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2화
제노의 집은 커다란 개미굴 같았다. 바닥과 벽은 언제 묻었을지 모를 찐득거리는 액체로 뒤덮여 있었다.
굴 안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길목마다 천장에 걸려 있는 원숭이 해골 안에서 빛이 새어 나왔다.
곧이어 세 개의 방으로 이어진 넓은 실험실이 나왔다. 놈의 말대로 없는 게 없었다.
선반마다 정체불명의 뼈와 희귀한 곤충 그리고 도마뱀의 꼬리와 생선 가시들이 진열돼 있었다.
“이 자식, 이거 위험한 놈이네. 여기서 대체 뭔 짓을 하는 거야?”
사장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혼잣말을 했다.
구경을 마친 사장은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큰 솥을 올렸다.
“음…. 먼저 장수풍뎅이의 뿔을 곱게 갈고… 해그냥! 늙은 호박 물 좀 찾아와!”
졸지에 사장의 조수가 된 나는 마치 쇼핑이라도 하듯이 라탄 바구니에 광대 버섯과 썩은 양배추 등을 담았다.
그때 얼핏, 사장이 ‘족제비 엉덩이 털’이라 적힌 유리병을 열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사장님? 족제비 엉덩이 털이 아니라 꼬리 털을 쓰셔야죠.”
“어? 그랬던가?”
“아깐 큰소리 떵떵 치더니….”
“잔소리는!”
뜨거운 열기에 얼굴이 불그죽죽하게 익을 무렵, 어느덧 이제 나비의 왼쪽 날개만 넣으면 끝이었다.
“얼른 나비 날개 갖고 와. 더워 죽겠다.”
“어? 어…. 근데 사장님, 문제가 좀 있어요.”
한쪽 벽면이 200개여 마리의 다양한 나비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나비가 너무 많은데… 어떤 나비인지는 들은 거 없으시죠?”
벽면으로 다가온 이레가 쯧- 혀를 찼다.
“어쩐지 너무 순순히 알려 주더라니. 감히 나를 골탕 먹여?”
“혹시 아무 나비나 넣어도 상관없는 게 아닐까요?”
“아무 나비나 넣어도 되면 놈이 이 많은 나비를 왜 다 모았겠냐?”
그 말을 들은 미고가 제노에게 직접 어느 나비인지 물어보고 오겠다며 곧장 방을 나섰다.
제노를 만나러 간 미고가 한참 동안이나 돌아오지 않자, 기다림에 지친 우린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이거만 넣으면 끝인데 시간 아깝게….”
사장이 놈의 나비 컬렉션을 곰곰이 살펴보더니 검은색에 하얀 땡땡이 무늬를 한 나비 한 마리를 꺼냈다.
“다년간의 경험으로 미루어 봐서 이 나비일 확률이 아주 높아. 검은 땡땡이 나비는 독소를 제거하는 데 탁월하니까.”
성격이 급한 사장이 검은 땡땡이 나비의 날개를 찢어 솥에 넣으려던 그때 빈혈처럼 머리가 띵 울리더니 어떤 장면이 눈앞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또 미래가 보이는 건가?’
나는 한 손으로 오른쪽 눈을 가렸다. 왼쪽 눈으로 미래가 보이는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눈을 가리고 나니 현실과 겹쳐 보였던 미래의 장면들이 보다 또렷하게 보였다. 사장의 말이 맞았다.
‘왼쪽 눈으로 미래를 보는 거였어.’
그때 머릿속에서 사장이 검은 땡땡이 나비를 넣자마자 솥이 터지는 장면이 보였다. 끓고 있던 해독제가 사장의 얼굴에 튀자 살이 녹아내렸다.
‘헉-!’
놀란 나는 이제 막 솥에 날개를 집어넣으려던 사장의 손목을 빠르게 낚아챘다.
“뭐야?”
“이거 넣으면 안 돼요. 솥이 터져요.”
“뭐? 너 또 미래를 본 거야? 흠…. 그럼 이건 아닌가 보네. 미고는 왜 이렇게 안 와? 이거 이렇게 오래 끓이면 약효가 떨어질 텐데.”
놀란 내 마음도 모르고 사장이 툴툴거리며 말했다.
“잠시만요.”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이 다시 나비가 있는 벽장으로 갔다.
‘이 나비들을 하나하나 솥에 넣는다고 상상해 보자. 방금처럼 뭐가 또 보일 수도 있어.’
마음을 가다듬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큰 기대는 없었지만 그래도 한번 해 보자 싶은 마음이 컸다.
우선 나비 한 마리, 한 마리를 천천히 살피며 눈에 담았다. 그리고 이 나비들을 솥에 넣는다고 상상하며 정신을 집중했다.
