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여주의 아버지가 독신을 선언했다-40화 (40/140)

40화

수십 분 전.

이안의 집무실에서는 제스의 보고가 이어졌다.

체이트의 행적과 관련된 보고였다.

그 남자라면 남부로 간다는 말만 해놓고 예상 밖의 행동을 할지도 모르니, 행적을 확인해야 안심이 될 것 같았다.

“대주교가 진짜 남부로 간 건 맞는 듯싶습니다. 실제로 아르키드네 신전으로부터 체이트 폴린의 성명으로 된 서류가 도착했습니다.”

“약속은 지키겠다는 거군. 그뿐인가?”

오히려 순순하게 다 해 주는 게 더 수상하게 느껴졌다.

“그 외엔 딱히…… 아.”

제스가 뭔가 생각난 투로 말했다.

“그러고 보니 남부로 도착하고 며칠 안 돼서 아르키드네 부속 신전에 출입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부속 신전?”

남부는 아르키드네 대신전이 있는 만큼 여기저기에 사원과 신전이 즐비했다.

하지만 본인 할 일도 팽개치고 살았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성실하고 독실한 신자가 되어 신앙에 열과 성을 다할 리는 없고.

“뭔가 다른 목적이 있어서 간 거겠군.”

“예. 제가 생각해도 그렇습니다.”

“그 신전이 어디 지부지?”

“안타카스입니다.”

“뭐……?”

그쪽 주교는 아르키드네 대주교와 대놓고 반목하는 중이었다. 수많은 신전을 두고 왜 갑자기 환영받지 못할 곳까지 행차하신 걸까.

“제 추측입니다만…… 지난번 브링스턴 영애의 집이 불탄 건과 관련이 있지 않을지…….”

제스가 조심스럽게 의견을 피력했다.

“그때 그 화재 말인가.”

“예. 전하께서도 아시겠지만 그건 일반적인 재해가 아니었습니다. 지붕 한편이 큰 충격을 받고 바닥까지 우그러졌죠. 누가 봐도 외부의 공격이 있었던 겁니다.”

“그래.”

자신과 무관했기에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높은 확률로 체이트 폴린을 노린 공격이었을 테니까.

“그…… 시기나 방식이 조금 이상하지 않았습니까?”

제스의 발언은 한층 더 조심스러워졌다.

이안이 자세히 말해보라며 턱을 까닥였다.

“그러니까, 대주교를 암살하는 건 분명 엄청난 동력이 필요하겠지만 말이죠. 그보다 은밀하게 할 수 있는 방법도 많았다고 봅니다. 독살 시도라든가, 수면 중 불시 습격이라든가.”

“화재는 너무 요란하다는 거군.”

“예. 그건 뭐랄까, 마치…….”

제스가 한참을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마치, 그 장소 자체를 파괴하려는 시도로 보였습니다.”

“…….”

그곳은 평범한 가정집을 개조한 카페였다. 유다른 점은 하나도 없는, 아주 지극히 평범한 카페.

그 안에 비밀리에 처리해야 할 물건이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터 자체가 뭔가가 있을 가망성도 낮다. 그 집은 체이트나 레티시아의 소유가 아니라, 그곳에서 몇 대째 살아온 토박이의 소유였으니까.

“그래서 제가 생각을 해 봤는데 말이죠.”

제스의 표정이 비장해졌다.

“생각한 게 뭐지?”

제스가 침을 꿀꺽 삼키고 대답했다.

“범인이 관심받는 걸 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 아니었을까요?”

“음…….”

이안은 느릿하게 고개를 주억거리고는, 문가를 향해 천천히 손가락을 뻗었다.

“나가.”

“죄송합니다.”

제스가 꾸벅 머리를 숙이고 이야기를 원점으로 되돌렸다.

“당시의 화재는 결국 신전의 적대 세력과 연관된 사건이 아닐까요?”

