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3화 〉 검성재림 (5)
* * *
비밀이라.
그래. 어셔 헤이즈에게는 많은 비밀이 숨어있다.
그리고 그 비밀이야말로 이야기의 어둠을 풀어나갈 유일한 열쇠였다.
왜냐하면, 그는————
“그는 이 도시에서 절름발이와 계승자에 대응할 수 있는 유일한 마법사다.”
“…….”
브루노 리트리어의 매스 텔레포트를 사전에 감지할 수 있는 유일한 마법사니까 말이다.
어셔 헤이즈의 마력감지능력은 탁월하다.
아니, 탁월하다 못해 우월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였다.
어셔가 가지고 있는 ‘직감’은 통상적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고차원적인 것이었다.
마력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
이는 온갖 종류의 마법을 사전에 감지할 수 있다는 이야기와 일맥상통했다.
어셔와 처음 만났던 당시, 나는 텔레파시를 사용하자마자 그 사실을 어셔에게 간파당했다.
어지간한 마법은 사용하기도 전에 움직임을 봉쇄하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아무런 전조없이 공간을 절단하는 브루노에게 대응하기 위해, 이것은 필수적인 능력이었다.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
“설마, 저희가 오늘 모인 이유가…….”
“준비해라. 우리는 지금부터 절름발이 브루노의 토벌에 나설 생각이다.”
“……결국 그런 날이 찾아왔나.”
이야기를 들은 헤리오가 착잡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꺼냈다.
마지막 싸움이 얼마남지 않았다.
모든 싸움이 끝나게되는 순간, 헤리오는 이 거짓된 신분에서 해방될 수 있다.
그리고 헤리오와 마찬가지로 이 순간을 기다려온 인물이 하나 더 존재했다.
투웅.
넘버 파이브, 검성이 매고 있던 기타 케이스에서 금속의 마찰음이 울려퍼졌다.
그녀는 평생에 걸쳐 이 싸움을 기다려왔다.
브루노 리트리어를 쓰러뜨리고, 자신이 진정한 검의 주인임을 관철하기 위해서 말이다.
브루노가 만들어주었던 검으로, 브루노를 쓰러뜨려야 하는 비정한 운명이다.
가면을 쓰고 있는 그녀의 주변에서 확고한 결의가 느껴지고 있었다.
“녀석은 죽어야만 해.”
“……우리가 죽지만 않는다면, 네가 원하는대로 흘러가게 될 일이다.”
토벌소식을 들은 검성이 이를 악물었다.
오늘의 싸움은 그녀에게 있어서 커다란 중대사였다.
또한 우리에게 있어서도 목숨이 걸려있는 일생일대의 결전이었다.
상대는 도시의 모든 역사를 통틀어 최악의 범죄자로 꼽히는 인물이다.
최악의 범죄자.
최강의 살육자.
그리고—— 최고의 마법사.
이 모든 수식어들이 허용되는 인물을 상대로, 우리는 오늘 결전을 치뤄야만 하는 것이다.
“잠깐만요, 그거… 정말 가능한겁니까?”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나?”
“그 절름발이를 상대로 이긴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되는…….”
“불가능해도 해내야만 한다. 전부 말라비틀어진 뼛조각으로 전락하고 싶지 않다면.”
이미 우리에게 도망갈 길은 없다.
이것은 더 이상 집행자와 결사의 싸움같은 것이 아니다.
도시는 멸망했다.
기반과 질서는 모두 무너져내렸다.
이제 여기에 남은 것은 아직까지 살아숨쉬고 있는 가녀린 목숨들 뿐이다.
“전령…….”
정의를 위한 싸움이 아니다.
복수를 위한 싸움도 아니다.
내가 처음부터 지키고자 했던 것은, 오직 하나의 가치뿐이었다.
살아남고 싶다.
살아서 내일을 보고 싶다.
모두와 함께 살고 싶다.
이 너머의 이야기로 나아가고 싶다.
그런 일념 하나만으로 지금까지의 여정을 이어나갔다.
“따라와라. 너희 모두에게 해피엔딩을 약속해주마.”
그렇기에 나는 이 자리의 모두에게 선언했다.
지금부터 펼쳐질 이야기의 최종장을 함께하자고 말이다.
개전의 시간이었다.
******
침묵이 드리워진 대피소.
그곳에서 브루노의 시선이 주변을 훑었다.
수많은 인간들이 그의 앞에서 두려움에 떨며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나약하다. 그리고 비루하다.
그럼에도 살아있는 것을 갈망하고 있다.
그것이 지금 이 순간에 나약한 생명들에게 허락되어있는 전부였다.
“지루하군.”
터벅. 턱. 터벅. 턱.
불규칙적인 세번째의 리듬이 브루노의 걸음걸이를 채운다.
브루노는 느릿한 걸음으로 주변을 돌아보며 숫자를 세어보았다.
어느덧 3할에 가까운 숫자가 줄어있었다.
하나같이 브루노의 마법에 걸쳐 죽어버린 이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죽음은 브루노에게 있어 만족스럽지 않은 것이었다.
