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여주의 아버지가 독신을 선언했다 (107)화 (107/140)

같은 시각.

헬리아스는 레티시아가 사라진 자리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

그렇게 한참을 망부석처럼 있다가.

“푸흐…… 흐하, 으흐하하하핫!”

하늘을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푸흐흐, 흐흐, 흐으…….”

눈물이 나도록 웃은 그가 언제 그랬냐는 듯 정색하고 중얼거렸다.

“기가 막히네.”

눈속임을 위해 셀레나 브링스턴을 동원하고 아르키드네의 방어선도 애써 뚫고 들어왔더니.

“이젠 인간에게까지 이런 꼴을 당해?”

그가 입술을 씰룩였다.

“아아, 내가 거죽을 너무 오래 뒤집어쓰고 살았나? 아주 인간 다 됐네.”

붉은 잇몸이 훤히 드러나도록 볼을 죽 잡아당긴 그가 손을 탁 놓았다. 탄력 없는 살이 느리게 제자리를 찾아갔다.

“흐음.”

그의 시선이 남부 방향으로 향했다.

레티시아 브링스턴은 분명 남부 쪽으로 워프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이상은 아르키드네의 방어가 굳건해서 들어갈 수가 없다.

“아, 정말.”

미간이 절로 실금이 갔다.

“이 세계는 정말 귀찮아.”

혀를 끌끌 차고 바닥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도 홧김에 걷어찼다. 데구르르…… 둥근 돌이 굴러갔다.

그게 꼭 사람 머리 같다는 생각이 들자, 자연히 셀레나 브링스턴이 떠올랐다.

‘지금쯤 들켰겠지.’

자만심에 비해 능력이 출중한 편은 아니었으니까. 기대도 안 했다. 어차피 이 한 번의 시간을 벌기 위해 쓰고 버릴 패였으니 죽어도 알 바 없고.

그에게 인간이란 도구에 불과하다.

제 세계를 재창조할 도구.

자신이 원하는,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갈 수많은 도구.

“이런 불합리한 세계에서 계속 살 수는 없으니까.”

세 명이 한 대륙을 지배한다니, 그것도 영겁의 시간을. 이게 말이 돼?

질서 유지에 목숨을 거는 아르키드네도, 고작 인간 여자 하나 때문에 아르키드네와 한 편에 선 카히텐도 지겨웠다.

‘그런 녀석들과 어떻게 한 배를 타라고.’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는 법. 이 배에 선장은 한 명이면 충분하다. 그 선장은 바로 자신, 헬리아스가 될 테고.

‘비록 지난번에는 실패했지만…….’

이번에는 이룰 것이다.

이 지긋지긋한 세계를 뒤엎고, 자신만의 이데아를 재창조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아이러니하게도 세계의 계율에 따라야 했다. 개혁도 순서가 있는 법이니까.

현 세계는 ‘신’으로서의 헬리아스에게 세계를 다시 만들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러니 그의 숙원을 마저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현신해야만 했다.

자신의 성력을 남김없이 발휘할 수 있는 완벽한 그릇을 찾아서, 계율의 빈틈에서 진정한 신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제 원대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레티시아 브링스턴, 그녀가 필요했다.

각성한 그녀만이 제게 걸맞은 유일한 그릇이므로.

“……잡아가는 건 실패한 듯하고.”

전처럼 신전으로 직접 뚫고 들어갈 수도 없고, 설사 뚫고 간다고 한들 그 자리에서 레티시아를 그릇으로 쓸 수도 없다.

현 세계에서 자신이 힘을 능히 발휘할 수 있도록 허락된 건 오로지 수도뿐이니, 현신을 하려면 우선 남부부터 벗어나야 했다.

‘그렇다면…….’

헬리아스가 한숨 쉬듯 웃었다.

“제 발로 오게끔 해야겠지.”

이건 마지막 보루였고, 그 자신 또한 확신할 수 없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성공한다면 레티시아는 저를 찾지 않고는 배기지 못할 것이다.

다른 무엇도 아닌 카히텐의 회생을 위한 일이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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