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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의 아버지가 독신을 선언했다-67화 (67/140)

67화

15구역 점쟁이도 확인해 봤지만 허탕이었다. 귀부인들 사이에서 유명하다는 점쟁이 중 어느 하나 원작 정보상의 조건에 걸맞은 자는 없었다.

“대체 어디서 뭘 하고 다니는 거야, 그 돈에 미친 작자…….”

내가 혼잣말로 투덜거리자, 뒤에서 졸졸 따라만 다니던 로체가 뒷머리에 양손을 올리고 말했다.

“그런데 점이랑 레아 양이 찾으시는 여자가 무슨 관계가 있는지 모르겠네요. 혹시 여자가 있는 곳을 점쳐보시려는 건지?”

로체에게는 시간상 체이트에게 해 준 것만큼 자세한 설명을 전달해 주지 못했다. 본인이 딱히 궁금해하지도 않았고.

“뭐 하면 제가 대신 봐 드릴까요? 이래 봬도 타로 점은 꽤 잘 보는데.”

그가 헤실거리며 손을 내밀었다.

“100리스입니다.”

“…….”

“레아 양에겐 특별히 80리스로 해드릴 수도 있어요.”

“됐어.”

나는 돌계단 아래에 쭈그려 앉아 턱을 괴었다.

‘이번 생에선 점쟁이 노릇을 안 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아직 내가 모르는 다른 점집이 있나…….’

정보상을 찾지 못한다면 이제 또 어떤 방식으로 코렐리아를 찾아야 할까. 조금 막막해졌다.

“레티시아, 낙담하지 말아요. 제가 신성을 이용해 보겠습니다.”

침울해하고 있는 내게 체이트가 말했다.

“신성으로 그런 것도 할 수 있어?”

내 물음에 체이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신전에는 몇 세기에 걸쳐 쌓인 방대한 양의 자료가 있습니다. 그 자료를 수집하는 이들은 모두 능력 있는 영혼들이죠. 이 영혼들의 이야기를 전해 듣는 게 신성의 능력 중 하나입니다.”

“오오.”

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외쳤다.

“그거 대단하다! 돈 안 드는 정보통이잖아!”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성력이 들겠죠, 레아 양…….”

로체가 나를 개무식하다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체이트가 그의 얼굴을 손으로 가리고 말했다.

“성력이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 정도는 소모하는 양보다 쌓이는 속도가 더 빠르니 공으로 쓰는 거나 다름없거든요.”

“그, 그래?”

무료나 다름없다니. 나는 솔깃해졌다.

“그럼 한번 부탁해도 될까?”

“예, 기꺼이.”

그리 말하며 체이트가 내 귓가를 매만졌다.

“응? 왜 그래?”

“아뇨, 먼지가 묻어서요.”

“아아…….”

난 머쓱하게 그가 손댔던 귓바퀴를 매만졌다. 어쩐지 닿은 자리가 화끈거렸다.

“오늘은 공 쳤네.”

반나절을 돌아다니고 나니 어느새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어서 돌아가야겠다. 로체, 오늘은 고마웠어.”

로체가 내 말에 어깨를 으쓱거렸다. 밥값이라는 말이 진심이었는지, 이번에는 돈 더 달라는 소리를 하지 않았다.

“갈까?”

“네.”

체이트와 같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오랜만이었다.

문득 옛날 생각이 났다. 체이트가 어릴 땐 손을 꼭 잡고 시가를 돌아다니며 식료품을 사고 마무리로 외식도 하고 들어오곤 했는데.

“…….”

어느새 그의 손은 내 손을 고사리 손처럼 보이게 만들 만큼 커져 있었다.

체이트가 내 손을 잡아끌고 앞서 나갔다. 나는 그의 등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천천히 따라 걸었다.

* * *

체이트는 레티시아의 몸에서 떼어 낸 신성을 사방으로 퍼뜨렸다.

오랜 시간 그녀의 곁을 지키기 위해 붙여 둔 걸 떼어 냈다는 말은 즉, 다시는 그녀의 곁을 떠나지 않겠다는 다짐과 같았다.

그는 이제 항상 레티시아의 곁에 있어야 했다. 그녀가 예기치 못한 위험에 처할 일이 생길 듯했으니 더더욱.

“……곧이로군.”

신탁이 현실이 되는 날.

