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잘생겼는데요?”
허우대만 멀쩡한 금발 엘프 놈이 말했다.
“아, 물론 저보단 못 합니다만.”
“…….”
고심 끝에 고용한 알바생이 하필이면 저런 나르시시즘 환자라니.
당장이라도 이쪽이 너보다 배는 더 낫다고 핀잔을 주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럴 여력조차 되지 못했다.
“아씨, 조그만 게 왜 이렇게 무거워?”
내 등에는 검은 머리 소년이 업혀 있었다.
나보다 한 뼘 정도 작은 체구긴 했지만 연약한 레티시아의 몸으로 이고 가기엔 역시 버거웠다.
“거기서 입만 털지 말고 좀 도와주지 않겠어, 로체?”
“죄송해요. 손에 피를 묻히는 건 아무래도 좀…….”
“야.”
“알잖아요. 엘프 피부는 민감하다고요.”
징글징글하다, 저 개소리.
‘엘프 피부는 민감하거든요.’
저놈은 툭하면 제 피부를 핑계로 궂은일을 마다했다. 카페에 취직해 놓고 설거지도 안 하는 알바생이 어디 있어?
“너 진짜 해고할 거야.”
“그렇게 해 보시죠. 절 보러 오는 여성분들이 몇 명인데.”
“…….”
로체의 반반한 낯짝 때문에 매출이 훌쩍 뛴 것도 사실.
난 결국 혼자 힘으로 소년을 카페 안 간이 소파까지 옮겼다. 옮기고 나니 내 쪽이 환자라도 된 양 숨이 가빠 왔다.
아, 이 빌어먹을 몸뚱이.
본래 단명할 운명이었던 인물답게 레티시아는 정말 끔찍하게 몸이 약했다. 아니, 약하단 말로는 부족하다.
그야말로 톡 치면 와르르 무너질 것 같은 날림 공사의 참상 그 자체.
‘엑스트라 이름 막 짓는 건 참아 주겠는데, 몸뚱이까지 막 지어 놓으면 어떡하냐고.’
한숨을 푹 내쉬고 말했다.
“로체, 찬장의 구급상자 좀 가져다줘.”
“여기요.”
로체가 기다렸다는 듯 붕대와 약솜을 내밀었다. 하여간 눈치 하나는 기가 막히게 빠르다니깐.
“너 진짜 짜증 나는 스타일이야.”
“제가요? 그럴 리가.”
“일을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고 있다는 게 딱 보이잖아.”
“하하. 제가 못하는 일은 없죠, 레아 양.”
“사장님.”
“레아 양.”
“……되바라졌어.”
“나이는 제가 더 많습니다만?”
그래서 어쩌라구. 계급장 떼고 붙자는 거야, 뭐야.
“언제부터 나잇값하고 살았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다시 환자의 상태를 살폈다.
“피가 많이 났는데. 의사를 불러와야 하나?”
“이 마을에 제대로 된 의사가 있었나요?”
“음.”
작은 마을이다. 로체를 보러 오는 얼빠 기질 다분한 고객들을 제외하면 실상 동네 손님은 몇 되지도 않는 깡촌 중의 깡촌.
시가로 나가면 물론 멀쩡한 의사가 있겠지. 하지만 지금 당장에 그럴 여유는 없어 보였다.
출장을 부탁하기에도 시간이 너무 늦었다.
야심한 시각에 이 골짜기까지 출장을 와 줄 의사가 과연 몇이나 될까? 그것도 춥고 삭막한 북부의 눈발을 뚫고서.
“일단 우리끼리 할 수 있는 치료는 다 해보자. 내일까지 안 일어나면 의사한테 가보고.”
“좋은 생각이에요, 레아 양.”
“그렇지? 자, 너는 밖에서 물수건 좀 가져다…… 야, 너 어디 가냐?”
그새를 틈타 휴게실로 도망가려는 양아치의 덜미를 확 잡아챘다.
그가 머쓱하게 웃으며 뒷덜미를 쓰다듬었다.
“이제 곧 취침 시간이라서요.”
“…….”
“10분이라도 덜 자면 다음 날 피부가 푸석푸석해지거든요. 미안해요, 레아 양.”
저거 진짜 짜증 나네.
난 매정하게 떠나버리는 놈의 뒷모습을 보며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내가 미쳤었나? 대체 저걸 왜 고용한 거지?’
아마 미쳤던 게 맞을 거다.
내 검은 고양이 군이 떠난 직후, 난 극심한 외로움에 시달렸다.
그때 며칠 전 면접을 보러 온 이상한 남자 하나가 떠올랐다.
‘알바 면접 보러 왔습니다.’
‘알바 안 구하는데요.’
