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레나 브링스턴은 줄곧 자신을 ‘완벽한 여성’이라고 생각해 왔다.
성적 우수, 외모 우수.
게다가 돈이 썩어 넘치는 후작가 집안의 여식이다. 이처럼 날 때부터 완벽한 여인이 세상천지에 몇이나 되겠나?
그런 그녀에게 단 하나의 흠이 있었으니, 바로 자신의 언니 ‘레티시아 브링스턴’이었다.
‘브링스턴의 붉은 장미’라는 별칭을 얻은 자신의 화려한 외모와는 달리 밋밋하기 짝이 없는 얼굴.
평범하기 짝이 없는 두뇌.
파탄 났다고 봐도 무관한 인간관계까지.
레티시아는 어느 하나 자신에게 보탬이 되질 못했다. 멍청한 언니를 둔 동생이라는 소리를 듣게 하지나 않으면 다행이었지.
‘그나마 옆에 두면 이쪽이 돋보이니 장식용으로는 쓸 만했는데.’
하지만 귀족 영양들의 사교 모임이나 파티에는 얼음물로 목욕을 해서라도 쏙 빠지기 일쑤였으니, 레티시아는 셀레나의 가방 역할조차 제대로 해내질 못했다.
그렇게 못난 주제에 최고의 신랑감인 카히텐 대공의 약혼 상대라니.
자신이 장녀였다면 그 자리는 자연히 제 몫이었을 것이다. 아니, 장녀가 아니라도 대공의 옆엔 자신이 서 있었어야 했다.
셀레나가 레티시아에게 유일하게 부러운 게 있다면 날로 먹은 거나 다름없는 카히텐 대공과의 약혼이었다.
하지만 대망의 결혼식을 앞두고 레티시아는 도망쳤다.
무려 그 카히텐 대공을 공처럼 뻥 차버리고서!
레티시아의 도주가 세간에 알려진 후, 셀레나는 한동안 사교계에 얼굴도 들이밀지 못했다.
장녀가 외간 남자와 야반도주를 했다느니, 동생도 매한가지일 거라느니 하는 뒷말이 가는 곳마다 꼬리표처럼 따라다녔으므로.
그뿐만이 아니다. 브링스턴 후작가는 대공의 불쾌한 심기마저 달래야 했다. 지참금으로 약속한 광산 하나를 위자료로 지불하면서.
‘그걸 내 지참금으로 보탰다면 얼마나 좋았겠어.’
그랬다면 나이 많은 황제의 후처보다 더 괜찮은 자리를 노려볼 수도 있었을 텐데.
한 남자의 두 번째가 된다는 건 그녀 자존심에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상대가 황제라서 참았지.
‘뭐, 그래도 황후 자리는 마음에 들었어. 제국의 최고 권력자 중 하나잖아?’
신전의 성녀를 제외하고 황후보다 고귀한 여인은 이 대륙에 존재하지 않는다.
당시 아르키드네 신전은 성녀를 두고 있지 않았으니, 자신이 제일 존귀한 여인이 될 것임은 자명했다.
그날, 자신이 쏜 총에 레오넬 황자가 맞지 않았더라면.
“…….”
셀레나는 후회하지 않았다. 그저 원망할 뿐이었다.
제 삶을 나락의 구렁텅이로 빠뜨린 레티시아 브링스턴을.
그녀만 없었다면 자신이 카히텐 대공의 약혼녀가 되었을 것이다.
그녀만 돌아오지 않았다면 자신이 외진 수풀에서 총을 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녀만.
그녀만 없었더라면.
까득…….
셀레나의 어금니가 맞부딪치며 불쾌한 마찰음을 자아냈다.
레티시아를 떠올릴 때면 축축하고 음습한 황궁 감옥에서의 기억이 자꾸만 되살아났다.
매 순간 최고와 최상을 노렸으나 그 끝은 바닥도 아닌 지하였다.
황후로서 살아갈 줄 알았던 궁전 지하에서 죄수로 남을 줄이야. 인생 참 무상하기도 하지.
생전 그렇게 비참한 경험은 처음이었다. 그녀는 그때 차라리 굶어서라도 죽어버릴까 고민했었다.
단식을 결심한 지 이틀째 되던 날에 황제가 찾아왔다. 미처 예기치 못한 소식과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한 제안을 들고서.
‘……방금, 뭐라고 하셨죠?’
황제의 제안을 처음 들은 순간, 그녀는 제 귀가 잘못된 줄 알았다. 몰락의 충격으로 신체 하나가 이상해진 거라고…… 그리 생각했다.
‘레티시아 브링스턴이 되라고.’
황제는 자비롭게도 다시 말해 주었다. 체통이고 뭐고 사라진 그녀는 무심코 귀를 후벼팠다.
‘……언니가 되라고요?’
‘그래.’
‘하지만 언니는…… 저랑 다르게 생겼는데요.’
‘음, 그러네. 닮긴 했지만…… 확실히 네가 그녀보다 떨어지긴 하지.’
‘?’
그 와중에도 울컥하는 감정이 들었다.
‘내가 언니보다 못 하다고? 제정신이야? 저 인간 실눈 뜨고 살아서 눈에 뵈는 게 없나?’
황음무도한 속마음을 감추고 셀레나가 답했다.
‘마, 맞아요. 눈이랑 귀가 제대로 기능한다면 누구도 저랑 언니를 같은 사람으로 착각하진 않을 거예요.’
‘그렇지만 둘은 핏줄이잖니?’
황제가 옥중의 셀레나를 향해 상체를 굽혔고, 얄팍한 눈초리가 그녀의 낯을 유심히 살폈다.
‘너희 혈통이 같다면 충분히 똑같이 만들어 줄 수 있단다.’
‘…….’
