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박, 눈을 감았다 뜨니 나는 숲속에 있었다.
옆에는 지금과 다를 바 없이 젊은 로체가 있었고, 난 그의 손을 잡고 내달리고 있었다.
또 꿈속이었다.
‘나 어느새 잠들었나.’
로체에게 이 꿈의 전후 사정을 들은 후이기 때문일까? 이제는 이 세계가 현실이 아니라 꿈속이라는 걸 자각할 수 있었다. 비록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는 없었지만.
“사제들이 맹추격을 하고 있을 거야. 빨리 여기서 빠져나가야 해.”
로체가 다급하게 말했다. 그에 내 입이 멋대로 움직였다.
“그럼 제가 워프를 쓸게요.”
“워프? 그게 뭐지?”
로체가 의아한 듯 아미를 찡그렸고, 나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성력을 대량 소모해서 장거리를 한 번에 이동하는 거예요.”
“대량이라면 얼마나?”
“둘이 함께 이동한다면…… 지금 제가 가진 힘의 전부를 써야겠죠.”
“…….”
로체가 도망해 왔던 길을 일별하고 말했다.
“혼자 가. 나는 알아서 따라갈 테니까.”
“함께 가요. 당신 마력이 제아무리 강하다 한들 사제들의 총력을 막긴 힘들 거예요.”
그가 초조하게 손가락을 움직이며 인상을 썼다.
“그거 알아? 나는 너를 지키기 위해 여기 온 거야.”
“알아요. 당신 얘기는 할머니께 많이 들었어요.”
“그녀가 내 얘길 했다고?”
로체의 눈이 반짝 빛났다가 이내 흐려졌다.
“……그렇다면 내가 왜 이러는지는 네가 더 잘 알겠네. 어서 가. 네가 살아야 내가 그녀를 볼 면목이 생길 테니.”
“저도 마찬가지예요.”
나는 워프에 필요한 진을 그리며 말을 이었다.
“할머니의 첫사랑을 여기에 버려 둘 수는 없어요.”
“…….”
“함께 가요. 그리고 이후에 내가 무력해지거든, 당신이 곁에서 나를 지켜줘요. 그러면 되잖아요?”
로체는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나는 진에 마지막 문자를 적어 넣고 그를 향해 손을 뻗었다.
“……좋아.”
그가 마침내 내 손을 맞잡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너를 지킬게.”
난 그의 말에 환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당신을 믿을게요. 부디 나를 그분께 무사히 보내 줘요.”
우리는 북부로 갔다.
나의 신과 재회하기 위해서.
자작나무 숲속, 익숙한 호수 아래에서 귀가 긴 엘프와 함께 그를 기다렸다.
이윽고 등 뒤에서 강한 성력이 느껴졌고, 난 희망에 가득 부푼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카히텐 님……!”
“…….”
“……아.”
내 입가의 웃음이 점차 사라졌다.
황량한 나무들 사이에서 나온 그 남자는, 나의 신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