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7화 〉 커튼콜 (4)
* * *
짙은 담배연기가 허공에 흩어져갔다.
어셔가 들고있던 담배의 말단 역시 재가 되어 바스라졌다.
흩어져가는 재와 연기속에서, 어셔의 복잡한 시선이 나에게로 향했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담배를 놓아버리며, 만감이 가득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내 말이 틀렸나? 퍼시발 스미스.”
어셔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은 내 이름이었다.
내 정체를 정확히 짚어서 이야기하는 어셔의 말에, 나는 더 이상 가면을 쓰고 있을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툭——.
쓰고 있던 새부리가면을 벗어 어셔를 바라보았다.
고독감에 젖은 어셔의 눈동자가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래.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역시 그랬군.”
“…….”
이전부터 나는 결사나 어셔 본인에 대한 이야기를 기피해왔다.
거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커다란 이유는 도시의 종말을 앞당기지 않기 위해서였다.
진실을 알게되는 순간 어셔는 파멸할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필요한 때가 찾아올 때까지 어셔에게 진실을 이야기 할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어셔 스스로가 그에 대해 알아버렸다.
이제와서 내가 그에게 무슨 말을 꺼내더라도, 어셔는 내 말을 신뢰하지 못할 것이다.
“뭘 위해 숨기고 있던거지?”
“전부… 너와 네이를 위해서였다.”
“말도 안되는 변명을 늘어놓는군.”
“너희의 관계가 이런식으로 파탄나는 것을 바라지 않았으니까.”
모든 진실을 알게되는 순간, 어셔와 네이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되어버린다.
어셔의 복수 끝에 남는 것은 일말의 허무함뿐이다.
소중한 것을 모두 잃어버린 채, 홀로 파멸을 향해 달려가는 인생.
그래서야 배드엔딩과 다를바가 없지 않은가.
나는 이곳에서까지 그런 엔딩을 보고싶지는 않았다.
어셔 본인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지만 말이다.
“괜한 참견이다, 암흑상인.”
“……어셔 헤이즈.”
“자신의 일은 스스로 결정하겠다.”
툭. 데구르르——.
어셔의 손에 들려있던 금속 목걸이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치안대에서 범죄자인 어셔를 제어하기 위해 채워놓았던 억제장치였다.
그리고 그 기능을 전부 잃어버린 지금은, 어셔 헤이즈의 자유를 나타내는 상징이 되어버렸다.
나는 바닥을 나뒹구는 목걸이를 바라보면서, 어셔에게 향후의 일을 물어보았다.
“아벨 테르도스를 죽이러 갈 생각인건가?”
“당연한 이야기다. 나와 가족을 건드린 이상, 응분의 대가를 치뤄야겠지.”
“……후회하게 될거다.”
어셔는 분명 후회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어셔에게 주어진 필연적인 운명이었다.
나는 이야기를 바꾸지 못했고, 어셔를 설득하는 것에 실패했다.
도시의 멸망은 막을 수 없다.
일어나야 하는 일은 반드시 일어난다.
나 혼자서 막기에는 너무 거대한 흐름이었던 모양이다.
이렇게 된 이상 다른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악담을 하려는 생각은 아닌 것 같군.”
억제장치를 내던진 어셔가 나를 향해 걸어오면서 말했다.
지금의 어셔에게는 어떤 말을 해도 통하지 않는다.
나는 그를 얌전히 보내주어야만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보다 최선의 방법이 있었는지 고민해보아도, 마땅한 해결책은 나오지 않았다.
언젠가는 마주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체념하는 심정을 담아, 움직이기 시작한 어셔에게 답했다.
“마법사에게 사명이 주어지는 것처럼, 사람에게는 정해진 운명이 있다.”
“운명이라.”
“나는, 아직까지도 너의 운명을 바꾸지 못했군.”
약간은 허탈한 심정이었다.
그러나 아직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다.
내가 아는 모두에게 해피엔딩을 약속했다.
누구 하나도 의미없이 죽게 놔둘 생각은 없었다.
그것은 네이와 어셔 역시 마찬가지였다.
“절름발이의 토벌에는 참여하도록 하지. 때가 되면 연락해라.”
결심을 마친 어셔가 그렇게 통보를 마치고서는 나를 지나쳐갔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길을 내주었다.
“……그렇게 하지.”
“머지않아 녀석이 네이를 해방할거다. 그녀를 잘 부탁한다.”
석양이 지기 시작한 하늘의 아래.
블링크를 사용한 어셔가 모습을 감추었다.
나는 어셔가 사라진 자리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이윽고 품속에 있던 단말기를 꺼내들었다.
이렇게 되어서야 다른 수단을 갈구해야만 한다.
얌전히 순응해봤자 지금까지의 노력이 허사가 될 뿐이었다.
“결국 막는데 실패했군.”
나와 어셔의 대화를 지켜보던 헤리오가 말했다.
그의 말대로다.
실패는 이미 지나가버린 것이다.
더 이상 지나간 실패에 연연하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넘버 파이브. 레닐 바이츠를 찾아서 네이를 구출해라.”
