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화 (2/75)

#002화

지금 저 여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도, 제정신이 아닌 게 분명했다. 나더러 뭐? 마법사? 혼혈?

“지금 뭔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거든요?”

“네 눈동자 말이야. 오른쪽은 짙은 갈색이고, 왼쪽은 보라색이잖아.”

“이게 보여요?”

나는 내 눈을 검지로 가리키며 물었다.

난 양쪽 눈동자 색이 달랐다. 어린 시절부터 이 사실을 감추려고 투박한 검은색 뿔테 안경을 쓰고 다녔다.

그리고 나중에서야 알았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내 눈동자 색이 보이지 않는다는 걸. 애써 감출 필요가 없었다는 걸.

분명 내 눈에는 보이는데, 어째서 남들 눈에는 보이지 않을까? 안과에 가도 그 원인은 찾을 수 없었다.

아무렴 다른 사람들 눈에만 평범하게 보이면 됐지, 하면서 넘겼었는데….

난생처음이었다. 내 눈동자가 보라색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마법사와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자는 양쪽 눈동자 색이 다르다고 하지. 요즘은 워낙 드물어서 보는 건 나도 오랜만이야.”

하도 어이가 없고, 황당해서 말문이 막혔다. 사장은 알아들을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말만 늘어놨다.

“뭐 아무튼 마법이란 게 진짜 있다고 쳐요. 그래도 제가 혼혈일 리는 없어요.”

“어째서? 너도 네 눈이 남들과 다르다는 건 알고 있었잖아. 마력이 없는 인간들은 보지 못했겠지만.”

사장이 팔짱을 끼고, 삐딱한 자세로 서서 내 말을 따박따박 반박했다.

“혼혈이란 건 부모님 중 한 분이 마법사였다는 거잖아요. 근데 두 분 다 평범하셨는데….”

“너 방금 커피 향 맡고 찾아왔다고 했지? 이 향은 인간은 못 맡아. 이 답답한 양반아!”

난 거의 가출 직전인 정신을 간신히 부여잡고 침착하게 생각했다.

‘상대하지 말자. 일단 대충 장단을 맞춰 주고 이곳에서 나가는 거야.’

사장이 보내 줄 때까지 내가 스스로 이곳을 나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 거 같으니.

“아까 말씀하신… 그 까마귀 눈알 감별? 그거 어떻게 하는 건지 알려 주시면 해 볼게요.”

“그렇게 커피값을 때우시겠다? 뭐, 그러든가.”

사장이 길고 뾰족한 손가락으로 구슬처럼 생긴 것을 가리키며 말했다.

“일단 저기 까마귀 눈알 보이지? 거기에 마력을 흘려보내 봐.”

까마귀 눈알이라고는 했지만, 언뜻 보기엔 그저 흑록색의 구슬 같았다. 심지어 빛을 받으면 반짝거려 예뻐 보이기까지 했다.

“저는 마법 같은 건 쓸 줄 모른다니까요!”

“나 참! 답답하네. 너 이씨…. 일로 와 봐.”

사장이 대뜸 내 가슴 위에 손을 척 올렸다.

예상치 못했던 행동에 놀라 사장의 손을 뿌리치려 했지만, 뭔 힘이 이리 센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가만히 좀 있어 봐.”

사장은 내 가슴에 손을 살포시 얹고 잠시 무언가에 집중했다.

그 순간 사장의 손에서 열기가 느껴지면서 심장 언저리가 저릿한 느낌이 들었다.

“서클도 멀쩡히 잘 있고만! 왜 그래?”

“방, 방금 뭐 하신 거예요?”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분명 뭔가 느껴졌다. 뭐라 표현할지도 모르겠는, 낯설고 생경한 느낌이었다.

“네가 하도 마법을 못 쓴다고 헛소리를 지껄이길래 서클을 확인해 봤지. 잘만 움직이네.”

“서…클?”

