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여주의 아버지가 독신을 선언했다 (128)화 (128/140)

코렐리아.

아니, 내막을 알게 된 이상 더는 그녀를 ‘코렐리아’라고 부르기 어려웠다.

“아르키드네…….”

나지막한 읊조림을 용케 알아들은 체이트가 내 쪽을 돌아보았다.

“레티시아, 방금 뭐라고 했어요? ……아르키드네?”

그는 영문을 모르는 눈치였다.

“응, 저기에…….”

“저기, 어디 말입니까.”

“……안 보여?”

체이트는 조용히 미간을 찌푸리는 것으로 대답을 갈음했다.

그렇구나. 지금 그녀를 볼 수 있는 건 나밖에 없어. 그렇다면…….

“방금 보셨죠? 아르키드네 신께서 저를 보살피셨습니다.”

일단 입부터 털어야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내젓는 여자는 잠시 못 본 척하기로 했다.

“대주교님께서 손을 쓰신 거 아닙니까?”

의심 어린 질문이 들어왔지만, 체이트는 능란하게 내 편을 들어주었다.

“내가 뭘 했다고? 명색이 사제가 신성의 발현 지점도 구분을 못 하나?”

질문한 사제의 낯이 수치심으로 붉어졌다. 다른 이들은 모두 어안이 벙벙한 얼굴이었다. 사실 체이트도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겠지만, 그는 내게 언제나 협조적이었다.

“성녀님을 의심한 이들에게 곧 준엄한 심판이 내리겠군요.”

체이트의 발언에 반대편 사제들이 겁을 집어먹었다.

“정말 아르키드네 님께서 이곳에……?”

“저 여자를 위해서 힘을 내보이셨다고?”

“저 여자라니, 성녀님께 무슨 망발이야!”

그새 안에서 또 파벌이 나뉘었다. 그들이 옥신각신하는 사이, 체이트가 내 앞에 무릎 꿇었다.

“신의 은총을 나눠주시지요.”

나는 잠시 멍을 때리다가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가 기다렸다는 듯 내 손등에 입을 맞추며 눈을 감았다.

“성녀님께 무한한 경의를 표합니다. 아르키드네의 가호가 당신의 안에서 영원하기를.”

“…….”

“…….”

때마침 햇살이 우리를 비추었고, 사제들이 침묵했다. 이안이 가벼운 웃음을 흘릴 때까지 침묵은 길게 이어졌다.

이윽고 모두가 바닥에 내려앉고 고개를 조아렸다. 나는 줄곧 내 손등에서 입술을 떼지 않고 있는 체이트와 그들을 번갈아 보았다.

백 마디 말보다 값진, 기가 막힌 퍼포먼스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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