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화
어쩌면 굳이 초가 알려 주지 않아도 예견된 일인지도 몰랐다. 그냥 모른 척하고 싶었을 뿐.
최선유 대리는 내가 조금 참으면, 내가 좀 더 잘해 주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지만, 나 부장과 계 대리는 이런 그의 마음을 인질 삼아 자존감을 짓밟았다.
최근엔 그 유치하고 악랄한 괴롭힘이 절정에 다다른 사건이 있었다.
회식 날이었는데 갑자기 계 차장이 최 대리의 어깨를 주무르며 한껏 느끼한 목소리로 말했다.
“최 대리가 고기 하나는 기가 막히자 굽잖아. 그지?”
“네. 제가 맛있게 구워 보겠습니다.”
최 대리는 분위기를 맞춰 보려는지 속없이 웃으며 팔을 걷어붙였다.
“이 테이블이랑 바로 옆에 테이블 동시에 할 수 있지?”
“두, 두 개를 다요?”
정신없이 양쪽 고기 판을 오가며 고기를 뒤집고 자르던 그의 이마에 땀이 맺혔다.
고기 굽는 연기가 그의 와이셔츠에 흠뻑 배일 동안 그는 고기 한 점을 입에 넣지 못했다.
난 접시에 잘 익은 고기를 차곡차곡 쌓은 뒤 그의 앞으로 슬며시 밀어 넣었다.
내 이런 소극적인 행동은 방관자로서 죄책감을 덜어 내려는 같잖은 노력일 뿐이었다.
최 대리는 모두가 젓가락을 내려놓을 때가 돼서야 식사를 시작했다.
“걸신 들렸어? 고기를 먹어도 넌 왜 이렇게 없어 보이게 먹냐?”
나 부장은 이제 막 식사를 시작한 최 대리를 거지 취급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를 볼 때면 차라리 때려치우지, 미련하게 버티나 싶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그가 이전에 한 말이 떠올랐다.
한 달 전쯤인가. 회식이 끝나고 같은 택시를 탔을 때 들은 이야기였다.
내밀한 이야기를 나눌 정도의 사이는 아니었던지라, 난 그가 술기운을 빌렸으리라 짐작했다.
“해그냥 씨, 제가 지난해 학자금 대출을 다 갚았는데요. 올해부터는 동생 대학 등록금을 내게 됐어요.”
그는 인턴인 내게도 꼬박꼬박 존댓말을 썼다.
“재수를 하더니 원하는 대학에 간 모양이에요. 지 말로는 알바 하면 된다고 하는데…. 제가 해 봐서 알잖아요. 그게 얼마나 힘든지.”
“대리님 동생이 부럽네요. 좋은 형을 둬서요.”
“글쎄, 잘한 짓인지 모르겠네요.”
자신이 더 힘든 만큼, 가족들은 덜 힘드리라. 그게 최 대리가 삶을 버티는 방식이었다.
우연히 본 최 대리 책상 맨 위 서랍에는 언제나 사직서가 있었다.
하지만 동생의 학비와 다달이 본가로 보내는 생활비 때문에라도 그는 사직서를 꺼낼 수 없었다.
“해그냥 씨는 K 대학 나왔죠? 전 지방 국립대 나왔거든요. 이 회사에서 저 같은 지방대 출신은 10% 될까 말까 해요. 전요, 제 인생의 모든 운을 이 회사에 들어오는 데 몰빵했다고 생각했어요.”
“네….”
그의 마음을 알 것도 같았다. 나 역시 인턴도 겨우 합격했으니.
“군대에서 사이코라고 불리는 선임이 있었거든요? 그래도 전역이라는 끝이 있으니까 이 악물고 견뎠어요. 근데 회사는 달라요. 끝이 없어요.”
최 대리는 택시에서 내리며 말했다.
“이 회사는 절 선택할 수 있었지만, 전 선택권이 없거든요. 저한테 회사를 관두는 선택지는 애초에 없었어요.”
