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여주의 아버지가 독신을 선언했다 (96)화 (96/140)

워프는 반만 성공했다.

가려던 대신전의 입구 대신 남부 지부의 안타카스 신전 변두리에 도착한 것이다.

좌표 조정이 실패했다거나, 이안이 워프에 익숙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그의 워프를 방해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강력한 성력의 출입을 차단하고 있었다.

누구지? 체이트 폴린? 아니면 아르키드네 대신전?

헬리아스 황제 또한 수도 내부에 금족령을 내렸으니 체이트 폴린이라고 경계하지 않을 이유는 없겠지.

신권과 황권은 현재 대립하고 있다. 어느 편에 설 것인가. 아니, 어느 편에 서지 않을 것인가.

모두 이안의 손에 달려 있었다.

“어지럽군.”

그는 잠시 머리를 싸맸다. 익숙지 않은 신성 사용의 후유증 탓이었다.

장거리 워프는 한 번에 너무 많은 양의 성력을 소모한다. 무방비해지기에 십상이지.

되도록 사용하지 않으려고 했건만…….

‘상황이 너무 좋지 않았어.’

이안은 그렇게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어쩔 수 없었노라고. 마음이 급해서 이성을 좀먹은 건 아니었다고.

정신을 조금 차리자 주변이 눈에 들어왔다.

남부의 상징과도 같은 야자수가 길 양쪽에 늘어서 있고 그 끝에 신전이 있다. 대신전보다는 작지만 어지간한 사원보다는 웅장한 자태였다.

‘여길 이런 식으로 또 오게 될 줄은 몰랐는데.’

그새 눈에 익은 남부의 풍경을 보며, 이안은 익숙하게 궐련 한 개비를 입에 물었다.

“……이런.”

한동안 끊었던 걸 어느새 다시 잡게 되었다.

그러니까…… 파혼 직후부터였지, 아마.

“…….”

그가 미미하게 얼굴을 찌푸리며 등 뒤에 있던 덩어리에게 명령했다.

“이동하지.”

“……으어어.”

덩어리가 신음했다.

“……?”

이안은 그제야 뒤를 돌아보았다. 제스가 누런 얼굴로 길바닥에 드러누워 있었다.

이안의 눈이 가느다래졌다. 이제 막 알았다는 얼굴이었다. 원체 아랫사람에게 관심이 없으니 눈치채지 못할 수밖에.

“이봐.”

“……으어.”

“…….”

툭, 발로 제스의 구두 뒤축을 건드려 보았다. 꿈쩍도 하지 않는다.

“죽었나?”

“어으.”

“거의 죽었군.”

그가 고개를 끄덕이고 침착하게 소맷귀를 정리했다.

“시체는 돌아가는 대로 회수해 주지.”

그러고 등을 돌리려는 찰나.

텁.

제스가 무람하게도 이안의 옷소매를 붙잡았다.

“……?”

“치…….”

“……치?”

치유의 신성을 원하는 건가?

안타깝게도 지금 제게 그만한 성력은 남아 있지 않다. 저쪽 신전의 사제에게라도 부탁해야 하나.

이안이 귀찮다는 표정으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제스가 중얼거렸다.

“치사…… 빤스…….”

“……?”

잠시 머릿속에 물음표를 띄우던 이안은 곧이어 팔짱을 끼고 턱을 들어 올렸다.

죽고 싶어서 환장한 건 아닐 테고. 정신이 없어서 경황도 없는 건가.

“일어나라, 제스.”

“어으으, 너무…… 해에…….”

“3초 내로 일어나지 않으면 감봉이다.”

벌떡.

제스가 일어났다.

흡사 좀비와 같은 모양새로 비틀거리며 다가오는 제스를 보며 이안은 자기도 모르게 몸을 피했다. 무서운 건 당연히 아니었고, 더러운 걸 피하는 움직임에 가까웠다.

제스가 입가에 흐른 침을 닦아내고 신선한 공기를 폐부 가득 들이마셨다.

“허억, 후우, 흐으으…….”

마지막은 서러운 울음에 가까웠다.

“정신 차려. 아직 갈 곳이 남았어.”

이안이 그를 일별하고 앞서 걸었다.

“어으으으으…… 치…….”

“?”

“아닙니다…….”

제스가 그의 뒤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여전히 낯은 창백했다.

이안이 미간을 찌푸린 채 그를 향해 말했다.

“돌아가면 장기 휴가를 주지. 편히 고향에라도 다녀와.”

“어흐…… 감사합니다.”

당연히 유급 휴가겠지? 그런 쪽으로는 확실한 사람이니까. 제스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으어으어어…….”

하지만 당장은 죽을 것 같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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