그 말을 듣고 난 뭔가에 홀린 듯 천천히 까마귀 눈알 하나를 집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음에도, 자연스럽게 손끝에서 절로 무언가 흘러 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어…? 어???”

까마귀 눈알이 내 손끝에서 나오는 빛과 만나 영롱한 빛을 냈다.

“잘하네. 거봐! 내가 뭐랬어. 또 우기기만 해.”

내 안에 정말 마력이 흐른다는 말인가? 빛이 사라진 후에도 난 여전히 내 손끝을 보고 있었다.

“아무튼 마력을 흘려보냈을 때 빛을 내면 진짜고, 탁해지면 가짜니까 그렇게 알고. 얼른 해!”

정말 마법이라는 게 존재했구나. 당장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도심 한복판에 이런 곳이 있었다니….

“근데 아까부터 궁금했거든? 넌 왜 엉덩이를 까고 다니는 거야?”

“네? 그게 무슨 말…. 아!”

난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급히 손으로 엉덩이 쪽을 더듬었다.

박음질이 뜯겨서 너덜너덜한 천 쪼가리가 만져졌다.

‘뭐야! 언제 찢어졌지?’

여기서 도망친답시고 문을 박차고 나가다가 넘어졌는데, 아무래도 그때 뜯긴 모양이었다.

“요즘 인간 세상에서 새로 유행하는 패션이야? 짐승들이 곧잘 하는 일종의 구애 행위 같은 거?”

놀랍게도 사장은 비아냥거리거나 조롱을 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어 보였다.

‘비꼬는 게 아니라 정말 진지하게 묻는 거야?’

난 민망한 마음에 황급히 벽에 등을 대고 섰다.

“그런 거 아니거든요? 아까 넘어지면서 찢어진 거예요.”

사장이 신기한 생명체를 관찰하듯 어슬렁거리며 다가왔다.

“아, 어딜 보시는 거예요? 절로 가요!”

“내가 커피숍 이전에 잠깐 의상실을 했었거든? 근데 이렇게 싸구려 천은 오랜만이야. 어디 짐승을 갖다 줘도 마다할 거적때기를 옷이라고 입고 있어?”

“그 정도는 아니에요. 아울렛에서 산 거구만….”

“그래. 쯧! 뭐 너라고 그걸 입고 싶어서 입었겠냐. 가만 보자….”

사장은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눈짐작으로 내 어깨와 허리 치수를 재고 있었다.

“허리는 길고, 다리는 짧은 체형이군.”

“저 다리는 긴 편이에요!”

사장은 잠시 부엌으로 가더니 두루마리 옷감을 가지고 나와 탁자 위로 펼쳤다.

“음…. 이 색이면 적당하겠어.”

사장이 가위를 들어 공중에 가위질을 하자 천이 알아서 이리저리 잘려 나갔다.

이어 사장이 공중에서 바늘을 든 손을 마구 휘젓자, 따로따로 나뉘어 있던 옷감들이 점점 모여 하나의 옷 모양을 갖춰 나갔다.

나는 순간 창피함은 잊고 공중에서 탱고 춤을 추듯 만들어지는 옷자락을 넋을 놓고 쳐다봤다.

“우와….”

“옜다. 카페 첫 방문 기념 선물이라고 해 두지. 아…. 나 왜 이렇게 친절해? 너무 싫어. 어우 소름 끼쳐.”

사장은 자신이 선의를 베풀었다는 사실을 못 견디겠는 듯이 질색하며 주방으로 달아났다.

그 틈을 타서 난 탁자 위에 놓인 정장을 살폈다. 한눈에 봐도 때깔이 반들반들하니 고급 원단이었다.

‘이런 걸 얻어 입어도 되려나?’

어쨌든 엉덩이가 터진 채로 집에 갈 수는 없으니 염치 불고하고 입었다.

‘와…. 예쁘긴 진짜 예쁘네.’

