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5화 〉 검성재림 (7)
* * *
“[헤이스트].”
시넬의 공격이 브루노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후우웅!
바람을 가른 단검이 브루노의 목에 쇄도했다.
인간의 속도를 아득히 뛰어넘은 매서운 스피드의 일격이다.
보통이라면 순순히 맞아줄만도 하건만, 브루노에게 그런 배려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기이이이잉——.
자리에서 모습을 감춘 브루노가 수미터 뒤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내었다.
허공에 단검을 휘두른 시넬은 아쉬운 표정으로 그 자리를 바라보았다.
“숫자가 많으니 성가시군.”
공격을 피한 브루노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어느쪽에도 통용되는 이야기였다.
사람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압박을 넣을 수도 있다는 말이지만, 이쪽에서도 아군의 오인사격만큼은 조심해야만 했다.
이것은 집행자들이 총기의 사용을 자제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브루노가 일행으로부터 거리를 벌리자, 다시 한차례 기다리고 있던 포화가 이루어졌다.
이번에 브루노를 노리고 날아드는 것은 검성의 참격이었다.
“——일섬.”
“……!”
촤아악!
브루노가 전이한 자리를 향해 바람의 칼날이 날아들었다.
보이지 않는 칼날이 매섭게 바닥을 할퀴었다.
브루노는 아슬아슬한 간격을 두어 전이했지만, 브루노가 서있던 자리만큼은 멀쩡하지 못했다.
검성의 참격에 의해 난도질당한 자리에는 패인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공격을 회피한 브루노가 참격이 날아온 방향을 바라보았다.
방금 전의 공격을 지켜본 브루노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은 검성의 이름이었다.
“유엘이냐.”
“…….”
착잡한 시선이 검성에게로 향했다.
아무리 가면을 쓰고있다고 한들, 부모까지 속이지는 못하는 모양이었다.
허공에서 검성과 브루노의 시선이 마주했다.
지팡이를 붙잡은 브루노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어떠한 의지로 검성이 이곳을 찾아왔는지 이해한 것이었다.
잔혹한 운명이다.
그리고, 잔인한 이름이기도 했다.
“그런가. 그게 네 선택인 모양이구나.”
“나는…….”
“끝까지 그 저주를 짊어지는걸 선택했군.”
저주.
그 단어를 들은 검성의 입가가 일그러졌다.
격한 분노의 감정이 그녀에게서 전해져오고 있었다.
검성의 격정적인 시선이 브루노를 향해 살의를 흘려보냈다.
그녀의 손은 계속해서 등에 매고 있는 기타케이스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저주가 아니야!”
“그렇게 생각하나?”
“이건… 내가 할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길이야.”
전대 검성이 사라진 순간.
그녀는 검성의 이름을 짊어지기로 선택했다.
주변의 시선을 모두 감안하고서도, 검의 길을 걷기로 한 것은 그녀의 의지였다.
유엘은 지나치게 검성의 이름에 집착해왔다.
그녀에게 남아있는 것이 오직 그 이름 하나뿐인 것처럼 말이다.
브루노의 지팡이가 패여나간 돌바닥을 긁으며 움직였다.
“증오와 원념까지 물려받은 모양이군.”
“당신이, 당신이 할아버지를 죽였잖아—!”
“그게 그 사람의 선택이었다. 나를 죽이고 본인이 죽을 생각이었겠지.”
“……당신도 그때 죽었어야만 했어.”
두 사람 사이에 서슬퍼런 대화가 오고간다.
아무리 생각해도 부모와 자식간에 이어질만한 대화는 아니었다.
이미 검성에게 있어 브루노는 숙적이었다.
자신의 인생 전체를 걸고서 맞서야만 하는, 일생일대의 숙적말이다.
그녀는 이미 자신의 인생에서 아버지라는 이름을 완전히 지워버린 채였다.
“허울뿐인 이름에 얽매이지 마라.”
“허울뿐인 이름이라니…….”
“바보같은 꿈에 인생을 허비하지 마라. 너는 그 이름보다 값진 것을 가지고 있다.”
“그런게… 아니야.”
“이미 검객의 시대는 시들어 저물었다. 그런 시대에 검성의 이름에 무슨 가치가 있다는거냐.”
까득.
브루노의 말을 들은 검성이 이를 악물었다.
가방을 붙잡고 있던 검성의 손이 떨려오고 있었다.
복잡한 감정이 그녀에게서 흘러나왔다.
검성은 머리에 쓰고 있던 자그마한 가면을 바닥에 벗어던졌다.
그와 함께 드러난 선명한 금빛 눈동자가 브루노를 바라보았다.
“……할아버지를 모욕하지마.”