“이런 일은 취향이 아니라서 말이지.”
브루노의 매스 텔레포트는 세밀한 조작보다는 광범위한 이동에 특화되어있다.
다시말해 상대를 죽여도 곱게 죽이기는 어려운 마법이었다.
평범한 상황이라면 이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만한 단점이었다.
그러나 계승자가 도시 전역을 마법으로 뒤덮은 지금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계승자가 원하는 것은 도시에 혼란을 일으킬만한 숫자의 언데드를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언데드가 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형태는 갖추고 있어야만 했다.
브루노가 평소대로 상대를 반토막 내어버려서야, 계승자가 원하는만큼 온전한 시체를 만들기는 힘들었다.
그렇다고 상대를 곱게 죽여줄만큼 브루노의 마법이 세밀하지도 않았다.
결국 그로서는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그러니까, 우리 이렇게 하도록 하지.”
그가 사람들을 온전하게 죽이기 위해 선택한 방법.
그것은 간단한 게임이었다.
보통 게임과 다른 점이 있다면, 게임에 참가한 이들이 목숨을 걸어야만 한다는 점이었다.
조잡하게 만들어진 단상의 한가운데에 멈춰선 브루노가 좌중을 바라보았다.
공포에 젖은 시선들이 일제히 브루노에게 주목했다.
“지금부터 서로 죽여보도록. 살아남은 절반은 살려줘도 좋을 것 같군.”
“……그게 무슨, 무슨 소리야!”
“당신, 지금 정신나간 이야기를 하고 있는거 알아!”
짝. 짝.
브루노가 가볍게 박수를 쳤다.
그와 동시에 항변하던 이들이 반신만을 남겨둔 채로 사라졌다.
브루노의 박수소리에 사람들이 다시 침묵에 휩싸였다.
항거할 수 없는 힘을 앞에두고서, 큰소리를 낼 수 있는 인물은 많지 않았다.
순식간에 조용해진 좌중을 두고서 브루노가 말을 이어나갔다.
“뭐하나, 서로 안죽이고?”
“…….”
“가만히 있을 생각이라면, 내가 직접 숫자를 절반으로 줄여주지.”
브루노의 시선이 다시 그들을 훑자, 얌전히 있던 피난민들 중 하나가 소동을 일으켰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어!”
“뭐, 뭐야! 당신 미쳤어?”
“이러다간 어차피 다 죽잖아!”
피난민들 사이에서 일어난 분란에 브루노의 입꼬리가 올라가려는 순간.
그는 무언가를 느끼고 반대편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브루노의 시선이 닿는 곳에서 보이는 것은, 새부리 가면을 뒤집어쓰고 있는 사람이었다.
오래되어 닳아떨어진 새부리 가면.
그것은 역병이 돌던 시대에나 착용할법한 낡아빠진 물건이었다.
새롭게 나타난 존재감에 브루노의 시선이 흥미로 물들었다.
“재미있는 손님이 찾아왔나.”
“불청객이라고 홀대하지는 않아서 다행이군.”
“그럴 리가 없지. 이번에 벌인 파티는 사람이 얼마나 오더라도 맞아줄 수 있을만큼 성대하니까.”
“그런가. 그렇다면 손님들을 조금 더 데려와도 상관없겠군.”
가면을 뒤집어쓴 전령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브루노의 주변에 숨어있던 이들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저마다 쓰고 있는 가면은 달라도 복장만큼은 하나같이 통일감이 있었다.
저들 모두가 일행이라는 사실을 브루노가 깨닫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포식자의 날카로운 시선이 새롭게 찾아온 손님들을 맞이했다.
그의 눈에 비친 먹잇감들은 전부 긴장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다들 싸울 생각으로 가득차있군. 아무래도 작정하고 준비한 모양이야.”
흐뭇한 미소가 브루노의 입가에 걸렸다.
집행자에 대한 이야기는 브루노도 익히 듣고 있던 것이었다.
결사의 뜻에 거스르는 조직이 있다.
얼마 전까지는 직접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지만, 최근에 들어서는 대놓고 적대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이 이제는 자신의 앞에 나타났다.
그 이유는 아무래도 브루노 자신을 쓰러뜨리기 위해서일 것이다.
“새로운 손님들은 마음에 들었나?”
“그래. 마음에 들었고 말고.”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이들이 브루노에게 도전했던가.
무수한 숫자의 사람들이 죽었다.
누군가는 이권을 노리고 다투던 뒷골목의 조직원이었고, 또 누군가는 브루노를 잡고자 하던 치안대원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도전했다.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죽었다.
한바탕의 싸움과 함께 악명이 퍼져나간 뒤로는, 그 누구도 브루노에게 도전하지 않게 되었다.
그로부터 십수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 기나긴 시간을 뛰어넘어서, 브루노는 처음으로 타인에게 도전을 받는 것이었다.
“기왕이면 그 용기에 걸맞는 실력을 가지고 있으면 좋겠군.”
“실망하는 일은 없을거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