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7화
미고가 준 고약한 냄새가 나는 환약을 입에 넣고 질겅질겅 씹었다.
“맛이 없어도 먹어요. 사장님이 꼭 먹이고 오랬거든요.”
등에 난 상처에 챙겨 온 약초를 올리곤 미고가 갈 준비를 했다.
“늦었는데 자고 가.”
“아니에요. 형 친구분도 있고, 사장님이 걱정하실 거 같기도 하고요.”
나는 세상모르고 자고 있는 진우를 슬쩍 바라보았다.
“그래. 고마워.”
“형 친구 일은… 가서 사장님이랑 상의해 볼게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괜찮을 거예요.”
***
밀린 회사 일을 처리하느라 며칠 카페에 가지 못했다.
바쁜 와중에 언제 진우에게 일이 발생할지 몰라, 평소보다 진우의 행적을 신경 쓰다 보니 쌓인 피로감이 만만치 않았다.
드디어 금요일 저녁, 야근과 더불어 진우에 대한 고민으로 눈 밑이 퀭해진 난 카페에 가기 위해 잰걸음을 놀렸다.
사장은 날 보더니 내심 반가운 눈치였음에도 애써 무덤덤한 표정을 지었다.
“통 안 오더니 웬일이래?”
“형~!”
미고는 날 보자마자 단숨에 달려와 품에 쏙 안겼다.
“죄송해요. 회사 일이 너무 바빠서.”
“몸은 좀 어때?”
사장은 밀가루 반죽을 주물럭거리며 물었다.
“사장님이 주신 약 먹고 많이 좋아졌어요. 이제 찢어진 살도 거의 붙은 거 같아요.”
“형! 날개는 어떻게 됐어요?”
“아…. 그게 혼자 있을 때 한번 펼쳐 보려고 시도해 봤는데 안 되더라고. 그날만 어떻게 우연히 된 건가 봐.”
“그때 로첼이 그랬잖아. 케루빔이 허락할 리가 없다고. 케루빔이 허락할 때만 날개를 쓸 수 있나 보지? 아무튼 그것도 연습이 좀 필요할 거 같다.”
사장이 주방에서 커피 한 잔을 내왔다. 난 며칠간 너무나 그리웠던 사장의 커피 향을 맡고는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미고한테 네 친구 이야기를 들었어. 어떻게 할 생각이야?”
사장은 이미 미고에게서 진우에 대한 이야기를 모두 들은 후였다.
내가 무기력하게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며칠간 머리 싸매고 고민해 봤는데… 아직 잘 모르겠어요.”
“그 우라질 놈들에게 네 친구를 대신해서 우리가 복수를 하면 되지. 네 친구가 나서기 전에 말이야.”
사장은 이미 감정 이입을 했는지 자연스럽게 ‘우리가’라고 말했다.
“대신 복수를요?”
“네 친구 마음이 뻥 뚫릴 정도로 시원하게 복수를 해 주고 나면 네 친구도 조금은 편해지지 않을까?”
“근데 그 복수라는 거… 어떻게 하죠?”
“누군가는 복수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거라고 하더군. 혹은 내가 행복한 게 최고의 복수라는 말도 있지.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사장이 고양이처럼 큰 눈을 치켜뜨며 말했다.
“점잖은 사람들이나 그렇게 당하고만 있으라지. 그건 우리의 방식이 아니야. 네 친구가 이제 됐다, 싶을 정도로 괴롭혀 주는 거야. 딱 죽겠다… 싶은 정도로.”
어째 사장이 제일 신난 복수극의 서막이 오르는 순간이었다.
“근데 어머니 편지 속에 적힌 다른 마을들은 언제 가죠?”
편지에 적힌 마법사들을 찾아가는 것도 마냥 미룰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물론 진우의 일이 더 급했지만.
“생각해 봤는데 말이야. 마녀국밥 주인 김순자를 먼저 만나러 가는 게 어때? 여기서 가깝고, 또 나랑 아는 사이거든.”
