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6화 〉 검성재림 (8)
* * *
유엘 리트리어.
그녀는 처음으로 커다란 벽을 느꼈다.
눈앞의 존재는 다른 이들과 격이 다른 존재였다.
세상이 괴물을 만들어냈다.
검의 손잡이를 잡고 있는 손에서 떨림이 느껴졌다.
“……너무 불합리하잖아.”
세간이 이르기를, 역사상 최악의 범죄자.
지금까지 그 누구도 그에게 닿지 못했다.
정의를 꿈꾸던 치안대원들도 잔인하게 죽었으며, 황금을 쫓던 현상금사냥꾼들도 찰나의 꿈에 압사당했다.
그녀의 동료들도 예외는 아니다.
전투가 시작된지 어느덧 10여분이 지났다.
그 짧은 시간동안 주변은 아수라장이 되어 집행자들이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안색이 어두워진 유엘의 시선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으윽…….”
어깨가 찢어진 채로 바닥을 나뒹구는 퍼시발 스미스.
머리에서 피를 흘리는 채로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헤리오 나이트라인.
복부의 상처를 틀어막은 채로 불꽃을 쥐어짜내는 필립 아다만티움.
계속해서 발악하며 브루노를 향해 달려드는—— 눈앞의 어셔 헤이즈.
저마다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브루노에게 달려든다.
하지만 어떠한 공격도 브루노에게 닿지 못했다.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버닝 핸즈]!”
“[매스 텔레포트].”
간신히 쥐어짜낸 작은 불길이 브루노를 노리고 뻗어나갔다.
그럼에도 필립의 불길은 브루노에게 닿지 못했다.
브루노를 중심으로 공간이 진동하는 순간, 온갖 종류의 공격은 의미를 상실하고 사라진다.
연달아 쏟아낸 마법에 이미 이쪽의 마력은 바닥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와 반대로 브루노의 마력에는 한계가 존재하지 않는 것인지, 그는 아직까지도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고 있을 뿐이었다.
일방적인 상황이다.
어떠한 발악도 그에게 닿지 못했다.
이런 상태가 계속 이어진다면 집행자는 틀림없이 전멸할 것이다.
절망스러운 전황을 맞이한 유엘이 입술을 깨물었다.
“포기해라.”
유엘의 모습을 마주한 브루노가 입을 열었다.
이전의 친근해보이는 목소리와는 다르게, 감정적이고 날카로운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브루노의 묵직한 금빛 눈동자가 유엘을 바라보았다.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온몸이 짓눌리는 기분이었다.
“읏…….”
“이곳에서 도망쳐라. 그리고 두번다시 그 어리석은 이름을 자칭하지 마라.”
지팡이를 짚은 브루노의 입에서 흘러나온 한마디.
얼핏 보면 자비로운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그녀에 대한 일종의 모욕이었다.
스스로의 입술을 강하게 깨문 유엘의 입가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자신은 나약하다.
여태껏 옛날 이야기속의 강함을 동경해왔지만, 지금까지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
할아버지를 뒤따르던 어린 꼬마는 이제 어엿한 숙녀가 되었다.
그녀가 차고 있는 검 역시 더 크고 무거워졌다.
그럼에도 유엘 자신만은 어린시절 그대로였다.
검성의 꿈을 동경하고 있다.
시간이 흘렀음에도 아직까지도 동경만을 가지고 있을 뿐인 인생이다.
이루어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언제까지고 나약한 채로 꿈의 그림자를 뒤쫓고 있을 뿐이었다.
“책임질 수 없는 어린 시절의 치기는, 단순히 유년기의 꿈으로 끝나야만 한다.”
날카로운 한마디가 가슴 한복판을 후비고 들어온다.
나약하다.
유약한 자신이 부끄럽다.
자그마한 꿈 하나조차도 증명하지 못하는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날의 자신도 이런 모습이었다.
등불이 되어주던 검성의 죽음에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로, 떠나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만 보고 있어야만 했다.
