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능력배틀물 보이스피싱-152화 (152/156)

〈 152화 〉 검성재림 (4)

* * *

어셔 헤이즈. 치안대의 제7특별기동대원.

그리고, 지금은 목줄이 풀린 사냥개가 그에게 남아있는 유일한 이름이었다.

어셔의 목을 죄어오던 억제장치는 완전히 파괴되었다.

어셔를 추격할 치안대 역시 도시가 무너지면서 완전히 붕괴되었다.

이제 어셔를 구속할 것은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그럼에도 지금의 어셔를 채우고 있는 것은, 끝이 없는 공허함 뿐이었다.

“후…….”

생기를 잃은 어셔의 시선이 망가진 도시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무너진 콘크리트벽 너머로 보이는 도시는 질서를 잃고 아수라장이 되어있었다.

길을 오가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망자들이었다.

살아있었다는 흔적만이 남아있을 뿐인, 썩어가는 사람의 형체가 움직이고 있다.

그들은 한때 도시를 가득채우던 사람들을 대신해, 살아있는 사람을 찾아 제자리를 배회하고 있었다.

죽음의 도시라고 부르기에 모자람이 없는 풍경이다.

그와 더불어 어셔의 원수인 아벨 테르도스가 아직 살아있음을 알려주는 증거이기도 했다.

­ “어셔…….”

“크게 신경쓰지마라.”

어셔는 옆에서 말을 걸어오는 여동생의 모습을 무시한 채로, 콘크리트 벽에 기대어 찬바람을 쐬었다.

도시가 무너져내렸다.

어셔가 가지고 있던 유일한 인간관계 역시 무너져내렸다.

이제 어셔의 곁에 네이 테르도스는 없다.

어셔는 자신의 손으로 아벨을 쏘게 된 순간, 더 이상 네이와 공존할 수 없게 되었음을 깨달았다.

그것은 네이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서로의 관계는 완전히 파탄났다.

일방적으로 목줄이 매여있던 관계는 완전히 끝을 맺었다.

더 이상 서로를 묶을 최소한의 연결고리는 남아있지 않았다.

후우. 바람을 쐬던 어셔의 입에서 거친 숨결이 흘러나왔다.

한숨을 내쉬는 어셔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 “하지만 며칠째 불안해하고 있잖아.”

“금단증상이다. 담배가 떨어져서.”

피식.

말라붙어 갈라진 어셔의 입술이 움직였다.

어셔의 입꼬리는 웃고 있지만, 그 눈만은 어둡게 가라앉아 있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보던 리엘이 고개를 저었다.

도저히 못봐주겠다는 표정이었다.

어셔의 말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겠지만, 어셔가 이러는 이유가 단지 그뿐만은 아닐 것이다.

리엘이 보는 어셔는 벌써 며칠째 밥조차 제대로 먹고 있지 않은 상황이었다.

­ “그럴거면 그냥, 그 여자를 찾으러 가는게 어때?”

“…….”

­ “나는 어셔가 괴로워하는 꼴은 못보겠어.”

“쓸데없는 참견이다, 리엘.”

어셔는 그렇게 말하고는 주머니를 향해 손을 집어넣었다.

반사적으로 담배를 찾기 위해 집어넣은 손이었지만, 그의 손에 잡히는 것은 단말기 뿐이었다.

어셔의 시선이 손에 잡힌 단말기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암흑상인. 그리고 집행자 넘버 투.

두가지의 이름을 가지고 활동하던 퍼시발에게서 받은 물건이었다.

잠시 단말기를 바라보던 어셔가 그것을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 “그러면 밥이라도 제대로 먹으라구.”

“말하지 않아도 먹을 생각이었다.”

­ “정말…….”

“잔소리는 이제 그만해라. 슬슬 귀가 아플 지경이군.”

어셔가 리엘의 말에 거리를 두게 되는 것은, 어셔의 마음에 남아있는 그녀가 가짜라는 인식 때문이었다.

