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화 (22/75)

#022화

“이제 둘이 알아서 할 수 있지? 나는 저녁 장사 준비하러 가야겠어.”

사장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차에서 내렸다.

유유히 떠나는 사장의 뒷모습을 보면서 미고와 난 난처한 시선을 교환했다.

“형! 제가 그 오른팔이란 놈을 찾아볼게요. 하늘에서 보면 금방 찾을 거예요.”

“그럼 나는 개두식의 집 앞에서 대기하고 있을게. 전에 놈을 감시하면서 집이 어딘지 알아 뒀거든.”

“근데 형 친구는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요?”

“그러게. 어제도 진우 집에 갔었는데 아무도 없더라고.”

유진우 경위가 폭행했다고 알려진 민간인이 사실 조폭 두목이었고, 최근 마약 밀매 중에 체포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진우에 대한 여론이 바뀌기 시작했다.

기사에는 ‘언제부터 조폭 두목이 민간인이 됐지?’ ‘앞뒤 상황 편집해서 멀쩡한 경찰 매장한 거 아님?’ 등의 댓글이 달렸다.

진우는 폭행 경찰이라는 오명을 벗었지만, 여전히 종적이 묘연했다.

“진우는 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사진만 손에 넣고 나면 진우를 먼저 찾아야겠어.”

미고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어느새 까마귀로 변신해서 커다란 날개를 저으며 하늘로 솟구쳤다.

사장의 예상대로 개두식에게 급히 연락을 받은 오른팔은 개두식의 차인 벤틀리를 끌고 그의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빡빡머리에 이마가 넓고 주걱턱인 그는 반주 없이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개두식이 교도소에 들어간 후부터 그는 사실상 조직의 비상 대책 위원장의 역할을 맡았고, 꽤 만족스럽게 그 일을 수행하고 있었다.

이제 형님이 집 비밀번호도 알려 줬으니 조직 내의 그의 위신은 더욱 높아질 게 뻔했다.

오른팔이 운전하는 차가 개두식의 집 앞에 도착하자 근처에 있던 난 급히 몸을 조수석 쪽으로 뉘었다.

그때 뒤따라 날아가는 까마귀의 모습이 보였다.

‘미고다.’

오른팔은 형편없는 실력의 휘파람을 불면서 집 현관문의 비밀번호를 눌렀다.

난 미고가 까마귀 눈알로 변신해서 오른팔이 입고 있던 잠바에 달린 모자 속으로 재빨리 들어가는 모습을 숨죽여 지켜봤다.

미고와 오른팔이 집으로 들어간 후, 나는 정원에 심겨 있는 향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벽 전체에 커다란 창이 나 있어서, 거실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개두식의 집은 아주 넓었는데 조잡한 장식품들이 거실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일관성이라곤 전혀 없는 잡다한 인테리어 때문에 정신이 사나울 지경이었는데, 비싸면 장땡이라는 개두식의 천박한 경제 관념이 보였다.

미고는 대리석으로 만든 고릴라의 손바닥에 올라가서 오른팔을 감시했다.

그는 거실에서 잠시 두리번거리더니 전부터 가 보고 싶었던 옷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일랜드 서랍장에서 고급 손목시계 하나를 꺼내더니 손목에 찼다.

“크! 죽이네.”

두 개의 시계를 들고 한참을 고민하던 오른팔은 하나를 손목에 차고, 다른 하나는 호주머니에 넣었다.

옷 방에서 나온 그는 이제 컴퓨터가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그는 개두식이 일러 준 대로 사진 파일을 찾아 클릭했다.

사진 한 장이 커다란 모니터에 가득 들어찼다.

미고도 진우의 기억을 통해 본 적이 있었다.

사진 속에서 진우는 나체로 맨바닥에 무릎을 굽혀서 엎드려 있었다.

어두운 곳에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고, 적목 현상으로 인해 진우의 동공은 굶주린 짐승의 눈처럼 붉게 빛났다.

개두식은 진우의 엉덩이에, 황대찬은 그의 목덜미에 다리를 올리고 포즈를 취했다.

황대찬의 얼굴은 플래시 빛을 받아 유독 선명하게 보였다.

오른팔은 사진을 보더니 낄낄대며 웃었다.

“오! 잘난 황대찬 변호사님이시네. 건방진 새끼. 너도 이제 끝이구나~”

그는 말끝에 멜로디를 붙여서 한참 동안 바이브레이션을 넣었다.