이제껏 싸구려를 마다하지 않던 나였지만 이래서 사람들이 비싼 옷을 입는구나, 처음으로 절감했다.

사장은 어느새 다시 홀로 나와 내가 옷을 입은 것을 보고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근데 너 이름은 뭐야? 아직 소개도 안 했네.”

“저요? 해그냥이요.”

“해그냥?”

“이름이 좀 이상하죠? 저도 알아요. 이상한 거.”

“좋은데? 너한테는 좀 과분한 거 같긴 하지만.”

“해그냥이란 이름이 좋다고요? 그런 이야기는 난생처음 듣네요.”

사장이 놀리려고 한 말인가 싶었지만, 덤덤한 표정을 보아하니 그런 것 같진 않았다.

“무식하긴. 해그냥은 휴양지 이름이야.”

“휴양지요?”

“그래. 해그냥은 마법사 지역에서도 가장 남쪽 지방에 있는 작은 섬인데 금빛 석양이 아주 멋진 곳이지.”

사장은 그곳을 떠올리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지 아련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무튼 부모님이 이름 한번 과분하게 잘 지었네. 딱히 너한테 어울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글쎄요. 그 섬이랑은 상관이 없을 텐데…. 사장님은 이름이 뭐예요?”

“내 이름은 알아서 뭐 하려고. 이레야. 이레.”

난생처음으로 빈정거리거나 놀리려는 의도가 아닌, 진심으로 이름이 예쁘다는 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묘했다.

어느덧 깊은 어둠이 도처에 깔리자 카페에 북적이던 손님들도 하나둘 자리를 비웠다.

“사장님? 저도 이만 가 봐야 할 거 같은데….”

난 주섬주섬 짐을 챙기며 최대한 자연스럽게 말했다.

“어딜 가? 돈 떼먹고 가려고?”

“그게 아니라 내일 아침에 출근해야 해서요. 그리고 오늘 일한 걸로 부족해요?”

내 말에 사장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팔을 걷어붙이며 말했다.

“하! 어이가 없어서 원. 그런 식이라면 1년도 부족해. 아무튼 내가 널 뭘 믿고 보내 줘? 넌 그냥 여기 안 오면 그만이잖아.”

“1년이요? 커피값이 그렇게 비싸다고요?”

“그럼 담보로 안경이라도 두고 가.”

“안경요? 저 이거 없으면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그럼 가지 말든가.”

“두고 갈게요.”

지금 안경이 대수랴. 나는 안경을 벗어 놓고, 뿌옇게 변한 시야 속에서 황급히 출구를 찾았다.

문고리를 당겨서 나가려는 와중에 뒤쪽에서 사장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뭐 이런 싸구려 마법이 걸린 걸 안경이랍시고 쓰고 다녀? 한심하긴.”

사장의 말을 듣고 놀라 다시 문고리를 당겨 보았지만 이미 문은 잠겨 있었다.

‘내 안경에 마법이 걸려 있었다고?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네.’

일단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자 싶어 서둘러 발걸음을 돌리는데, 주머니에서 무언가 만져졌다.

잃어버린 줄 알았던 지갑 그리고….

“어? 이게 뭐지?”

미끈거리는 촉감의 익숙한 뭔가가 손가락 사이를 방정맞게 오갔다.

까마귀 눈알 한 개가 어느새 주머니 속에 들어와 있었다.

“이건 또 언제 주머니에 들어온 거야?”

사장이 까마귀 눈알이 없어진 줄 알면 ‘내가 도둑놈을 들였다’며 노발대발할 게 뻔했다.

돌아가 문고리를 잡고 다시 흔들어 봤지만 굳게 닫힌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난 까마귀 눈알을 카페 문 앞에 살포시 내려놓았다.

“여기 두면 누가 알아서 갖고 들어가겠지. 난 다신 여기에 올 일이 없으니까.”

서둘러 그곳을 벗어나는데 뒤통수에 싸한 느낌이 들어 뒤로 돌았다.