무의식중에 떠올리는 내용이 어렴풋한 불쾌감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여동생을 흉내내는 가짜라고 해서, 그녀에게까지 상처를 주고 싶은 마음은 없다.

리엘은 자신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어셔가 아직까지 살아남아 버티고 있는 것도, 그의 곁에 리엘이 곁에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단지 서로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관계를 피하고 싶을 뿐이었다.

어셔 자신은 복수를 끝마치면 망설임없이 죽을 생각이었으니까 말이다.

­ “……응?”

불평을 늘어놓는 리엘의 입을 어떻게든 틀어막으려는 순간.

어셔는 주머니에 있던 단말기에서 진동을 느꼈다.

주머니에 들어있던 단말기를 꺼내 살펴보면, 누군가로부터의 통신요청이 들어와있었다.

툭.

어셔의 손가락이 수신버튼을 눌렀다.

단말기의 스피커 너머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잘 지내고 있었나?”

“……전령.”

스피커 너머에서 들려오는 것은, 집행자 중 하나인 전령의 목소리였다.

깊게 생각해보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어셔에게 연락할만한 사람은 그 이외에 존재하지 않는다.

전령은 단말기를 통해 그에게 말을 걸어왔다.

­ “슬슬 우리가 다시 만날 때가 된 것 같군.”

“다시 만날 때라고?”

­ “중요한 일이 생겼다.”

집행자에게 있어 중요한 일.

전령이 그렇게까지 이야기할만한 내용은 하나밖에 없었다.

어셔는 일전에 전령과 한가지 약속을 나누었다.

이제는 그것을 실천해야만 할 때였다.

기다리던 순간이 다가왔음을 직감한 어셔의 얼굴이 굳었다.

“네가 그렇게까지 말하는 걸 보니, 그 녀석이 움직이기 시작한 모양이군.”

­ “그래. 절름발이 브루노가 나타났다.”

단말기를 잡은 어셔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절름발이, 브루노 리트리어.

오랜세월 잠들어 있던 도시의 악몽을 토벌할 시간이었다.

* * * * * *

7구역. 임시로 마련해두었던 집행자의 거처.

나는 그곳에서 거처에 모인 집행자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중이었다.

그곳에 모인 집행자들의 이목은 한명에게로 향해있는 채였다.

모두가 변장을 하고 있는 가운데, 혼자서 아무런 변장을 하지 않은 남자 하나.

어셔 헤이즈. 그가 이목의 주인공이었다.

한순간에 주목을 받게 된 어셔가 불편한 분위기를 내며 테이블에 앉았다.

“가면 무도회에 어울리는 복장을 깜빡했군.”

­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이제는 가면에도 의미가 없을테니.”

어셔의 말에 나는 위안이 될만한 변명을 던져두었다.

계승자는 이미 도시전체의 시야를 확보했다.

이제와서 정체를 숨기는 일에 커다란 의미는 없었다.

단 한 명, 집행자의 넘버 에이트인 오즈왈드를 제외한다면 말이다.

나는 어셔가 자리에 앉은 것을 확인하고서, 회의를 진행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기, 저 사람은 왜 여기에 있습니까?”

갑작스럽게 방문한 어셔가 궁금했던 것일까.

넘버 세븐, 필립이 어셔를 바라보며 물었다.

필립으로서는 안면이 있는 인물이다.

게다가 이중에서 유일하게 얼굴을 가리지 않은 인물이기도 했다.

필립이 흥미를 보이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 “이유가 궁금한가?”

“……외부인을 들인 기억은 없었으니까요. 설마, 저 사람도 집행자입니까?”

­ “다들 궁금해하는 모양이군. 그렇다면 먼저 정식으로 소개하도록 하지.”

나는 원탁에 앉은 어셔의 뒤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어셔를 바라보는 집행자들을 쭉 둘러보았다.

필립과 나, 단 둘이서 시작했던 집행자가 어느새 아홉까지 숫자가 늘어났다.

이렇게 보니까 나름 감회가 색달랐다.

사람을 모으기까지 정말 많은 시간이 걸렸다.

이제는 거기에 마지막 한조각을 채워넣을 시간이었다.

