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화 (14/75)

#014화

손바닥만 한 크기의 깃털이 유골함 밑 깔개에 숨겨져 있었다.

손으로 꺼내 들자 회색빛의 평범한 깃털이 순식간에 30센티미터의 붉은색 깃털로 변했다.

깃털 끝부분이 황금빛으로 물들어 있어서 더욱 화려하고 신비스러워 보였다.

“우와! 평생을 새로 살았는데. 이렇게 아름다운 깃털은 처음 봐요.”

미고가 나지막이 감탄하며 말했다.

“론이 케루빔의 깃털을 이곳에 보관했나 봐요.”

“그러게. 여기 있었네. 어머니한테 줬다더니 어째서 여기에 있는 거지?”

론의 누나 말대로 어머니가 깃털만 챙겨서 사라진 게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가 끝끝내 깃털의 위치를 비밀에 부친 이유가 궁금했다.

“어째서 깃털이 납골당에 있다고 말하지 않았을까요? 우릴 이곳에 보낸 걸 보면… 깃털을 찾아오길 바란 거 같은데.”

사장도 같은 고민을 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일단 1마을로 빨리 가자. 론이 기다리고 있을 거야. 궁금한 건 가서 직접 물어보자고.”

우린 서둘러 깃털과 물건들을 챙겨서 그곳을 빠져나왔다.

1마을까지 이동하는 내내 머릿속이 복잡했다.

론이 케루빔의 깃털을 이다에게 주었다고 거짓말을 한 데는 분명 어떤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고민을 거듭해 봐도 명쾌한 답을 찾을 순 없었다.

1마을의 밤은 유독 어두웠다. 도시의 밤보다 시골의 밤이 더 까만 것처럼.

멀리서 론의 성이 보였다. 론의 방에 켜진 불이 위태롭게 흔들렸다.

우리가 론의 방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그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고통에 신음하고 있었다.

해독제로 그를 깨운 게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였다.

그의 곁을 지키고 있던 로첼에게 눈짓으로 ‘론은 좀 괜찮냐고’ 물었다.

로첼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론의 물건은 찾았나요?”

“네….”

난 론의 옆으로 가서 그의 손을 잡았다. 그제야 인기척을 느낀 그가 힘겹게 눈을 떴다.

“왔네요. 이다의 아들.”

내가 대답 대신 품속에서 그의 가족사진과 배냇저고리를 꺼냈다.

론의 해쓱한 볼 위로 금세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사진 속의 그는 젊고 건강했다. 사랑하는 아내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미소를 지었고, 아가는 그의 품 안에서 곤히 잠을 잤다.

그는 배냇저고리를 꼭 끌어안았다. 마치 그게 진짜 아기라도 되는 것처럼.

론이 입술을 꾹 다물고 울었다. 차라리 입으로 소리라도 내며 울었다면 덜 슬펐으리라.

그 모습을 본 미고는 고개를 돌리고 눈물을 쏟았다. 론이 겨우 감정을 추스르고 말했다.

“누군가는 내가 인간이 되기로 한 선택을 후회할 거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의 말에 속으로 뜨끔했다. 친구도, 아내도, 아이도 모두 그를 떠났지 않았던가.

그가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고 있을 거라고, 그 선택을 도운 어머니 역시 원망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피 독수리의 몸을 버렸다는 이유로 가족들마저 그를 저버렸다. 그의 곁에 남은 건 누나뿐이었다.

“난 후회하지 않아요. 나는 나로 살았습니다. 그거면 됐어요.”

그의 말이 질문이 되어 묵직하게 가슴을 울렸다.

나로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고마워요. 이제 준비가 다 된 거 같네요.”

“준비라니요?”

“내가 죽으면 이 사진과 옷을 함께 묻어 주세요.”

론의 말에 울컥해서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미고와 사장이 먼저 론과 꼭 껴안으며 인사를 나눴다.

내 차례가 되어 그를 껴안은 순간, 론이 내 귀에 아주 작게 속삭였다.

“깃털을 잘 부탁합니다. 이다의 아들.”

화들짝 놀라 나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우리가 보여 주지 않았음에도, 론은 우리가 깃털을 찾았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내가 당황하기도 잠시, 론이 내 몸을 밀어내며 말을 이었다.

“어서 돌아가세요. 저도 이제 좀 쉬고 싶군요.”

