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6화
내가 다니는 회사는 국내 굴지의 반도체 기업으로 시가 총액 230조, 임직원 규모도 국내외 총합 38만 명가량 됐다.
회사에는 초대 회상이 부정 척결, 자정 경영의 목표를 두고 출범시킨 내부 감사팀이 있었다.
그들은 서슬 퍼런 회사 내의 저승사자로 불렸다.
회사 내에 다음 주 연중 감사를 위해서 경영 진단팀장이 방문할 거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그날이 디데이였다.
난 최선유 대리를 구하고, 나진성 부장과 계우진 차장을 엿 먹일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
드디어 결전의 날이 밝았다. 난 아침 일찍 일어나 사장이 흔쾌히 빌려준 준비물들을 챙겼다.
우선 삼단 도시락통에 개구리 한 마리씩 총 세 마리를 담았다. 틀니만 넣었다간 분명 도시락통을 부수고 나올 게 뻔했다.
통 안에는 개구리가 좋아하는 말린 곤충을 넉넉히 넣어 두었다.
그리고 품 안에는 거위 발바닥 가루를 싼 종잇조각을 고이 넣었다.
“아, 떨려서 미치겠네.”
무기력하게 산 지도 수년째, 이렇게 의욕적으로 뭔가를 한 게 언제였던가.
온몸의 세포가 깨어나고, 피가 도는 생경한 느낌! 모든 계획은 머릿속에 있다.
극도의 흥분감 속에서 나는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후…. 이럴 때일수록 침착하게.”
나진성 부장은 오늘 최훈 감사팀장과 점심을 먹고 함께 부서에 들를 예정이었다.
속이 좋지 않다고 핑계를 대고 혼자 점심을 거른 나는 텅 빈 사무실로 향했다.
턱밑까지 차올라 팔딱대는 심장 소리를 들으며 품에서 거위 발바닥 가루를 꺼냈다.
곱게 접은 종이를 펼쳐서 나 부장과 계 차장의 자리에 솔솔 뿌렸다.
노란빛을 내던 가루는 이내 공중으로 흩어져 보이지 않았다.
‘혹시 몰라서 콧구멍에 휴지를 끼웠는데도 코가 근질거리네.’
참고 참다가 결국 재채기가 나왔고, 손에 들고 있던 나머지 가루들이 공중에 흩날렸다.
마법사가 아닌 사람들에겐 보이지 않으니 망정이지, 누군가가 봤다면 이게 뭐냐고 호들갑을 떨었을 법한 모습이었다.
그때 하필 사무실 휴지통을 비우고 있던 아주머니가 그 가루를 정통으로 맞고 말았다.
“에취! 에취!! 어머, 왜 이래? 에취! 에취!!”
눈물, 콧물을 쏙 뺀 아주머니는 결국 사무실 바로 옆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다.
그 뒷모습을 보며 난 머쓱하게 ‘죄송해요’라고 읊조렸다.
‘어? 잠깐만….’
아주머니는 회사 내 어디에도 접근할 수 있지만,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존재였다.
‘저분이라면 회사 곳곳의 소문을 다 알고 계실지도….’
머릿속에 어떤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쯤, 사무실 사람들이 감사팀장과 함께 우르르 몰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난 급히 도시락통에서 개구리를 꺼내 왼쪽 겨드랑이를 간질였다. 개구리가 까르르 웃으며 틀니를 떨어트렸다.
양손에 틀니를 꽉 쥐고, 나 부장과 계 차장이 재채기를 하는 순간을 기다렸다.
그때 김인배 사원이 상사 의전을 하겠답시고 먼저 사무실 안쪽으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계 차장 자리 바로 앞에 서서 사무실 소개를 하려던 김 사원이 가루를 맡고,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감사팀장님, 여기가 SOC 개발실입니다. 여기는 계 차장님 자리고, 바로 건너편이 제…. 에취! 에에에에취! 죄송합니다. 갑자기 기침이…. 에취!”
