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5화
“그… 그럴 리가 없어. 케루빔이 너에게 날개를 허락했을 리가 없어!!!”
울분을 토하는 로첼의 눈동자에 전과 다르게 두려움이 서렸다. 그녀는 전의를 상실한 듯 사장의 목을 조르던 손아귀에 힘을 풀었다.
그리고 도망치려는 듯 하피 독수리로 변신했다. 등에 돋은 커다란 날개가 움직였고, 순식간에 몸이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나는 날아가려는 로첼의 다리를 잡아 그대로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스스로도 놀라웠다.
케루빔의 깃털로 날개가 돋아난 이후 알 수 없는 힘이 전신에 가득했다.
머리를 세게 부딪쳐 바닥에 쓰러져 있던 로첼의 날갯죽지를 옆에 떨어져 있던 사장의 창으로 찔렀다.
“끄아까악악”!
날개에 구멍이 난 로첼이 인간과 독수리의 울음소리가 섞인 소름 끼치는 비명을 질렀다.
난 다시 창을 들어 로첼의 심장을 노렸다. 죽음을 예감한 로첼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
떨리기는 내 손도 마찬가지였다. 내 손으로 다른 이의 목숨을 끊는다니, 생각조차 해 본 적 없는 일이었다.
나는 결국 로첼의 심장을 찌르지 못하고 창을 든 손을 떨어트렸다.
“히… 히이이익!!”
그 틈을 타 로첼이 남은 한쪽 날개로 나를 밀쳐 내고는 허겁지겁 창가로 뛰어갔다.
쩅그랑-!
로첼이 그대로 몸을 부딪쳐 창문을 깨고 아래로 떨어졌다.
로첼은 한쪽 날개가 다쳐서 기우뚱한 모습으로,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날았다.
그녀가 완전히 사라진 것을 확인하자 그제야 활짝 펴져 있던 날개가 접히더니 등속으로 사라졌다.
사장은 정신을 잃고 쓰러진 미고의 상태를 살폈다.
“미고는 괜찮아요?”
“응. 기절한 거 같아. 놀랄 만했지. 아직 애인데….”
긴장이 풀리자 다리에 힘이 풀려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이어 등에서 견디기 힘든 통증이 느껴졌다.
“왜 안 죽인 거야? 죽일 수 있었잖아.”
사장이 정적을 깨고 물었다.
“론이 그랬잖아요. 케루빔의 깃털이 누나의 손에 들어가면 누군가를 해치는 것에 쓸 거라고.”
“그 생각이 옳았지. 결코 로첼의 손에 들어가선 안 되는 물건이었어.”
“그래서 저는 못 한 거예요. 론이 제게 깃털을 줬을 땐 제가 로첼과 다를 거라는 믿음이 있었을 테니까요.”
사장은 미고를 침대에 눕히고, 비상용으로 지니고 있던 약초를 조약돌로 빻았다.
“너 등에 상처가 심해. 일단 지혈을 하고, 급한 대로 살을 붙여야겠어.”
사장은 잘 빻은 약초를 찢어진 상처 위에 올렸다. 고압 전기가 통하는 것처럼 찌릿한 통증 때문에 등이 모두 마비된 느낌이었다.
“조금만 있으면 통증이 좀 사라질 거야. 살도 붙을 거고….”
시간이 지나자 사장의 말대로 통증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사장과 나는 론의 장례를 준비했다.
사장은 따듯한 수건으로 론을 깨끗이 닦았다. 그리고 텅 빈 그의 가슴 위에 론의 가족사진과 배냇저고리를 올려놓았다.
그에겐 심장이나 다를 바가 없는 물건이었다. 그의 마지막 유언을 지킬 수 있어 다행이었다.
사장이 성안에 있던 작은 정원에 마법으로 흙을 움푹 팠다.
장례를 거의 다 치를 무렵 미고가 훌쩍거리며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미고야, 괜찮아?”
미고는 내 등에 생긴 상처를 보며 한 번 더 울음을 터뜨렸다. 누군가와 껴안는 걸 질색하는 사장이 먼저 가서 미고를 안았다.
마지막으로 그를 위한 기도를 하고 나니 동이 트기 시작했다.
1마을은 거대한 시골 농장 같아서 시야를 가릴 만한 높은 건물이나 산이 없었다. 드넓은 초원에서 생전 처음 보는 커다란 해가 떠올랐다.