우린 로첼의 배웅을 받으며 방을 나왔다.

복도를 걷는 중에 사장이 내 옆에 가까이 붙어서 속삭였다.

“케루빔의 깃털 말이야…. 론에게 돌려줘야 하는 거 아니야? 왜 아무 말을 안 한 거야?”

나는 난감한 마음에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저도 물어보고 싶었죠. 깃털은 납골당에 있었는데 어째서 어머니에게 줬다고 한 건지. 근데 물어볼 수가 없었어요.”

“어째서요?”

미고도 궁금한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론이 비밀로 하고 싶어 하는 거 같았거든요. 케루빔의 깃털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 주고 싶지 않은 거 같았어요.”

“누구한테 알려 주고 싶지 않은 건데? 우리한테?”

“아니요.”

“그럼 누구?”

사장이 답답한 듯이 채근하며 물었다. 나도 확신이 없으니 답을 하기가 어려웠다.

그때 불현듯 온몸에 소름이 돋으면서 왼쪽 눈에 어떤 잔상이 보였다.

론이 누워 있던 침구가 온통 피로 물들어 있는 모습이었다.

‘론이 위험해!’

난 급히 론의 방으로 되돌아갔다.나는 황급히 뒤로 돌아, 왔던 길을 되돌아 달려가기 시작했다. 사장과 미고는 영문도 모르면서 내 뒤를 바짝 쫓았다.

방문을 열자 론의 침대에서 그를 덮치고 있는 로첼이 보였다.

그녀는 사람의 모습에 하피 독수리의 날개를 달고 있었다. 로첼은 날카로운 발톱을 론의 목에 겨누고 저주를 퍼부었다.

“넌 가문의 수치야. 네가 내 동생인 게 치욕스럽다고! 너도 알고 있을 거야…. 가족 모두가 네가 죽기를 바라는 거.”

발톱이 천천히 론의 목을 파고들었다. 날카로운 발톱에 살점이 찢겨 나가면서 피가 목을 타고 흘렀다.

“케루빔의 깃털을 찾으려고 이제껏 네 옆에 붙어 있었어. 이제 말해. 깃털은 어딨지? 어서 말하라고!!!”

“그만해!!!”

소름 끼치는 광경에 온몸이 떨렸다. 로첼은 고개를 돌려 나를 보더니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오, 잘 왔어. 깃털을 찾아오려나 싶어서 기다렸더니 엉뚱한 쓰레기나 가져오고…. 넌 아는 거지? 깃털이 어디에 있는지.”

론이 쉰 목소리로 힘겹게 말했다.

“케루빔의 깃털이 누나 손에 들어가면… 누나는 그걸로 끊임없이 누군가를 해치겠지. 내가 깃털을 누나에게 주는 일은 결코 없을 거야.”

“이다에게 줬다더니… 거짓말이었어? 네까짓 게 감히 날 가지고 놀아???”

로첼이 론의 목을 조였다. 그녀의 손아귀에 론의 목숨이 달려 있었다. 나는 로첼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애쓰며 말했다.

“진정해요. 그 깃털… 제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아요. 론을 살려 준다고 약속하면 말해 줄게요.”

깃털은 내 겉옷 안쪽 주머니에 있었다. 평소 거짓말을 잘 못 하지만, 이번엔 내 거짓말에 생사가 달려 있었다.

“말해 줘선 안 돼요. 제발 가요. 가….”

론이 흐느끼며 말했다.

그녀가 내 쪽으로 방향을 틀어 이죽거리며 다가왔다.

“내가 지금 얼마나 화가 났냐면 말이야. 케루빔의 깃털을 못 찾아도 좋으니까 너희를 모두 갈기갈기 찢어 버리고 싶을 정도라고.”

로첼이 내 쪽으로 오자 사장이 그 앞을 가로막고 섰다. 로첼은 성가시다는 듯이 발톱을 세웠다.

분명 짧았던 그녀의 발톱이 순식간에 팔뚝만큼 길게 돋아났다.

로첼은 검처럼 길어진 발톱을 휘둘렀고, 사장은 쉴 새 없이 이어지는 그녀의 공격을 막다가 무게 중심을 잃고 넘어졌다.

“사장님!!”

다급한 마음에 이름을 부르자, 잠시 흐트러져 있던 그녀의 시선이 다시 로첼을 향했다.