그는 주머니에서 휴대용 포토 프린터를 꺼내서 그 자리에서 사진을 현상했다.

미고는 어느덧 만화책이 빼곡히 채워진 책장 위에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낡은 폴더폰으로 현상한 사진을 찍어서 황대찬에게 전송했다.

미끼를 문 그에게서 바로 전화가 걸려 왔지만 받지 않고 전원을 껐다.

개두식이 지시한 일을 완료한 그는 홀가분하다는 듯이 집에서 나왔다.

그가 손목에 찬 고급 시계에 정신이 팔려 있는 동안 미고는 그의 주머니 속에 든 USB를 주머니 밖으로 튕겨 냈다.

그 시각, 여의도에 임시로 차려진 선거 사무소에 있던 황대찬은 오른팔이 보낸 과거 사진을 확인하고는 휴대 전화를 들고 있던 손을 꽉 쥐었다.

그는 모든 일정을 미뤄 둔 채 개두식이 있는 교도소로 향했다.

“지금 뭐 하자는 거야?”

무표정한 얼굴을 한 황대찬이 목소리를 낮게 깔고 말했다.

“내가 경고했잖아. 날 우습게 보지 말라고.”

“뭔 경고를 했다고 그래? 어이없네.”

개두식은 태연하게 모른 척하는 황대찬의 태도에 심히 모욕감을 느꼈다.

“난 가급적 여기서 빨리 나가야겠어. 몇 년 동안이나 빵에서 썩을 생각은 전혀 없다는 소리야. 네가 날 빼 주지 않는다면 나도 혼자 죽지 않아.”

“이 새끼, 이거 사람 취급해 줬더니. 웃기네.”

황대찬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개두식을 위아래로 훑었다.

개두식도 지지 않고 그를 쏘아봤지만, 등줄기에선 식은땀이 흘렀다.

개두식은 황대찬이 정말 화가 나면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한참 동안 정적이 흐른 뒤 황대찬이 입을 열었다.

“네가 필로폰을 공중에 다 날려 먹는 바람에 그게 정확히 몇 킬로그램이었는지 측정할 방법이 없어. 세상에 어떤 미친놈이 수십억을 호가하는 필로폰을 그렇게 뿌려 대겠어.”

개두식은 그때의 일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괴로운지 심호흡을 크게 했다.

“난 그중에 대부분은 가짜였다고 주장할 거야. 마약 밀매가 아니라 가짜 마약으로 사기를 치려고 했던 것일 뿐이라고. 그럼 형량을 줄일 수 있을 거야. 아, 물론 내가 직접 사건을 맡진 않아. 로펌의 다른 변호사를 시킬 생각이야.”

“새끼야! 인맥 동원해서 최대한으로 해 봐. 사진 확 뿌려 버리기 전에. 우리 황 의원님, 이제 장관도 하고, 대통령도 하셔야 하는데 이 정도 일로 주저앉으시면 안 되잖아요.”

개두식은 빈정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껄렁거리는 걸음걸이로 접견실을 나갔다.

‘사람 취급?’

의기양양하게 뒤로 돌아선 그의 표정은 행동과 달리 점점 굳어 갔다.

***

난 미고가 챙겨 온 USB와 졸업 사진 등을 고이 챙겼다.

미고를 기다리는 동안 황대찬의 SNS를 살피고 있었는데 볼수록 가관이었다.

황대찬은 <청년을 위한 변호를 시작합니다.>로 공식 슬로건을 정하고, 신림동을 찾아 아침 인사를 하는 것으로 첫 공식 활동을 시작했다.

그의 계정에는 청년을 위한 정책 제안 10가지가 카드 뉴스 형태로 올라와 있었다.

또 황대찬이 학생들과 같이 서서 소탈하게 컵밥을 먹는 사진, 학생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는 사진 등에는 ‘좋아요’ 수가 천 개가 넘었다.

방금 올라온 게시글에는 오늘 저녁 잠실에서 있을 게릴라 유세에 대한 소식이 담겨 있었다.

“미룰 것 없지. 오늘 당장 터트리자!”

난 챙겨 온 노트북으로 분주하게 작업을 시작했다.

미고는 어울리지도 않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을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날 신기하게 바라봤다.

“내가 이 순간을 위해 이제껏 그 많은 PPT를 만들고, 보고서를 썼나 봐. 이것도 써먹을 데가 다 있네.”

미고는 봐도 그게 뭔지 몰랐지만 난 황대찬의 학폭 의혹을 담은 보도 자료를 쓰고 있었다.

