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8화
난 떨리는 손으로 급히 촬영을 중단하고 영상을 삭제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는 걸 직감했다.
“형, 왜 그래요?”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사색이 된 내 얼굴을 보고 미고가 물었다.
“어쩌지? 영상이 벌써 퍼진 거 같아.”
사장은 개두식이 타고 있는 밴을 택배 상자처럼 이리저리 굴리고 있었다.
ㅡ쿵, 쿵쿵, 쿵.
차가 뒤집힐 때마다 차 속에서 비명 소리가 들렸다.
“사장님, 그만하세요. 저러다가 정말 죽겠어요.”
사장은 미고가 만류하자 흥미가 떨어졌는지 쌩 돌아서 가 버렸다.
“이 정도 장난에 죽는다고? 약해 빠져선.”
차에선 연기가 피어올랐고, 뒤집힌 차에서 개두식과 부하들이 앞다퉈서 탈출했다.
그들이 가까스로 차에서 빠져나오자마자 차에 불이 붙더니 굉음을 내며 폭발했다.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진우가 황급히 자신의 차를 타고 그곳을 빠져나갔다.
“진우야!!”
파누누의 오줌 탓인지 진우는 나의 존재를 느끼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나 역시 서둘러 미고와 사장을 차에 태웠다. 먼저 출발한 진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후였다.
“하아…. 복수는커녕 진우가 덫에 걸린 거 같아요.”
***
인터넷은 연일 현직 경찰의 폭행 동영상으로 떠들썩했다.
내가 직후에 영상을 지웠음에도 영상은 캡처, 녹화돼서 계속해서 퍼져 나갔다.
언론사들은 자극적인 헤드라인을 뽑아서 관련 기사를 올렸다.
후속 취재를 시작한 지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영상 속의 인물이 서울 남부 경찰서 소속 유진우 경위라는 사실도 알려졌다.
진우는 반부패 경찰 범죄 수사대의 조사를 받았고, 대기 발령 처분을 받았다.
모든 조사가 마무리되면 징계 수위가 결정될 방침이었는데 파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개두식의 부하들은 팔다리가 부러져 전치 28주로 입원했다.
그 와중에 개두식은 운이 좋게도 가벼운 찰과상만 입었을 뿐 크게 다치지 않았다.
차가 회전하는 동안 근육질의 부하들이 양쪽에서 쿠션 역할을 해 준 덕분이었다.
나쁜 놈들은 때때로 운도 더럽게 좋았다.
진우는 여전히 연락이 닿지 않았고 난 그런 그가 걱정돼서 미칠 지경이었다.
오늘 오전엔 국민 청원 게시판에 민간인을 폭행한 유진우 경위를 파면시키라는 글이 올라왔고, 벌써 18만 명이 이에 동의했다.
“이러다가 우리 진우, 회사에서 짤리고 폭행 전과까지 생길 텐데!!!”
난 탁자에 이마를 박은 채 머리카락을 세게 움켜쥐었다.
“그렇게 해서 대머리 되겠어? 좀 더 세게 당겨야지. 원한다면 도와줄 수도 있어.”
향이 날아간다며 좀처럼 아이스 커피는 만들어 주지 않는 사장이 웬일로 시원한 커피를 내오며 말했다.
난 끓어오르는 울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커피를 벌컥 들이켰다. 미고는 사장이 준 석류 주스를 마시고 시큼한지 얼굴을 찡그렸다.
“형, 미안해요….”
미고의 말을 듣자마자 숙였던 고개를 들어 그를 봤다.
“미고 네가 뭐가 미안해.”
“도움이 되지 못한 거 같아서요.”
“네가 미안할 일이 아니야. 휴…. 이런 거 너무 싫어. 잘못한 사람이 아니라 착한 사람만 미안해하는 이런 상황 말이야.”
“근데 개두식인가 하는 사람이요. 대체 뭘 하려는 걸까요? 알아듣지 못할 이상한 말을 하더라고요.”
“이상한 말?”
미고가 곰곰이 생각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검은 말의 해가 뜨면 솔잎꾼들이 공장에 모인다고 했어요.”
“뭐? 솔잎꾼? 공장?”
사장이 당최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스무 개 정도 되는 큰 건이라고, 곰을 피하려면 그 전에 유진우를 깔끔하게 처리해야 한다고 그랬어요.”
미고는 멀리서 감시하는 와중에도 그들이 하는 말이 다 들렸다.
그때마다 사사로이 말을 전하진 않았지만 그는 마치 도청 장치처럼 그들의 대화를 엿듣고 있었다.