그때, 손에 붙들려 있던 개구리 틀니가 버둥거리더니 김 사원의 입속으로 기세 좋게 들어갔다.
‘어?! 저기가 아닌데!’
이어 그의 입안에 옅은 초록색 고무줄이 끼워진 게 보였다.
“우… 우웩!”
그는 헛구역질을 하더니 금세 큰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제가 지난주에 RTL 하드웨어 테스트 툴을 이번에 계약한 업체 사장이랑 같이 골프를 좀 쳤거든요? 끝나고 술도 마시고 시계도 나눠 가지면서 아주 돈독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뭐요? 김인배 사원, 지금 뭐라고 했습니까?”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것도 아니고 난데없는 그의 말에 최훈 감사팀장의 귀가 번쩍 뜨였다.
“김 사원! 지금 여기가 어디 앞이라고 실언을 하는 건가!”
나 부장은 다소 당황한 듯했지만 아직까지 여유 있게 대응하며 엄한 표정으로 그를 꾸짖었다.
“왜 그래요? 나 부장님이랑 계 차장님도 같이 갔잖아요. 저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 보소. 연기력 죽이네.”
“자네 조용히 안 해! 미쳤어?”
얼굴이 벌게진 계 차장이 김 사원의 팔목을 세게 끌며 말했다.
“이거 놔요! 지금 나 부장님이 그 업체 밀어주고 커미션 챙기고 있거든요? 저 인간이!”
“야! 너 지금 뭐라고 했어?”
나 부장이 결국 분을 이기지 못하고 김 사원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그는 목이 졸린 채로 꿋꿋이 말을 이어 나갔다.
“그 업체가 말입니다. 켁켁…! 툴만 놓고 봤을 때 성능이 구려요. 근데 그거 다 컥! 눈감아 주는 거다, 이 말입니다. 완전 양아치예요.”
“그 손 놓지 못해!!!”
최 팀장의 불호령이 떨어지자 나 부장의 손아귀에 힘이 스르르 풀렸다.
“저는 어릴 때부터 신조가 무조건 ‘이기는 편 우리 편’이에요. 일개 사원이 잘나가는 줄에 서는 건 당연한 거 아닙니까?”
감사팀장이 잠시 숨을 고르는 그에게 물었다.
“이제 하고 싶은 말은 다 한 건가?”
“아직 멀었죠. 우리 부서 찐따, 최선유 대리….”
“이 새끼가 진짜 돌았나! 여기가 어디라고! 입 안 닥쳐?”
이번엔 계 차장이 그에게 달려들었다. 휘두른 주먹이 빗나가자 씩씩대면서 머리채를 잡아당겼다.
쌍욕을 쏟아 내는 그의 입으로 신중히 개구리 틀니를 겨냥했다.
계 차장이 ‘-발’이라고 발음하기 위해 입을 크게 벌린 순간 나는 틀니를 정확히 그의 입을 향해 던졌다.
‘들어갔다!’
개구리 틀니가 이에 걸린 계 차장은 갑자기 속이 울렁거리는지 입술을 꾹 다물고 인상을 찌푸렸다. 그사이에도 김 사원의 말은 끊이지 않았다.
“나 팀장은 자기 논문까지 저 양반더러 써 오라고 시켜요. 계 차장은 기분 나쁘게 생겼다고 회의 시간 내내 벽 보고 서 있으라고 한 적도 있어요. 진짜 유치하지 않아요?”
“야! 증거 있어? 내가 최 대리를 괴롭혔다는 증거 있냐고! 암……. 있지! 있지! 내가 바로 산증인이지. 왜 그건 말 안 해? 내가 구두로 정강이 깐 거?”
당황한 계 차장이 손바닥으로 자신의 입을 세차게 때렸다.
“제 말은 그게 아니라… 나 부장도 지난주에 최 대리 뺨을 갈겼습니다. 그것도 세 대나! 그때 코피가 얼마나 났는지! 아니… 아니, 아닙니다! 제가 실언을….”
