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능력배틀물 보이스피싱-151화 (151/156)

〈 151화 〉 검성재림 (3)

* * *

“어제는 독을 뿜는 방독면 좀비를 쓰러뜨렸어.”

이제는 럭셔리한 대피시설이 되어버린 호텔.

그곳의 스위트룸에서 아침식사를 하던 검성이 나를 보며 이야기했다.

망가진 도시에서 진행중인 언데드 정화활동에 대한 이야기였다.

방독면을 쓰고 있는 좀비라.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듣자마자, 나는 방독면을 착용한 도시의 유명인사를 떠올렸다.

“방독면? 설마 검은 안개 패러노트를 말하는건가?”

“응.”

“녀석도 언데드들을 상대로 살아남기는 힘들었던 모양이군.”

독을 제외하고는 이렇다할 공격수단이 없는 패러노트다.

이만큼이나 언데드가 많이 몰려온다면, 패러노트가 당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다만 특급 수배범 치고는 다소 허무하게 마지막 순간을 맞이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는 썰어놓은 스테이크를 입에 넣으며 TV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벽에 걸려있는 커다란 최신형 TV.

전원이 켜져있는 TV에서는 아직 운영이 중단되지 않은 방송국에서 뉴스를 내보내고 있었다.

­ “이번에는 8구역의 자경단이 전멸했다는 소식입니다.”

­ “치안대원들이 가장 빨리 탈출했던 8구역인만큼, 처음부터 오래 버티기는 불가능에 가까웠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당연하지만 뉴스에서 흘러나오는 내용의 대부분은 도시를 덮친 재난에 대한 것이었다.

하루이틀 사이에 도시의 태반이 붕괴되었다.

치안대장을 잃어버린 치안대는 완전히 제기능을 상실했고, 일부 중심구역을 제외한 대부분의 구역이 무법지대로 변했다.

인구밀도가 극단적으로 높은 구역의 경우, 이미 완전히 무너졌다는 내용이 전해져올 정도였다.

계승자가 사용한 ‘애니메이트 데드’는 빠른속도로 도시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중심구역에서의 불안정한 대치상태도 그리 오래 이어지지는 못할 것이다.

“치안대원들이 다 도망갔나보네요.”

시넬이 큼직한 빵을 베어물며 말했다.

빵이 들어간 시넬의 볼이 크게 부풀어올랐다.

나는 그녀의 뺨을 찌르고 싶은 욕망에 시달리다가, 이내 스테이크를 자르는 것을 선택했다.

툭. 나이프에 닿은 스테이크가 부드럽게 잘려나간다.

멸망해가는 도시에서 일생일대의 사치를 누리고 있다니.

이만큼 모순적인 상황도 없을 것이다.

“치안대가 멀쩡해도 치안유지는 힘들겠지.”

“그런가요.”

“뭐, 그런 일이 있다고 해도, 계승자가 가만히 있지도 않을테니까 말이야.”

언데드를 가능한 빠르게 증식시키는 방법.

그건 결사의 간부들을 이용해 대규모의 혼란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제 대놓고 번화가에서 활개를 치더라도, 치안대가 그들을 저지할 방법은 없었다.

고작해야 얼마 되지않는 병력으로 탐색에 나섰다가, 고깃덩어리가 되어 돌아가는 것이 전부일 것이다.

“계승자가 직접 움직일거라고 생각하는거야?”

고개를 든 검성이 나를 바라보는 사이, 시넬의 손이 검성의 접시위로 움직였다.

덥썩.

헤이스트를 사용한 손아귀에 그녀의 접시위에 있던 감자튀김 몇개가 자취를 감추었다.

하지만 검성은 꿈에도 모르는 채로 나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으며, 검성의 말에 대답을 돌려주었다.

“가만히 있지는 않겠지.”

“어떤식으로 움직일거라 생각하는데?”

“내가 계승자라면 절름발이 브루노를 내보낼 것 같군.”

유엘의 아버지이자 도시의 특급 수배범인 브루노 리트리어.

그 이름을 들은 검성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접시를 향해 움직이던 손길도 현저하게 느려졌다.

브루노와 자신의 일을 떠올린 모양이었다.

“……절름발이 브루노.”

“아직 그 이름이 어색한가?”

“응. 나에게는 그냥… 적이라는 느낌말고는 없으니까.”

브루노와 검성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이들이 깊은 악연으로 연결되어있다는 사실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그녀가 일평생 검성의 이름을 쫓고 있는 이유와도 전혀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일생에 걸쳐 풀어야만하는 비극이다.

검성의 어두운 모습을 보는 내 기분도 덩달아 가라앉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조만간 마주할 일이 있을거다.”

“……그럴까? 그랬으면 좋겠네.”

“그래. 계승자를 쓰러뜨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야만 하는 상대니까.”

“…….”

“적어도 브루노와 같은 마법을 쓰는 상태의 계승자는 피하는 편이 좋겠지.”

만전인 상태의 아벨 테르도스는 위험하다.

계승자와 정면에서 맞서싸우기 위해서는, 사전에 그의 힘을 약화시킬 필요가 있었다.

그 이유는 계승자가 가지고 있는 마법에 있다.

계승자가 사용하는 7서클의 마법, 애니메이트 데드.

그것은 죽은 자를 언데드로 되살려내는 강력한 효과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한가지 더 숨겨진 효과가 있다.

7서클에 다다른 애니메이트 데드는 되살려낸 언데드의 마법을 빌려 사용할 수 있는 효과를 얻는다.

지금의 계승자는 무수한 마법들을 자유롭게 다룰 수 있는 상태다.

아직까지는 전력을 다한 상태의 어셔 헤이즈를 뛰어넘을만한 괴물이었다.