“사장님이 아시는 분이에요? 그럼 일이 훨씬 수월하겠네요. 이번에는 위험한 일은… 아니겠죠?”
나 때문에 사장과 미고를 또다시 위험에 빠트리고 싶진 않았다.
“글쎄? 마녀국밥에 가는 게 그렇게 위험한 일은 아닌 거 같은데.”
“그럼 다행이에요.”
“마법사 장터가 열리기까지 한 달 정도의 시간이 있으니까 그 전까지 네 친구 일을 먼저 해결을 하자고.”
사장의 말을 들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우선 뭐부터 해 볼까요?”
“기본이잖아. 일단 내가 상대할 적의 동태부터 살펴야지.”
우리 셋은 머리를 맞대고, 진우의 복수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
카페 앞, 내가 렌트한 차를 보고 사장과 미고의 눈이 휘둥그레해졌다.
“오! 이거 너 차야?”
사장이 어슬렁어슬렁 차 주위를 돌며 물었다.
“아뇨. 빌렸어요. 아무래도 놈들 쫓아다니려면 기동성이 좋아야 하니까.”
미고는 벌써부터 신이 났는지 방방 뛰며 차 문을 열고 들어갔다.
사장과 미고는 지난번 인간 세계에 다녀간 뒤로 부쩍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이었다.
사장의 옷은 전보다 훨씬 화려해졌는데 색이 보라색인 것뿐만 아니라 발목까지 내려오는 긴 판초를 입고 있었다.
미고는 여전히 추리닝 차림이었는데, 아무래도 몇 벌을 더 사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저… 사장님? 저번에도 말씀드렸는데 그 옷이 좀 튀는 거 같은데요.”
내 말에 사장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알았기에 난 그녀의 눈치를 보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 옷이 어때서!”
역시나 사장은 옷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걸 질색하며 말했다.
“옷이 튀는 건 걱정 안 해도 돼. 이걸 뿌릴 거니까.”
사장이 향수처럼 생긴 통을 들고 내게 사정없이 분사했다. 말린 황태에서 나는 것처럼 고소한 듯 비릿한 냄새가 은은하게 퍼졌다.
“이게 뭐예요?”
“피누누 오줌이요.”
미고가 천진한 얼굴로 오줌을 몸에 뿌리면서 말했다.
“뭐? 오, 오줌??”
“잠자코 뿌려 둬. 도움이 될 거야.”
난 진저리를 치면서도 사장이 피누누 오줌을 뿌리는 것을 거부하지 못했다.
“피누누는 5마을에 사는 커다란 용이에요. 피누누는 자신의 알을 지키기 위해 알에 오줌을 누거든요.”
“뭐? 요… 용??”
사장이 미고의 말에 부연 설명을 덧붙였다.
“거기에 시선을 감추는 마법이 녹아 있어. 그래서 피누누의 알을 훔치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기도 하지. 피누누는 신비한 동물이라서 밝혀지지 않은 미스터리가 많아.”
“시선을 감추는 마법이요? 저 근데 이제 그만 뿌리면 안 될까요? 충분한 거 같은데.”
어느새 머리카락과 얼굴이 흠뻑 젖어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딴생각을 하다 보니 그만. 이렇게 많이 뿌릴 필요는 없었는데.”
사장이 얄밉게 씨익 웃어 보였다.
피누누 오줌의 효과는 놀라웠다. 중간에 기사 식당에서 돼지 불백을 셋이서 12인분이나 먹었는데도, 아무도 우리를 쳐다보거나 신경 쓰지 않았다.
사람들은 마치 우릴 없는 사람처럼 대했다.
“우리가 보이긴 하는 거죠?”
“보이긴 해. 다만 시선이 머물지 않는다면 안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지.”
끼니를 해결한 우리는 개두식의 술집에 가 볼 심산으로 차로 향했다.
