 빨리 어셔와 만날 필요가 있었다.
나는 분주하게 다리를 재촉했고, 헤리오 역시 내 뒤를 바짝 따라왔다.
“이 근처를 가리키는게 확실한가? ”
주위를 둘러본 헤리오가 나에게 물었다.
어셔는 대략적인 위치만을 단말기로 보내왔다.
그가 있는 정확한 위치를 알기 위해선, 우리가 직접 이 주변을 찾아나설 필요가 있었다.
“그래. 내가 생각하는 상대가 맞다면, 눈으로 찾는데는 한계가 있을거다.”
“어떻게 찾을 생각이지?”
“아무래도 마법을 사용하는 편이 빠르겠지.”
텔레파시를 사용해 들려오는 목소리들을 확인한다.
선이 굵은 남자의 목소리가 하나.
낯선 여자의 목소리가 하나.
그리고, 어딘가 익숙한 독백이 하나.
나는 익숙한 목소리를 찾아내고는 방향을 틀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벌써 찾아낸건가?”
“짐작이 가는 위치가 있다.”
타다다다닥——.
골목을 달리는 두 사람의 발걸음 소리가 울려퍼졌다.
우리가 가진 마법으로는 어셔나 검성처럼 호쾌하게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더군다나 주도면밀하게 공간을 살펴봐야 하는 만큼, 결국은 자신의 다리로 움직여야 할 필요가 있었다.
나는 어셔의 것으로 짐작되는 목소리를 찾아 움직였다.
미로처럼 뻗어있는 모퉁이를 몇갈래인가 지나서야, 나는 비로소 어셔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후…….”
내가 마주한 어셔는 예상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어셔는 골목의 벽에 기대어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구원요청을 날렸던 사람이라고는 짐작이 가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는 입에 물려있던 담배를 한모금 빨아들이고는, 착잡한 얼굴로 담배연기를 내뿜었다.
“어셔 헤이즈.”
“……드디어 도착한건가.”
나를 바라본 어셔가 무심하게 이야기했다.
이런식으로 멀쩡하게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보건데, 절름발이 브루노를 만난 건 아닌 모양이었다.
남은 후보군은 이제 레닐 바이츠 하나뿐이었다.
“마침 잘됐군. 부탁할게 하나 있다.”
“설마, 근위대장을 만난건가.”
“역시…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군.”
텔레파시를 통해 어셔의 감정이 전해져온다.
깊은 분노. 그리고 끈적한 살의.
어셔가 무슨 대화를 나누었는지는 듣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었다.
내 말을 들은 어셔는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너는 언제나 그랬지. 내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아도, 혼자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것처럼 말이야.”
“…….”
“내 여동생에 대한 것도 이미 알고 있었을테고.”
짙은 담배연기가 허공에 흩어져갔다.
어셔가 들고있던 담배의 말단 역시 재가 되어 바스라졌다.
흩어져가는 재와 연기속에서, 어셔의 복잡한 시선이 나에게로 향했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담배를 놓아버리며, 만감이 가득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내 말이 틀렸나? 퍼시발 스미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