최소한 절름발이 브루노의 매스 텔레포트만큼은 그에게서 떼어놓아야만 했다.

“그렇구나.”

“그러니까 평소부터 준비해두는 편이 좋을거다. 언제 브루노와 맞닥뜨리게 될지 모르니까.”

고개를 끄덕여 수긍한 검성이 자신의 접시를 보았다.

그리고는 당황한 기색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나는 검성에게서 시선을 돌려, 아직 뉴스가 흘러나오는 TV를 바라보았다.

뉴스는 어느새 주제가 바뀌어 다른 내용을 내보이고 있었다.

새롭게 바뀐 뉴스 화면에 보이는 것은 방독면을 쓰고 있는 익숙한 인물의 모습이었다.

­ “다음 소식입니다. 최근들어 집행자라 칭하는 이들의 출현빈도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 “지금 보시는 사진은 ‘장의사’라는 이름의 집행자입니다.”

­ “언데드들이 출현하는 최전선에 나서 시체를 불태우는…….”

화면에 나오고 있는 인물은 바로 집행자의 넘버 세븐, 필립이었다.

그는 넘버 세븐으로 활동할때의 모습 그대로, 방독면을 쓴 채 움직이는 시체들을 태우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평소에 하던 비밀임무의 연장선이었다.

듣자하니 이번 사태에 어느정도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는 모양이었다.

자신이 조금 더 많은 시체를 불태웠다면, 사람들이 받는 피해도 줄어들었을거라는 설명이었다.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군.”

하지만 사람이 태울 수 있는 양에는 물리적인 한계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모든 시체를 태운다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했다.

계승자가 되살릴 수 있는 것은 8구역에서 연고없이 죽은 시체들만이 아니다.

그리고 도시에는 오랜 세월을 거쳐 축적되어온 망자의 흔적들이 무수하게 존재하고 있다.

계승자의 힘을 약화시키는 정도는 가능할지 몰라도, 언데드의 생성을 완전히 억누르는 것은 불가능했다.

지금으로서는 필립이 움직이는 정도가 최선이었다.

­ “다만 갑작스럽게 나타난 언데드들과 모종의 연관이 있을거라는 추측이 돌고 있습니다.”

­ “이외에도 사람들이 집행자의 정체에 대해 여러가지 추측을 내어놓고 있는 상황입니다.”

­ “이들이 이번 사태와 관련되어 있는지 계속 지켜봐야만…….”

앵커는 한참동안이나 집행자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대부분은 필립의 활약상에 대한 것이었다.

넘버 세븐을 제외하고는 다들 가능한 조용히 일하는 편이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장시간에 이어진 넘버 세븐의 소개가 끝날즈음.

나는 남아있던 스테이크의 마지막 조각을 입에 집어넣으려고 했다.

­ “그럼 다음 뉴스입니다. 이번에는——.”

“……퍼시발! 저기 봐봐!”

그러나 앵커가 다음 소식으로 넘어가려는 순간, 검성이 테이블을 두드리며 TV를 가리켰다.

검성이 가리킨 화면에서는 직전과 마찬가지로 익숙한 얼굴이 보이고 있었다.

낯이 익은 사람이다.

하지만 그 모습에서 전해져오는 무게감만큼은 필립과 커다란 차이가 났다.

헬기를 통해 지상의 모습을 중계하고 있는 카메라의 화면속에서, 지팡이를 짚고 있는 브루노 리트리어가 서있던 것이다.

­ “공식적인 자리에 나타나는건 오랜만이군.”

사람들이 모여있는 대피소의 한복판.

그곳에 나타난 브루노가 여유롭게 주변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가 나타나고 십수초간, 대피소에는 두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브루노가 마지막으로 사회에 모습을 드러낸지 벌써 십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눈앞의 현실을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도 오랜 시간이 흐른 것이다.

짧은 정적이 끝을 맞이한 것은 어느 당황한 시민의 외침덕분이었다.

­ “저거, 절름발이 브루노 아냐?”

­ “절름발이? 무슨 소리야…….”

­ “절름발이라고? 말도 안 돼!”

­ “절름발이 브루노는 죽었——.”

촤악!

공간이 갈라지면서 선두에 서있던 인파가 피를 뒤집어썼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한차례의 공격이 지나간 이후, 그 자리에 남아있는 것은 절반밖에 남지 않은 사람의 흔적이었다.

갑작스러운 참사에 당황한 사람들의 비명이 울려퍼졌다.

­ “꺄아아아악!”

­ “사, 사람이 죽었어!”

­ “진짜 절름발이야?”

­ “마, 말도 안되잖아…….”

혼란에 빠진 군중의 비명과, 그 주변을 짓누르는 위압감.

그가 스스로의 정체를 증명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7서클의 대마법사를 마주한 사람들의 반응은 각양각색이었다.

누군가는 도움을 부르짖었다.

다른 누군가는 목숨을 구걸했다.

또 누군가는 살아남기 위해 자리에서 도망쳤다.

대피소 한복판에 만들어진 아수라장 속에서, 브루노 리트리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 “경외하라, 인간들아.”

­ “죽음의 왕이 세계의 종말을 고했다.”

쿵.

그가 묵직하게 지팡이를 내려찍었다.

대마법사의 프레셔가 퍼져나가며, 주변에 있던 모두가 자리에 얼어붙었다.

한순간에 요란스러운 침묵의 현장이 만들어졌다.

이질적인 정적속에서 브루노가 다음의 한마디를 이야기했다.

­ “썩어 문드러진 제국은 사라질 것이고, 그 자리에 위대한 죽음의 국가가 자리할 것이다.”

절름발이 브루노.

도시를 뒤흔들던 최악의 악당이 되돌아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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