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화 (10/75)

#010화

날카로운 사장의 머리칼이 까마귀의 날갯죽지를 관통했다.

“지가 도망가 봤자 내 손바닥 안이지.”

나는 사장의 마법에 묶여 옴짝달싹 못 하는 까마귀에게 다가갔다.

“당신, 까마귀 루베로지?”

내 말을 들은 사장이 지팡이를 꺼내 까마귀를 겨누며 말했다.

“본모습을 드러내.”

사장의 말이 끝나자마자 까마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검은색 연미복을 입은 중년의 남자가 나타났다.

“이런…! 역시 회색 마녀는 다르네. 이렇게 쉽게 잡힐 줄이야.”

남자의 뻔뻔한 태도에 슈슈들이 작은 탄식을 내뱉고, 까마귀 떼는 흥분해서 까악, 까악, 울기 시작했다.

“하! 동족을 팔아먹은 주제에 뻔뻔하긴!”

남자가 짐짓 비열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감정적으로 접근할 일이 아니에요. 이건 어디까지나 사업. 비즈니ㅅ…. 읍!”

말을 더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 사장이 마법으로 남자의 입을 막아 버렸다.

“근데 이렇게 많은 까마귀 중에 어떻게 배신자를 찾은 거야?”

사장의 물음에 나는 대답 대신 웃어 보였다.

미고가 주머니 속에서 통통 뛰며 힌트를 주고, 놈의 위치까지 알려 줬다는 이야기는 나중에 해 줄 참이었다.

“이만 가자. 다들 많이 다쳤으니 치료를 해야지.”

“저자는 어쩌고요?”

온몸이 꽁꽁 묶인 채 이를 갈고 있는 놈을 보며 물었다.

“무리를 배신했으니…. 그 응징도 무리의 몫이겠지.”

까마귀 떼가 날아올라 남자의 주변을 빙글빙글 돌자, 놈은 분하다는 듯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사장은 자리를 떠나기 전에 슈슈들에게 물었다.

“너희들 정말 몰랐던 거 맞아?”

대장 슈슈가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네…. 몰랐어요….”

“몰랐다는 게 핑계가 될 수 있는 건 오늘이 마지막이야. 모르는 것도 잘못이거든.”

“다신 안 해요. 까마귀들에게 미안해요….”

“흠! 뭐…. 나도 미안해. 너희가 사는 굴이 무너져서 힘들 거 뻔히 알면서도, 제대로 된 도움을 준 적이 없는 것 같네. 오죽하면 너희가 이런 짓을 했을까 싶기도 하고….”

사장은 미안하다 말하는 자신의 모습이 영 적응이 안 되는지 진저리를 치며 앞장서서 걸었다.

“얼른 가자. 배고프다.”

우린 서로의 다친 몸을 부축하며 걸었다.

사장이 적당한 곳에서 이동 거울을 만드는 가루를 뿌리자, 공중에 파도처럼 일렁이는 거울이 생겼다.

이동 거울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긴 처음이었다. 왜곡된 거울처럼 요동치는 터라, 계속 보고 있으면 머리가 어지러웠다.

거울 앞에서 잔뜩 긴장한 내 어깨를 대장 슈슈가 부드럽게 토닥였다.

“괜찮아요. 괜찮아…. 집에 빨리 갈 수 있어.”

사장이 거울 속으로 들어가기 전에 말했다.

“내일은 까마귀섬에 가자. 눈을 돌려줘야지.”

“네. 미고의 몸이 거기에 있어야 할 텐데요. 주말이니까 아침 일찍 올게요.”

난 사장의 뒤를 따르며 생각에 잠겼다.

놈들은 회색 마녀가 학살의 날에 모두 죽임을 당했고, 사장님만이 유일하게 살아남았다고 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우리 어머니도 회색 마녀라고 했으니… 무슨 연관이 있는 걸까?

궁금한 게 많았지만 차마 묻지 못했다.

겉으로는 무덤덤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장이 몹시도 슬퍼 보였던 탓이었다.

***

“화가 선생, 이제 걸어 봐.”

사장은 연골 나무를 어렵게 구해서 밤새도록 화가 선생의 의족을 만들었다.

잘린 다리에 어찌나 감쪽같이 붙었던지 육안으로 봐서는 티가 나지 않았다.

화가 선생이 천천히 테이블 위를 걸었다.

“연골 나무라서 확실히 탄력성이 좋아. 처음이니까 어색하겠지만 익숙해지면 그림을 그리는 데엔 지장이 없을 거야.”

사장은 행여나 화가 선생이 이번 일로 작품 활동을 그만둘까 봐 지레 겁을 먹었다.

화가 선생은 쓰고 있던 베레모를 한 손으로 살짝 들어 올리는 것으로 고마움을 표현했다.

“저기 이건 별건 아닌데요….”

난 미리 챙겨 온 팔레트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이게 뭐야?”

“레드비트랑 스피콜리나, 적토미, 치자 등으로 만든 천연물감이에요.”

