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화 (1/75)

#001화

내 이름은 해그냥이다.

나도 안다. 내 이름 이상한 거.

그간 이름 때문에 당했던 수모를 읊자면 며칠 밤을 새워도 모자라다.

부모가 자식 이름을 이렇게 막 지어도 되냐고, 내 면전에서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무책임하다나 뭐라나.

그런 내가 살다 살다 난생처음으로 내 이름 덕을 봤다.

이름 덕분에 국내 굴지의 대기업 인턴에 합격한 것이다.

첫 출근 날, 부장이 날 불러서 말했다.

“해그냥! 너 간당간당했거든? 근데 내가 너 이름이 마음에 들어서 합격시킨 거야. 그러니까 앞으로 이름값 해라.”

이어지는 부장의 꼰대질을 가슴에 아로새기는 척하며 내 첫 직장 생활은 시작됐다.

인턴 5개월 차에 접어든 요즘,

이 회사에서 날 지켜 줄 것은 오로지 책상을 둘러싸고 있는 삼면의 파티션이 전부다.

키가 큰 건 직장 생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앉은키가 큰 탓에 사무실 사람들과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려면 파티션 안으로 상체를 오그려야 했다.

회의실에선 어김없이 고성이 들렸다. 나진성 부장에게 최선유 대리가 대차게 까이는 소리였다.

“검증부서에서 테스트 페일(Test fail)온 거 웨이브 폼 확인했어? 전무까지 보고된 사항이라 빨리 처리해야 된다고! 너 지금 나 엿 먹이냐?”

간간이 부모님을 들먹이는 패드립이 들리자 난 들고 있던 펜을 키보드 위로 던졌다.

‘왜 저래? 진짜 선 넘네.’

파티션이 가리고 있어서 아무도 내 행동을 보지 못했다.

늘 나의 반항은 자로 잰 것처럼 파티션 안에서만 이뤄졌다.

‘회사 분위기가 거지 같네. 회사는 어딜 가나 다 이런 건지, 여기만 이따윈지….’

ㅡ탁탁탁.

나 부장이 최 대리의 왼쪽 팔을 차트로 치는 소리였다. 최 대리의 팔에는 푸르뎅뎅한 멍이 가실 날이 없었다.

사무실 사람들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것처럼 자기 일에 열중했다.

“저 덜떨어진 새끼.”

고개를 푹 숙인 최 대리가 회의실에서 나오자 계우진 차장이 낄낄댔다. 김인배 사원은 그의 비웃음에 동참하며 비위를 맞췄다.

계 차장은 학벌은 좋은데 정작 실력은 부족했다.

그런데도 윗사람이 좋게 봐줘서 2~3년 특진한 것을 두고 마치 자기 능력인 양 자기 잘난 맛에 살았다.

아랫사람 업적까지 챙겨 먹으면서 또 여자 서무 사원들에게 사람 좋은 척은 오지게 했다.

나 부장과 계 차장은 왜 이렇게 최 대리를 싫어하는 걸까?

최 대리님은 이 사무실에서 인턴사원인 나를 챙겨 주는 유일한 사람이었기에 더욱 마음이 불편했다.

그렇다고 기껏해야 인턴사원인 내가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 에이, 신고를 할 생각이었으면 최 대리가 진즉에 했겠지.

내가 나서서 최 대리님이 더 곤란할 수도 있으니까…. 사실 까놓고 말하자면 모두 핑계다.

내 코가 석 자인데 남을 돕는다는 게 쉬운 일인가. 정규직 전환도 해야 하고.

나랑 인턴 동기인 김주연 씨도 요즘 부쩍 표정이 좋지 않다. 거지 같은 사무실 분위기 때문이겠지.

더디게 가는 시침이 드디어 6을 가리키고, 퇴근 시간이 되었다.

‘아싸! 퇴근.’

사무실 밖을 나오자 그제야 숨통이 좀 트였다. 지금 이 순간, 오로지 내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하아…. 커피 마시고 싶다아….”

퍽퍽한 인턴사원의 삶. 커피는 내 일상의 유일한 낙이었다.