‘알아요. 하지만 제 얼굴을 보셨으니 이제 구하시겠죠?’
‘아뇨. 안 구하는데요.’
주변에 얼마나 사람이 없었으면 그런 놈이 다 생각이 났을까? 지금 돌이켜보면 엄청난 실책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 당시 난 정말 많이 외로웠으니까.
‘검은 머리…….’
소년의 흑발에 무심코 손을 댔다. 물 흐르듯 스르륵 빠져나가는 머리카락이 내 고양이의 털처럼 부드러웠다.
“아차차! 이럴 때가 아니지.”
얼른 상처 난 곳에 지혈을 하고, 약을 바른 뒤 진통제를 먹였다.
당장에 할 수 있는 건 모두 끝낸 뒤에 담요를 있는 대로 끌고 와 겹겹이 덮어 주었다.
‘환자를 홀로 두는 건 조금 그렇겠지?’
그날 밤, 나는 이름 모를 소년의 옆에 앉아 하루를 지새웠다.
그러다 그만 동틀 녘에 까무룩 잠이 들어 버렸다.
이내 다시 눈을 떴을 때.
“…….”
평범한 아침이었다.
나는 소파 앞에 쭈그려 앉아 있었고, 소년은 여전히 깨어나지 않았다.
유리창으로 쏟아지는 햇살은 눈부셨으며 겨울 날씨는 서늘했다.
다만…….
사르륵.
내 어깨 위에 올라가 있던 담요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대체 누가?
잠깐 고개를 갸웃거리다 이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로체가 웬일이야, 내 걱정을 다 해주고.”
나는 소년의 고른 숨소리를 들으며 다시 쪽잠에 빠져들었다. 아침잠이 많다 보니 비몽사몽하다가 도로 잠드는 건 흔한 일이었다.
그래서 미처 깨닫지 못했다.
소년의 가슴 위에 올려놓은 담요의 절반 이상이 내 몸을 휘휘 감싸고 있었단 사실을.
* * *
“이, 이봐요? 살아 있죠?”
단잠에서 깨자마자 내 눈에 들어 온 것은 피가 흥건한 소년의 복부였다.
상처가 예상보다 더 심각했다.
“로체, 의사 좀 불러 줘.”
“분부대로.”
잠시 후, 의사 요안나 양이 카페 유리문을 쾅쾅 두드렸다.
요안나 기벗. 그녀는 종족의 다양성을 중시하는 이곳 북부에서도 흔치 않은 드워프 의사였다.
문손잡이에 키가 닿지 않아서 애쓰다 포기하고 노크하는 요안나 양을 로체가 뒤에서 구경하고 있었다.
‘우리 알바생 인성 레전드네.’
근데 드워프들이 손잡이 당겨 보겠다고 팔 뻗고 낑낑거리는 거, 사실 꽤 귀엽긴 해.
난 무람없는 속마음을 숨긴 채 예의 있게 다가갔다.
“오랜만이에요, 요안나 양.”
“레아 양, 내가 드워프 단골 만들고 싶으면 아래에 문고리 하나 더 달라고 얘기했었죠?”
“으음, 요즘 일이 바빠서 말이죠.”
열없이 웃으며 문을 열어 주자 요안나 양이 도도하게 콧방귀를 뀌며 엉덩이를 씰룩쌜룩 움직였다.
“하여간 소수 종족 생각은 눈곱만치도 안 한다니까.”
나름의 분노를 표현하고는 계시는데 위압감이 개미 코딱지만큼도 없는지라 도리어 웃음이 삐져나올 것 같았다.
음, 하지만 이런 말을 대놓고 한다면 종족 차별로 신고당하겠지. 잠자코 닥치고 있자.
“환자는 안에 있나요?”
“네, 방금 침실로 옮겼어요.”
“잘생겼다죠?”
“네?”
“로체 군이 그러던데. 자기 다음으로 봐줄 만하다고. 그럼 뭐 눈부시게 잘생겼다는 거지.”
난 머쓱하게 대꾸했다.
“아직 어린애예요.”
요안나 양이 목을 빼고 내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남들이 어깨를 잡듯이 내 허리춤을 꼭 붙잡고 단호하게 말했다.
“레아 양, 잘생김을 판가름하는 데 연령은 중요하지 않아요.
“…….”
그거 대충 듣기에도 상당히 지성적이지 못한 발언인 것 같은데요.
“아무튼 안으로 들어가죠. 한시가 급하니까요.”
요안나 양이 그리 말하며 잰걸음으로 나를 지나쳤다.
워낙에 얼빠 기질이 다분한 양반이다 보니 환자를 보려고 걸음을 서두르는 건지, 미소년을 보려고 서두르는 건지 그 진의가 불분명했다.