변명을 하기 위해 입에서 손을 떼는 순간 쏟아져 나오는 폭로에 계 차장은 결국 말을 다 마치지도 못하고 다시 입을 틀어막았다.
“방금 한 말이 다 사실인가?”
최 팀장이 부원들을 모두 둘러보며 물었다. 그때 용대용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뭐라 뭐라 중얼거렸다.
“다 사실이에요. 제가 가지고 있어요. 폭언, 폭행에 부당한 업무 지시까지 모두 담긴 증거 말입니다.”
그가 보여 준 휴대전화 갤러리에는 자신의 아이들을 찍은 사진보다 최 대리가 괴롭힘을 당하는 장면을 몰래 찍은 영상이 더 많았다.
“저요. 다음 달에 재계약 심사거든요? 계 차장이 제 숨통 잡고 있어서 참았습니다. 관둘 때 관두더라도 저 인간들 데리고 관두렵니다.”
다른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내 눈에는 보였다. 쉴 새 없이 나불거리는 주둥이를 멈출 수 없는 계 차장의 슬픈 눈이.
간신히 틀어막고 있던 손으론 더 이상 터져 나오는 말을 막을 수가 없었다. 계 차장이 또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말하는 중이잖아! 내가 누군지 알아? 누군지 아냐고! 회식 끝나고 김주연 인턴한테 따로 톡 보내고, 싫다는데 단둘이 밥도 먹자고 하는 그런 사람이야. 내가!”
“뭐?”
최 팀장의 시선이 이번에는 김주연 인턴을 향했다.
“김 인턴, 저 이야기도 사실인가?”
웅성거리는 사람들 틈에서 김주연 인턴이 움찔하고 놀라는 기척을 냈다.
“아니, 여기서 할 이야기가 아니군. 대답하지 않아도 괜찮네.”
잠시 망설이던 그녀가 무언가를 결심한 듯 아랫입술을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이에요.”
그녀는 자신의 휴대 전화를 만지작거리더니 녹취 파일 하나를 재생했다.
고요한 사무실 안에 녹취 파일에 담긴 계 차장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아이~ 밥 한번 먹자니까 그러네. 혹시 아나? 차장급 남자친구가 자네를 정규직으로 만들어 줄지? 응? 왜 그게 나일 수도 있는 거고~!]
고성이 오갈 때보다도 더 피 말리는 정적이 흘렀다.
계 차장은 거의 혼이 빠져나간 껍데기처럼 보였고, 나 부장은 무릎을 꿇으며 호소했다.
“팀장님, 전 억울합니다! 완전히 헛소리예요! 제가 때리긴 누굴 때려요. 최 대리, 자네가 말해 봐! 내가 너 때렸어? 때렸냐고! 거보십시오! 지금 계 차장이 정신이 회까닥 나간 거 같은데….”
감사팀장은 인내심의 한계에 도달한 듯 눈을 감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바로 이 순간부터 정식으로 감사가 진행될 테니 두 사람 모두 6개월간 통화 내역부터 통장 입출금 내역까지 샅샅이 제출하게. 인턴은 날 따라오게. 계 차장에 대한 고소를 진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네.”
그때 얼마나 재채기를 해 댔는지 눈 밑이 퀭해진 아주머니가 화장실에서 나왔다.
아주머니는 사무실 분위기를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비틀거리며 나오다가 다시금 크게 재채기를 했다.
‘이렇게 된 거 끝을 보자.’
아주머니 쪽으로 마지막 개구리 틀니를 던졌다.
개구리 틀니가 3미터가량을 날아서 아주머니의 입속으로 튀어 들어갔다.
아주머니의 윗니에 가지런히 걸린 초록색 틀니가 보였다.
잠시 헛구역질을 하던 그녀가 이내 고개를 들고 우리가 있는 쪽을 지그시 바라보기 시작했다.
근속 12년. 환경 미화팀의 맏언니, 이 회사의 살아 있는 치부책인 그녀는 앞선 두 사람과 달리 천천히 입을 열었다.
“딱 한 번만 말할 거니까 잘 들어 개X끼들아.”
폭로는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