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 똑…….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지척에서 들렸다. 보글보글 숨을 뱉으며 천천히 고개를 들자 냇물에 젖은 낯이 비쳤다.
물을 먹어 다소 처진 속눈썹 사이로 비치는 눈동자는 녹색이다. 푹 젖은 머리카락은 옅은 분홍색.
일그러졌던 수면이 고요해질수록 시야가 선명해졌다.
‘또 꿈인가.’
나는 제어할 수 없는 몸뚱이에 갇혀 생각했다. 꿈이라면 어째서 이 얼굴인가. 그리고 어째서 이곳에 있는가.
익숙한 얼굴을 감상하다 누군가의 발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레티시아.”
바리톤의 음성이 내 이름을 불렀다.
“전하.”
은발에 푸른 눈, 각진 이목구비와 날렵한 콧날을 가진 미남자.
이안 카히텐이었다.
나는 길들어진 새처럼 웃으며 그에게 다가갔다. 목소리에 일전의 번민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애처럼 나는 그의 팔을 끌어안았다.
“추울 텐데.”
그가 내 언 볼에 눈길을 주었다. 내 손이 벌게진 뺨을 멋쩍게 쓰다듬었다. 손끝에 닿는 차가운 촉감이 현실처럼 생생하게 느껴졌다.
“괜찮아요, 이쯤은.”
내 허세가 마뜩잖은지 그의 눈썹이 비죽 올라갔다.
나는 그가 내 가벼운 옷차림을 지적하기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지만,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난 잠시 풀 죽은 표정으로 있다가 다시 미소 지었다.
“아, 혹시 아이가 걱정되시는 거예요?”
내 시선이 부푼 배에 가 닿았다. 정성스럽게 배를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당신 아이잖아요. 이 정도로 저를 곤란하게 하지는 않아요. 분명 강한 아이일 테니까.”
“강하기야 하겠지.”
그가 코웃음 쳤다. 나는 시무룩하게 고개를 숙였다. 차라리 춥다고 할 걸 그랬나.
머쓱하게 붉어진 코끝을 문지르자 그가 나를 빤히 보았다.
“아, 이건 그, 추워서 그런 건 아니고요.”
“…….”
그가 걸치고 있던 로브를 살짝 벗었다. 그러다 잠시 망설이는 기색을 내비치더니, 이내 도로 품새를 추스르고 하인에게 명령했다.
“대공비의 침실에 난로를 지피고 차를 준비해.”
그는 내게 허튼짓 말고 들어가라고 당부한 뒤 뒤돌아 떠나갔다.
“…….”
익숙했다. 그의 등을 바라보는 일쯤은. 새삼 마음이 아프진 않았다.
그래서 오히려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왜 그의 무심함에 전혀 가슴 아프지 않은 것인지.
자신은 그의 부인인데. 분명 그와 사랑을 하여 아이를 가졌을 텐데.
어째서 이리도…… 그가 가깝게 느껴지지 않는지.
뭔가가 텅 비어 있는 기분.
나는 무심코 배를 쓰다듬었다.
서운하지 않은데 눈물이 났다.
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