퇴근 시간에 맞춰 지하철역 방향으로 우르르 몰리는 발걸음 사이에서 불현듯 나는 멈춰 섰다.

마치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양 커피 향이 코를 찌르며 나를 붙들었기 때문이었다.

“어? 이 냄새… 커피 향인데?”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맡다 보니 이 커피 향… 시중에 파는 커피와는 차원이 다르다.

‘누룽지 냄새가 나는 게 브라질 원두 같은데, 씁…. 아닌가? 꽃 향이 나는 걸 보면 에티오피아 원두일 수도….’

나는 입맛을 다시며 향이 나는 곳을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뗐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한참을 걸었지만 카페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문득 정신을 차려 보니 벌써 회사에서 제법 먼 거리까지 와 있었다.

‘회사 뒤편에 이런 동네가 있었던가?’

나는 뭐에 홀린 듯 계속해서 향을 쫓아 걸음을 옮겼다.

한참을 걷다 보니 허름한 슈퍼가 눈에 띄었다. 가게 앞에 놓인 평상에 할머니가 하릴없이 앉아 있었다.

“저기 할머니, 혹시 이 커피 향 어디서 나는 거예요? 근처에 커피숍 있어요?”

“커피숍? 여기 근처엔 그런 거 없어.”

“네? 그럴 리가요. 분명 향이 나는데….”

내 말을 들은 할머니가 한탄하듯 말했다.

“커피 향은 무슨, 몇 달 전부터 하수도에서 악취가 나서 민원 넣고 아주 난리인데 이것들이 처리를 안 해 줘!”

나는 할머니의 말이 좀처럼 납득이 가지 않아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다. 분명히 나는데….”

할머니가 혀를 쯧쯧 차기 시작했다.

“훤칠하니 잘생긴 젊은이가 벌써 그래서 어째?”

나는 캔커피라도 사 먹고 가라는 할머니의 말을 뒤로한 채 다시 걸음을 옮겼다.

할머니의 말이 믿기지 않았다. 그럼 지금 내 코에 강렬하게 느껴지는 이 향은 뭐란 말인가. 심지어 이 향은 막 피어오른 듯이 뜨뜻했다.

그렇게 조금 더 걷기를 잠시, 온기를 지닌 묵직한 향이 내 주변을 감싸는 것이 똑똑히 느껴졌다.

“이 근처 같은데.”

그때 좁은 골목 사이에서 자그마한 불빛이 새어 나오는 것이 눈에 띄었다.

나는 골목으로 들어가 작은 창문 사이로 안을 들여다보았다.

아주 작은 크기의, 테이블 2개가 들어갈까 말까 한 공간이었다.

문틈 사이로 살짝 고개를 갖다 대자 강렬한 커피 향이 콧구멍을 들쑤셨다.

“찾았다. 여기구나.”

바로 안으로 들어가 볼까 하다가 잠시 걸음을 망설였다.

간판도 없고, 마땅히 손님도 보이지 않는 것이 혹시나 일반 가정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어쩌지? 들어가 볼까?”

잠시 고민을 하던 나는 카페가 아니라면 원두의 구매처라도 알아낼 심산으로 문을 향해 손을 뻗었다.

똑똑똑.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문에 달린 자그마한 방울이 땡그랑 소리를 냈다.

“저기, 실례합니다. 여기 혹시 카페 맞나요?”

내 또래로 보이는 여자가 수동 그라인더로 원두를 갈고 있었다.

“응, 내가 여기 사장인데.”

그 말을 들은 나는 내심 반색하며 카페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저 따듯한 드립 커피 한 잔 주문하려고요. 지금 이 향을 내는 거로요.”

여자가 힐끗, 나를 보더니 퉁명스럽게 말했다.

“좀 비싼데.”

“괜찮으니까 그냥 주세요.”

커피가 비싸 봤자 커피지. 이 순간만큼은 빈약한 주머니 사정은 개의치 않았다. 향만 맡고 있자니 마음이 괜히 조급해졌다.

“그래? 여유가 좀 있는 편인가 봐? 그렇게까지 말하면 안 줄 수가 없지.”

데면데면 굴던 사장이 갑자기 상냥한 말투로 말했다.