그 순간 솥에 나비를 넣었을 때 벌어질 200개의 각기 다른 미래가 짧고 강렬하게 머릿속에 스쳤다.
솥이 뻥 터지거나, 해독제가 굳어 버리거나, 불이 난다든가 하는 미래 말고 해독제를 완성시키는 미래는 그중에 단 한 개뿐이었다.
“방, 방금… 뭐지? 정말 된 건가?”
정말이지 내가 마법사라도 된 기분이었다. 내가 원할 때, 내 의지로 미래를 본 것은 처음이었으니까.
“분명 봤어…!! 순식간이었지만.”
사장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내 쪽으로 어슬렁거리며 다가왔다.
“너 뭐 해?”
“이 갈색 나비예요. 이걸 넣으면 돼요.”
난 벽장을 가리키며 사장에게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뭐라고? 너 혹시 지금… 이 나비들을 솥에 넣었을 때 벌어질 미래들을 하나하나 다 보기라도 했다는 거야?”
“네…. 저도 믿기지가 않네요. 마치 아주 빠르게 200개의 문을 열었다가 닫은 느낌이랄까….”
얼떨떨한 표정의 사장을 보니 내가 뭔가 대단한 것을 한 게 분명했다. 뭐든 호들갑 떠는 것을 질색하는 사장이 이토록 놀라는 것을 보니.
“잠깐! 네 선택에 따른 여러 개의 미래를 봤다는 거야? 그걸 정말 네가 해냈다고?”
그때 동굴 안으로 들어오는 미고의 발걸음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렸다.
“제노가 재판 중이라 겨우 만나고 왔어요. 유리창떠들석팔랑나비! 마지막으로 그 나비의 날개를 넣으면 완성이래요.”
“유리창떠들석 뭐? 아무튼 그 나비가 이 갈색 나비가 맞지?”
내가 확신에 찬 표정으로 나비를 들어 보이자 미고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아요. 근데 어떻게 알았어요?”
사장이 유리창떠들석팔랑나비의 날개를 솥에 넣고, 국자로 휘휘 저으며 말했다.
“해그냥이 200개의 미래를 봐 준 덕분이지.”
사장은 여전히 놀란 기색이 역력한 채로 말했다.
미고도 눈을 동그랗게 키우고는 한껏 놀란 기색을 보였다.
“정말이에요? 그게 가능해요? 형. 진짜예요?”
“나도 뭐가 뭔지 잘 모르겠어. 일단 얼른 해독제를 만들고 나가자!”
우리 셋은 해독제가 완성되자마자 서둘러 그곳에서 빠져나왔다.
고약한 냄새며, 눅진한 공기며 다신 가고 싶지 않은 곳이었다.
우린 다시금 론의 성으로 돌아갔다. 사장의 손에는 완성된 해독제가 들려 있었다.
“우릴 또 내쫓지는 않겠죠?”
미고가 론의 누나가 좀 무서웠는지 긴장하며 말했다.
“응. 해독제를 가져오면 론을 만나게 해 준댔으니… 괜찮을 거야.”
난 긴장한 미고를 다독이며 말했다.
다행히도 론의 누나는 사장의 손에 들린 해독제를 보더니, 아까보단 훨씬 누그러진 모습으로 우리를 맞았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로첼이라고 소개했다. 로첼은 우릴 론의 방으로 안내했다.
복도를 걸으면서 난 아까부터 쭉 궁금했던 질문을 던졌다.
“론이 저렇게 된 게 어째서 저희 어머니 때문이라는 거죠?”
이목구비가 뚜렷해서 인상이 사나워 보였던 그녀가 이내 얼굴 근육을 이완하며 말했다.
“론과 이다는 오랜 친구였어. 둘 다 인간 세계에 호기심이 많아서 친해졌지.”
그녀는 착잡한 듯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러다 론은 독수리의 몸을 버리고, 오로지 인간으로 살기로 결심했어. 그러기 위해선 마녀의 피 한 방울과 머리카락 한 올, 그리고 심살이 풀이 필요했지.”
이제 우린 론이 있는 방에 다다랐다. 그녀가 방문을 열기 전에 다소 격양된 목소리로 말했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서 이다는 론을 말리지 않았어. 게다가 대가로 케루빔의 깃털을 챙긴 이후로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지. 나는 여전히 이다가 싫어.”
난 그녀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유품 중에 케루빔의 깃털이 있었어야 했다.
“뭔가 잘못 알고 계신 거 같은데….”
“자자, 이야기는 나중에 마저 하지. 지금은 론에게 해독제를 먹이는 게 먼저니까.”
