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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능력배틀물 보이스피싱-149화 (149/156)

〈 149화 〉 검성재림 (1)

* * *

브루노 리트리어의 하나뿐인 딸, 유엘 리트리어.

어린 시절부터 그녀가 보아왔던 것은, 검을 수련하는 조부의 모습이었다.

그녀의 조부는 매일같이 검을 수련했다.

마법사들의 마법이 대지를 가르고, 군수업체의 전쟁병기가 하늘을 터뜨리는 시대다.

그럼에도 그녀의 조부는 검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과 시간에 상관없이 그는 항상 검을 휘둘러왔다.

어느날은 조부의 모습을 보다 지쳐버린 유엘이 물었다.

“할아버지는 왜 그렇게 검을 휘둘러?”

“흐음… 검을 휘두르는 이유가 궁금한게냐?”

“응. 계속 그러고 있으면 힘들지 않아?”

관성과도 같이 이어지는 습관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어린 나이의 호기심에서 비롯된 질문이었다.

힘들지 않냐는 유엘의 질문에, 조부는 웃으면서 그녀에게 말했다.

“자신의 부족함을 통감하기에, 계속해서 검을 휘두르며 마음을 가다듬는게지.”

“할아버지가 부족해?”

“그래. 검성이라는 이름을 지키기에는, 이 한 몸이 너무 부족하고 초라하구나.”

검성.

그 이름이 조부가 검을 휘두르는 이유의 전부였다.

유엘에게 있어서 지나치게 생소한 이름이었다.

그에 유엘은 검성이 무엇인지 다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이름이 무엇이기에 그토록 열정적으로 검을 휘두르는지 이해할 수 없었으니까.

“검성이 뭐야?”

“우리의 옛 조상중에는 위대한 영웅이 있단다. 아주 먼 옛날, 마법사들이 번성하고 사악한 용이 날뛸 때의 이야기였지.”

“그게 검성?”

“검성, 벨란트 리트리어. 그게 그분의 이름이다. ”

조부가 꺼낸 것은 한편의 옛날 이야기였다.

지금으로부터 아득한 옛날.

유엘이 손가락을 세고 세어도 다 채우지 못할, 까마득한 옛날에 있었던 조상의 이야기다.

세상으로부터 검성이라는 이름을 받았던 위대한 시조.

그것이 그녀의 조부가 기억하고 있는 검성의 시작이었다.

“그럼 대단한 사람이었네?”

“위대한 검성 벨란트는 검 한자루로 모든 강적을 쓰러뜨렸으니까 말이다. 그분을 가로막던 수많은 시련도, 사람들을 괴롭히던 사악한 용도 전부 벨란트의 검에 쓰러졌단다.”

“그렇구나.”

“그분이 죽은 이후로도 검성의 이름만큼은 계속해서 가문을 통해 내려오고 있는게야.”

찬란했던 검의 영광을 대신해, 이제는 강철과 불꽃이 전장을 지배하고 있다.

낡아버린 검성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들은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런 현실이 안타깝다는 듯이, 조부의 착잡한 시선이 허공을 맴돌았다.

그러나 유엘의 마음만은 그와 정반대였다.

유엘은 금빛의 눈동자를 반짝이면서 그녀의 조부에게 다시 물었다.

“그럼 이제는 할아버지가 검성이야?”

“……그렇단다.”

“검성이 대단한 사람이면, 할아버지도 대단한 사람인거네?”

“아쉽게도 나는 그만큼 대단한 사람이 못될게다.”

“왜, 왜?”

“내 검은 사람 하나조차 제대로 막지 못할만큼 부족하니까 말이다.”

말을 마친 그는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다.

그가 휘두르는 검은 곧고 정직했다.

그렇지만 이유모를 아쉬움이 엿보이는 검이었다.

검이 한차례 휘둘러질 때마다, 경쾌한 파공음이 주변에 퍼져나갔다.

검을 휘두르는 그의 이마는 땀으로 흥건해져 있었다.

“사람을 못막으면 검성이 아냐?”

“검성이라는 이름의 무게는 무겁다.”

“으응.”

“자신에게 주어진 시련을 이겨내고, 스스로를 짓누르는 불합리마저 베어내는 것이 검성의 길이다.”

“그럼 검성같은거 안하면 되는거 아냐?”

간단하면서도 당연한 질문.

그럼에도 지금의 검성은 쓰라린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그가 검을 놓는 일은 없을 것이다.

평생에 걸쳐 자신을 가로막을 숙적을 쓰러뜨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세상이 검성을 필요로 하고 있는게야.”

“그럼 나도 검성할래.”

자리에서 일어난 유엘이 그녀의 조부에게 다가갔다.

쪼르르 다가온 유엘의 모습에, 그녀를 지켜보던 조부가 환하게 웃었다.

그는 쥐고 있던 검을 잠시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자신을 찾아온 유엘에게 물었다.

“검성이 되고 싶은게냐?”

“대단한 사람이라며. 멋있잖아.”

“그럼 같이 검을 배워보자꾸나.”

“응!”

눈을 반짝이던 유엘은 근처에 있던 목검을 주워들었다.

그는 손을 뻗어 유엘의 머리를 상냥하게 쓰다듬었다.

금빛 눈동자에서 전설에 대한 동경이 엿보였다.

“언젠가 때가 찾아오면, 네가 검성의 의지를 이을 수 있을게다.”

“내가 검성이 될게!”

검을 쥔다.

그리고 검을 휘두른다.

궤도가 조금 엇나가더라도, 유엘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녀의 조부 역시 그녀의 실수를 지적하지 않았다.

검을 휘두르는 일은 낮부터 밤까지 이어졌다.