그녀의 발톱이 사장의 얼굴 정 가운데를 조준했고, 이를 가까스로 피한 사장의 볼에 빗금처럼 상처가 생겼다.

이어 사장의 일렁이던 머리카락이 수십 개의 창이 되어 로첼에게 날아갔다. 하지만 그녀는 단단한 날개로 몸을 감쌌고, 창은 모두 튕겨 나갔다.

“하피 독수리의 날개는 방패나 다름없어요. 다른 곳을 노려야 돼요!”

론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로첼이 팔을 휘두르며 사장을 공격하려 하자 이번엔 미고가 그녀의 팔을 힘껏 잡아당겼다.

“이 성가신 녀석이!!”

로첼의 발톱이 순식간에 다시 길어지면서 한쪽 팔에 매달려 있는 미고의 배를 찌르려는 순간, 론이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ㅡ푸욱.

로첼의 발톱이 론의 허리를 깊숙이 관통했다.

“안 돼!!!”

휘청이며 바닥으로 쓰러지는 론을 뛰어가 안았다. 그의 몸에서 피가 왈칵 쏟아졌고, 바지를 뜨겁게 적셔 갔다.

론의 피를 뒤집어쓴 채 나는 간신히 정신을 부여잡았다.

사장과 미고가 로첼을 상대하는 와중에 론이 말했다.

“기… 기 깃털을… 줘요.”

“여, 여기 있어요.”

다급히 품 안에서 깃털을 꺼내 론에게 건넸다.

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입술을 세게 물었다. 그리고 마지막 힘을 모두 짜내어 깃털을 내 등에 내리꽂았다.

“헙…!!!”

마치 예리하게 벼린 칼날이 등에 꽂힌 것 같은 고통이 느껴졌다. 론은 반쯤 들어간 깃털을 마저 내 등으로 쑤셔 넣었다.

“크억… 허억!”

사장과 미고를 상대하느라 뒤늦게 그 모습을 본 로첼이 악다구니를 쓰며 달려들었다.

“안 돼!!!! 저따위 하찮은 혼혈에게 케루빔의 깃털을 넘겨??”

깃털은 등을 완전히 파고들어 갔고, 칼자국 같은 상처를 남기고 사라졌다.

로첼은 이제 거의 정신이 나간 듯 흐느끼며 웃었다.

“아하하하!! 진짜 미쳤군. 미쳤어. 결국 이렇게 됐다는 거지? 이제 다 죽이는 수밖에 없겠어.”

깃털에 찔린 고통 때문에 몸을 웅크리고 있는데, 로첼이 날카로운 발톱으로 등을 할퀴는 게 느껴졌다.

등이 세 갈래로 찢어졌다. 난생처음 겪는, 까무러칠 것 같은 아픔에 신음도 내뱉지 못하고, 정신이 아득해졌다.

“정신 차려! 해그냥!!”

내 품에서 쓰러진 론은 뜬 눈을 다시는 감지 못했다. 로첼은 분이 안 풀리는지 론의 몸에서 심장을 꺼냈다.

그 잔인한 모습에 미고는 호흡 곤란을 일으키더니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그 모습을 본 로첼이 가소롭다는 듯 씨익 웃었다.

“뭐야. 우리 아가 까마귀가 놀랐구나? 귀엽기는, 깔깔깔!”

치밀어 오르는 격분을 참지 못한 사장은 머리카락 창을 직접 손에 들었고, 창은 불에 달궈진 것처럼 점점 붉어졌다.

창과 함께 사장의 흰자위도 붉어졌다. 로첼이 사장의 창을 막기 위해 날개로 몸을 감쌌다.

사장은 창을 두 개로 나눠서 양손에 쥐고, 그녀의 두 발을 내리찍었다.

“아악!!!”

뜨겁게 달궈진 창이 로첼의 두 발을 태웠다. 사장의 일격에 놀란 그녀가 몸을 감싸고 있던 두 날개를 활짝 폈다.

사장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창으로 로첼의 가슴을 노렸다. 하지만 창은 발톱에 가로막혀 그녀에게 닿지 못했다.

힘겨루기에서 밀린 사장의 목에 로첼의 발톱이 파고들었다. 승리를 예감한 로첼의 입가에서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때였다.

고꾸라져 있던 내 등에서 빛이 나왔고, 방을 가득 채울 만큼 커다란 날개가 돋아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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