화가 선생이 팔레트를 열어 물감을 발로 찍었다. 노란빛의 치자 물감이 마음에 쏙 드는 눈치였다.

“마음에 드나 본데? 제법이야.”

사장은 그제야 긴장하고 있던 얼굴 근육을 풀며 웃었다.

“아, 그리고 너 어제도 미래가 보인 거 맞지?”

“네. 두 번이나요. 처음엔 사장님이 뱀에 물리는 걸 봤고, 그다음엔 부메랑에 사장님이랑 슈슈가 다치는 걸 봤어요.”

사장이 내 왼쪽 눈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때 우연히 봤는데, 너 왼쪽 보라색 눈동자 말이야. 순간적으로 반짝이더라. 어쩌면 그 눈을 통해 미래를 보는 걸 수도 있어.”

어쩐지. 사실 그 부분은 나도 짚이는 바가 좀 있었다.

“사실 어젯밤에 거울을 보는데 왼쪽 눈동자 색이 더 진해진 거 같더라고요. 그냥 느낌인가 싶었는데.”

나는 괜히 어색해서 왼쪽 눈을 비볐다. 남들과 달라서, 남들에게 들킬까 봐 전전긍긍했던 때가 떠올랐다.

“자! 이제 슬슬 출발하자.”

사장은 까마귀 눈알이 가득 담긴 자루를 어깨에 이고 말했다.

“가자! 1마을로.”

사장이 카페 한가운데에 이동 거울을 만들자 난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갔다.

어떤 강한 압력으로 앞뒤 좌우로 사정없이 흔들리다가 이어 끝도 없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먼 거리를 이동할수록 더 어지러울 거라더니 진짜였다.

난 코끼리 코 돌기를 한 100바퀴쯤 돈 사람처럼, 거울에서 나와서도 한동안 중심을 잡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도, 도착한 거예요?”

그제야 귓가에 파도가 철썩이는 소리가 들리고, 눈앞에 펼쳐진 바다가 보였다.

눈을 잃은 까마귀들이 산다던 작은 돌섬이었다.

거대한 나무뿌리가 섬을 감싸고 있었는데, 서로 뒤엉켜 있는 모습이 마치 거대한 새 둥지 같았다.

뿌리 안으로 들어가니 안은 도자기처럼 사방이 막혀 있고, 위에 작게 구멍이 뚫려 있었다.

“아주 척박한 섬이야. 덕분에 눈을 읽은 까마귀들이 천적을 피해 숨어 살 수 있었겠지만.”

그곳엔 죽어 가는 까마귀 수백 마리가 바닥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이럴 수가….”

“아직 죽은 거 아니야. 제대로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니 저렇게라도 생명을 아끼는 거지. 이제 눈을 돌려줘 볼까?”

사장은 가지고 온 자루에서 까마귀 눈알 두 개를 들어 공중에 힘차게 던졌다.

그러자 까마귀 사체 더미처럼 보이던 곳에서 한 마리가 솟구치며 날아올라 자신의 눈을 낚아챘다.

그리고 하늘 위 뻥 뚫려 있는 구멍 사이로 쏜살같이 빠져나갔다.

자루에선 끝도 없이 까마귀 눈알이 나왔다. 사장은 계속해서 까마귀 눈알을 공중으로 던졌지만 그럼에도 까마귀 더미는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제 네 차례야. 미고에게 눈을 찾아줘야지.”

“네.”

난 마른침을 삼키고 주머니에 있던 미고의 눈을 있는 힘껏 던졌다.

눈알은 허공에서 포물선을 그리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흠…. 미고의 몸은 이곳에 없나 본데?”

“한 번만 더 해 볼게요.”

난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투수가 된 것처럼 팔을 뒤로 빼고 이어 빠르게 휘둘렀다.

그때 까마귀 더미 속에서 무언가 꿈틀꿈틀거리면서 나오더니 강속구 공처럼 재빠르게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먹잇감을 낚아채는 맹수처럼 자신의 눈알을 잡았다.

“미고…!”

하늘 쪽으로 뚫린 구멍으로 날아간 다른 까마귀들과는 달리 미고는 천천히 땅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정신을 잃은 채 발밑으로 툭 떨어졌다. 목숨은 부지했지만 오래 먹지 못하고 버틴 탓이었다.

난 온몸이 피투성이인 미고의 작은 몸을 손으로 감쌌다.

“이제 가자. 나머지 눈도 금방 찾을 수 있을 거야.”

엄마의 편지에 적힌 루베로를 찾으려고 했던 계획은 잠시 미루기로 했다. 일단 위독한 미고를 살리는 게 급했으니까.

우린 여전히 산더미같이 쌓여 있는 까마귀들을 뒤로하고 섬을 떠났다.

***

사장이 따뜻한 손수건으로 미고의 털을 닦았다. 심드렁한 표정과 달리, 부드러운 손길에는 정성이 넘쳤다.