내가 차 조수석을 열고 사장에게 앉으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사장은 달걀처럼 생긴 가방에서 동백꽃이 화려하게 수놓아진 손수건을 꺼내서 자신의 엉덩이에 깔고 앉았다.
“개두식 말이에요. 그냥 술집 사장이 아니더라고요. 제가 요 며칠 알아봤는데 관리하는 대형 주점, 룸살롱이 수십 개에 달하고 거느리는 조직원들도 있어요. 조폭 두목이라도 되는가 봐요.”
“지까짓 게 그래 봤자지.”
술집 앞에 도착한 우린 맞은편에 차를 대고, 개두식이 나타날 때까지 무한 대기를 시작했다.
미고가 뒷좌석에 쟁여 둔 비상식량을 다 먹어 치울 때쯤 검은색 밴을 타고 개두식과 부하들이 모습을 보였다.
“어? 저기 형 친구 아니에요?”
개두식의 차 뒤편으로 멀찌감치 회색 중형차를 타고 있는 진우가 보였다. 선팅이 짙었지만 난 한눈에 그를 알아봤다.
“맞아. 내 친구.”
진우를 발견하자마자 한숨부터 나왔다. 혹시나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진우는 개두식 무리를 미행하고 있었다.
진우의 징조를 확인한 날 이후, 진우는 내 연락도 피했고, 어디서 자는지 집에도 통 들어가지 않았다.
잠시 후 개두식은 볼일을 마쳤는지 술집에서 나와 어디론가 이동하기 시작했고, 진우도 서둘러 그 뒤를 쫓았다. 무모한 진우의 행동에 애가 탔다.
“저 자식이 위험하게 진짜… 혼자서 대책 없이 어쩌려고… 하다못해 나라도 데려갈 것이지”
“널? 글쎄… 널 데리고 다니는 게 과연 더 안전할까?”
사장이 놀리듯 말하자 난 아랫입술을 실룩거리며 눈을 흘겼다.
내 표정을 바라본 사장이 어쭈- 가소롭다는 듯 말했다.
“너 많이 컸다? 내가 아주 편하지. 그지?”
그때 뒷좌석에 있던 미고가 나와 사장 사이로 얼굴을 불쑥 내밀더니 소리쳤다.
“어? 어어어?”
“왜 그래?”
“들켰어요. 형 친구가 개두식한테 미행하는 거 들켰다고요.”
폐공장 안쪽으로 들어오던 밴이 갑자기 중간에 멈춰 섰고, 개두식이 자신의 목덜미를 주물럭거리면서 차 문을 열고 나왔다.
진우는 망설임 없이 뒤따르던 자신의 차에서 나왔다.
그는 화가 나서 눈에 뵈는 게 없는 얼굴이었다. 오랜 친구인 나도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개두식과 진우는 서로의 차 중간쯤에서 만나 밀착해 있었다. 곧이어 진우가 거칠게 개두식의 멱살을 잡았다.
“어쩌죠? 나가 봐야 하는 거 아닐까요?”
난 긴장되고 초조해서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말했다.
“에휴! 혼자서 뭘 어쩌겠다고…. 네 친구도 너무 대책 없다.”
“좀 조용히 해 주세요. 뭐라고 하는지 안 들려요.”
미고가 미간을 찡그리며 귀를 기울였다. 개두식과 진우, 두 사람은 차에서 20미터가량 떨어져 있었다.
“넌 저게 들려?”
“형은 안 들려요?”
미고는 귀를 쫑긋 세우더니 나와 사장에게 두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전해 주기 시작했다.
“개두식, 이 개자식아. 우리 어머니 식당에는 왜 찾아간 거야?”
“식당에 파리만 날리는데 내가 애들 데려가서 매상 좀 올려 준 거 가지고 웬 시비냐? 경찰이 이래도 돼? 무고한 시민을 미행이나 하고 말이야. 그나저나 네 동생은 잘 지내냐?”