“아니, 그랬다면 범인이 특정되지 않은 이상 체이트 폴린이 자신을 적대하는 신전에 출입하지 않았겠지. 그럴 가능성은 희박해.”

“하면……?”

“신전 놈들이 아니거나, 최소한 안타카스 주교는 아니라는 뜻이다.”

이안의 눈이 번뜩였다.

사실 신전 내의 싸움은 북부와 거리상으로나 권력 구조상으로나 직접적인 교집합이 거의 없었다. 만일 이 모든 게 신전의 소행이라면, 이안이 구태여 관심을 가질 가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신전의 소행이 아니라면?

“제스, 이 제국의 권력은 정확히 삼분할 돼 있어. 하지만 신전도, 우리도 그를 공격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범인은 누구일까?”

북부, 수도, 그리고 남부.

고대부터 분할 통치를 이어 온 제국은 이제 서로가 군사, 행정, 신권의 개념으로 가지를 달리하여 새로운 연계 통치 구조를 따르고 있었다.

하지만 지역적으로 구분이 확실한 만큼 서로의 견제는 꾸준했다.

제스가 알겠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수도……, 황궁이겠군요.”

“그래. 황실이 새로운 대주교를 상당히 견제하고 있나 보군. 아마 그와 정치적 이견이 맞지 않거나, 그보다 내밀한 모종의 이유가 있는 거겠지.”

헬리아스 황실은 외적으로 볼 때 아르키드네 신전과 유대 관계가 끈끈한 편이었다.

대놓고 자신들 이외의 나머지 영역을 몽땅 배척하는 북부 카히텐과는 다르게, 수도와 남부는 종교의 자유와 행정의 권리 이양을 통해 서로의 권력을 강화해 갔다.

하지만 파이가 달라지면 어떻게든 내분이 생기는 법.

“신전과 황궁이 머잖아 이혼할지도 모르겠군.”

이안으로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만일 정말로 그리되면, 저희는 둘 중 누구의 편을 들어야 할까요?”

“…….”

이안은 잠시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우린 누구의 편도 들지 않아.”

그의 입가에 날카로운 미소가 올라왔다.

“서로 뜯어먹을 시간을 줘야지.”

적의 시체가 흘러 내려올 때까지, 이안은 침묵할 작정이었다.

“영민하십니다.”

제스가 경의를 표했다.

“레티시아와 체이트 폴린의 관계에 대해선 알아봤나?”

“예. 하지만…… 별다른 건 없었습니다. 아르키드네 대주교가 언젠가부터 브링스턴 영애와 함께 있었다는 말을 제외하고는 딱히.”

“언젠가부터 함께 있었다? 어떠한 계기도 없이?”

“예. 마을 사람들의 말로는 그냥 어느 날부터 그가 영애의 집에서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때는 남매인 척 위장하고 지냈던 것 같습니다.”

“남매…….”

이안이 피식거렸다.

“그 작자, 속깨나 썩었겠군.”

물론 지금도 그렇겠지. 그 여자는 이제 제 것이니까. 전리품을 쟁취한 듯, 이안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는 이내 다시 진중해졌다.

“계기를 아는 사람이 단 하나도 없다는 게 이상하군.”

“아무래도 워낙에 가구 수가 적은 마을이라 외진 카페에서 벌어지는 일을 시시각각 목격한 사람은 찾지 못했습니다.”

“그저 우연이었다, 이건 좀 이상하지.”

체이트 폴린의 성력은 아르키드네로부터 기원했다. 그건 같은 입장인 이안이 보증할 수 있었다.

방대한 아르키드네의 성력을 가진 사람이, 북부에서 나고 자라서 대주교가 될 가능성이 얼마나 되지?

자신처럼 계획적으로 만들어진 존재가 아닌 이상은 불가능에 가까운 우연이었다.

불가능에 가까운 우연.

그런 걸 우연이라고 퉁칠 수 있을까?

분명 뭔가가 있을 것이다.