싸늘했던 주변 공기가 순식간에 태양의 온기로 가득 차는 게 느껴졌다.
우린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이끌고 겨우 카페로 돌아왔다.
시간을 보니 새벽 4시 반이었다.
“자고 가. 그 몸으로 집에 가는 건 무리야.”
사장이 카페 한편에 간이 침대를 펼치고, 침구를 정리했다.
그때 카페 문 밑 틈 사이로 편지 한 장이 들어왔다. 검은색 봉투에 에메랄드색의 직인이 찍혀 있었다.
“어? 이거… 설마….”
미고가 편지를 주워서 살피면서 말했다.
“5마을 예언이에요!”
“예… 예언?”
“5마을에 대예언가 욘 게일이 1년에 한 번씩 편지로 보내거든요. 1년 중 가장 중요한 예언을 담아서요.”
미고가 좋은 내용이었으면 좋겠다고 중얼거리며 편지 봉투를 뜯었다.
안에는 돌돌 말은 얇고 부드러운 가죽이 들어 있었다. 미고가 천천히 가죽을 펼쳤다.
[푸에르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에 맞설 마법사가 나타난다.]
예언을 읽으려던 미고가 푸에르 라는 세 글자에 말문이 막힌 채 마른침만 삼켰다.
“왜 그래? 무슨 내용이길래?”
난 바로 옆에서 예언 내용을 확인하고도 뭔 말인지 이해할 수 없어 되물었다.
“푸에르? 푸에르가 누군데?”
사장이 담담한 표정으로 편지 내용을 확인하더니 주방으로 휙 들어갔다.
미고는 사장의 눈치를 보면서 작게 속삭였다.
“회색 마녀 학살 사건의 범인이요. 그자가 푸에르예요.”
회색 마녀 학살 사건이라면, 이전에 돈돈이 이야기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나는 짐짓 놀란 기색이 되어 되물었다.
“그럼 사장님의 가문을 몰살시켰다던 그자가 다시 나타난다는 거야?”
“네…. 욘의 예언이 틀린 적은 없었거든요.”
미고가 괴롭다는 듯 머리를 감싸고 가랑이 사이에 넣었다.
“푸에르는 30여 년 전에 회색 마녀를 학살하고 이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어요. 만약 그자가 돌아온다면 사장님이 위험해질 거예요.”
“유일하게 살아남은 회색 마녀라서?”
“네….”
“푸에르란 자는 대체 왜 그런 짓을 한 거야?”
미고는 무엇이 그리도 무서운지 두려움이 가득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자가 대체 누군지, 진짜 이름은 뭔지, 대체 왜 그런 짓을 했는지… 아무도 몰라요.”
그때 주방에서 사장이 큰 쟁반에 따듯한 수프와 차를 가지고 나왔다. 미고와 난 이야기를 멈추고 입을 다물었다.
사장이 어색하게 앉아 있는 우리 둘을 보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괜히 어색하게 굴 거 없어. 욘이 푸에르에 대한 예언을 할 거란 건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어, 어떻게 알았어요?”
“욘의 비서 중에 우리 카페 단골손님이 있거든. 그가 귀띔해 줘서 알고 있었지.”
“아, 그랬구나.”
사장은 별일 아니라는 듯이 가지고 나온 수프를 후루룩 마시며 말했다.
“차라리 잘됐어. 내가 직접 찾지 않아도, 놈이 스스로 나타나 준다면 말이야.”
심각해진 미고와 나에게 사장이 화제를 돌리며 말했다.
“얼른 먹고 자. 피곤할 텐데.”
“네. 그래도 지금부터 자면 2시간은 자고 갈 수 있겠어요.”
“뭐? 너 지금 이 몸을 하고 출근이라도 하겠다는 거야?”
사장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뜨악한 얼굴로 말했다.
“실은 어젯밤도 야근해야 되는데 몰래 나온 거예요. 오늘은 꼭 해야 할 일이 있어서요. 봐서 오후에 반차를 쓰든가 해야죠.”
“휴! 정말 이해할 수가 없네. 그깟 회사가 뭐라고.”
사장은 아랫입술을 삐죽 내밀고 어깨를 들썩거렸다.
“얼른 먹고 누워. 약초라도 새것으로 갈게….”