가까스로 의식을 찾은 미고는 강낭콩 죽과 물을 마시고 기력을 차렸는지 양쪽 날갯죽지를 활짝 폈다.

온기가 실린 가벼운 바람이 불자 탁자 위에 있던 까마귀는 사라지고, 바로 옆에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귀엽게 생긴 남자아이가 서 있었다.

키가 크고, 삐쩍 마른 아이는 크고 슬픈 눈을 하고 있었다. 길게 내린 앞머리 사이로 검게 파인 한쪽 눈이 보였다.

“네가 미고야?”

난 하마터면 죽다 살아난 아이에게 왜 이렇게 잘생겼냐고 물을 뻔했다. 미고는 말없이 다가와 날 꼭 껴안았다.

난 당황하면서도 이내 미고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미고는 내 어깨에 부드럽게 이마를 비볐다.

그리고 미고는 다음 차례라는 듯이 사장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뭘 봐? 난 됐으니까 거기 딱 서라고.”

사장이 질색하며 경고하듯이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미고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를 꼭 껴안았다.

사장은 입술을 실룩거리며 싫은 내색을 하면서도 미고가 자신을 안도록 내버려 두었다.

“고맙습니다.”

“너 갈 곳은 있어?”

사장이 시크하게 묻자 미고는 힘없이 축 처진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미고야, 너 우리 집으로 갈래? 전에도 간 적 있잖아. 내가 회사에 있는 동안에는 여기 카페에 있으면 될 거야.”

미고가 눈치를 살피며 나와 사장을 번갈아 봤다.

“너도 나처럼 여기서 일하면 되겠다. 어때? 잘할 수 있지?”

내가 미간을 찡긋거리며 신호를 보내자 미고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열심히 할게요!”

“지금 둘이서 뭐해? 벌써부터 쿵짝이 잘 맞네. 하지만 내가 이 녀석을 거둘 거라고 생각하는 건 큰 오산이야.”

사장의 말을 듣자마자 미고의 큰 눈에 눈물이 그득히 고였다.

“뭘… 울기까지…. 휴…! 알았어. 당분간만이야.”

“꼭 허락해 줄 거면서 애를 울려요. 정말!”

난 사장을 슬며시 째리며 손등으로 미고의 턱에 맺힌 눈물을 닦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장이 미고에게 물었다.

“루베로는 저마다 특별한 능력을 갖고 있다고 하던데, 네 능력은 뭐야?”

미고가 킁 하고 코를 삼키며 대답했다.

“전 기억을 짜낼 수 있어요.”

“남의 기억을 볼 수 있다는 말이야?”

“네.”

사장이 마침 잘됐다는 듯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럼 이 녀석 기억을 좀 봐 볼래? 얘는 저 창문 너머로 아무것도 못 보는 거 같거든.”

창문 너머로?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지 않아 사장에게 되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제가 뭘 못 봐요?”

“너 저기 창문 밖으로 뭐가 보여?”

사장은 한쪽 벽면에 난 창문을 가리키며 물었다. 창문은 마치 암막 스티커를 붙인 것처럼 검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네? 뭐가 보이긴요. 시커멓게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거봐. 안 보이잖아. 이건 추억을 보는 창이야. 저 창 너머로 옛 기억을 볼 수 있다고.”

“저게 추억을 보는 창이라고요? 근데 왜 저는 아무것도 안 보여요?”

이제 와 생각하면 이상하긴 했다. 손님들은 종종 커피를 마시면서 하염없이 창문을 바라봤다. 창을 보면서 웃기도 하고 때론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이곳에선 별의별 일이 다 있다 보니 그런 사소한 점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고 넘긴 터였다.

“정말요? 다들 보이는데, 저만 안 보이는 거라고요?”

“그래.”

“그럼 제가 도울 수 있을 거 같아요.”

미고가 당황하는 날 진정시키며 손을 잡았다.

“말씀드렸다시피 기억을 짜내는 거라서 조금 아플 수 있어요.”

“아프다고? 잠시만 저 생각을 먼저 정리를….”

그사이 미고가 내 양손을 덥석 잡았다. 그의 눈이 새카만 까마귀 눈알로 변하면서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으윽…!”

난 두개골이 빠개질 것 같은 고통에 무릎을 꿇고 몸을 웅크렸다.

그때 미고가 잡고 있던 손을 놓으면서 고통 어린 신음을 뱉었다.

미고가 두 손바닥을 펼치자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면서 까맣게 불에 그슬린 자국이 보였다.

“괜찮아?”

놀란 사장이 우리 두 사람을 일으켜 세웠다. 미고는 여전히 뜨거운 김을 내뿜고 있는 손바닥을 바라보며 말했다.

“강력한 마법이 걸려 있어요.”

“마법이라니, 무슨 마법이 걸려 있다는 건데?”

“쉽게 말하자면 누군가 기억을 감옥에 가둔 거예요. 나오지 못하도록.”

“누가 내 기억을 감옥에 가뒀다고???”

내가 혼혈이라는 사실 만큼이나, 상상도 못 해 본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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