사장이 로첼과 나를 진정시키며 말했다.
사장은 론을 비스듬히 일으켜 세웠고, 살짝 벌려진 입술 틈 사이로 연두색의 해독제를 흘려 보냈다.
론의 목젖이 위아래로 두어 번 움직이더니 그가 마른기침을 하면서 천천히 눈을 떴다.
“정신이 드나 봐! 론!!!”
로첼이 감격하며 론을 꽉 끌어안았다.
론은 깊은 잠을 자다가 깬 사람처럼 몽롱한 표정을 지으며 천천히 눈꺼풀을 움직였다.
론이 누나를 알아보고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시선이 천천히 우리에게로 향했다.
“누구시죠?”
나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꾸벅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저는 해그냥이라고 하고, 이다의 아들입니다. 저희 어머니가 당신을 만나라고 유언을 남겨서 찾아왔어요.”
“유언이라니…. 이다가 죽었군요.”
“네….”
론은 잠시 침묵으로 이다에게 애도를 표했다.
그는 본인도 죽어 가면서도 이다를 위해 눈물을 흘렸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래서 그의 슬픔이 묵직하게 전달되었다.
“론, 이분들이 해독제를 구해 오셨어. 덕분에 네가 깨어난 거란다.”
론이 힘겹게 숨을 들이쉬며 말했다.
“해독제를 구해 주셨군요. 고맙습니다. 다만 저는 이미 죽어 가고 있어요. 해독제로 절 살릴 수는 없지요. 그래도 이렇게 잠시나마 이야기할 시간을 벌어서 다행입니다.”
로첼이 화들짝 놀라며 론의 어깨를 잡았다.
“아아…. 론…!”
일순 희망을 보았던 로첼은 이불 위로 쓰러지듯 엎드려 울었다.
론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이다의 아들, 해그냥이라고 했지요?”
“아…. 네. 맞아요.”
나와 론이 대화에 집중할 수 있도록 사장과 미고는 내 뒤로 물러섰다.
“제 이야기를 먼저 해야 할 거 같네요. 전 하피 독수리답지 않았어요. 모든 이야기는 거기서부터 출발했죠.”
그가 힘겹게 숨을 고르면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전 겁이 많았고, 고소 공포증이 있었어요. 하루는 부모님의 등쌀에 못 이겨 짐승의 숨통을 끊었는데… 삼 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못했죠.”
그때 론은 알았다고 한다. 불곰의 것보다 길고 날카로운 발톱도, 2미터가 넘는 큰 날개도 자신에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전 책을 읽고, 시를 쓰는 것을 좋아했어요. 그리고 늘 인간 세계에 관심이 많았죠. 이다도 마찬가지였고요.”
“저희 어머니가요?”
론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을 이었다.
“이다는 할머니로 변신해서 풀떼기가 든 바구니를 들고 시장에 나가곤 했어요. 시장 바닥에 앉아 있으면 아무도 자길 신경 쓰지 않아서 편하다 했죠.”
누군가에게서 내가 몰랐던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니 가슴이 저릿했다. 마치 전혀 모르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았다.
“전 그곳에서 친구를 사귀었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어요. 그래서 온전한 인간이 되기로 결심했죠. 심살이 풀을 먹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면서도요.”
론은 죽음을 감수해서라도 원하는 모습으로 살기를 결정했다. 그리고 그 선택을 도운 게 어머니였다.
“이다의 피와 머리카락 덕분에, 저는 인간이 될 수 있었어요.”
로첼은 이다의 행동을 용납할 수 없다는 듯이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친구가 위험한 선택을 하는 걸 말리지는 못할망정… 그 대가로 케루빔의 깃털을 챙겼어.”
“저희 어머니께 그 깃털을 주신 게 확실해요? 유품 중에 그런 건 없었어요.”
흥분한 로첼이 내 말을 끊고 말했다.
“어디 숨겨 뒀거나 팔거나 했겠지. 아니면 네가 거짓말을 하는 중이거나.”
나는 화를 참기 위해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그리고 론과의 대화에 집중했다.
“저희 어머니가 왜 당신을 만나라고 했을까요? 그리고 말씀드렸다시피 케루빔의 깃털에 대해선 전 아는 바가 없어요.”
“제 부탁을 하나 들어주신다면, 대답해 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부탁이요?”
론의 수척한 얼굴을 보고 있자니 그게 무슨 부탁이든 내가 들어줄 수 있는 것이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 세상에 두고 온 물건이 있어요. 별건 아니고… 옷이랑 사진 몇 장이요. 제겐 소중한 것들이죠. 그걸 좀 가지고 와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