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9화
빨대 무리가 각자 품속에 숨겨 뒀던 연장을 꺼냈다. 두 조폭들 사이에 긴장이 감돌았다.
그동안에도 개두식은 미친놈처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가루가 든 가방을 찾았다.
그가 나머지 가방을 모두 열어 봤지만 그 안에 든 것은 꽃가루뿐이었다.
“내 가루 어디 있어!!!”
개두식은 자신에게 달려드는 빨대 부하에게 꽃가루가 든 가방을 던졌다.
꽃가루가 슬로우 모션 효과를 넣은 것처럼 아름답게 휘날리자, 순간적으로 음악 방송의 한 장면처럼 보였다.
멀리서 봤을 때 이들은 싸운다기보다 각자 짝을 맞춰 탱고를 추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개두식 일당도 칼을 들고 덤비는 이들에게 맞서기 위해 각자 주머니 춤에 숨겨 두었던 연장을 꺼내 휘둘렀다.
“이… 이게 뭐야?”
그들이 칼이랍시고 꺼내 든 것은 기다랗고 싱싱한 대파였다. 나머지 조무래기들도 애호박, 무, 당근 등을 손에 들고는 눈만 끔뻑거렸다.
“시발!!! 야채 코너야! 뭐야!”
개두식의 절규가 공장 안을 가득 채웠다.
빨대는 나지막하게 “갈기갈기 찢어 버려.”라고 지시했고 두목의 지시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싸움이 시작됐다.
예리한 사시미 칼에 썰린 야채들이 공중에서 커다란 포물선을 그리고 우수수 바닥으로 떨어졌다.
개두식은 도망치면서 총을 꺼내 들었지만 그가 손에 든 것 역시 보라색의 싱싱한 가지였다.
위층에서 난장판이 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사장은 아예 바닥에 주저앉아 낄낄대고 웃었다.
그때 내 뒤쪽에서 낮게 깔린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방에서 대기하고 있던 부하들이 나오다 숨어 있던 우리와 맞닥뜨린 것이었다.
“쥐새끼가 들어왔네?”
몸집이 좋은 부하가 사장의 옷깃을 꽉 쥐고 들어 올렸다. 사장은 당황하기는커녕 아니꼽다는 눈초리를 보내며 말했다.
“주먹 부서지기 싫으면 놔라. 나 옷 구겨지는 거 진짜 싫어해.”
사장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옷깃을 잡고 있는 놈의 손을 꽉 잡았다.
“으아아악!”
놈의 손이 순식간에 꽁꽁 얼어붙었다. 주먹을 쥔 채 얼음 덩어리가 된 손을 본 놈이 기겁하며 비명을 질렀다.
그 옆에 심드렁한 표정으로 있던 부하가 깜짝 놀라 바로 옆에 있는 나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미고는 황급히 날 껴안았고, 놈의 주먹이 미고의 등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미고야, 너 왜 맞고만 있어?”
손모가지가 동상에 걸린 부하는 땅바닥을 뒹굴며 비명을 질렀다. 사장은 맞기만 하는 미고에게 태연하게 물었다.
“사람을 때려도 돼요? 제가 때렸다가 혹시라도 죽으면 어떡해요.”
“으이그, 순해 빠져선.”
아무리 때려도 자신의 주먹만 아플 뿐 미고의 등이 돌처럼 끄떡없자 졸개는 주머니에서 칼을 꺼내 들었다.
미고의 품 안에 있던 내 눈에 미고의 등으로 내리꽂히기 직전인 시퍼런 칼날이 보였다.
“안 돼!”
그 순간 등 위에서 커다란 날개 한쪽이 나와서 미고를 감쌌다. 미고를 찌르려던 칼은 날개에 가로막혀 바닥으로 튕겨 나갔다.
칼로 등을 찌르려던 부하는 되레 칼이 튕겨 나오는 힘으로 인해 팔이 등 쪽으로 기괴하게 꺾였다.
“으아아아악!!!”
사장의 입에선 작게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오…. 해그냥 너 이제 날개 쓸 수 있어?”
나도 모르게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 사장의 말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저요? 그냥 엉겁결에… 우연히 된 거 같아요.”
그때 1층에서 총성이 들렸다. 내가 112에 신고한 영상을 보고 현장에 출동한 경찰이 천장에 공포탄을 발사한 소리였다.
총성이 울리자 난장판이던 현장이 순간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하지만 그 적막은 오래가지 못했고 다시 모두가 엉겨 붙은 패싸움이 시작됐다.