“지시대로 하겠다.”
벗어놓았던 가면을 다시 얼굴에 뒤집어쓴다.
그동안은 시대착오적이었던 변장용 가면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이 가면의 악명에 걸맞는 시대가 다시 찾아올 것이다.
나는 단말기의 버튼을 눌러 통화를 연결했다.
물론 통화를 건 상대는 넘버 세븐이었다.
“전령? 무슨 일입니까.”
“코드 식스를 발령한다.”
“코드 식스……. 설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모든 시체를 소각해라.”
짧은 명령을 마친 나는 통화를 끊었다.
합리와 법치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이제부터는 무법자들의 시대가 찾아올 것이다.
* * * * * *
1구역에 위치한 치안대의 본청.
어셔는 블링크를 이용해 집무실의 앞으로 이동했다.
평소라면 마법을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경고음이 울렸을 상황이었다.
하지만 어셔를 괴롭히던 억제장치가 사라진 지금, 어셔를 가로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도 없었다.
몇차례의 블링크만으로 치안대의 보안을 마비시킨 어셔는 살의어린 눈으로 문을 바라보았다.
“여기에 있는 모양이군.”
혹시나 부재중인 것은 아닐까 걱정했지만, 다행히도 아벨은 이곳에 있는 모양이었다.
끼이이이익.
손잡이를 잡은 어셔가 살며시 문을 열어젖혔다.
굳게 닫혀있던 집무실의 문이 열리면서, 그 너머의 풍경이 어셔에게 드러났다.
수많은 서류들이 깔끔하게 정리되어있는 책상.
그곳에서 업무를 보던 아벨이 서류에서 눈을 떼지않고 물었다.
“누가 찾아온거야?”
“……나다.”
아벨은 그제서야 고개를 들어 어셔를 바라보았다.
어셔를 보는 아벨의 눈이 이채로 가득찼다.
툭.
들고 있던 펜을 내려놓은 아벨이 어셔를 바라보았다.
지금의 상황에서 아벨에게 집무같은 것은 나중에 생각해도 좋을 일이었다.
“자네였나? 들어오라는 허락을 내린 적은 없었는데.”
“너에게 허락을 맡을만한 용건은 아니다.”
“그런건가. 그럼 네이는 어디에 있지?”
아벨의 눈이 어셔의 옆에 있어야 할 네이를 찾았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네이가 들어오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그녀를 대신해 나타난 것은, 어셔의 손에 들려있는 치안대용 권총이었다.
권총을 바라보던 아벨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로서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네이 테르도스를 찾나? 그녀는 여기에 없다.”
“……무슨 짓이야.”
“말 그대로의 이야기다. 그녀는 이곳에 존재하지 않아.”
“설마, 목걸이를 푼건가. 아무리 네이라고 해도 그런 권한은 없을텐데…….”
아벨의 시선이 어셔의 목으로 향했다.
어셔의 목에 있어야 할 억제장치는 진작에 모습을 감추어버린지 오래였다.
그리고 그 자리를 대신해서, 거친 흉터만이 어셔의 목을 뒤덮고 있을 뿐이었다.
권총을 겨눈 어셔가 방아쇠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사소한 이야기는 이만 접어두도록 하지. 나는 오늘 원수를 갚으러 왔다.”
“원수라니, 무슨 이야기를 하는거야? 비록 범죄자라고는 해도, 나와 네이는 너를…….”
“시치미는 떼지 마라, 계승자.”
계승자라는 단어를 들은 아벨의 표정이 바뀌었다.
결사의 계승자, 아벨 테르도스.
그의 진정한 정체를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가 양지에서 도시를 다스리는 이상, 결코 들켜선 안되는 정체이기도 했다.
분위기가 바뀐 아벨의 시선이 어셔를 훑었다.
“하. 그렇단 말이지.”
“이제야 본색을 드러내는군.”
“원수라. 누구의 원수를 갚을 생각이야?”
아벨이 잔잔한 미소와 함께 어셔에게 물었다.
선의도 악의도 느낄 수 없는 무채색의 미소였다.
어셔는 권총을 겨눈 채로 아벨을 향해 다가가면서 말했다.
“내 여동생의 복수다.”
“여동생이라…….”
“너라면 분명 알고있겠지. 나와 마찬가지로 블링크를 사용하던 마법사를 말이야.”
“그래. 기억하고 있어. 너와 닮은 머리색을 가진 마법사가 블링크를 갖고 있었거든.”
아무런 망설임 없이 답하는 아벨의 모습에, 권총을 쥔 어셔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까득.
아벨을 마주한 어셔의 이빨이 갈려나갔다.
어셔는 이 이상 대화를 이어나갈 가치를 느끼지 못했다.
“순순히 인정하는군.”
“그래서, 그게 어쨌다는거야? 나를 죽인다고 해서 네 동생이 돌아오지는 않을텐데.”
“내 동생을 죽이고, 나를 가지고 놀았던 네 녀석을 죽일 생각이다.”
“그게 네 대답이구나.”