“이 새끼가!!!”
놈의 입에서 동생의 이야기가 나오자 진우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주먹을 휘둘렀다. 개두식은 턱을 정통으로 맞고도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네 동생이 비율이 좋았거든. 기억나냐? 네 동생이 중학생일 때 말이다. 우리가 네 동생이랑 한번 놀아 보려고….”
진우는 다시 한번 주먹을 휘둘렀고, 코뼈를 정통으로 맞은 개두식이 몸을 휘청거렸다. 진우는 쓰러진 개두식의 가슴에 올라타서 쉴 새 없이 주먹을 날렸다.
“어?!! 이러다가 큰일 나겠는데….”
난 진우가 개두식을 때려눕힌 것을 보고 통쾌하면서도 한편으론 불안해서 말했다.
“형! 이거 함정이에요.”
“함정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사장이 손가락으로 개두식이 타고 온 밴 뒤쪽을 가리켰다.
“저기 구석에서 똘마니 하나가 뭘 찍고 있는 거 같은데?”
그때 얼굴이 피범벅이 된 개두식이 바닥에서 일어나더니 미친 사람처럼 큰 소리로 웃었다.
“커트! 오케이. 아주 잘 나왔겠어.”
개두식의 부하 한 명이 차 뒤에서 몰래 휴대 전화로 두 사람을 찍고 있었다.
두목의 컷 사인이 떨어지자 부하는 다시 차 안으로 들어갔다. 진우는 증오에 사로잡혀 이성적인 사고를 하지 못했다.
그는 개두식에게 총을 겨눴다.
“엄마랑 동생 건드리면 가만 안 둬. 너 죽이고 나도 죽는 거야.”
그때 바로 옆으로 개두식이 타고 온 검은색 밴이 붙었다.
“그 총으로 뭐 할 건데? 쏘기라도 하게?”
개두식은 자신을 겨누는 총구에도 전혀 겁먹지 않고 키득거렸다.
“또 보자. 개눈깔.”
개두식이 밴에 타는 것을 본 나는 황급히 소리쳤다.
“저 휴대 전화! 당장 뺏어야 돼요.”
“그래? 그럼 뺏으면 되지.”
사장이 대수롭지 않게 차에서 내려 밴을 향해 큰 보폭으로 걸었다. 그녀의 머리카락이 정전기가 인 것처럼 가닥가닥 공중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사장이 손에 든 지팡이를 크게 휘젓자, 개두식이 탄 차의 핸들이 꺾이면서 방향을 틀었다.
차는 거친 엔진음을 내면서 사장을 향해 빠른 속도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운전을 하던 부하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돌아가는 핸들 때문에 당황하며 소리를 질렀다.
“혀, 형님! 차가 이상합니다! 브레이크도 안 먹어요! 으악!!!”
ㅡ끼이이이익.
전속력으로 달려오던 차가 사장의 바로 1미터 앞에서 멈췄다. 멀리서 사장을 보고도 차를 세울 수 없었던 부하는 미친 듯이 경적을 울렸다.
“너 미쳤어!!! 죽으려고 환장했어!!!”
사장은 난장판이 된 차 문을 열어서 태연하게 안을 살폈다.
“누구더라…. 어? 쟤네. 쟤.”
사장이 손바닥을 보이자 자석의 N극과 S극처럼 그녀의 손에 부하의 휴대 전화가 척 달라붙었다.
미련 없이 뒤돌아 가는 사장의 뒷모습을 보고 개두식 일당이 차에서 나오려고 했지만 차 문은 굳게 닫혀서 열리지 않았다.
“나 이거 쓸 줄 몰라. 네가 좀 해 봐.”
사장은 놈의 휴대 전화를 내게 건넸다. 내가 동영상 파일을 지우려고 휴대 전화를 켠 순간, 나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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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을 폭행하는 현직 경찰>
● 00: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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