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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의 아버지가 독신을 선언했다 (103)화 (103/140)

몇 분 전.

체이트는 복도에서 어린 사제와 마주쳤다. 신이 나서는 복도를 토끼처럼 달리던 사제가 체이트의 가슴팍에 머리를 박고 나가떨어졌다.

“아야야!”

체이트는 난데없이 튀어나온 꼬마를 내려다보며 손을 내밀었다. 어린 사제가 무심코 그 손을 맞잡으려다 제가 부딪힌 상대를 보고 도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대, 대, 대주교님!”

젖살 덜 빠진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죄, 죄송합니다!”

어린 사제가 벌떡 일어나 연신 허리를 굽신거렸다.

‘아, 이런 건 딱 질색인데.’

체이트의 이마에 옅은 주름이 졌다.

“그게 뭐 사과할 일인가?”

혈기 왕성한 어린애가 뜀박질은 하는 건 어린 새가 삐악삐악하는 것만큼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사제는 면구스러워서 어쩔 줄을 몰랐다.

“하, 하지만 아르키드네의 사제라면 결코 경거망동해서는 안 되며 매사 침착해야 한다고…….”

“내가 그랬다고?”

“……안타카스 주교님이.”

“아.”

체이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시해.”

“네?”

“무시하라고.”

체이트는 무표정하게 말했다.

“그 노인네 말 들을 필요 없어.”

“노, 노인네……!”

불경한 발언이라고 생각한 사제가 고개를 바싹 들었다. 하지만 머잖아 도로 입을 다물었다.

나이는 젊어도 어쨌든 이쪽은 아르키드네 신전의 대주교였다. 그가 남부 지부 주교를 어떻게 칭하든 제가 왈가왈부할 일은 아니다.

“그…… 하지만 아이는 어른 말씀을 잘 들어야 한다고.”

“안타카스 주교가 그랬다?”

“예…….”

“흠.”

체이트가 손끝으로 턱을 쓸었다.

“오래 살았다고 다 나잇값하고 사는 것도 아니던데…….”

그가 누구를 회상하고 있는지 사제는 알지 못했다. 그저 손이 발이 되도록 빌어서 사죄하고, 어서 이 자리를 뜨고 싶을 뿐.

“그런데.”

애석하게도 체이트는 그의 작은 바람을 들어주지 않았다.

“왜 이쪽 복도에 있었지?”

이곳은 아르키드네의 성녀가 거하는 공간이다. 별다른 일이 없다면 한낱 견습 사제가 함부로 드나들 수 없을 터.

“아, 그, 그게…….”

이번에야말로 혼쭐이 나겠구나.

어린 사제는 흡사 우는 얼굴로 대답했다.

“서, 성녀님을 만나려고…….”

“……무슨 목적으로?”

체이트의 눈에 경계가 어렸다. 사제는 겁을 잔뜩 집어먹은 채 어깨를 떨었다.

“성녀님께 가, 감사 인사를 하고 싶어서요…….”

“감사? ……아아.”

의아해하던 체이트가 손가락을 튕겼다.

“너, 그때 그 꼬마였군.”

“……!”

기억도 못 하고 있었어!

어린 사제가 입술을 말아 물고 두 손을 모았다.

“네, 맞아요…….”

그래, 바쁘신 대주교님이 한낱 사제 얼굴 따위 기억 못할 수도 있지.

어린 나이에 사회생활의 이치를 배워 버린 사제는 서운할 틈도 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성녀님께 쿠키를 구워다 드리고 싶었어요.”

제 쿠키를 받아준 레티시아를 떠올리자 사제의 얼굴이 자연히 붉어졌다.

동시에 체이트의 눈이 가느다래졌다.

“음…….”

꿀꺽. 사제가 침을 삼켰다.

“그래서, 쿠키는 무사히 건네줬고?”

“예? 아, 예! 감사하게도 받아주셨습니다.”

“그래?”

체이트가 피식거리며 사제의 정수리를 가볍게 눌렀다 떼었다.

“뭐…… 그래.”

그리고 천천히 그를 지나쳐 갔다. 바닥의 무늬만 뚫어져라 보던 어린 사제가 제 옆을 스치는 로브 자락을 힐끔거렸다.

대주교님은 저를 보고 웃어 주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넘어가 주시는 건가?’

사제는 얼른 뒤돌아 체이트의 등에 대고 꾸벅 고개 숙였다. 그리고 빠르게 뒤로 내달렸다.

다급한 발소리를 듣고 체이트가 경고했다.

“복도에서 뛰지 마.”

그 순간, 사제의 걸음이 급격히 느려졌다. 거북이 기어가는 듯한 발소리를 들으며 체이트가 코끝으로 웃었다.

그가 시선을 내리깔고 작게 중얼거렸다.

“역시 기우였나…….”

레티시아는 정말로 방에 있단 말이지?

그는 레티시아의 방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물었다.

“레티시아, 지금 들어가도 될까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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