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화
나는 요즘 고양이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알아가는 중이다.
“키우기 힘들구나.”
기차역에서 업어온 황치즈색 고양이, 마카롱을 보면서 매분 매초 그런 생각을 한다.
“난 고양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던 거였어.”
진짜 고양이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다.
혼자 잘 노는구나, 하고 내버려 두면 벽을 작살내 놓고, 얌전히 자는 줄 알고 잠깐 딴짓하면 창문 틈새로 탈출하고.
‘대체 반 뼘도 안 되는 틈을 어떻게 비집고 나갔지. 포유류가 아니라 연체동물인가.’
애써 고급 방석을 침대로 만들어 줬더니, 요리사가 식자재를 옮기고 내버려 둔 상자에 들어가 있기도 했다.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애가 말썽을 피우니 나는 집주인에게 심히 미안해졌다.
“죄송합니다아아아…….”
내 사과는 대체로 제스가 들었다. 모든 뒤처리를 제스가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가뜩이나 격무로 힘든데 나 때문에 정말 고생이 많다. 마음 같아서는 엎드려 절이라도 하고 싶다.
제스는 넋이 빠진 표정으로 대답했다.
“괜찮습니다아아아…….”
나는 나대로, 저쪽은 저쪽대로 기운이 빠진 모양이었다.
‘고양이 육아도 쉬운 게 아니구나.’
“이대로는 안 돼.”
고양이도 교육이 필요하다.
나는 지난날의 경험을 되살려 마카롱을 교육하기로 했다.
얘는 말을 못 알아들으니까 동물 테라피 개념으로 접근해야겠지.
‘일단은 가장 문제가 큰 벽 긁는 것부터 어떻게 좀 해보자.’
“스크래처를 만들어 주면 어떨까.”
내 제안에 케이시 양이 까슬까슬한 나무를 휴지 심처럼 다듬어 세우고 바닥에 고정해서 꽤 그럴듯한 스크래처를 만들어주었다.
“케이시 양, 완전 금손이다.”
“호호, 이 정도야.”
우리는 스크래처를 마카롱이 자주 다니는 길목에 놓고 반응을 주시했다.
‘긁어라, 긁어!’
긁었다.
스크래처 옆에 있는 벽을.
“대체 왜!”
혹시 모양이 마음에 안 드나 싶어서 캣 타워 모양으로도 제작해보고 휠 모양으로도 만들어 봤다.
마카롱은 벽을 제일 좋아했다.
“……그냥 긁기 좋은 방을 만들까요?”
“그거 좋은 생각이야.”
긁혀도 아깝지 않은 방에 마카롱의 화장실을 마련해 주고 나서야, 우리는 이 스트레스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었다.
“애오옹.”
마카롱의 울음소리가 얄밉게 들렸다. 쟤 나한테 꾹꾹이도 안 해줬어. 밥도 매일 내가 주는데. 체이트는 가만히 있어도 맨날 해 줬는데, 씨.
갑자기 체이트가 격하게 보고 싶어졌다.
물론 그 애, 자기랑 고양이를 비교한 걸 알면 기가 막혀 할 게 분명하지만.
“앞으로 입양은 신중해야겠어.”
“그러게요…….”
나와 함께 마카롱의 귀여움에 껌뻑 속아 넘어간 케이시 양이 허탈한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귀엽죠……?”
“그래도 귀엽지…….”
나는 아침에 준 실 뭉치를 세 시간 동안 가지고 뒹구는 마카롱을 감상했다.
이리저리 뒤채고 가끔 실 뭉치랑 같이 공처럼 데구르르 굴러가는 게 심장 아프게 귀엽다.
“저거 얼마나 갈까요?”
“하루 본다.”
내일이면 또 질려서 딴 장난감을 찾을 텐데, 이젠 뭘 쥐여 줘야 하지.
그리고 다음 날, 우리가 고양이 육아에 대해 논할 겨를은 없어졌다.
브링스턴 후작가에서 예상치 못한 소식이 들려온 탓이었다.
* * *
“예식을 미루자고 했다고요?”
브링스턴 후작이?
내가 알고 레티시아가 기억하는 그 브링스턴 후작이?
그 인간이 그럴 사람이 아닌데.
“그래. 힘들게 찾은 여식의 얼굴을 보기도 전에 바로 다른 집안에 보내고 싶지 않다며, 당분간 본인들이 거두겠다더군.”
“……그래요?”
아닌데. 그런 인간 아니었는데.
내 기억이, 아니지. 레티시아의 기억이 잘못되었나?
기억 속의 브링스턴 후작은 겉으로는 가정적인 아버지인 척하면서 속으로는 자식을 권력의 수단이자 도구로 보는 남자였다.
앙칼진 동생에 비해 성격이 순한 원래 레티시아는 일방적인 폭력 탓에 마음고생이 꽤 심했었지.
그녀의 유년 기억은 내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물리적 폭력은 없었지만 매번 동생과 비교당하고, 세뇌에 가깝게 희생을 강요당하는 삶이었지. 깊게 떠올리지 않아도 그다지 유쾌한 기억은 아니었다.
“레티시아.”
“네?”
“당신은 어때.”
옛 생각에 잠겨 멍해진 내게 이안이 물었다.
“돌아가고 싶어?”
“음…….”
제게 그렇게 물으셔도 본인이 아닌지라…….