최 대리님은 생계형 직장인이었다.
그를 보고 있자면 미래의 내 모습을 보는 느낌이었다. 그것도 정규직 전환이 돼야 가능했지만.
“휴우…. 지친다.”
야근하느라 자정이 가까워 집에 들어온 나는 도통 잠을 이루지 못했다.
책상 위엔 여전히 아버지의 스웨터가 놓여 있었다.
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셨으니 기억이 있을 리가 없지.’
난 온전히 아버지를 위해서 울어 본 적이 없었다.
기억이 나지 않는 존재를 사랑하는 게 가능한 일일까? 나는 늘 그게 궁금했다.
피로 얼룩진 아버지의 옷을 보면서 처음으로 난 온전히 그를 위해서 울었다.
어쩌면 죽지 않아도 됐었을 가여운 남자를 위해.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을 두고, 죽임을 당했을지도 모르는 한 남자를 위해 울었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최 대리에게까지 이어졌다. 아버지가 최 대리 나이 즈음 돌아가셨기 때문일까?
‘최 대리가 죽는다고? 그가 왜 죽어야 하지?’
난 그의 죽음의 징조에 책임감을 느꼈다. 남의 일에 책임감이라니… 평소 같았으면 가당치도 않은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스웨터를 본 직후여서일까. 머릿속에 최 대리를 이대로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
‘이보다 더 싫을 수는 없다’는 한계점을 매번 갱신하는 출근길, 난 심란한 마음을 커피로 달래고 있었다.
‘사장님이 내려 주는 커피에 비하면 이건 뭐 운동화 빤 물 수준이네….’
형편없는 커피에 투덜거리다 보니 어느새 사무실이었다.
‘뭐지? 이 싸한 분위기는?’
사무실 분위기를 보아하니 잠깐 사이에 뭔가 어마어마한 일을 놓친 듯했다.
회의실에서 비정규직 용대용 씨가 최 대리를 부축하며 나왔다.
‘설마 때린 거야?’
최 대리는 한쪽 다리를 살짝 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내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오묘한 색깔로 바뀔 때쯤 계 차장의 고함 소리가 들렸다.
“저거 어디 가서 콱 뒈져 버리면 속이 다 시원하겠네. 쓸모없는 새끼.”
용대용이 서둘러 최 대리를 부축해서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바로 밑에 층 테라스로 향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두 사람을 뒤따랐다.
“계 차장 말이에요. 요즘 와이프한테 이혼 소장 받았다더니 어째 더 미쳐서 날뛰네요.”
용대용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최 대리의 어깨를 다독였다.
그는 최 대리와는 입사 동기지만, 비정규직이라는 신분 때문에 직함이 없었다.
모두가 그를 직함이 아닌 이름에 씨를 붙여서 ‘용대용 씨’라고 불렀다.
“대용 씨, 어서 들어가요. 저 때문에 차장한테 밉보이면 어떡해요.”
최 대리는 이 와중에도 다음 달 재계약 심사를 앞둔 그를 걱정했다.
용대용은 또래보다 일찍 결혼해서 벌써 어엿한 두 아이의 아빠였다.
쭈뼛거리며 뒤를 따라가던 나는 그들과 눈이 마주쳤다. 나는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죄송해요.”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해그냥 씨가 왜 미안해요.”
최 대리는 상대방을 편하게 해 주기 위해 짓는 특유의 애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동안 모른 척해서 죄송합니다.”
“…네?”
“그러니까 행여나 나쁜 생각은 하지 마세요.”
내 행동에 최 대리뿐만 아니라 용대용도 놀랐는지 어안이 벙벙했다.
난 도망치듯 테라스를 빠져나왔고, 문을 닫으려고 뒤를 돌았을 때 최 대리가 눈가를 훔치는 모습을 보고야 말았다.
난 후들거리는 다리로 겨우 사무실로 돌아왔다. 어쩌면 내가 진짜 두려워했던 건 부장이나 차장이 아닌 최 대리가 아니었을까?