그렇게 난 카페에서 눈을 좀 붙이고 출근을 했다.
사장이 준 일종의 자양 강장제 성분의 차 덕분인지, 상처에 바른 약초가 효력이 있었던 건지 컨디션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진짜 고통은 반차를 써서 집에 도착한 후부터 시작됐다.
손끝 하나 까딱하기가 힘들 만큼 고약한 몸살이 그때부터 시작됐기 때문이었다.
***
현관문 도어락이 열리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이었다. 약을 먹고 오후 다섯 시부터 자기 시작했으니 일곱 시간은 푹 잔 셈이었다.
“친구야~ 치킨 먹자! 치킨 사 왔다!”
강력팀에서 일하는 경찰이자 내 유일한 친구인 진우였다.
“늦은 시간에 웬일이야?”
“내가 요즘 사건이 많아서 와 보지도 못하고 미안하다. 지난번에 너 좀 안 좋아 보였는데 지금은 괜찮냐?”
“어…. 괜찮아.”
진우는 이런저런 끔찍한 사건에 몸과 마음이 치일 때마다 우리 집에 치킨을 사서 들이닥쳤다.
진우에겐 친구끼리 야식을 먹는 사사로운 행위가 악취 나는 강력 사건들이 자신의 삶에 과속으로 넘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방지 턱이었다.
내가 남의 안색 살필 처지는 아니었지만 오늘따라 진우의 낯빛이 어두웠다.
괜히 목소리를 한 톤 높여서 말하는 것도 이상했다. 진우가 진짜 우울한 일이 있을 때나 보이는 증상이었다.
난 오만상을 쓰면서 침대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갔다. 사장이 아플 때마다 마시라고 챙겨 준 차를 끓일 생각이었다.
무화과 열매만 한 작은 헝겊 주머니를 풀자 그 안에 말린 꽃잎, 과일, 흙, 나뭇가지 등이 보였다.
난 머그 컵에 그걸 담고는 뜨거운 물을 부었다. 말라서 오그라들었던 꽃과 나뭇잎들이 물에 젖으면서 활짝 피어올랐다.
“그건 뭐야? 너 요즘 차도 마셔?”
진우가 내가 들고 있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머그 컵을 보며 물었다.
난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입술을 달싹였다. 이걸 줄까 말까, 내적 갈등을 치열하게 하는 중이었다.
마침내 진우에게 잔을 내밀었다.
“됐어. 인마. 너나 마셔.”
“야. 마시라면 마셔. 이거 좋은… 좋은 걸 거야.”
“좋은 걸 거야? 어디서 선물 받았냐? 혹시 너 여친 생겼어?”
갑자기 호기심이 생겼는지 진우가 컵을 받아 들고는 향을 맡았다.
“오! 이거 무슨 향이야? 처음 맡는 향인데.”
진우는 방구석에 쭈그려 앉아 홀짝거리며 차를 마셨다. 난 차를 한 잔 더 타기 위해 부엌으로 갔다.
“야…. 이거 혹시….”
“왜?”
“양귀비 달인 물 아니야? 너 임마 그거 범죄다?”
진우가 어이없는 소리를 늘어놓았다. 나는 살짝 질린 표정으로, 헛소리하지 말라는 듯 대답했다.
“내가 양귀비 달인 물을 왜 마셔.”
“아니야? 그럼 됐고. 내가 요즘 통 소화가 안 되고 더부룩했거든. 머리도 계속 깨질 거 같고. 근데 이거 마시니까 가슴이 답답하던 게 다 뻥 뚫리는 기분이야.”
진우는 한결 편안해 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그나저나 너 요즘 계속 밤새는 거야? 어휴! 진짜… 경찰 일도 정말 할 게 아니다.”
“어쩌겠냐. 이게 내 밥벌이인걸.”
그때였다.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징조를 밝히는 초’에서 미세한 빛이 탁탁, 소리를 내며 튀는 것이 보였다.
바로 앞에서 책상을 등지고 있던 진우는 아무것도 모른 채 편의점 봉지에서 인스턴트 소시지와 만두를 꺼내고 있었다.
아주 작게 불이 붙는 소리가 나면서 심지에 불이 붙었다. 난 놀라서 숨을 멈추고 그 모습을 바라봤다.
초는 어느덧 소름 끼치도록 선명한, 푸른색 불빛을 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