펜을 내려놓은 아벨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벨의 얼굴에서 총구에 대한 두려움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그저 한결같이 여유로운 태도를 보일 뿐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아벨이 자신의 양손을 들어올리며 어셔를 향해 물었다.
“그런데 말이야, 내가 순순히 죽어줄거라 생각하는거야?”
“네가 죽지 않으면, 네이 테르도스가 죽게 될거다.”
“네이를 가지고 나를 협박하겠다고? 재미있는 생각이네.”
피식.
아벨의 입꼬리가 더욱 치켜올라갔다.
어셔는 그런 아벨의 모습에서 불쾌감을 느꼈다.
남들 앞에서 보여주던 가면같은 모습도, 그리고 속내를 드러내고 있는 지금조차도.
어느 하나조차 예외없이 구역질이 나는 모습이었다.
“그녀를 인질로 잡는게 전혀 의미가 없는 행동은 아닐테지.”
“가능하다고 믿고 있는 모양이네. 왜 그렇게 생각하는거야?”
“지금까지 보아왔던 네녀석이라면, 네이를 쉽게 포기하는 일은 없을테니까.”
“흐음, 그래? 내가 네이와 사이가 좋지 않은 건 유명하지 않나?”
“가식은 집어치워라, 아벨 테르도스.”
가벼운 한숨을 내쉰 아벨이 두손을 내렸다.
아벨은 아직 웃음기가 사라지지 않은 얼굴로, 어셔를 바라보며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좋아. 죽어줄게.”
“…….”
“뭐해? 빨리 당겨.”
당당하게 자신을 죽이라고 선언하는 아벨이었다.
그런 아벨의 태도에 어셔가 인상을 찌푸렸다.
이렇게 쉽게 아벨이 포기할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의문을 참지못한 어셔가 그에게 물었다.
“너는 대체… 무슨 생각이지?”
“내가 죽지 않는다면 네이가 죽는다면서. 귀여운 여동생이 죽게 놔둘 수는 없지.”
맥이 빠지는 대답이다.
권총을 붙잡은 손에 힘이 풀릴 것만 같았다.
마지막 순간까지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었다.
어셔는 자신이 더욱 우스워지기 전에, 방아쇠를 당겨 그를 죽이기로 마음먹었다.
타앙!
어셔의 권총이 불을 뿜으며 아벨을 꿰뚫었다.
격발된 탄환에 머리가 꿰뚫린 아벨이 뒤로 쓰러졌다.
“이만 죽어라.”
어셔는 쓰러진 아벨에게로 다가가 다시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타앙!
확인사살을 위한 탄환이 몇차례 더 아벨을 꿰뚫었다.
어셔는 권총에 들어있던 탄환이 바닥날 때까지 총을 쏴갈겼다.
딸깍, 딸깍.
들어있던 탄환이 모두 바닥나 공이가 허공을 때렸다.
그럼에도 총을 쏜 어셔의 마음이 풀리는 일은 없었다.
이상하리만치 허무한 순간이었다.
“……리엘.”
자리에서 몸을 돌린 어셔가 죽은 동생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그가 이곳에서 할 일은 이것이 전부였다.
터벅. 터벅.
할일을 마친 어셔가 집무실의 밖으로 걸어갔다.
들고 있던 권총은 바닥에 던져둔지 오래였다.
고요속에서 어셔의 발자국 소리만이 울려퍼졌다.
자리를 떠난 어셔가 치안대장의 집무실로 되돌아오는 일은 없었다.
“——————.”
침묵속에서 시간이 흘렀다.
붉은 피가 바닥에 번져나가며, 짙은 혈향이 집무실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다시 시간이 흘렀다.
숨을 멈춘 10분.
피가 흐르는 30분.
째깍거리는 1시간.
2시간. 3시간. 4시간.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이 흘렀다.
그렇게 지평선 너머에 걸려있던 태양이 저물고, 늦은 달이 밤하늘에 드리워졌을 즈음.
고요하던 사무실에 다시 변화가 생겼다.
“…….”
끼릭. 끼이이익——.
기괴한 소리를 내며 비틀린 아벨의 몸이 일어났다.
총에 맞아 너저분해진 아벨의 몸에 변화는 없었다.
그는 머리에 총탄이 관통당한 그대로, 눈동자를 움직여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벨의 시야에 보이는 것은 짙은 어둠 뿐이었다.
아벨은 힘이 풀려가는 입을 열어 입밖으로 말을 내뱉었다.
[스펠 오버로드 : 애니메이트 데드].
그것은 소리이면서, 또한 소리가 아니었다.
죽음의 마법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오랜 세월에 거쳐 이루어진 힘의 계승은, 현재의 계승자에게 막대한 마력을 안겨주었다.
지금에 이르러서 축적된 마력은 도시 전체를 뒤덮고도 남을 수준이었다.
끝을 모르는 방대한 마력을 타고 흘러간 마법은 도시 전역을 뒤덮었다.
질서를 거부하는 어리석은 무법자들의 도시.
그곳에 죽음의 신이 강림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