“엇, 시간이 벌써 이렇게… 얼른 가자 미고야. 30분밖에 안 남았네.”

황대찬의 잘못을 만천하에 퍼트린다. 내 심장은 어느덧 살짝 설레기까지 했다.

잠실역 부근 유세 현장, 이곳은 황대찬의 지지자들로 시작 전부터 붐볐는데, 당 대표까지 방문해 열기를 더했다.

구석에선 당의 상징인 주황색 옷을 입은 당원들의 구령 연습이 한창이었다.

비서는 버스 단상에 올라 마이크 테스트를 하고, 트럭 위에 놓인 커다란 스크린에 동영상이 잘 재생되는지 확인했다.

황대찬의 홍보 영상 뒤엔 당 지휘부와 황 변호사의 팬을 자청하는 연예인들의 인사말이 이어졌다.

유세 시간에 맞춰 사람들이 모여들고, 기자들도 속속들이 도착했지만 황대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때 주황색 인파 속에서 머리서부터 발끝까지 보라색 아이템으로 멋을 낸 사장이 고양이 같은 특유의 걸음걸이로 도도하게 걸어왔다.

“너 지금 뭐 해?”

단번에 숨어 있는 날 찾은 사장은 유세 현장의 소음에 귀가 따가운지 한쪽 귀를 막았다.

난 차 뒤쪽에서 분무기에 담긴 피누누 오줌을 뿌리고 있었다. 미고는 피곤한지 까마귀 모습을 한 채로 차 속에서 곤히 자고 있었다.

“오셨어요?”

“아예 오줌으로 샤워를 하지 그래?”

온몸이 피누누 오줌으로 흠뻑 젖은 날 보며 사장이 혀를 차며 말했다.

“긴장돼서 그래요. 사람들 몰래 이걸 틀어야 한다고요.”

한 손에 든 USB를 사장에게 보이며 심호흡을 했다.

“제가 챙겨 와 달라는 것은요?”

“이거?”

사장이 카디건에 달린 커다란 주머니를 펼치자 그 안에서 개구리 틀니들이 딱딱거리며 소리를 냈다.

“네가 챙겨 오라고 해서 가지고는 왔는데, 이게 잘될지 모르겠네.”

사장이 작게 중얼거렸지만 마침 시작된 황대찬의 연설 소리에 묻혀 잘 들리지 않았다.

사장과 난 서둘러 유세 현장 앞줄에 자리를 잡았다.

주황색 모자와 점퍼를 입은 황대찬 목소리의 톤이 점점 고조됐다.

“이렇게 많은 분들이 저를 위해서 이곳에 모여 주시고, 일 분 일 초가 바쁜 시민분들께서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서 주시니 책임감이 느껴지고, 마음속에 형용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옵니다. 제가 이제껏 헛살지는 않았구나 싶은 생각에 어쩌고저쩌고….”

말을 간결하게 하지 않고, 길게 늘여서 중언부언하는 것이 그는 벌써 정치인의 화법을 익힌 모양이었다.

말끝에 터지는 박수 세례에 그는 바닥에 넙죽 절을 했다.

“이걸 끼고도 멀쩡히 연설할 수 있나 보자 황대찬…!”

심드렁한 표정의 사장과 달리 난 야심 차게 주머니 속에서 개구리 틀니를 꺼냈다.

마침 황대찬이 마이크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저 황대찬, 이제 여러분들을 위한 변호를 시작합니다!”

입을 크게 벌린 그를 향해 개구리 틀니가 포물선을 그리면서 날아갔다.

하지만 개구리 틀니는 그의 입속으로 들어가려는 듯싶더니 튕겨져 나와 순식간에 인파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왜 이러지?”

다시 주머니에 있던 개구리 틀니를 꺼내서 그를 향해 던졌지만 결과는 똑같이 실패였다.

사장은 놀란 기색 없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 이럴 줄 알았어.”

“왜죠? 왜 개구리 틀니가 황대찬에게는 안 통하는 거예요?”

“생각해 봐. 개구리 틀니도 비위라는 게 있는데 악취가 심하면 걔네들이 입안에 들어가겠니?”

“악취? 입 냄새가 심하다는 거예요?”

“내 말은 그게 아니라, 저놈이 나쁜 놈이라는 거야. 보통 나쁜 거 말고 아주. 가령 사람을 죽였다든가 하는, 개구리 틀니도 살인자의 입속엔 안 들어가.”

“살, 살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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