“유엘.”
“바보같은 꿈을 꾸는게 뭐가 나빠. 다른 사람의 꿈을 비웃지마.”
“어리석은 이야기를 늘어놓는군. 시대에 뒤쳐진 꿈을 꾸는건 어른이 되지 못한 자들 뿐이다.”
정적속에서 바람이 휘몰아친다.
검성을 중심으로 서늘한 기류가 만들어졌다.
휘몰아치는 바람에 검성의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그녀의 마법이 통제를 잃고 날뛰고 있었다.
“그 대단한 어른이라는게, 가족마저 내팽개쳐놓고 사람을 죽이는거야?”
“나는 스스로를 증명했을 뿐이다.”
“……말도 안되는 이야기잖아.”
“어차피 네가 이루어내려는 검성이라는 것도, 고작해야 검의 흉내가 아니었나?”
쿵.
검성이 들고 있던 기타케이스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녀가 열어젖힌 케이스에서 묵직한 기계식 검 한자루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녀가 항상 가지고 다니던 검성의 상징이었다.
선대의 검을 흉내낸 검.
그리고 브루노 리트리어가 만들어낸 검.
여러가지 상징성을 가진 그 검을, 검성이 자신의 등에 매었다.
“할아버지는 이 세상에 검성이 필요하다고 했어. 그리고 나는—— 자신의 의지로 검성이 되기로 했어.”
“……그렇군.”
검을 쥔 검성의 모습에 브루노가 앞으로 움직였다.
터벅. 턱. 터벅. 턱.
브루노의 지팡이 소리가 불규칙하게 울려퍼진다.
움직이기 시작한 브루노의 모습에 모두가 긴장했다.
앞으로 걸어나오던 브루노가 차가운 목소리로 검성에게 이야기했다.
“낡아빠진 어른에게 있어서 오래된 꿈이란 사치에 불과하다.”
“…….”
“내가 직접 네 꿈을 부숴주지.”
그 직후 브루노가 움직였다.
브루노가 전이한 장소는 유엘의 뒤쪽이었다.
철컥.
검을 움직인 유엘이 바람을 이용해 그를 밀어내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브루노는 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유엘을 향해 정직하게 손을 뻗어왔다.
그녀에게 다가가는 브루노의 모습에, 나는 텔레파시를 이용해 모두에게 지시를 내렸다.
“공격해라.”
브루노를 향해 달려가며 사격명령을 내린다.
검성이라면 원거리 공격에도 어느정도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이라면 집중포화를 날릴 수 있을거라는 계산이었다.
내 명령을 들은 동료들이 마법을 준비했다.
파직. 파지직.
가장 먼저 뻗어나가는 것은 날카로운 전류였다.
“[체인 라이트닝].”
“[버닝 핸즈]!”
“——오연섬격.”
불꽃의 손길.
번져나가는 전격의 연쇄.
몰아치는 바람의 칼날.
잇따른 공격들이 전부 브루노를 노리고 움직인다.
그러나 브루노는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에 그는 제자리에서 자신의 마법을 사용했다.
“[매스 텔레포트].”
콰아앙! 카가가가각!
브루노를 향해 쏟아진 집중포화가 허공에서 터져나간다.
마법중에서도 화력에 치중한 마법들이다.
한낱 사람의 피부가 견뎌낼만한 공격이 아니었다.
매캐한 연기가 주변으로 번져나갔다.
그와 동시에 브루노를 중심으로 하던 공간이 한차례 진동했다.
“……설마.”
“위상의 변화상태를 유지해 공격을 피해냈군.”
공격을 받아낸 브루노의 몸에는 아무런 생채기도 없었다.
에어리어 셰이커.
어셔 헤이즈가 애용하는 기술이었다.
같은 전이계열의 마법을 사용하는 만큼, 어셔가 사용하는 대부분의 기술을 사용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공격이 한 번 빗나갔다고 해서, 완전히 손을 놓고있을수도 없는 노릇이다.
나는 곧장 다음의 공격을 준비했다.
“브루노와의 거리에 유의해라. 이번에는…….”
“놀이는 끝이다. 애송이들.”
그러나, 다음의 폭격이 이어지기 직전.
브루노의 입에서 간단한 선언이 흘러나왔다.
우리의 전력을 비웃는듯한 한마디.
그리고 그 직후부터 상황이 뒤집히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바뀐 것은 마법의 발동속도였다.
브루노는 더 이상 마법으로 우리를 베어내는 것을 포기했다.
마법의 정밀도를 포기했으니 발동속도가 빨라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마력이 움직…….”
“[매스 텔레포트].”
지이이이잉———.