물론 언뜻 보기에는 뒷좌석에서 쟁여 놓은 과자나 축내는 것 같았지만.
“잠시만! 나 뭔가 생각이 날 거 같아.”
난 진우가 이전에 마약 사범을 검거하면서 그들이 쓰는 은어에 대해 설명해 준 것을 떠올렸다.
“여기서 곰은 경찰이고, 가루는 마약이란 뜻이에요. 이전에 진우가 말해 준 적이 있었거든요.”
“그럼 개두식이 마약쟁이란 소리야?”
“아마도요. 해가 뜬다는 것은 마약 밀수에 성공한다는 뜻이고, 솔잎꾼은 마약 밀수꾼을 말해요. 공장은 마약을 제조하는 시설이고요. 20개는 거래하는 마약의 양이 20킬로그램이라는 거 같아요.”
“그럼 검은 말의 해는 무슨 뜻인데?”
사장이 그들이 쓰는 은어를 듣고 같잖다는 듯이 콧방귀를 뀌며 물었다.
난 진우가 했던 이야기를 기억해내려고 애썼다.
“흑마회! 검은 말은 아시아 쪽에서 활동하는 흑마회를 지칭하는 거 같아요. 진우가 북한산 마약을 취급하는 대규모 조직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고 했었거든요.”
“그럼 개두식이 흑마회란 놈들에게 마약을 사서 국내에 되팔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거야?”
“이제 알겠어요! 대규모 마약 거래를 앞두고 유진우라는 예상치 못했던 변수가 생긴 거예요.”
난 무릎을 손으로 탁 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진우가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미행하니까 거사 전에 그를 함정에 빠트린 거라고요! 미고야, 혹시 시기에 대한 말은 없었어?”
“음…. 일이 끝나자마자 콩밭에 갈 거라고 했어요. 콩밭이 어딘지는 모르겠지만요. 그러면서 다음 주 화요일 밤에 거기로 가겠다고….”
“그럼 화요일이겠네. 멍청한 놈들.”
사장이 얼음을 와그작 씹으며 말했다.
“가만, 오늘이 무슨 요일이죠?”
“화요일.”
“그럼 오늘이잖아요!!!”
온몸에 소름이 돋으면서 동시에 이미 늦었다는 허탈감이 밀려왔다. 난 아까보다 더 세게 머리카락을 쥐어뜯기 시작했다.
“야! 정신 사나워! 아직 안 늦었어. 지금이라도 개두식한테 가자고.”
“개두식이 어디에 있는 줄 알고 가요. 하아…! 잡을 수 있는 기회였는데.”
사장이 호들갑 떠는 내 앞에서 의기양양하게 손바닥을 펼쳤다. 손바닥에는 장롱에서 몇 년 묵힌 먼지처럼 부풀어 오른 머리카락이 있었다.
“어? 이건….”
자세히 보니 이는 노란 고무줄로 묶인 개두식의 꽁지머리였다.
사장은 개두식의 부하가 가지고 있던 휴대 전화를 빼앗을 당시에 다른 쪽 손으로는 개두식의 꽁지머리를 잘랐다.
흥분한 개두식은 자신의 머리카락이 잘려 나간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혹시 모르니까 내가 챙겨 놨지. 후후!”
내가 아직도 사태 파악을 못 하고 어리벙벙한 표정을 짓고 있는 와중에 사장이 공중에 반짝이는 이동 거울 가루를 뿌렸다.
가루는 흩어지지 않고 덩어리지며 모이더니 일렁이는 물결을 만들어 냈다.
처음엔 세숫대야 정도 크기였던 물결은 점점 커졌다.
안을 들여다보자 1급수 물처럼 맑은 물에 내 얼굴이 물의 파동에 따라 흔들리고 퍼져 나가는 것이 보였다.
사장의 머리카락은 소용돌이치듯이 수십 개의 똬리를 틀었다.
그녀가 알아들을 수 없는 주문을 외며 개두식의 꽁지머리를 그 안에 떨어트렸다.
그러자 머리카락은 순식간에 주인을 찾아 헤엄치며 물속을 유영하더니 개두식이 있는 곳으로 우리를 인도했다.
어느새 일렁이던 물결은 딱딱하게 굳어 공중에 누워 있는 거울처럼 보였다.
“자, 이제 가자. 개두식이 있는 곳으로.”
사장은 이미 몸의 반쪽이 거울 속 너머로 사라진 후였다. 난 미고의 손을 잡고 사장의 뒤를 쫓아 거울 속으로 들어갔다.