언제까지고 자신은 지켜봐야만 하는가.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굴레에 유엘이 검을 쥔 손을 놓으려는 순간이었다.
“포기하지 마라… 유엘.”
“……퍼시발.”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 퍼시발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어진 전투의 여파로 새부리가면의 일부가 깨져나갔다.
망가져버린 가면 너머에서 비치는 시선.
그것은 자신에 대한 신뢰였다.
연민과 비웃음 따위가 아니라, 동료를 향한 확고한 신뢰가 보이고 있었다.
피가 흘러나오는 어깨를 붙잡은 퍼시발이 그녀를 향해 웃으며 이야기했다.
“단순히 시간을 버는 정도로도 좋다. 재정비한다.”
“…….”
“우리쪽의 소모도 적지는 않지만… 브루노의 마력 소모도 적지 않을거다. 조금만 더 버티면, 분명 한계가 오겠지.”
사람의 말에서 온전한 감정을 느끼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허나 유엘은 퍼시발의 말에서 동료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느끼고 있었다.
앞으로의 일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지는 모른다.
그럼에도 지금 이 순간의 일만은, 자신에게 맡기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만이 아니다.
그는 언제나 자신을 강하게 믿어왔다.
어떤 수배범이라도 자신과 함께라면 잡아낼 수 있을거라고 믿고 있었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자신이라면 해낼 수 있을거라고, 그는 굳게 믿고 있었다.
“나는…….”
“그러니까, 조금만 더 뒤를 부탁한다. 검성.”
강인한 울림이 그녀의 귓가에서 울려퍼졌다.
검성.
그 이름을 비웃는 자는 많이 있다.
자신의 꿈에 손가락질을 하는 자도 많이 있다.
하지만 이상에 대한 동경을 멈출 수는 없다.
자신에 대한 근간을 부정해버린다면——
결국은 자신의 인생 전체를 부정하는 것과 다를바가 없지 않은가.
“퍼시발, 나는…….”
“너라면 분명… 가능할거다.”
동료에 대한 강한 애정.
그리고 그녀 자신을 향한, 무엇보다도 단단한 믿음.
그 강렬한 감정에 그녀는 애틋한 소원 하나를 마음속에 품어버렸다.
검성이 되고 싶다.
당신만의 검성이 되고 싶다.
그런 감정이 자신의 안에서 휘몰아치는 순간, 그녀는 주변에서 날뛰던 폭풍이 한순간 잠잠해지는 것을 느꼈다.
“——내가 어떻게든 할게.”
결의는 끝마쳤다.
검의 손잡이를 단단하게 붙잡은 유엘이 브루노의 앞에 서서 이야기했다.
눈앞의 적을 베기로 결심한 순간, 자신은 반드시 이루어야만 했다.
그것만이 믿음에 대한 유일한 보답이었다.
필요한 것은 공격이다.
어차피 인간의 육신따위, 날카로운 칼질에 베여버리는 덧없는 것이었다.
단 한 번.
단 한 번이라도 공격을 넣을 수만 있다면.
그걸로도 충분할 것이다.
어떻게든 브루노의 회피를 돌파해야만 했다.
“아직까지 맞설 생각인거냐.”
“…….”
“마지막으로 경고하지. 도망쳐라, 유엘.”
날이 서있는 브루노의 시선에도 유엘은 더 이상 아랑곳하지 않았다.
전대 검성의 앞에서 검성이 되겠다고 맹세했다.
어린 시절의 찰나뿐인 동경일지도 모르고, 그게 아니라면 누군가에게 넘겨받은 신념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눈앞의 남자가 말하는대로 저주받은 운명일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그날의 자신은 결심했다.
진정한 검성이 되겠노라고.
세상을 아우르는 위대한 검성이 되어서, 지난날의 과오를 반복하지 않겠노라고.
“두 번 다시 도망치지 않아.”
검성은 쥐고 있던 검의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철컥. 드르르륵.
레일의 마찰음을 내며 기계식 검이 완전히 뽑혀나왔다.
검집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검이 찬란한 달빛을 받아 반짝였다.