공표된 신탁의 내용은 ‘성녀의 탄생’을 암시하고 있었지만, 실제 내용은 조금 달랐다.

신탁은 ‘성녀의 각성’을 암시하고 있었다. 탄생도 아니고 각성이라니, 성력은 날 때부터 유전처럼 받는 것일진대.

성녀가 각성한다는 표현은 전무후무했다.

‘황제는 혹시 이런 예상 밖의 상황을 예측하고 있었던 건가.’

성녀의 각성은 선민의식 가득한 신전과 황실 입장에서는 근간이 흔들릴 수도 있는 문제였다.

타고나길 성력을 갖고 태어난 게 아니라, 평범했던 자가 가호를 받아 사제 이상의 성력을 얻을 수도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신탁대로 성녀가 각성하는 날, 제국에는 크고 작은 소요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었다.

그 순간에 체이트는 레티시아의 곁에 있어야 했다. 신탁이 실현될 때까지 단 한 순간도 레티시아의 곁을 떠날 수는 없다.

그는 곤히 잠든 레티시아를 돌아보며 다시금 다짐했다.

* * *

브링스턴 후작은 제 집안의 골칫덩어리를 어찌 치워야 할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었다.

제 딸에게 호감이 있는 남자를 소개해 줬더니 무례한 언동으로 불쾌감을 주질 않나, 무도회를 나가서 멍청한 호구 하나라도 잡아 오라니까 게임 마스터가 되어 돌아오지를 않나.

도저히 이 아이를 쓸 만하게 만들 방도가 보이질 않았다.

브링스턴 후작이 시름에 잠겨 있자 옆에 있던 그의 둘째 딸, 셀레나가 마시던 찻잔을 내려놓았다.

“언니가 그렇게 걱정되시면 이번 사냥 대회에 함께 가시는 건 어때요?”

“사냥 대회?”

“네. 아버지께서 클럽 분들이랑 주기적으로 여시는 거요. 곧이잖아요. 거기엔 사냥에 관심이 많은 젊은 귀족 영식들도 여럿 참여한다지요?”

브링스턴 후작이 고민했다.

“흠……. 확실히 괜찮은 생각이구나. 무도회만큼 격식을 따지지 않으니 그 아이의 자유분방함을 매력으로 여길 남자가 하나쯤은 있을지도 모르지.”

그가 셀레나를 칭찬했다.

“역시 훌륭하다. 네 언니를 위해 이렇게까지 생각하다니, 누굴 닮아서 마음 씀씀이가 이리도 깊은지.”

셀레나가 싱긋 웃었다.

“다 아버지 덕분이죠.”

* * *

셀레나는 더 이상 레티시아의 신랑감을 고르는 일에 관심이 없었다. 아니, 그녀가 운 좋게 괜찮은 신랑감을 얻게 된다면 오히려 뒷목을 잡고 넘어갈지도 모른다.

그녀는 레티시아가 미웠다. 그녀에게 수치를 안겨주고 싶었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가족이라는 마지막 양심이 있긴 했다.

바로 어제까지는 말이다.

어제, 황제와 티타임을 가졌다.

황제의 관심이 제게 있음을 입증하고 자신의 격을 높여 줄 수 있는 중요한 자리였다.

차는 둘이서 마셨지만 많은 사람이 차기 황제 부부의 티타임을 구경했다. 황제의 일상을 바라보게끔 허용하는 것은 고전적인 권력의 과시 방법이었다.

셀레나는 이 낡은 관습이 마음에 들었다. 자신이 황제와 있으면서 그에게 대우받고, 존중받는 모습을 여러 귀족들에게 내보일 수 있었으므로.

그녀의 허영심이 완벽히 충족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어제는 달랐다.

어제 황제는 제 언니의 얘기로만 1시간을 꽉 채웠다.

‘그대 언니가 무도회에서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고 있소?’

‘세상에, 나는 그렇게 카드 게임에 도가 튼 여자는 처음 봤소. 환상적인 블러핑이었지.’

‘계약서까지 썼다던데, 혹시 봤다면 내게도 알려 주시오.’

‘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군. 일정이 다 돼서 이만.’

황제는 그날 셀레나에 대한 질문은 한마디도 없이 레티시아에 대한 얘기만을 주야장천 늘어놓고 매정하게 떠나 버렸다.

