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여주의 아버지가 독신을 선언했다 (112)화 (112/140)

레티시아에 대한 악의적 소문이 돌고 있다. 자신이 인지하지도 못한 짧은 시일 내에, 이렇게 격렬하게.

“물밑에서 돌던 소문이 이번 사건으로 빵 터진 모양입니다.”

“사건? 오늘 일 말인가?”

“예, 성녀님이 갑자기 사라지시더니 가짜가 나타나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그녀는 피해자다.”

“그러나 대다수 사제는 그 사실을 모릅니다. 알아도 믿지 않을 것이고, 그분을 단지 중부와의 내통자로 여길 것입니다.”

늙은 사제가 잠시 쉬었다 말을 이었다.

”……실제로 대신전에 가짜 성녀가 나타나지 않았습니까. 자신들이 알던 성녀님과 가짜 중 어느 쪽이 진짜인지, 사제들은 갈피를 놓쳐 혼란스러워하고 있을 뿐입니다.”

금일 벌어진 일련의 상황이 기저에 깔린 의심에 기름을 부었다는 건가.

“……어리석어.”

헬리아스가 흘린 소문이 분명하다. 몸이 남부에 접근하지 못하니 입을 빌린 거겠지.

“너무 어리석어.”

체이트는 신랄하게 비웃었다.

성녀를 신의 대리자처럼 떠받든다던 말들은 다 어디로 갔나. 고작 이 정도 충의였나.

고작, 세간의 농간에 속아 헛소리에 호도당하는 게 아르키드네의 사제라니.

“남부 여기저기에서 불안이 들끓고 있습니다.”

늙은 사제가 조심스러운 태도로 말했다.

“전쟁이 일어날 거라고요.”

“…….”

전쟁은 위보다도 아래에 더 많은 상흔을 남긴다. 그들은 평온을 기원했고, 신전은 이를 저버렸다.

“이 모든 일이 성녀님과 무관하지 않다는 게 일부 신자들의 생각입니다.”

“일부인가?”

“일부……였죠.”

늙은 사제는 눈을 내리깔았다.

“소문이 퍼질 때까지 내게 알리지 않고 무얼 한 거지?”

체이트는 그간 대륙 전반에서 일어나는 아르키드네 신전과 연관된 사건들을 모조리 서류로 받아 보았다.

이러한 망발이 횡횡한다는 소리는 금시초문이었다.

“그게…….”

늙은 사제는 망설였다.

“대주교님의 자질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갖는 세력이 생겼습니다.”

그가 눈을 꾹 감고 내질렀다.

“아.”

체이트가 짧은 탄성을 질렀다.

이내 보기 좋은 입술이 비뚜름하게 치켜 올라갔다.

“그 얘기는 처음부터 지겹게 들었는데.”

늙은 사제는 말없이 체이트를 바라본다. 그의 눈을 꿰뚫듯 오랜 시간 마주 보던 체이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대주교님.”

“당신들은 내 능력에 기생하면서도 한편으로 이런 때를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

불충하며 불의하기 짝이 없는 대주교가 신자의 앞에서 제 신앙을 행동으로 증명할 날을.

인간은 본디 자신과 같은 믿음을 가진 자를 한 편으로 여긴다. 체이트는 그들처럼 독실한 신자가 아니었다.

‘……레티시아도 마찬가지지.’ 

체이트의 시선이 멀어졌다.

“너희 신전은 위기 상황에서 곧잘 성녀를 제물로 삼아 왔지.”

백 년 전부터 이런 짓은 유구했다. 신탁의 성녀라는 사실이 모든 신자에게 차별점으로 다가온 것은 아닐 터.

체이트는 이제 와 소문을 전하는 늙은 사제의 의중을 확인했다.

“당신들은 내 손으로 성녀의 부정함을 입증하길 원하는군.”

레티시아를 제물로 삼아 전쟁을 기피하려고-

“…….”

늙은 사제가 고개 숙였다.

체이트는 팔짱을 낀 채 그를 내려다보다가, 로브 자락을 휘날리며 뒤돌아섰다.

“대주교님?”

옹졸한 부름에 체이트가 시선을 돌렸다. 온기라고는 한 줌도 없이 깊게 가라앉은 눈빛. 그가 말했다.

“전쟁은 어떻게든 일어날 거야.”

“하지만……!”

체이트가 손을 들어 올렸다.

“무얼 원하는지 확실히 알고 있어.”

그리고 말을 이었다.

“성녀님은…… 유폐한다.”

“하지만 대외적으로 행동을 보이지 않으면 외부의 반발이 있을 겁니다!”

“모든 건 내가 책임져. 그때까지 그녀는 아무것도 모른 채로 둬. 당신들의 불신과 악의조차 모르도록.”

체이트는 생각했다.

레티시아를 외부로 내보내선 안 된다. 그녀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세상에 한동안 그녀를 노출시켜서는 안 된다.

모든 일은 자신이 도맡을 것이고, 헬리아스도 전쟁도 자신이 끝마칠 것이다.

레티시아가 이 모든 참상을, 배신을, 인간의 추악함을 다 알아야 할 필요는 없었다.

작은 시골 카페를 사랑하고, 여러 사람에게 정을 주며, 버려진 고양이 한 마리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그녀가 이 거대한 광기에 휩쓸리지 않기를 바랐다.

그저 평온하게, 아무것도 모른 채로 평온하게 지내다가…… 언젠가 자신이 원하는 장소로 돌아갈 수 있기를.

체이트는 레티시아를 새장에 가두려는 제 결정을 곱씹으며 자조했다. 누구를 닮았는지, 스스로 느끼기에도 독선적이다.

하지만 다른 방도는 떠오르지 않았다. 오늘의 지옥 같은 일을 다시는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