평생 이 아름다운 검의 모습을 숨기면서 살았다.
자신의 실력이 그에 맞는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는 걸 알았으니까.
휘두르는 검의 품위가, 검성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으니까.
그렇지만 이 순간만큼은 과거의 부끄러운 자신을 벗어던질 생각이었다.
오늘의 자신은 검성이었다.
일생일대의 숙적을 눈앞에 두고 있는, 검성이 되어야만 하는 사람이었다.
“이미 이 검에 맹세했으니까.”
그러니 눈앞의 적을 자신의 힘으로 넘어서지 않으면 안된다.
자신은 검성이다.
무릇, 검성이란 무엇인가.
검성의 검은 하늘을 가르고, 검성의 검은 바다를 양분한다.
그려내는 검은 의지가 되고, 휘두르는 검은 세계의 법칙이 된다.
검을 붙잡은 채로 자신을 가로막는 적을 베어내는 것.
그리고 검 한자루로 이 세상에 자신의 의지를 온전히 관철해내는 것.
그것이 검성에게 주어진 본분이었다.
어중간한 의지로는 그 이름을 짊어질 자격이 없었다.
“……유엘.”
“브루노 리트리어. 나는, 당신을 넘어서겠어.”
검을 쥔 손이 떨려온다.
가녀린 손으로 쉽게 지탱할 수 없는 무게다.
그러나 그런 무게마저도 이겨내야만 했다.
검성의 이름을 짊어지고 있는 이상, 부끄러운 추태를 보이지는 않겠다.
유엘 리트리어는 분명히 전대 검성의 무덤에 맹세했다.
언젠가 복수의 시간이 찾아왔을때, 그에 걸맞은 인간이 되어 복수를 이뤄내보이겠다고.
그토록 기다리고 인내해왔던 결전의 순간이 찾아왔다.
이제는 과거의 약속을 지켜야만 할 때였다.
“그게 가능할거라고 생각하나?”
“모든 불가능을 베어내는게 나의 검이야.”
“정말이지, 너는——.”
“그리고 나는 그 검을 휘두르는 검성이고.”
브루노에게 선언한 검성이 검을 기울였다.
검을 흉내내고 싶었다.
그렇기에 마법의 이름을 숨겼다.
어느쪽도 진정한 자신이 아닌 것이 부끄러웠다.
그럼에도 공명심만이 자신의 안에 남아, 검성의 이름을 온세상에 떨치고 싶어했다.
그러나 지금에 이르러서, 그녀는 자신이 누구인지 자각해냈다.
검이란 무기고, 검술이란 흐름이다.
그 흐름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것은, 자신을 가로막는 무언가를 베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바람이란 그러한 흐름중에서도, 가장 선명하게 이 세상에 나타나는 흐름이었다.
무엇을 위해 검을 단련해왔던가.
그것은, 눈앞의 적을 베어내기 위해서다.
자신의 마법은 눈앞에 있는 모든 것을 베어낸다.
지금 이 순간, 세상 그 무엇보다도 선명하게 움직이는 바람의 칼날은 부끄럽지 않은 검이 될 것이다.
유엘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브루노를 향해 겨누어진 검이 찬란한 광채를 발했다.
“오랜 계약에 따라 너에게 사명을 부여한다.”
“자신을 증명하라.”
하늘의 목소리가 검성의 귓가를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검성은 그런 목소리 따위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이름조차 모르는 누군가의 목소리 따위, 이제는 자신에게 있어서 아무래도 좋은 것이었다.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하는 것은 언제나 자기 자신이다.
되고 싶은 자신이 되는 것에는, 누군가의 보증따위가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길고 긴 기다림이었다.
오늘에서야 세상은 비로소 목도하게 될 것이다.
최강의 마법사를 직접 쓰러뜨린 위대한 검성이 누구인지 말이다.
“오래 기다렸어. 절름발이 브루노.”
검성의 주변에 거대한 폭풍이 휘몰아쳤다.
주변의 공기가 굉음과 함께 크게 요동치며, 사방의 모든 것들이 휘날리기 시작했다.