공간이 비틀리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그와 동시에 집행자의 절반이 모습을 감추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사라진 이들이 나타난 것은 십수미터 위의 하늘이었다.
주변의 공간을 통째로 붙잡고 전이시킨 것이다.
지상을 향해 낙하하기 시작한 이들의 눈이 커다랗게 변했다.
“으아아아아악!”
“——내가 지원할게!”
하늘에서 떨어지기 시작한 필립이 비명을 내질렀다.
잘못 떨어진다면 목숨이 위험해질만한 높이다.
머리가 잘못되기 전에 낙하의 충격을 경감할 필요가 있었다.
재빠르게 상황을 파악한 검성이 필립을 도우려고 했다.
하지만 해당 사태를 일으킨 브루노가 가만히 있는 일은 없었다.
마법을 사용한 브루노가 곧장 필립의 아래쪽으로 전이했다.
“반갑군.”
“커헉……!”
푸욱—!
브루노가 들어올린 지팡이에 떨어져내리던 필립이 꿰뚫렸다.
지팡이에 복부를 관통당한 필립의 입에서 비명소리가 터져나왔다.
즉사할만한 상처는 아니다.
그럼에도 이번의 공격으로 내장을 다친 것은 틀림없어보였다.
오랫동안 내버려둔다면 죽고 말 것이다.
브루노의 움직임을 확인한 어셔가 대응을 위해 전이를 선택했다.
움직이는 어셔의 모습에 브루노가 지팡이에 꿰뚫린 필립을 내던졌다.
“[블링크].”
“[매스 텔레포트].”
두개의 공간마법이 같은 자리에서 충돌했다.
두 사람이 동시에 전이를 선택하면서, 서로 다른 차원이 한자리에 겹치기 시작한 것이다.
중첩되기 시작한 이차원의 마력.
그 속에서 브루노가 지팡이를 까딱였다.
쿠궁. 공간이 한차례 크게 요동쳤다.
그 직후에 전이하던 어셔가 밖으로 튕겨나왔다.
강한 힘에 밀려나온 어셔의 몸이 바닥을 뒹굴었다.
“어셔! 정신차려라!”
어셔가 쓰러진다면 우리는 브루노의 공간마법에 대응할 수 없게된다.
나는 어셔의 상태를 확인하면서 브루노에게 달려들었다.
근처에 있던 헤리오 역시 전격을 뽑아내며 브루노를 향해 움직였다.
파지지지지직.
이전보다 강해진 번개가 헤리오의 손에서 모습을 드러내었다.
나는 헤리오의 번개와 동선이 겹치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품속에 있던 단검을 꺼내들었다.
“[스펠 오버로드 : 체인 라이트닝]!”
콰릉—!
강맹한 뇌격이 브루노를 노리고 내려쳤다.
지상을 향해 쏟아지는 수십갈래의 번개는 마치 꿈틀거리는 뇌룡을 보는듯 했다.
헤리오의 뇌격에 닿은 바닥이 새까맣게 그을려졌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브루노는 헤리오의 전격을 보자마자 마찬가지로 마법을 사용했다.
에어리어 셰이크를 이용한 물리적인 충격의 회피.
이전의 수법과 똑같은 방식이었다.
“[매스 텔레포트].”
헤리오의 뒤로 전이한 브루노가 지팡이를 휘둘렀다.
퍽. 둔탁한 소리가 울려퍼지며 헤리오의 몸이 한쪽으로 기울었다.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헤리오의 초점이 풀리기 시작했다.
브루노는 마무리를 할 생각인지, 지팡이의 끝을 헤리오에게 겨누었다.
그 모습을 본 내가 단검을 휘두르며 브루노를 향해 달라붙었다.
“———!”
“[매스, 텔레포트].”
휘두른 단검이 브루노에게 닿으려는 순간.
공간이 뒤집히며 주변의 시야가 완전히 뒤바뀌었다.
내가 있는 장소는 더 이상 브루노의 앞에 있던 바닥이 아니었다.
브루노가 서있던 위치로부터 어림잡아 십수미터는 떨어져있는 허공.
그곳에서 나는 지상을 향해 추락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발을 디딜 공간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의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
브루노는 내가 떨어지는 아래쪽에서 날카로운 지팡이를 들어올렸다.
그는 괴물이었다.
인간의 몸으로는 대적할 수 없는 존재다.
나는 처음으로 자신의 선택을 후회했다.
원래라면 브루노와의 전투는, 어셔가 6서클이 된 상태로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게 가능했다면 이렇게까지 압도당할 일은 없었을텐데.
이제와서 어셔를 6서클로 만들어놓을 방법은 나조차도 모른다.
지나치게 이야기속에 간섭한 과거의 자신을 원망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