홀로 남은 것에 대한 오욕은 오로지 그녀 스스로 감당해야 했다.

그러나 그녀는 제 감정을 혼자 삭이지 않았다. 그녀의 분노는 제 언니, 레티시아에게로 전가되었다.

‘언니가 돌아와서 내 일상이 망가졌어! 언니만 없었더라면…….’

셀레나는 다시 원래의 주목받는 삶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레티시아를 치워야 했다.

‘사냥은 자칫 잘못하면 부상당하기 십상인 위험한 놀이지.’

셀레나가 음흉하게 웃었다.

‘종종 사냥감을 착각하게 되기도 하고 말이야.’

* * *

브링스턴 후작이 웬일로 나를 식당까지 부르나 했다.

또 무슨 쌉스러운 소리를 하겠구나, 생각하긴 했는데 말이다.

“사냥이요?”

“그래. 같이 나가자꾸나.”

“저는 총 못 쏘는데요.”

브링스턴 후작이 웃었다.

“하하, 그거라면 걱정할 필요 없다. 레이디들은 그저 차를 마시며 사냥감을 바칠 신사를 기다리기만 하면 되니까.”

와, 듣기만 해도 노잼이다.

결국 차만 마시고 돌아오는 거랑 다를 게 없잖아.

‘뭐, 그래도 강제로 모여 있게 될 테니 대화를 듣고 정보를 조합하기엔 괜찮은 자리일지도?’

내가 고민에 잠겨 있자, 셀레나가 옆에서 끼어들었다.

“재미없게 기다리기만 하라고요?”

그녀가 아랫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그런 건 이제 지겨운데…… 저희도 참여하면 어떨까요?”

“응? 하지만 사냥은 여자들이 할 만한 게…….”

“적어도 말은 탈 수 있잖아요. 사냥로를 지정하고 정해진 길로만 다니면 그리 위험하지도 않을 거예요.”

“흐음…….”

브링스턴 후작이 셀레나와 눈을 맞췄다. 서로 무언의 뭔가를 주고받는 눈치였다.

‘또 뭔데…….’

이윽고, 후작이 말했다.

“좋아, 이번 사냥 대회는 특별히 남녀 모두 참여할 수 있는 걸로 하자.”

* * *

나는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고양이 상태의 체이트를 앞에 두고 말했다.

“사냥은 대체 어떻게 하는 거야?”

펑!

체이트가 사람으로 돌아와서 물었다.

“사냥이요?”

“응. 사냥 대회에 나가라는데 내가 총을 쏠 줄 알아, 칼을 들 줄 알아. 이 몸으로 무슨 사냥을 하라는 건지.”

“사냥에 굳이 총칼이 필요한가요?”

체이트가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그냥 뜯으면…… 되는 거 아닌가?”

“…….”

어떻게 뜯느냐고 물으면 이따 악몽 꿀 것 같으니 묻지 말자.

“그나저나 대회라니. 느낌이 안 좋네요. 그냥 참석하지 마시죠.”

“해야 해. 여기 있는 동안은 아버지 비위 맞추고 있어야 한다고.”

“그럼 그냥 나랑 나가지?”

그가 침대에 털썩 누워서 예쁜 루비색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신성이 정보를 물어올 때까지 여기 있을 필요는 없잖아요. 나가요, 우리.”

“그건 그런데…….”

아직 정보상을 제대로 찾아보지 못했다. 신성의 추적을 기다리는 것도 좋지만, 역시 원작에 나온 인물의 힘을 빌리는 선택지도 포기하기엔 너무 일렀다.

“사냥 대회에 여자들이 참석한다면 거기서 정보상에 대한 다른 정보를 얻을 수도 있을 거야. 신성이 코렐리아를 찾을 수 있을 거라는 보장도 없으니까, 일단 시도할 수 있는 건 다 해 보는 게 좋다고 생각해.”

“…….”

그가 침묵했다. 탐탁잖은 표정이었다.

나는 그를 보면서 생각했다.

‘몰래 나가야겠네.’

로체의 도움을 받아야겠다.

로체에게 그날 체이트 좀 데리고 나가 달라고 부탁해야지.

‘고작 집안 행사인데 쉬쉬할 것까지 있나?’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내 안일한 판단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도 모르고서.

여주의 아버지가 독신을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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