개두식과 빨대는 경찰이 출동했음에도 각자 마약과 금을 찾지 못해서 현장을 쉽게 떠날 수 없었다.
1층에 있던 대부분의 조폭을 검거한 경찰이 지금 눈앞에 상황이 믿기지가 않는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감탄사를 뱉었다.
“와……. 내가 경찰 생활 22년 만에 이런 광경은 또 처음이야. 지금 저 새끼들 밀가루도 아니고, 시가로 20억 상당의 필로폰 4킬로그램을 공중에 날려 뒤집어쓰고 있단 말이야.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사장이 건 마법이 풀리면서 꽃가루와 야채로 변했던 마약과 무기가 제 모습을 되찾았다.
개두식이 꽃가루라고 생각하고 공중에 뿌린 것은 다시금 공포의 하얀 가루가 되어 사방에 흩어져 있었다.
개두식 자신의 머리 위에도 소복했고, 부하들의 어깨, 신발 뒷굽, 땅바닥에서도 보였다.
개두식이 이제야 눈앞에 상황이 제대로 보이는지 후들거리는 팔로 주변에 정신없이 흩어진 가루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이… 이건 말도 안 돼….”
그리고 정확히 몇 초 뒤 개두식의 단전에서부터 끌어 올린 절규가 공장 안을 가득 메웠다.
“안 돼애애애애애애!!!!!!”
***
사장의 커피숍, 경찰이 출동한 직후 이동 거울로 현장을 빠져나온 우린 주방 구석에 모여 앉았다.
“해그냥, 너 대체 어떻게 한 거야?”
“뭐가요?”
“아까 그거 말이야. 날개로 칼을 튕겨 냈잖아.”
방금 있었던 일의 여운을 즐길 새도 없이 사장이 아까 일을 캐묻기 시작했다.
“네가 케루빔의 날개를 자유자재로 쓸 수 있다면 그건 정말 엄청난 일이거든.”
“맞아요. 멋있었어요. 형 덕분에 오늘 제가 살았지 뭐예요.”
미고가 바보 같아서 더 사랑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엄지를 추켜세웠다.
안대에 가려 한쪽밖에 보이지 않는 그의 눈이 반달 모양으로 변했다.
난 그때의 상황을 복기했다. 딱히 한 건 없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몸에서 어떤 에너지가 배출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든 것은 사실이었다.
‘정말 그걸 내가 한 거라고?’
“근데 사장님, 놈들한테 그렇게 마법을 막 써도 되는 거예요?”
난 사장이 개두식과 빨대의 무리에게 마법을 걸었던 게 영 찜찜해서 물었다.
“잠시 지들이 미쳤었나 보다, 그렇게 생각할 거야. 경찰에 가서 말해도 믿어 줄 리도 없고. 약에 취해 헛것을 봤나 보다 하겠지.”
“아…. 하긴.”
“그나저나 다 끝난 게 아니지? 한 놈이 더 남았잖아. 이름이 뭐였더라?”
“황대찬이요.”
인터넷으로 [황대찬]을 검색하자 인물 정보가 나왔다.
그는 전형적인 법조계 엘리트 코스를 밟고 현재는 방송 출연을 주로 하고 있었다.
프로필 사진 속에서 그는 검은 정장에 남색 넥타이를 매고, 검지를 들어 당당하고 신뢰감을 주는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래미네이트를 했는지 유독 희고, 고른 이가 눈에 띄었다.
인물 정보 하단엔 황대찬과 관련된 뉴스 속보가 떴다.
[황대찬 변호사, 4월 총선 출마 선언. OO당 2030 공략의 열쇠 될까?]
유력 정당에서 다가오는 4월 총선 경기도의 한 선거구에 황대찬 변호사를 전략 공천하기로 결정했다는 뉴스였다.
공천 관리 위원장은 황대찬 변호사의 깨끗하고 정의로운 이미지가 당과 부합했고, 황 변호사라면 청년층에게 희망을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 사람, 정치를 하려나 봐요.”
“사람들은 이 자식이 뭐가 좋다고 그래?”
“방송용 이미지가 좋아요. 텔레비전에 틀었다 하면 나오거든요. 사람들은 미디어에서 자주 보다 보면 나중엔 진짜 아는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친밀감을 느껴요. 그리고 그 사람이 정의롭고 따듯한 사람이라고 믿는다고요.”
사장은 영 이해가 되질 않는지 어깨를 바짝 올리고 고개를 흔들거렸다.
“황대찬은 이런 사기에 능한 거예요. 어쩌면 정치인이 적성에 맞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래 봤자 힘없는 사람을 짓밟는 쓰레기일 뿐이야.”