정신없이 굴러가는 파이프 속에 든 생쥐가 된 것처럼 속에 메스꺼웠다.
“이동 거울 말이야. 나랑은 좀 안 맞는 거 같아.”
난 휘청이는 다리를 고정하기 위해 한 손으로 벽을 잡고, 주변을 살폈다.
[기술 연구소]라는 낡은 간판이 창문 너머로 보였다.
사장은 우리가 나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주먹으로 거울을 산산조각 냈다.
“원래 마법사 지역 외엔 이동 거울을 쓰면 안 돼. 그러니까 없애야지. 인간들이 발견하기라도 하면 큰일이라고.”
개두식은 허름한 공업 단지 내 공장에 있었다. 넓은 책상 위에는 각종 실험 도구들이 놓여 있었다.
약품을 끓인 용기가 너저분하게 늘어져 있고, 알약이 가득 든 비커들이 일렬로 있었다.
“여기가 마약 제조 공장인가 봐요.”
용기를 손으로 슥 닦아 보니 하얀 가루가 묻어났다. 미고는 귀를 쫑긋 세우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바로 밑에 층에 사람들이 모여 있어요.”
“뭐가 들려?”
“형은 안 들려요?”
“전에도 말했지만 그거 너만 들리는 거야. 일단 가 보자.”
긴 복도를 지나 철제 계단 밑으로 사람들의 인기척이 들렸다.
난 휴대 전화를 꺼내 녹화 버튼을 누르고 계단 밑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두 무리가 각자 챙겨 온 물건을 확인하고 있었다.
개두식 일당은 누르스름한 가루가 든 가방을 살폈고, 거래 상대로 보이는 다른 쪽 무리는 골드바가 든 가방을 챙기고 있었다.
꽁지머리가 잘린 개두식의 단발머리가 찰랑거렸다. 그는 여전히 번들거리는 얼굴로 시건방지게 말했다.
“진짜 너희 운 좋은 줄 알아라. 이 정도 물건을 어디서 이 가격에 구하냐? 내가 우리 우정을 기리는 의미로다가….”
“개두식! 이발했냐? 그 거지 같은 꽁지머리 자르니까 얼마나 예쁘냐.”
키가 어색하리만큼 크고, 머리카락을 붉게 염색한 남자가 실실 쪼개자 금으로 두른 3번 치아에서 빛이 났다.
그는 오늘 개두식과 거래를 하는 조폭의 우두머리로, 빨간 대가리를 줄여서 ‘빨대’라고 불렸다.
둘은 그들 나름대로 안부 인사인 정겨운 욕설을 주고받더니, 서로 준비해 온 물건을 가져왔다.
빨대가 먼저 금이 든 가방을 확인시켜 줬고, 이번엔 개두식의 차례였다.
“빨대야, 이거 어젯밤에 멀리서 배 타고 온 거야. 아주 신선하다… 이 말이야.”
우쭐대던 개두식이 자신만만하게 가방을 열었을 때 그 안에는 공포의 백색 가루가 아닌, 종이로 만든 꽃가루가 들어 있었다.
“뭐, 뭐야! 이게??”
빨대가 가방 안에 든 꽃가루를 보고 정색하며 물었다. 개두식은 방금까지 몇 번이고 확인했던 가방에 뜬금없이 꽃가루가 들어 있자 당황해서 말문이 막혔다.
벙찐 표정에서 순식간에 살벌한 표정으로 돌변한 개두식이 부하들의 정강이를 차며 욕지거리를 했다.
“이 새끼들아! 시발! 이게 뭐야!! 가루 어디 갔어!!!”
분을 이기지 못하고 온몸을 파르르 떨던 개두식은 꽃가루가 든 가방을 힘껏 하늘 높이 던졌다.
상황에 맞지 않게 꽃가루는 개두식 위로 아름답게 흩날렸다.
“푸훗!!!”
위층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장이 웃음을 터뜨렸다.
“사장님이 하신 거예요?”
“응. 장난을 좀 쳤어.”
빨대는 팔짱을 끼고, 개두식과 그의 일당들이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더니 금이 든 가방을 챙겼다.
“어디서 되도 않는 연기를 하고 있어? 나를 놀린 대가를 치러야 할 거야. 발라 버려!!”
빨대는 공장 구석에 가서 품 안에 소중하게 안고 있던 가방을 열었다.
방금 전까지 1kg짜리 골드바 50개가 들어 있던 묵직한 가방 안에는 검은색 양갱이 빼곡하게 들어 있었다.
“시발! 설국 열차야 뭐야? 이 새끼들이 금 빼돌렸다! 금 찾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