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여주의 아버지가 독신을 선언했다 (135)화 (135/140)

나는 입가에 미소를 한번 지었다가 다시 낯을 굳혔다.

긴장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내가 시도하려는 계획은 도박에 가까우니까.

“…….”

내가 조용히 전투 태세를 잡자 그가 맥 끊긴 웃음을 터뜨렸다.

“나와 싸우기라도 하게? 못 이길 텐데.”

“적어도 진력을 빼놓을 수 있겠지. 내가 못 이기면 다른 이들이 마저 싸우면 그만이야. 당신도 알겠지만 우리는 머릿수로 싸우는 피라미들이라.”

“그럼 난 이 몸을 버리면 그만이지.”

“그래 봐. 그 전에 죽여 줄 테니까.”

“죽여? ……나를?”

그가 키들거렸다.

“나조차 날 죽이지 못하는데.”

콰앙! 그가 손을 한번 휘두르자 주변의 모든 게 날아갔다. 분기에 찬 얼굴이 나를 노려보았다.

“사는 게 지루한 와중에 이렇게 신선하게 나와 주니 고마워서 눈물이 다 나네.”

그리고 높이 도약하며 내게 신성을 내리꽂았다. 성력을 방출하여 그의 공세를 막아 보려 했지만 한참 뒤로 밀리고 말았다.

“이번에야말로 영생을 살게 해 주마.”

그가 겨울바람처럼 스산하게 말했다.

“내 그릇으로서 말이야.”

손이 내 이마를 덮쳤고, 다시 나를 억죄려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걸려들었다.’

나는 계획을 실행했다.

그가 내 몸에 들어오려는 바로 그 순간에.

“뭐지? 왜 피하지 않…….”

그는 다급하게 손을 빼려 했으나, 이미 늦은 후였다. 성미 급한 그가 섣불리 현신을 시도한 탓이었다.

“이, 이거 놔……!”

그의 팔을 꽉 붙들고 내게서 떨어지지 못하게 한 채로 기억을 반추했다.

카히텐은 세계를 파괴하고 재구성할 때 이안과 함께 사술을 부렸다.

왜 하필 그래야만 했을까?

이안이 너무 믿음직스러워서? 아니면 그가 자신과 같은 마음이라서?

……아니, 카히텐은 이안에게 관심 없었어. 그저 혼자 해낼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던 거지.

사술은 둘 이상의 의지가 필요하다.

이 세계는 카히텐이 만들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가 짜놓은 계율 안에 갇혀 있다고 보아야겠지만…….

오로지 그의 독단으로 가능한 사술이었다면 이안에게 제안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사술의 시전자는 둘.

그러므로 세계를 재구성할 권리를 지닌 자도 둘이다.

카히텐, 그리고 전생의 이안.

그렇다면…….

“…….”

나는 헬리아스를 붙잡아 둔 채로 아르키드네가 전해준 알 수 없는 주문을 읊었다.

그건 카히텐이 일전에 시도했었던, 세계를 재구성하는 사술의 개방 주문이었다.

“너……!”

헬리아스는 고대어가 섞인 이 주문의 참뜻을 아는 듯했다. 그의 얼굴이 퍼렇게 질려 갔다.

“그만둬, 이 미친 여자가……!”

나는 멈추지 않고 주문을 외웠다.

그는 숫제 나를 협박하기 시작했다.

“나를 데리고 그 사술을 시전하겠다고? 하, 내겐 오히려 좋은 일이지! 내가 인간 여자 따위에게 질 리가 없으니까. 나는 나만의 유토피아를 만들고 그곳의 가장 깊숙한 지하에 널 가둘 거다. 그곳에서 네가 평생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속박의 계율을 만들 거야.”

……시끄럽네. 안 그래도 외우기 더럽게 힘든데 진짜.

“너는 죽느니보다 못한 삶을 살 거다. 아, 네게도 영생을 주지. 그럼 너도 이 삶이 얼마나 무료하고 끔찍한 것인지 알게 될 테니까!”

“……왜? 어차피 너는 기억도 못할 텐데.”

주문의 마지막 한 자를 외우고 그에게 물었다.

“내가? 그럴 리가 없지.”

“……설마 모르는 거야?”

하긴, 이건 권능을 대가로 치르는 사술이다. 평생 쓸 일도 없는 걸 그가 깊이 담아 두었을 리 없었겠지.

헬리아스는 여전히 오만하고 자신만만했다. 자신이 열세가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못 하는 저 얼굴이 역겨웠다.

그래, 원래라면 나는 찍소리도 못하고 당신이 원하는 대로 끌려갔겠지. 사술을 시도한 걸 평생 후회했을 거야.

하지만…… 내가 그저 인간인가?

나는 카히텐의 힘을 근원부터 유실까지 이해하고 있는 유일한 인간이었으며, 그의 전부를 물려받은 여인이었고, 동시에 아르키드네의 유지를 받은 성녀였다.

“인간 따위……?”

빛무리가 우리를 에워쌌다. 나는 명멸하는 배경과 그를 번갈아보다가 코웃음 쳤다.

“인간만도 못한 게…….”

움찔거리는 그의 얼굴이 가소롭기까지 했다. 난 그를 잡아당기고 코끝을 맞댄 채로 노려보았다.

“해 보자고.”

누가 이기는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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