그때 미고가 아이디어가 떠올랐는지 밝아진 표정으로 말할 타이밍을 살폈다.
“개두식이 경찰에 체포될 때 자기 변호사를 부르겠다고 하면서 황대찬한테 전화를 걸었어요. 둘 사이가 아주 끈끈한가 봐요. 전화해서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네가 내 변호사 좀 해야겠다.’라고. 이걸 이용할 수 있지 않을까요?”
미고가 어울리지도 않는 개두식 흉내를 내면서 말했다.
“둘 사이를 이간질하자는 거지?”
“네! 제 말이 그 말이에요.”
“괜찮은 생각이야. 그러려면 황대찬을 좀 재워야겠어.”
“재워요?”
내가 미고와 사장의 대화에 끼어들며 물었다.
“사람을 재우는 악초가 있어. 근데 이게 진짜 잠을 재우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정신을 아주 잠깐 재우는 거야. 그동안 우리가 그 사람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어.”
“황대찬을 조종할 수 있다는 말이에요?”
“음…. 그거랑은 좀 달라. 이건 일종의 최면이지. 잠깐만 가능할 뿐이고, 격렬한 움직임도 안 돼. 그러다가는 정신이 잠에서 깨 버리거든.”
사장의 아이디어가 마음에 들었다. 난 뭘 망설이냐는 식으로 의자에서 일어섰다.
“잠깐. 그전에 악초를 구해야 돼.”
“약초요?”
“아니, 악초. 악한 성질을 갖는 풀이야. 악초 할아범에게 가면 얻을 수 있을 거야. 너도 전에 본 적이 있잖아.”
“제가요? 언제요?”
“카페에 온 첫날 기억해? 네가 커피 한 잔 값에 스스로 따라갈 뻔했던 할아버지 말이야.”
“아…. 기억나요. 표정이 무섭게 돌변했던.”
“오늘 그 고약한 할아범에게 갈 거야.”
***
악초 할아범의 정원은 생각보다는 평범했다. 비가 내린 직후여서 습기가 가득하고, 스산한 분위기가 흘렀다.
낡은 벽을 덮고 있는 넝쿨에는 붉은색 작은 열매가 열려 있었다.
내가 그 열매가 작고 붉은 눈동자라는 것을 눈치챘을 무렵 역하고 진한, 그러면서도 매우 익숙한 금속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이게 무슨 냄새예요?”
“비린내야. 피비린내.”
사장이 굳이 따라오겠다고 조르던 미고를 기어이 카페에 두고 온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어느 정도 걷다 보니 아타드 가시나무 숲이 보였다. 가시가 굵고 짧으면서도 단단해서 찔리면 매우 고통스러웠다.
“사람들이 이 가시로 면류관을 만들어서 예수의 머리에 씌웠어. 그래서 저주받은 거야.”
우린 가시에 찔리지 않도록 나무 사이를 요리조리 피해 걸었다.
사장의 보라색 숄이 가시에 찢겨 거의 누더기가 됐을 때쯤 우린 숲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때 정원의 한가운데 크고 화려하면서도 추한 꽃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향은 맡지 마. 가급적 입으로 숨을 쉬는 게 좋을 거야.”
“왜요?”
“저 향에 취하면 환각이 보일 거야. 인생의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을 저주하게 만들거든.”
주황색 꽃잎은 두껍고 질긴 가죽처럼 넓적하고 쭈글쭈글했다.
축 처진 꽃잎 속에 암술이 짐승의 발기된 성기처럼 우뚝 서 있었고, 그 옆에 수술은 벌레가 우글우글대는 모습처럼 생겼다.
사람으로 치면 한때는 치명적이게 아름다웠고, 그래서 더욱 비참하게 늙어 버린 노파의 모습처럼 보였다.
“맞아. 노화(老花). 늙은 꽃이야.”
사장은 내 속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이 말했다.
“늙은 꽃이라….”
꽃이 아름다운 건 지기 때문이라는 시 구절을 떠올렸다. 영원히 지지 않고 늙어 가는 꽃이라니… 기분이 묘했다.
그때 멀찌가니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어? 저기에 사람들이 있어요.”
한참 동안이나 정원을 헤맸지만 아무도 보지 못했다. 사장과 난 사람들의 인기척이 들리는 곳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사람들에게 이 정원의 주인은 어디 있냐고 물으려고 했던 찰나에 난 사람들의 몰골을 보고 그대로 굳어 버렸다.
사람들은 비슷한 간격으로 땅에 뿌리를 내리고 심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