때로는 재미가 없어 빠지고, 때로는 시간이 부족해 잠시 그만두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금세 제자리로 돌아가 조부의 옆에서 검을 휘둘렀다.

그것이 유엘의 인생을 가리키는 가장 거대한 이정표였다.

“…….”

그녀가 열세살의 생일을 맞이하기까지는 그런 나날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중간에 마법을 개화하기도 했지만, 유엘이 검의 수련을 게을리하는 일은 없었다.

그녀는 언제나 검성이 되고 싶어했다.

가끔씩은 나쁜 녀석들을 쓰러뜨리는 조부의 모습을 보며 존경하기까지 했다.

그렇지만 수련의 시간이 영원히 이어지는 일은 없었다.

전대 검성의 검이 브루노 리트리어를 찌른 날.

그리고 눈앞에서 처참하게 찢겨나간 조부의 모습을 목격한 날.

유엘의 수련은 끝을 맞이했다.

* * * * * *

“으…….”

어둠이 드리워진 침실속에서 검성이 눈을 떴다.

옅은 신음과 함께 일어난 검성의 눈이 주변을 훑었다.

반쯤 감은 눈이 어둠에 천천히 적응하며 주변의 모습을 담았다.

맞닿은 등에서 푹신한 호텔 침대의 감촉이 느껴진다.

천장에는 스위트룸을 장식하는 화려한 샹들리에가 매달려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한쪽 어깨너머에는, 눈을 감은 채로 잠이 들어있는 청년의 모습이 보였다.

“…….”

퍼시발 스미스.

세간으로부터 암흑상인이라고 불리던 청년이었다.

지금은 어둠의 집행자라 칭하는 비밀조직을 움직이는 수장이기도 했다.

검성의 눈이 잠에 들어있는 퍼시발의 모습을 천천히 훑었다.

선명하고 날카로운 턱선.

시원시원하게 생긴 호쾌한 이목구비.

덮고있는 이불 너머로 보이는 탄탄한 가슴까지.

생긴 것만 봐서는 정보상인과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강인한 모습이었다.

가끔씩은 가벼운 깃털마냥 묵직한 장비들을 쉽게 들고다니는 광경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러니까 조금 멋있는걸.”

검성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고용주를 눈에 담았다.

그녀가 지켜봐왔던 퍼시발은 언제나 대단한 사람이었다.

불을 뿜지도 못하고, 바람을 휘두르지도 못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항상 일선에 서서 자신의 몸으로 당당하게 적과 마주했다.

아무리 강한 적을 마주해도 결코 도망치지 않았다.

그가 도망치는 것은 동료를 지킬 수 없는 상황을 맞이했을때 뿐이었다.

그야말로 영웅이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모습이었다.

“욕심이 많은 건 조금 감점이지만 말이야.”

다만 자신을 상대할때만큼은 유독 소극적이었다.

제대로 된 월급을 주지 않으면서도, 끊임없이 그녀를 부려먹었다.

다른 곳에서 볼만한 휴일같은 것도 없었다.

일이 없는 날조차도 퍼시발은 그녀를 계속해서 회사로 불러들였다.

그리고 얼굴을 마주보며 밥을 같이 먹었다.

퇴근해서 집에 돌아가기 전까지, 그녀는 계속 사무실에 남아 고용주와 함께 있었다.

퍼시발은 계약서따위를 신뢰하지 않았다.

그는 계속해서 검성 자신을 붙잡아두고 싶어했다.

그녀가 다치는 날은 나서서 치료해주었고, 그녀가 힘들어하는 날은 최선을 다해 위로해주었다.

받고 있는 월급이나 계약서는 핑계에 불과했다.

그는 신뢰할 수 있는 동료를 계속해서 원하고 있었다.

그걸 알기에 검성은 암흑상인과 어울려주는 것을 선택했다.

모자란 월급따위는 아무래도 좋은 것이었다.

짊어지고 있는 무게를 나눌 수 있는 동료란 황금으로도 살 수 없는 존재였다.

“흐음…….”

퍼시발을 지켜보던 검성은 왠지모를 장난기가 들었다.

그녀는 퍼시발의 귀를 향해 얼굴을 가까이했다.

순식간에 검성의 숨결이 닿을만한 거리가 되었다.

그리고는 그의 귓가에 가볍게 속삭였다.

“……듣고 있어?”

검성이 말을 하는 순간, 살랑이는 바람이 움직이며 그녀의 말을 집어삼켰다.

그녀가 바람을 움직이는 것에는 한마디의 주문조차도 필요하지 않았다.

바람에 흩어진 목소리가 전해지지 못한 채로 사라졌다.

검성의 목소리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기 때문일까.

퍼시발은 여전히 평온한 표정으로 잠을 자고 있었다.

“……좋아해.”

검성은 다시 한 번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을 말을 꺼냈다.

바람이 움직이며 검성의 말을 집어삼켰다.

이번에도 그녀의 말은 전해지지 않는 소리가 되어 주변에 흩날렸다.

침묵속의 고백에 검성의 얼굴이 살짝 달아올랐다.

그녀는 자고 있는 퍼시발의 모습을 조금 더 지켜보다가, 이내 이불을 걷어내고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테라스에 나가서 바람이라도 쐬고 오려는 생각이었다.

잠깐동안은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음, 흐음.”

드르륵——.

최대한 조용히 문을 여닫은 검성이 테라스에 섰다.

살랑이는 바람이 그녀의 뺨을 간질이고 지나갔다.

그녀는 흩날리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무시하며 시선을 먼곳으로 옮겼다.

테라스에 서서 바라보는 도시의 야경은 이전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불이 꺼진 전경사이로 차가운 새벽바람이 불어왔다.

소란스러운 도시의 새벽.

검성은 소리없이 입술을 움직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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