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여주의 아버지가 독신을 선언했다 (104)화 (104/140)

달리는 마차 안.

레티시아는 조금 무료한 얼굴로 제 옆의 사제를 돌아보았다.

“근데 우리 얼마나 가야 해요?”

그녀에게 안타카스 신전을 안내하기로 한 사제가 정중히 대답했다.

“곧 도착할 겁니다.”

“흐응.”

그렇구나. 레티시아가 대답했다. 조금 시큰둥한 어조였다.

“그런데요.”

그녀가 마차의 커튼을 걷으며 물었다.

“어째 좀 서늘해지지 않았어요?”

“네? 저는 전혀…….”

사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혹시 추우십니까?”

레티시아가 뭐라 대답도 하기 전에 그가 안절부절못하며 주변을 살폈다.

“제 로브라도 드려야 하는데.”

“아, 아뇨. 괜찮아요. 저 추위 잘 안 타요.”

아무렴, 제가 북부에서 몇 년을 살았는데. 남부의 평소 날씨에 비해 쌀쌀하다는 거였지, 결코 춥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그런데요.”

레티시아가 다시 사제를 바라보았다. 그가 척추를 꼿꼿이 세우고 두 손을 무릎 위로 가지런히 모았다.

흡사 면접관을 만난 면접자와 같은 태도였다.

“네, 네엡!”

“곧 도착한다고요?”

“예, 그렇습니다!”

“흐응.”

그렇구나.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끝인가?’

사제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던 차.

“그런데…….”

레티시아가 또 그를 불렀다.

‘꿀꺽.’

사제가 마른침을 삼켰다.

“안타카스 지부가 남부 제일 아래쪽에 있었죠?”

“예, 남부는 중앙을 대신전이, 그 아래를 안타카스 신전이 받치고 있습니다.”

“대신전의 오른팔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오, 오른팔이요?”

“왼팔인가.”

“……무슨 의민지 잘.”

레티시아가 그를 빤히 보았다.

이 사람, 평소에 농담도 안 하고 사나? 아니면 원래 좀 고지식한 편인가…….

일상적인 말장난이 상대에게 먹히질 않으니 어째 좀 겸연쩍어졌다.

“아니, 방위가 좀 헷갈려서요.”

그녀가 분홍색 머리를 쓸어내리며 머쓱하게 웃었다.

“사실 남부는 어디든 후덥지근하죠. 저는 여기 처음 들어올 때부터 더운 바람이 확 풍겨서, 좀 낯설더라고요.”

실내 공기가 어색해지니 괜히 말이 많아졌다.

사제가 그녀의 조잘거림에 성실히 대꾸했다.

“그러셨습니까?”

“네. 원래 그런 거 잘 못 느끼는 편인데, 북부에서 오래 살아서 그런가? 이질감이 좀 들더라고요.”

“아, 확실히 그쪽에서 오래 사셨다면 낯설게 느껴지실 수도…….”

“지금도 그래요.”

“네?”

레티시아가 사제와 눈을 맞췄다.

“그때 남부 초입새에서 느낀 이질감이 지금 대따 강하게 느껴지거든요?”

“…….”

“이상하죠? 제가 그런 거 원래 진짜 잘 못 느끼는 편인데…….”

레티시아는 그리 말하고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바깥을 돌아보았다.

“왜일까요…….”

레티시아의 혼잣말 같은 중얼거림에 사제의 낯이 딱딱하게 굳었다.

‘설마 눈치챘나?’

그가 앞쪽 유리창 너머의 마부를 향해 불안한 눈빛을 보냈다. 마부 역시 두 사람의 대화를 귀 기울여 들었는지 얼른 낌새를 알아채고 뒤쪽으로 눈짓을 주었다.

둘은 한 차례 눈빛을 주고받고는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그동안 레티시아는 창밖을 계속 유심히 보고 있었다. 유심히, 아주 뚫어져라.

‘분명 눈치챈 거야. 우리가 반대편으로 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사제가 입매를 부들거리며 억지 미소를 짓고 레티시아를 불렀다.

“성녀님께서 한기를 느끼셨다면 제가 로브를 벗어 드리겠습니다.”

“엥? 굳이 안 그러셔도.”

레티시아가 의문스럽게 그를 바라보았지만, 사제의 의지는 굳건했다.

“아뇨, 꼭 벗어 드리겠습니다.”

“……?”

사제는 비장한 얼굴로 로브를 반쯤 내리다 멈칫거렸다.

“한데 제가…… 그, 옷 주름이 좀 신경 쓰여서…….”

“네. 그럼 그냥 도로 입으셔도…….”

“아닙니다! 그…… 잠시 내려서 매무새를 정리해도 되겠습니까?”

“아……. 섬세하시구나.”

레티시아가 미묘한 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 사이, 사제는 자신감 넘치는 마부를 바라보았다. ‘나 잘했죠?’라는 눈빛.

마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변명이 저게 뭔가. 그게 정말 최선이었던 건가.

거짓말이라곤 생전 안 해 본 사람 같지 않나…….

마부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설마 저런 거에 속아 넘어가겠어? 하여간 사제 놈들이란…… 고지식하기는.’

“그럼 그러세요.”

넘어갔다.

“가, 감사합니다!”

마차가 멈추고 사제가 아래로 내렸다. 옷맵시만 잠깐 정리한다던 그는 한 오백 년이 걸리도록 밖에서 미적거렸다.

레티시아가 창문 너머로 그를 관찰하며 중얼거렸다.

“되게 섬세하시구나…….”

그때, 갑자기 마차가 출발했다.

“어?!”

레티시아가 등받이에서 상체를 떼고 마부에게 소리쳤다.

“아직 사람 안 탔어요!”

“…….”

“이봐요!”

“…….”

“……이봐?”

그녀는 그제야 뭔가가 수상쩍게 돌아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마차는 매우 빠른 속도로 달렸고, 어느새 사제는 점처럼 보였다.

반면, 사제는 멀어지는 마차를 보며 입술을 앙다물었다.

“죄송합니다, 성녀님.”

그가 고개 숙였다.

“다 아르키드네 님과 성녀님을 위한 일이었습니다.”

머리가 땅에 닿도록 깊이 인사한 그가 영웅심 가득한 눈빛으로 마차가 사라진 방향을 응시했다.

“부디 헬리아스와 무사히 평화를 논하실 수 있기를.”

며칠 전, 이 독실한 사제는 기도 중에 신을 영접했다. 처음에는 당연히 자신이 영접한 신이 아르키드네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는 자신을 ‘헬리아스’, 아르키드네의 형제라고 칭했다. 그리고 자신들로 인한 인간의 전쟁을 원치 않으며 평화를 기원한다고 했다.

평화를 위해 사절을 보내니 성녀를 데려와 영원한 행복을 도모하자고.

사제는 그의 말을 한 치 의심 없이 믿었다. 자신이 모시는 아르키드네는 아니었으나 헬리아스 역시 절대자, 자신보다 훨씬 우월한 존재다.

신앙으로 똘똘 뭉친 그는 신이 자신들을 굽어살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절대자란 본디 연약한 것에게 자애로우며 인간을 자식으로 여긴다고 배워 왔으므로.

평생을 신전에서 살아온 그만이 할 수 있는, 실로 단편적인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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