그렇게 노력형 개인주의자였던 나는 비로소 그를 돕기로 다짐했다.
다만 그를 어떻게 도와야 할지가 문제였다.
***
퇴근 후 서둘러 카페로 향했다.
이곳에서라면 그를 도울 방도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계획대로 다음 주 주말에 1마을에 가려면 그 전까지 최 대리 일을 반드시 해결해야만 했다.
‘1마을에 다녀온 사이에 최 대리님이 어떻게 되기라도 하면….’
나는 고개를 가로저어 떠오르는 몹쓸 생각을 간신히 날려 버렸다.
사장과 바로 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카페는 오늘따라 손님이 북적거렸다.
마침 보라색 스카프를 두른 사장이 주방에서 딸기 푸딩을 가지고 나왔다.
달콤한 냄새에 절로 군침이 돌 무렵 난쟁이 손님들이 거위 다리를 거꾸로 들고 카페 안으로 우르르 들어왔다.
‘이 사람들은… 난쟁이? 게다가 웬 거위?’
사장은 익숙하게 거위의 발바닥을 들고 오동나무 빗으로 쓱쓱 빗었다.
거위가 간지러운지 웃음소리같이 꽥, 꽥, 소리를 냈다. 거위의 왼쪽 발바닥에서 노랗게 반짝이는 가루가 솔솔 떨어졌다.
그때 공기에 날린 거위 발바닥 가루 때문인지 코가 근질거리더니 재채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에취!”
그 모습을 본 사장이 피식 웃었다.
“여기선 비싼 향신료인데, 인간들은 이 가루를 맡으면 꼭 재채기를 하더라.”
그때 테이블 위를 딱딱거리며 돌아다니던 개구리 틀니가 재채기를 하느라 입을 크게 벌린 틈을 타서 입속으로 쏙 들어갔다.
“어?”
내가 입속에 무언가 들어왔다가 눈치를 챘을 땐 이미 교정기를 낀 것처럼 윗니에 초록색 고무줄이 걸린 후였다.
“근데 저… 갑자기 속이 좀 안 좋은데요.”
속이 메슥거리더니 헛구역질이 나왔다.
곧이어 내 입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말을 뱉기 시작했다.
“지금 이렇게 장사나 할 때가 아니라고요. 최 대리님 정말 죽기라도 하면 어떡해요! 남 일이라고 이렇게 한가하게 굴 거예요?”
사장이 아랫입술을 씰룩거리며 째려보는데도 말을 멈출 수 없었다.
“물론 최 대리님이 괴롭힘당할 동안 모른 척했던 제 책임도 있어요. 그래서 더 만회하고 싶다고요!”
사장은 검지를 들어 공중에서 가로로 휙 저었고, 이에 끼워진 틀니가 툭 떨어졌다.
입에서 떨어져 나온 개구리 틀니는 딱딱 소리를 내며 주방으로 황급히 사라졌다.
“방, 방금 뭐예요? 갑자기 저도 모르게 말을 막 내뱉었던 거 같은데….”
“개구리 틀니를 끼는 사람은 속마음을 털어놓게 돼. 사소한 진실부터 감추고 싶은 비밀까지 모두 말하게 되지.”
‘속마음을 모두 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에 최 대리를 구할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잠시만요. 저 지금 좋은 생각이 났어요.”
난 우선 사장에게 그간 최 대리에게 있었던 일을 모두 털어놓았다.
“뭐 그런 개뼉다귀같은 놈들이 있어? 내가 가서 똥구멍을 꿰매 버릴까? 그럼 머지않아 주둥이에서 똥이 나올 텐데 아주 볼 만할 거야. 말만 해!”
난 흥분한 사장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그것도 괜찮은 방법이긴 한데 방금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요!”
“그게 뭔데?”
“사장님이 몇 가지만 빌려주시면 될 거 같은데….”
나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