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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능력배틀물 보이스피싱-148화 (148/156)

〈 148화 〉 커튼콜 (5)

* * *

“정말 이걸로 괜찮은겁니까?”

도시 한복판을 날고 있는 헬기속에서, 레닐의 옆에 앉아있던 근위대원이 말했다.

레닐의 시선이 자신의 옆에 있던 근위대원을 한차례 훑고 지나갔다.

5년동안 자신과 함께 일해왔던 충성스러운 부하였다.

아직까지 살아있다는 것이 그의 실력을 증명하는 증거이기도 했다.

앞으로의 일을 걱정하는 근위대원의 모습에 레닐이 헛웃음을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

“괜찮을리가 없지.”

“……대장님?”

“12가문의 일원을 죽였는데 괜찮을리가.”

그렇게 말한 레닐의 머릿속으로 열두가문의 이름이 스쳐지나갔다.

제국의 열두가문.

그들은 제국의 건국때부터 존재하던 명문귀족들이다.

물론 거짓된 황제가 지배하는 지금에 이르러서는 예전같은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잔재는 아직까지도 세상에 남아있다.

오랜 세월동안 그들이 쌓아올린 것들이 결코 가볍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제국의 군수산업 전반을 책임지는 군수기업.

막대한 재력을 보유하고 있는 세계 최고의 은행.

열두가문을 적으로 돌린다는 것은, 그런 것들을 움직이는 주체들과 대립한다는 말이었다.

근위대에게 있어서도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었던 것이다.

“12가문…….”

“지금은 빛이 바래버린 이름이라고 해도, 완전히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야.”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겠군요.”

“그게 아니었다면 이런식으로 남에게 떠넘기는 일은 없었겠지.”

씁쓸한 대답을 남긴 레닐의 시선이 창밖으로 향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도시의 전경은 이전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도시 전체가 아비규환에 빠져있다.

전부 레닐 자신이 만들어낸 것이다.

계승자인 아벨 테르도스의 반향은 레닐의 상상 이상으로 거센 편이었다.

여기까지가 자신의 할일이었다는 듯이, 도시를 빠져나가는 이유도 그것 때문이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도에서 병력이 파견되면, 빠른 시일내에 진압될겁니다.”

“진압이라…….”

“저희 인원으로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지 않습니까.”

“그런거에 비해선, 아벨 테르도스에게는 한계가 없어보이는데 말이야.”

레닐이 도시 한복판에서 솟구치는 불길을 보며 중얼거렸다.

도시가 뒤집히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이상현상은 재빠르게 도시 전체로 퍼져나갔고, 이내 연쇄적인 소요사태를 일으켜냈다.

사방에서 불길이 피어오르고, 혼란에 빠진 사람들은 비명을 내지르고 있다.

겉으로나마 유지되던 치안은 이제 완전히 무너져내렸다.

이 도시에 더 이상 통제수단 따위는 남아있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무질서속에서 아벨 테르도스의 영향력만이 도시 전체를 아우르고 있었다.

“녀석은 이미 인간을 벗어난 괴물입니다.”

“괴물… 그렇지. 아무리봐도 괴물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존재겠지.”

“제국 내에서도 저런 짓이 가능한 사람은, 아이레님 이외에는 없을겁니다.”

근위대원은 그렇게 말하면서 단말기를 조작했다.

아이레 프로스트.

제국 최강이라 꼽히는 귀족의 이름을 들은 레닐이 고개를 저었다.

그 여자가 와도 저런 짓은 힘들 것이다.

단순하게 강자를 쓰러뜨리는 것과, 도시 하나를 통째로 마비시키는 것은 별개였다.

“글쎄, 나는 잘 모르겠는데.”

“그렇습니까. 그나저나, 화풀이 치고는 지나치게 과격하군요. 저러다 잘못되면 전부 죽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단순한 화풀이가 아니야. 제국을 잡아먹기 위한 밑거름이지.”

움직이는 시체가 사람을 습격하고, 새롭게 만들어진 망자가 다시 몸을 일으킨다.

그렇게 태어난 망자는 다음의 희생양을 찾아 나선다.

이 모든 과정이 제국을 집어삼키기 위한 준비였다.

도시의 수많은 생명들이 전부 바스라지고, 망자들만이 남아 도시를 방황하게 되는 순간.

계승자는 그렇게 완성된 죽음의 군세들을 이끌고 쳐들어올 것이었다.

저 거대한 도시 전체가 지금 이 순간을 위해 만들어진 하나의 사육장이었다.

“제국을 잡아먹기 위한 밑거름?”

“언데드들을 이끌고 움직이면서, 근처에서 죽은 녀석들은 전부 언데드로 만들어버린다. 이게 무얼 뜻하는 것 같나?”

“…….”

“우리측이 전투로 잃은 숫자만큼 적의 전력이 늘어난다는 이야기다.”

“그렇게 되는군요.”

“상황이 최악으로 흘러간다고 한다면, 숫자가 더 늘어난 채로 제도까지 도착하는 일도 있겠지.”

끊임없이 증식하는 죽음의 군세.

단순히 전투에서 승리하는 것만으로도, 잃어버렸던 전력을 전부 복구할 수 있다.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다면 그 규모가 더욱 배가될 뿐이다.

불합리의 극치나 다름없는 상대였다.

가능하다면 초기에 진압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던 레닐이 보고할 내용을 정리하기 위해 휴대전화를 꺼내려던 찰나.

레닐은 무언가를 느끼고 자리에 멈춰섰다.

멈춰선 레닐의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대장님?”