그나저나 왜 손님한테 반말이지.

나는 자리에 앉아 커피를 내리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고양이처럼 살짝 올라간 눈매에 붉은 입술. 눈처럼 하얀 피부는 살짝 메말라 보였고, 검보라색 긴 머리를 한 사람이었다.

쨍한 보라색 니트에 앞치마를 두른 사장이 곁눈질하며 물었다.

“계산 먼저 할래?”

“아, 네. 얼마예요?”

지갑을 찾기 위해 주머니를 뒤지는데 퍼뜩 헉, 하는 느낌이 들었다. 있어야 할 자리에 지갑이 잡히지 않았다.

‘회사에 두고 왔나? 그럴 리가 없는데….’

“돈이 없나 보지?”

난감해하는 내 표정을 포착한 사장이 물었다.

“제가 지갑을 놓고 왔는데, 괜찮으시면 계좌 이체를 해도 될까요?”

사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커피를 내리는 데 집중했다. 곱게 갈린 원두를 크게 한 스푼 떠서 주먹만 한 종이 팩에 담았다.

‘저거 원두 맞나? 색이 특이하네.’

오색 빛깔을 내는 원두 가루가 종이 팩 안에서 백사장 모래처럼 반짝거렸다.

원두가 고르게 갈리지 않았는지 어떤 것은 입자가 크고, 어떤 것은 작았다.

사장은 그 안에 물을 조금 붓고는 종이 팩 양쪽에 달린 나무 손잡이를 엇갈리게 잡았다.

그 모습이 커피보다는 탕약을 짓는 방식과 더 비슷해 보였다.

‘커피 색이 엄청 붉네. 누가 보면 와인인 줄 알겠다.’

잠시 후, 사장이 호박 모양의 잔에 커피를 내왔다.

나는 아직 계산 전이라는 사실도 잠시 잊고, 조심스럽게 향을 음미하고 한 모금을 들이켰다.

“향이 정말 좋네요.”

정말이지, 많은 커피를 마셔 봤지만 이런 맛은 처음이었다.

달콤한 첫맛과 함께 상쾌하게 느껴지는 청량한 향이 입안에 오랫동안 맴돌았다.

범상치 않은 커피 맛에, 문득 커피값이 비싸다는 사장의 말이 떠올랐다.

“아 맞다. 얼마라고 하셨죠?”

사장이 팔짱을 끼고 다소 사악해 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이거 인간 돈으로 사는 거 아닌데.”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이런 부류의 말장난을 좋아하는 사람인가 싶어 사족을 달았다.

“혹시 뭐, 영혼이라도 팔아야 하나요?”

실없이 한 말이었는데, 그 말을 들은 사장의 표정이 자못 심각해졌다.

“영혼? 너 내가 그렇게 비양심적인 사람으로 보여? 아무리 그래도 커피 한 잔에 영혼까지 달라고 하는 건 좀 오버지. 난 그런 장사는 안 해.”

“아…. 네.”

이상한 사람인 게 분명했다. 멋쩍어하면서도 나는 손에서 잔을 내려놓지 않았다.

기분 좋은 향이 계속해서 입안을 적셨다.

내가 홀짝홀짝 커피를 다 마실 때까지 사장은 별다른 말을 걸지 않았다.

“근데 진짜 얼마예요? 제가 지금 바로 이체를….”

다시 말을 이으며 마지막 한 모금을 들이켜는 순간, 갑자기 몽롱한 기분이 들며 좁았던 카페가 순식간에 팽창하듯 넓어 보이기 시작했다.

“잠깐, 혹시 이거 커피가 아니라 술이에요? 제가 지금 헛것이 좀 보이는 거 같은데?”

좁았던 커피숍이 순식간에 수십 평은 되어 보이는 크기로 넓어져 있었고, 테이블마다 가지각색의 손님들이 커피와 디저트를 즐기고 있었다.

당황하고 있기를 잠시, 이번에는 사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개구리 틀니 두 개.”

“네?”

“커피값. 아니면 까마귀 눈알 세 개 주든가.”

대체 뭔 말인가 싶어, 저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여전히 얼이 빠져서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 내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주문 끝났으면 비켜.”