8년 전에, 무슨 사건이 일어났을 터였다.

그의 촉이 날렵하게 곤두섰다.

“그 엘프에게서도 사실 확인을 모두 끝냈나?”

“엘프라면 브링스턴 영애의 집에서 숙식하던 청년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외형이 청년일 뿐, 그 정도 마력이면 100살은 족히 넘었다.”

북부는 기술적인 처리가 필요한 일들을 성력에 의존하지 않고 해결해야 하기에, 엘프와 같이 마력을 사용할 줄 아는 이종족의 이민을 수용하고 있었다.

그들 대부분이 마력을 이용한 업종에 종사한다. 시골에서 카페 일을 하는 엘프는 그자가 최초였다.

“일단 그자도 찾아는 봤습니다만.”

제스가 고개를 내저었다.

“이미 마을을 떠난 후더군요. 어디에서도 흔적을 찾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엘프가 사라졌다?”

레티시아가 이곳으로 오고 체이트 폴린이 남부로 돌아간 시점에 연기처럼 자취를 감췄다니.

수상하다.

“그자의 거취도 심층적으로 알아봐.”

“알겠습니다.”

그 엘프는 시기상으로 체이트 폴린보다 먼저 레티시아의 카페에 머물렀다.

그라면 분명 레티시아가 체이트 폴린을 만난 시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걸 알게 된다면 체이트 폴린이 대체 어디서 나온 작자인지도 파악할 수 있겠지.’

이안은 단서가 모호한 인물과 대립하는 걸 즐기지 않았다. 그러니 그에 대해 결단을 내리려면 우선 정보가 필요했다.

“그 외에 그자가 남긴 단서는 없나?”

“…….”

제스의 손이 한순간 멈칫거렸다.

“……없습니다.”

“그래?”

이안이 눈썹을 치켜올리며 제스를 바라보았다. 쿵쾅쿵쾅. 제스의 심장이 요란하게 방망이질 치기 시작했다.

눈을 피하면 안 된다. 의심받으면 끝장이다. 제스는 이를 악물고 이안을 마주 보았다.

1분이 오백 년처럼 느껴졌다.

마침내 이안이 시선을 거뒀다.

휴우.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쉰 제스가 말했다.

“그럼 체이트 폴린에 대한 건은 제가 나중에 다시…….”

“잠시만.”

“네?”

이안이 제스의 말을 멈추게 하고 문을 노려보았다.

‘인기척이 느껴지는군.’

레티시아거나 자신의 계모일 것이다. 전자라면 그의 이름이 길게 나와 좋을 게 없었다.

잠시 침묵한 그는 인기척이 사라진 후에야 입을 열었다.

“알았으니 이쯤하고 돌아가.”

“예? 예에, 알겠습니다.”

제스가 안심하고 돌아서려는 순간.

“잠깐만.”

이안이 그를 도로 불러세웠다.

“왜, 왜 그러십니까, 전하?”

“레티시아 브링스턴이 사라진 게 십 년 전 정확히 언제쯤이었지?”

제스의 눈이 가느다래졌다.

이 사람, 본인이 결혼할 뻔한 시기도 기억하지 못하는 건가.

이건 명백히 고의적인 망각이었다.

“3월 마지막 날입니다, 전하.”

“3월…….”

날짜를 곱씹던 이안이 밖으로 손짓했다.

“그렇군. 그 시기 또한 맞아떨어지나…….”

그날은 이안이 자신의 병에 대해 알고 있다고 주장하는 상대에게서 전갈을 받은 날이었다.

그로부터 보름쯤 후에 이안은 북부 넴페르 산맥 쪽에서 그자와 접선했다.

그 과정에서 또 레티시아 브링스턴을 마주쳤고.

‘우연이…… 심하게 많군.’

평범하기 짝이 없는 여자, 레티시아 브링스턴.

그녀 주위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평범하지 않았다.

여주의 아버지가 독신을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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