어쨌든 그녀는 방문 앞에서 발을 멈추고 다시 날 기다려야 했다.
“보조 문고리! 보조 문고리!”
드워프의 토실토실한 얼굴이 불만으로 뾰로통해졌다.
난 머쓱하게 뒷머리를 긁으며 허허 웃고는 문을 열어 주었다.
“여긴가요? 미남이 있는 곳이?”
“네, 여기예요. 환자가 있는 곳이.”
“들어가죠.”
요안나 양이 안으로 들어가고, 나도 뒤따라 걸음을 옮겼다.
“오.”
그녀가 짧은 감탄사와 함께 전 연령 로판에서 얄짤 없이 검열될 만한 헛소리를 지껄였다.
요안나 양은 뒤뚱거리는 걸음으로 침대맡에 가 앉았다.
“출혈이 심한데? 어쩌다 난 상처래요?”
“그건 저도 모르죠. 어제 주워 왔으니까요.”
“이빨 자국이 선명한 게…… 아.”
요안나 양이 침음했다.
“레아 양, 이건 내가 치료할 수 없는 상처예요.”
“어, 그 정도로 심한가요?”
“심하기도 심한데 그보다…….”
요안나 양이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거, 마물에게 당한 거네요.”
“예?”
북부에 마물이라니요?
“알다시피 마물은 성력에 환장하죠. 아마 이 잘생긴 소년이 가진 성력이 제법 먹음직스러웠나 봐요.”
“그,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예상보다 심각한 전개에 당황한 내게 요안나 양이 말했다.
“방법은 하나예요. 성력이 강한 자에게 신성 치료를 받아서 독성을 정화하는 것.”
난 고심했다. 신성 치료를 받으려면 신관을 찾아가야 한다. 문제는 여기가 북부라는 거지.
북부. 카히텐 대공령을 중심으로 한 헬리아스 제국의 국경 지대.
제국에는 속해 있되 결코 허울로라도 황가에 복종하지는 않는 자들이었다.
그들에겐 태양신의 후예라는 헬리아스 황가는 물론이요, 대륙 전역에 국교처럼 퍼진 아르키드네 신전 또한 알 바가 아니었다.
이 때문에 북부는 타 종족에게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제국과 달리 개방적이고 적극적인 이민족 수용 정책을 펼치며 종족적 화합의 장이 되었다.
하나 제국이나 신전과 척을 진 탓에 종교적으로는 그 어느 곳보다 제일 낙후된 지역이었다.
‘신전은커녕 작은 수도원이나 사원조차 없을 텐데.’
그렇다고 아픈 인간을 데리고 품을 팔러 나설 수도 없는 노릇.
“요안나 양이 치료해 주실 수는 없다는 거죠?”
“예. 드워프는 예부터 대대로 북부의 터주 신을 모시고 있어서요. 안타깝게도 그분은 이미 오래전에 소멸하셔서 저희에게 성력을 물려주시지 못한답니다.”
북부의 터주신이라 하면, 카히텐 대공령이 카히텐 왕국일 시절에 왕실에서 섬겼다는 전쟁의 신이겠지.
황가가 자신들이 섬기는 태양신 헬리아스의 이름을 제국과 황실의 명부에 박았듯이 이곳 전쟁의 신의 이름 또한 카히텐이었다.
드워프는 카히텐의 종자들이다.
인간은 사멸한 신을 버렸으나 종자인 드워프들은 그러하지 못했다.
설사 성력도 받지 못한 채 인간에게 치이며 척박한 북부에 고립되는 한이 있더라도.
자신의 신에게 무한한 충성을 바치기 위해 태어난 자들. 종자란 그런 존재였으니까.
“레아 양.”
우리 얘기를 잠자코 듣던 로체가 다가왔다.
“제가 엘프인데 뭘 고민하시죠?”
“아!”
엘프에게는 마력이 있다. 성력과 궤는 다르지만, 자연으로부터 근원한 힘이기에 신성 치료와 흡사한 효과를 볼 수 있었다.
“그런데 괜찮겠어? 엘프는 사람을 돕지 않잖아.”
이들 종족은 대대로 지독한 방관주의자였다. 원작에서 세상이 멸망하기 직전까지 숲속에서 쎄쎄쎄나 하고 있었을 정도로.
“엘프라고 다 같나요? 종족으로 일반화하는 것도 차별입니다.”
“…….”
그럼 뭐 일단 방도가 없으니.
“부탁해.”
로체가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내밀었다.
“100리스 선불입니다.”
……일반화 아닌 것 같은데.
여주의 아버지가 독신을 선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