천장에 닿을 정도로 키가 매우 크고, 턱수염을 노랗게 염색한 중년의 남성이 개구리 두 마리의 뒷다리를 잡고 흔들고 있었다.

“분명 내가 틀니만 가져오라고 했을 텐데? 이러면 내가 일을 두 번 해야 되잖아.”

노란 턱수염의 남자가 끌끌 사람 좋게 웃어 보였다.

“이게 가지고 다니기 편해. 저번에 틀니만 빼서 들고 왔더니 주머니 속에서 내 손가락을 물었어.”

“그거야 당신 사정이지.”

남자가 계산(?)을 마치고 사라지자, 뒤에 서 있던 붉은 판초를 입은 여자가 앞으로 나왔다.

여자가 손에 들고 있는 자루를 열어 정체 모를 눈알같이 생긴 것을 꺼내 테이블 위에 꺼내 놓았다.

“여기 까마귀 눈알, 매일 마시던 거로 줘.”

눈알이라는 소리를 듣자 온몸에 소름이 돋으면서 털이 곤두섰다.

나는 아득해지는 의식을 필사적으로 붙잡았다.

‘정신 차리자. 꿈일 거야. 그러지 않고서야…. 이건 말이 안 되잖아.’

나는 간신히 자리에서 일어나 내가 들어왔던 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어, 죄송해요.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나는 말 같지도 않은 핑계를 대며 내가 들어온 문을 열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하지만 문을 열고 나간 그곳은, 마치 거울을 연 것처럼 다시 카페 안이었다.

“화장실은 저쪽인데.”

몇 번이고 문을 박차고 뛰쳐나갔지만 제자리걸음이었다.

벌러덩 넘어진 채로 얼빠진 표정을 짓는 날 보며 사장이 콧방귀를 뀌었다.

“그래서 커피값은 어떻게 할 거야? 진짜 영혼이라도 내놓게?”

나는 간신히 정신 줄을 부여잡으며 태연한 척 사장의 말에 대답했다.

“아뇨. 영화를 봐도 영혼을 판 주인공의 끝은 늘 불행하더라고요.”

“오호. 본인이 주인공이시다?”

“아니, 제 말은 그게 아니라….”

그때 선득한 바람을 맞은 것처럼 닭살이 오소소 돋았다.

사장을 비롯해 카페 안에 있는 손님들의 시선이 모두 나에게 쏠렸기 때문이다.

상황이 심상치가 않다. 이게 꿈이든 현실이든 간에, 어떻게 해서든 여기를 벗어나야만 한다.

그렇게 머리를 쥐어짜 내서 겨우 입에서 튀어나온 말이,

“외상 안 될까요?”

“뭐?”

갑자기 사장의 얼굴에 핏기가 가시고 서릿발이 섰다.

무섭다. 이럴 때는 재빠르게 태세 전환.

“하하…. 역시 안 되죠? 그럴 거 같았어요. 그럼 제가 마신 커피값을 치를 때까지 여기서 일을 좀 하면 어떨까요?”

“뭐? 일?”

사장이 삐딱하게 고개를 까딱하더니 문득 뭔가 생각났다는 듯 테이블 구석에 보따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나쁘지 않네. 마침 귀찮아서 미루던 일이 있었는데. 당신, 까마귀 눈알 감별은 할 줄 알아?”

“까마귀 눈알 감별… 이요?”

사장이 하찮아 죽겠다는 표정으로 비웃으며 말했다.

“넌 대체 뭐야? 마법사라는 놈이 까마귀 눈알도 모르고. 아까부터 계좌 이체니 뭐니 인간들 말이나 써 재끼고.”

쾅-!

사장이 바 테이블을 내리치고는 내 눈을 빤히 바라봤다. 눈을 피하면 질 것 같은 기분에, 나도 사장의 눈을 응시했다.

“잠깐! 너… 그 눈동자.”

사장이 짐짓 놀랐다는 듯, 안 그래도 큰 눈을 더 크게 뜨며 말했다.

“너… 혹시 혼혈이니?”

“네?”

갑작스럽게.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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