­ “인사해라. 집행자의 넘버 원, 어셔 헤이즈다.”

“…….”

“넘버 원이라고요……?”

집행자의 넘버 원.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원탁에 앉아있던 대부분의 집행자가 얼어붙었다.

넘버 원의 존재는 이전부터 이들의 궁금증을 자아내던 내용이었다.

그렇기에 넘버 원의 정체를 들은 이들이 저렇게까지 놀라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물론 가장 크게 놀라는 모습을 보인 것은 필립이었다.

비어있는 자리의 주인을 누구보다 궁금해했던 것이 필립이었으니까 말이다.

­ “그래. 그가 집행자의 넘버 원이다.”

“……그럴 수가.”

텔레파시를 통해 필립의 감정이 쏟아져 들어온다.

혼란. 당황. 부끄러움.

수많은 감정이 테이블을 타고 역류했다.

필립은 이미 어셔와 몇차례 얼굴을 마주했던 전적이 있다.

그러니 어셔가 넘버 원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 “너무 자책할 필요는 없다. 내가 설명해두지 않아서 생긴 일이니까.”

“전령…….”

­ “오히려 어셔는 너에 대해서 좋은 평가를 하고 있더군.”

“……그, 그렇습니까.”

책상에 방독면을 쳐박은 필립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 모습을 보던 어셔가 한숨을 내쉬었다.

고개를 숙인 필립을 옆에 두고서, 이번에는 오즈왈드가 움직였다.

오즈왈드는 책상에 몸을 바싹 붙인 채로, 어셔를 향해 고개를 들이밀었다.

“인간도살자, 어셔 헤이즈……!”

“…….”

“정말, 정말 당신이 집행자의 넘버 원입니까?”

“하.”

부담스러운 오즈왈드의 시선이 어셔에게로 향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셔는 입을 다물었다.

넘버 원이라고 말하더라도, 무어라 대답해야할지 짐작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어셔를 대신해 대답을 돌려주는 것은 나의 몫이었다.

그를 위한 대답은 얼마든지 준비해두었다.

나는 사전에 준비해두었던 대답을 오즈왈드에게 돌려주었다.

­ “어둠의 집행자는 그를 위해 세워졌다.”

“인간도살자 하나를 위해 집행자가 세워졌다니, 실로 믿기 어려운 이야기군요.”

집행자가 설립된 목적은 하나다.

결사의 힘을 지속적으로 약화시키고, 계승자와 절름발이를 처리하는 것.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넘버 원의 자리에 가장 어울리는 것은 어셔 헤이즈였다.

무엇보다 지금부터 우리와 함께 싸울텐데, 외부인의 신분으로 같이 움직이기도 애매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그를 집행자의 가장 첫번째 자리에 세워놓았다.

­ “결사를 무너뜨리는 일에는 그의 힘이 필수불가결하다.”

계승자와의 전투는 어디까지나 어셔의 참전을 전제로 하고 있다.

어셔가 없이는 어떠한 싸움도 될 수 없는 구조였다.

내 말을 들은 오즈왈드가 이전보다 더 놀라서는, 뒤로 살짝 물러나는 모습을 보였다.

“설마 당신이 그렇게까지 말할줄이야. 그가 그렇게나 대단한 사람이란 말입니까?”

­ “너는 넘버 원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지?”

“어셔 헤이즈에 대한 이야기라면, 그가 몇년 전에 벌였던 대참사 정도는…….”

­ “그게 전부인가?”

“……넘버 원에게는 어떤 비밀이 있는겁니까.”

비밀이라.

그래. 어셔 헤이즈에게는 많은 비밀이 숨어있다.

그리고 그 비밀이야말로 이야기의 어둠을 풀어나갈 유일한 열쇠였다.

왜냐하면, 그는————

­ “그는 이 도시에서 절름발이와 계승자에 대응할 수 있는 유일한 마법사다.”

“…….”

브루노 리트리어의 매스 텔레포트를 사전에 감지할 수 있는 유일한 마법사니까 말이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