레닐의 어색한 모습을 본 근위대원이 그에게 물었다.

하지만 레닐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에게 지금 중요한 것은, 자신을 바라보는 부하의 질문에 대답하는 것 따위가 아니었다.

‘그’의 존재를 깨달은 순간부터, 레닐은 다른 것에 의식을 쏟을 수 없게 되었다.

시각. 청각. 촉각.

그 모든 것들이 레닐의 뒷자리에 자리한 존재를 향해 곤두서있었다.

“대단한 통찰력이군.”

그런 레닐의 뒤에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낯선 목소리에 근위대원이 고개를 뒤로 돌렸다.

거기에는 중절모를 쓰고 있는 중년 남성 하나가 앉아있었다.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를 남자는 쥐고 있는 지팡이를 까딱거리면서 미소를 지었다.

남자의 기척이 커질 때마다 레닐은 심장이 옥죄여오는 기분이 들었다.

“……언제부터 거기에 있었지?”

“그리 오래되지는 않은 것 같군. 몇마디 엿듣지 못했던 것 같으니까 말이야.”

적어도 출발할 때부터 그곳에 있던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였다.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막대한 위압감이 느껴지는 인물이다.

출발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그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아마도 중년인의 말처럼 중간에 합류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레닐은 상공에서 전투가 벌어질 가능성을 경계하면서, 중년인을 향해 그의 이름을 물었다.

“이름은?”

“브루노 리트리어.”

“브루노? 설마…….”

“어떤 친구들은 나를 절름발이 브루노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하지.”

브루노의 이름을 들은 레닐이 주먹을 쥐었다.

도시에서는 농담으로라도 사칭해서는 안되는 이름이 존재한다.

그 악명높은 절름발이 브루노의 이름이 그것이었다.

절름발이 브루노를 자처한 자에게 주어지는 선택지는 언제나 두가지 뿐이었다.

이름을 칭한 대가를 치르거나.

그게 아니면 그에 걸맞은 자격을 증명하거나.

그리고 레닐이 지금 마주하고 있는 남자는, 이름의 가치에 모자람이 없는 위압감을 풍겨내고 있었다.

레닐은 자신이 포식자를 마주한 사냥감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여기에는, 대체, 무슨 일이지.”

“어떤 친구에게 한가지 부탁을 받아서 말이야.”

브루노가 사람 좋은 얼굴로 레닐에게 머리를 가까이 들이밀었다.

목에 칼이 닿아있는 기분이다.

꿀꺽.

그는 저도 모르게 입에 고여있던 침을 삼켰다.

브루노에게 부탁을 한 상대가 누군인지에 대해서는, 그 이름을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럼에도 레닐은 그 이름을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이 그에게 주어진 순리였기 때문이다.

“누가 시킨거냐.”

“아벨 테르도스.”

“……계승자.”

“개인적으로 존경하고 있는 친구지. 여러모로 배울게 많은 사람이야.”

어째서 그가 여기에 찾아왔는가.

거기에 대해서 물어볼 필요도 없어보였다.

먼저 아벨을 죽이라고 지시한 것은 레닐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레닐은 어쩔 수 없이 다시 한 번 물었다.

시간을 벌기 위해 반사적으로 우러나온 행동이었다.

“무슨 이유로 나에게 보낸거지?”

“보내준 깜짝선물에 답례를 하기 위해서.”

“그런가.”

“그래. 이유는 마음에 들었나?”

말을 마친 브루노가 지팡이를 기울이는 순간.

레닐은 가까이 있던 브루노를 향해 입김을 불었다.

후. 짧은 숨결이 브루노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와 함께 막대한 양의 꽃잎이 번져나가며, 브루노의 시야를 잠시동안 가렸다.

레닐은 그 틈을 타서 곧장 마법을 사용했다.

“[스펠 오버로드 : 일루전].”

공간이 뒤틀리며 짙은 어둠이 주변을 뒤덮었다.

헬기를 움직이던 조종사 역시 혼란에 잠겨, 붙잡고 있던 조종간을 마구잡이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기체 전체가 혼란에 빠진 순간.

레닐이 근처에 있던 낙하산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이미 생존가능성을 잃어버린 헬기에서 벗어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레닐의 손이 낙하산에 닿는 일은 없었다.

“[매스 텔레포트].”

“……아.”

툭.

낙하산을 향해 뻗은 레닐의 팔이 사라졌다.

레닐의 시선이 잘려나간 자신의 팔을 바라보았다.

거기에 낙하산을 붙잡을 수단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남아있는 것은 깔끔하게 흩날리는 옷소매 뿐이었다.

“마술, 즐거웠네.”

“…….”

“보답으로 나도 재미있는걸 보여줘야겠지.”

“그만, 둬.”

브루노의 손가락이 허공에 선을 그었다.

선명하고도 올곧은 직선이었다.

그리고 그가 만들어낸 선을 따라서, 헬기의 천장에 선명한 균열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천장에 만들어진 균열을 통해 강한 바람이 들이닥쳤다.

손가락으로 허공에 그림을 완성한 브루노가 자신의 손을 흔들었다.

“좋은 시간 보내길.”

후우우우웅——.

반으로 잘려나간 헬기의 바깥.

지상을 향해 추락하는 레닐의 몸이 하늘을 바라보았다.

찬란하게 빛나는 밤하늘의 아래.

자신의 핏방울이 허공에 흩날리고 있었다.

아름다운 별. 그리고 붉은 핏방울.

그것이 레닐이 마지막으로 마주한 풍경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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