까마귀 눈알은 통통 튀어서 내 뒤를 쫓아오고 있었다.

“뭐야 지금, 나 따라오는 거야? 진짜 산 넘어 산이네.”

저리 가라고 손사래를 치고, 전력 질주로 도망도 쳐 봤지만 소용없었다.

눈알은 내 눈치를 보더니 데굴데굴 굴러서 구두 앞코에 툭 하고 부딪쳤다.

“휴…. 어쩔 수 없네.”

난 까마귀 눈알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눈알이 고급 실크 원단처럼 손가락 사이를 부드럽게 빠져나가는 촉감이 중독성 있었다.

“정신 차리자. 지금 뭔가에 홀린 게 분명해.”

우선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안경을 다시 맞추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뭐지…? 왜 잘 보이지?”

눈을 비벼도 보고, 크게 떴다 감았다가도 해 봤지만 여전히 안경을 쓴 것처럼 또렷하게 잘 보였다.

“…진짜 마법인가?”

평생을 뿌연 시야 속에 살았는데, 확실히 마법 같은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어안이 벙벙한 채, 난 다시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까마귀 눈알은 탱탱볼처럼 튀어서 주머니 속에서 빠져나갔다.

오늘 있었던 일들이 마치 오래전에 꿨던 해괴한 꿈처럼 느껴졌다.

특히나 내 이름이 휴양지 이름과 같다는 사실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우연이겠지. 우리 부모님이 마법사 지역 남부에 있는 휴양지 이름을 알 리가 없잖아.’

하지만 나도 엄마가 내 이름을 대충 지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여전히 내 이름을 처음 듣는 사람은 질색하며 ‘이름이 왜 저따위야’라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개명을 생각한 적은 없었다.

‘부모님이 내게 남긴 게 이 이름 석 자밖에 없으니까.’

정말 엄마나 아빠 중에 마법사가 있었던 것일까. 내가 마법사와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이라고?

자꾸만 허무맹랑한 생각이 들어 고개를 마구 저었다.

심란한 마음에 시원한 맥주 한 캔을 땄다. 까마귀 눈알이 식탁 위로 튀어 올라와 하얀 맥주 거품이 사그라드는 것을 구경했다.

내가 겪은 일이 결코 꿈이나 환상이 아니라고, 눈앞에 있는 까마귀 눈알이 말하는 듯했다.

묘한 기분에 사로잡혀 눈알을 한참 바라보자, 마치 무슨 일이냐는 듯 눈알이 좌우로 기우뚱거렸다.

‘보다 보니 쟤도 귀여운 구석이 있네.’

맥주를 다 마실 때쯤 난 책상 맨 아래 서랍을 뒤졌다.

그곳에는 돌아가신 부모님이 남긴 유품이 있었다.

유품이라고 해 봐야 베이지색 스웨터 한 벌, 양초 예닐곱 개, 만년필, 보라색 머플러 그리고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낡은 엽서 한 장이 다였다.

아버지는 내가 태어나던 날에 지병으로 돌아가셨고, 엄마는 중학교 2학년 겨울방학 때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때 욕조에 고인 물에서 첨벙거리며 놀던 까마귀 눈알이 심심한지 데구르르 굴러왔다.

사람은 때때로 알 수 없는 즉흥적인 행동을 하고, 그렇게 인생의 새로운 챕터를 연다.

난 무심결에 옆에 놓인 까마귀 눈알을 집어서 부모님의 유품을 비춰 보았다.

그때 갑자기 엽서에 짙은 파란색 잉크가 번지기 시작했다. 그 잉크가 모여 글자를 이뤘고 곧이어 엽서를 가득 채운 글이 보였다.

“이, 이게 무슨…?”

난 떨리는 손으로 간신히 엽서를 잡고, 적힌 글을 읽어 내려갔다.

어머니가 쓴 편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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