델린 영지라면 당연히 언제든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브링스턴 가문은 아니었다.
그들은 내게 가족이 아니다. 심지어 레티시아에게도, 그들은 좋은 가족이 아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게는 아직 이곳에서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다.
‘맞아. 나 사술에 대해 알아봐야 하는데.’
요즘 딴짓에 너무 공들인 것 같다. 솔직히 결혼하면 쭉 같이 살 테고, 내가 원작을 따라가지 않는 이상 시간은 넉넉할 줄 알았다.
‘이런 식의 돌발 상황도 벌어지는군. 이젠 딴청 피우지 말고 집중해야겠어.’
나는 고민 끝에 고개를 내저었다.
“아뇨. 전 여기 있고 싶어요.”
이안은 놀랍지 않다는 표정이었다.
“물론 당신은 그렇겠지. 나와의 혼인을 고대하고 있었으니.”
“…….”
아니, 세상에.
“아직도 저런 생각을…….”
내 마음을 제스가 대변해 주었다. 저쪽도 무심코 흘러나온 마음의 소리인 듯했다.
이안은 제스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내게 말했다.
“당신이 여기 있고 싶다면 서신을 보내두지.”
“어, 정말요? 그거면 돼요?”
“달리 뭐가 필요하지?”
“그게, 저…… 일단은 브링스턴 가문이 당신에게 무례한 소릴 한 거잖아요. 기분 나빠 하실 줄 알았는데.”
“브링스턴 후작의 이야기는 타당해. 잃어버렸다 도로 찾은 딸과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데 대놓고 비난할 사람은 없지. 오히려 지금까지 북부로 날아오지 않고 버티고 있는 게 이상한 거고.”
“…….”
“다만 나는 브링스턴 후작보다 앞서 당신에게 선택권을 주려고 했을 뿐이야. 당신이 원하지 않는다면 돌아가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그렇구나. 이건 계산을 떠나서 순전히 나를 위한 배려였다.
난 이안에게 한 걸음 다가가 턱을 들고 그와 눈을 맞췄다.
“고마워요.”
진심을 담은 감사 인사였다.
“천만에.”
이안이 대답했다. 대체로 그랬듯이 무표정이었다.
“영애, 어쩌다 일이 밀려 버렸네요.”
제스가 아쉽다는 듯이 말했다. 그런데 저 눈에서 기쁨이 보이는 것 같은 느낌은 뭘까.
‘내가 결혼이 밀린 게 제스한테 좋은 일인가? ……왜?’
* * *
레티시아를 내보내고 이안은 의자에 몸을 기댔다.
허탈한 감정이 밀려왔다.
제스가 그런 그에게 다가와 말했다.
“아무래도 브링스턴 후작은 헬리아스 황가와 저희 사이에서 간을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레티시아의 여동생이 이번에 헬리아스 황제의 후처로 낙점되었다.
순서가 반대였다면 몰라도, 황가의 혼인과 시기가 맞물린 이상 기존의 약혼을 그대로 이행하는 건 정치적 줄타기로 보일 공산이 높았다.
‘실제로도 그러하고.’
“저희가 내건 조건을 철회하지 않는 이상, 혼인은 계속 잠정 유보하거나 파혼 통보를 내리지 않을까요.”
분명 그럴 가능성도 있다. 아니, 그럴 것이다.
이안이 조소했다.
“내게 무가치한 혼맥을 맺으라는 거로군. 손해를 보고서 말이야.”
브링스턴 후작의 의도가 그렇다면 순순히 응해줄 수는 없었다. 귀족 간 혼인의 목적은 각자 득을 취하는 데 있으니.
“어느 정도 시일 내로 연락이 없으면…… 저희 쪽에서 먼저 파혼을 제안할까요?”
“…….”
이안이 침묵했다.
그편이 현실적으로 낫다. 현재 레티시아는 혼인 상대로서 그렇게 가치가 높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조금만 더 기다려 보지.”
이안은 보류했다.
‘파혼.’
왠지 제가 먼저 그 단어를 꺼내고 싶은 마음이, 티끌만큼도 들지 않았다.
* * *
나는 이제부터 정신을 바짝 차리고 미래를 위한 일에 매진하기로 했다.
이번에야말로 타임 어택이 될지도 모르니까.
‘당장 사술을 풀 방법을 알 방도는 보이지 않으니, 이안의 결핍을 채워서 눈에 보이는 원인을 소거해 가는 편이 나을 것 같은데.’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역시 그 병이었다.
마차에서 심장을 움켜쥐던 이안을 떠올렸다.
끔찍한 고통을 겪고 있었다.
만약 그의 병을 치료할 방도가 있고, 그 단서를 원작에서 찾을 수 있다면.
나는 굳이 혼인이 아니더라도, 그의 신뢰를 얻고 상황을 지켜볼 수 있는 자리에 있을 수 있다.
‘차라리 잘된 일일지도 몰라.’
아내가 아니라 친구가 될 수도 있지 않은가.
친구. 곁에서 영향을 끼칠 수 있되, 예정된 죽음의 위험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될 수 있는 사이였다.
‘그럼 우선 병을 치료할 방법을 찾아보자.’
이안의 병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원작을 기준으로 보자면 하나 의심 가는 것이 있었다.
‘작중 남자 주인공이 앓았던 병…….’
성력의 체내 충돌이었다.
여주의 아버지가 독신을 선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