‘나는 말이지. 성력이 아주 뛰어나거든.’
‘……?’
성력을 소모하여 타인을 흉내 낼 수 있다고? 그런 얘기는 금시초문이었다.
피조물의 낯을 빚는 건 신의 영역이 아니었던가. 그런 신성을 감히 인간이 부릴 수 있다니, 말도 안 돼.
셀레나는 믿지 못했다. 황제가 제 목에 검을 들이밀기 전까지는.
‘지금 무슨…… 폐하?’
‘아, 사실 네 의사는 중요하지 않아서.’
그냥 할 일을 알려 주려고 미리 얘기한 것뿐이야. 황제는 그리 말하며 일절 망설임 없이 셀레나의 목을 내리쳤다.
‘크헉!’
피가 분수처럼 솟았다.
죽도록 고통스러웠고, 실제로 그녀는 자신이 죽었다고 생각했다.
‘…….’
하지만 살아 있었다.
그녀는 제 두 손을 내려다보았다.
본래의 제 손은 투옥 후 모진 고초를 당해서 몹시 볼품없었다. 갈라진 손톱에는 검은 때가 끼고 주름마다 살갗이 부르터서 이제는 꼴도 보기 싫은 손이었다.
하지만 제 시야에 들어온 손바닥은 상아처럼 하얗고 도자기처럼 매끈했다.
어깨 아래로 흘러내리는 머리카락도 전보다 훨씬 연한 분홍빛을 띠고 있었다.
‘이, 이건…….’
황망하게 제 몸 여기저기를 살피는 셀레나에게 황제가 손거울을 쥐여 주었다.
그녀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거울을 받아 들고 제 얼굴을 살폈다.
‘……!’
연녹색의 눈동자와 둥그런 콧방울, 유순해 보이는 입매.
세상에서 제일 증오하는 제 언니, 레티시아 브링스턴이 거울 속에 있었다.
‘아…… 아아…….’
셀레나가 눈을 슴벅이며 손으로 얼굴을 매만졌다. 시선은 내내 거울 속에 못 박혀 있었다.
황제는 조금 심드렁한 표정으로 물었다.
‘어떠니? 다시 태어난 기분이.’
‘이, 이, 이게 왜……, 왜 이런……? 왜 언니가 여기에……?’
‘이런, 아직도 파악을 못 했네. 멍청한 건 딱 질색인데.’
황제가 혀를 끌끌 찼다. 셀레나는 한참 만에 거울 속의 레티시아가 자신이라는 걸 깨달았다.
‘다시 태어났다.’
끔찍한 언니의 얼굴이지만, 그래도 죄수의 면은 아니었다.
새로운 얼굴.
그리고 새로운 기회.
셀레나의 마음에 다 죽어가던 희망이 차올랐다. 그녀가 눈에 힘을 바짝 주고 물었다.
‘원하시는 게 뭔가요?’
‘말했잖니. 레티시아 브링스턴이 되라고.’
‘하지만 언니는…….’
황제는 언니가 성녀가 되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녀는 현재 아르키드네 대신전에 있을 것이다.
매 순간 사제들이 그녀를 주시하고 가는 걸음마다 뒤따를 테지. 그런 여자가 되라고? 그러다 들키면 나보고 어떡하라는 거야.
셀레나가 난처하게 입술을 깨물자 황제가 가늘게 뜬 눈을 휘었다.
‘그럼 그냥 죽을래? 아니면 여기서 평생 살아도 된단다. 그 얼굴이라도 여기라면 괜찮아. 햇빛 볼 일은 죽을 때까지 없을 테니까.’
‘…….’
그녀에겐 애당초 선택권이 없었다.
셀레나는 고개를 저었고, 황제는 싱긋 웃었다.
‘들킬 염려는 말렴. 어차피 네가 레티시아 브링스턴이 되어 남부를 돌아다닐 쯤에 그녀는…….’
“……신전에 없다?”
셀레나는 텅 빈 침실을 돌아보았다.
수수하지만 최고급 자재를 쓴 게 분명한 가구와 역사의 향취가 느껴지는 내부 구조.
비록 제 취향은 아니었으나 더럽고 냄새나는 감옥에 비한다면 천국이었다.
셀레나는 레티시아의 얼굴로 풋, 하고 웃었다.
“하여간 취향도 꼭 제 외모처럼 밋밋해서는.”
나중에 이 생활에 익숙해지면 제 취향에 맞는 가구를 잔뜩 들여야지. 아니, 아예 내부 공사를 새로 하는 것도 좋겠어.
신전은 성역이라 최대한 기존 골조를 유지한다고 하지만, 자신이 누구인가.
자신은 이제 남부의 유일한 성녀, 아르키드네의 은총을 받은 고귀한 존재였다.
‘많이 돌아왔지만…… 결국 가졌어.’
황후에 버금가는 권력과 그보다 더 드높은 추앙을.
‘그러니 다시는 빼앗기지 않도록 해야겠지. 당분간은 언니를 연기하는 데 사력을 다해야 해.’
그녀는 레티시아가 되라는 황제의 명을 충실히 지킬 예정이었다.
“잘 가, 언니.”
언니의 몫은 내가 대신 짊어져 줄 테니.
셀레나의 만족감이 극에 달한 순간.
똑똑. 방문 너머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누구?”
그녀가 문을 바라보고 묻자, 상대는 대답 대신 들어가도 되냐고 되물었다.
‘이 목소리는…….’
아르키드네 대주교, 체이트 폴린이다.
셀레나는 목에 힘을 빳빳이 주고 표정을 가다듬었다.
이윽고 레티시아와 똑 닮은 싱그러운 미소를 입에 건 그녀가 다감한 어조로 대답했다.
“응, 들어와도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