그런 폭풍속에서도 검성의 검은 흔들리지 않은 채, 눈앞에 있는 브루노 리트리어를 겨누고 있었다.
폭풍속에서의 짧은 고요.
검은색의 머리카락을 거세게 나부끼며, 검성의 금빛 눈동자가 숙적을 응시했다.
“……운명을 받아들여라, 유엘.”
“아니, 이제는 물러서지 않아.”
그녀의 의지를 대변하듯이 폭풍이 울부짖었다.
검은 수단이다.
그리고 베는 것은 목적이다.
휘두르는 것으로 베어낼 수 있다면, 그것은 검격이라 부르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목표하는 것은 오로지 하나.
눈앞의 적을 공간째로 베어내는 것.
요동치는 대기속에서 검성이 당당하게 외쳤다.
그것은 생애 처음으로 입밖에 내뱉는, 그녀가 가진 하나뿐인 마법의 이름이었다.
“[스펠 오버로드 : 윈드 커터]!”
콰과과과과광———!
검성의 검이 막대한 기류를 휘감고, 거대한 한자루의 검이 되어 휘둘러졌다.
검의 궤적을 따라 공간이 비틀리며 주변의 모든 빛을 난반사했다.
폭풍을 머금은 검격이 노리는 것은 오직 하나.
궤적의 끝에 존재하고 있는 절름발이 브루노였다.
눈앞의 폭풍을 마주한 브루노는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했다.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폭풍의 궤적에서 벗어나기 위해 브루노는 마법을 사용했다.
주변에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는, 순수하게 도피만을 위한 마법이었다.
“[매스 텔레포트].”
모습을 감춘 브루노가 보다 먼 거리에서 다시 나타난다.
하지만 브루노의 텔레포트는 자신의 주위에 있던 바람을 온전히 떨쳐낼 수 없었다.
궁극에 이른 바람의 참격이 발현해낸 특성.
그것은 바람에 맞닿은 공간마저 베어내는 것이다.
브루노를 휘감던 바람마저 전이한 채로, 바람은 공간과 함께 그의 몸을 찢어발겼다.
휘몰아치는 폭풍.
그 속에서 브루노의 비명소리가 터져나왔다.
“커허어어억……!”
날이 서있는 칼날의 폭풍에 브루노의 육체가 무자비하게 난도질당한다.
썩어 문드러진 살점이 휘날린다.
잘게 부서진 뼈가 흩어진다.
이미 오래전에 숨이 끊어졌지만, 피가 흐르지 않는 채로 움직이던 과거의 망령이 비명을 터뜨렸다.
“유엘……! 무슨 짓을 하는거냐!”
“…….”
나약한 채로 움직이던 육체가 서서히 붕괴되어간다.
창백하게 핏기가 빠진 피부가 녹슬고, 억지로 육체를 움직이던 뼈대는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그의 주변에 뭉쳐있던 방대한 마력도 응집력을 잃고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
재가 되어가는 마지막 시간속에서 악에 젖은 브루노의 시선이 유엘에게로 향했다.
그는 자신이 죽어간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악귀와도 같은 얼굴로 과거의 망령이 유엘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유엘———!!”
단말마를 내지르는 망령의 목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유엘은 자신의 검을 들고 앞으로 나아갔다.
이미 망가질대로 망가진 육체는 그녀가 다가서기까지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못했다.
순환하는 폭풍속에서 썩은 몸뚱아리는 재가 되어 흩어져갈 뿐이다.
터벅. 터벅.
유엘의 느릿한 발걸음이 브루노의 앞에서 멈춰섰다.
브루노를 마주한 그녀의 눈에 온갖 착잡한 감정이 스쳐지나갔다.
그러나 자신을 완성한 검성은 이내 스스로의 마음까지 베어내었다.
일생일대의 숙적을 앞에 둔 유엘의 검이 그의 머리 위를 향해 올라갔다.
“이제 그만 사라져.”
수천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지금, 이 자리에——
폭풍을 휘두르는 검성이 재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