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3화
황대찬의 입에 들어가려다가 필사적으로 튕겨져 나가는 개구리 틀니를 보고 난 사장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이게 다야? 오늘 준비한 게?”
“아뇨. 이제 시작이죠.”
어울리지 않는 건방을 떨며 휴대 전화로 시간을 확인했다.
지금쯤 내가 예약을 걸어 둔 보도 자료가 언론사 기자들과 상대 후보에게 이메일로 전송됐을 것이다.
“황대찬에겐 제가 직접 보여 줘야죠.”
난 심호흡을 하곤 슬금슬금 자리에서 일어났다. 피누누 오줌 덕분인지, 입고 있는 스텝용 형광 조끼 때문인지 아무도 날 신경 쓰지 않았다.
난 유세 차량 위에 놓인 모니터와 연결된 컴퓨터에 USB를 연결했다. 그리고 동영상을 틀기 위해 스페이스 바를 경쾌하게 눌렀다.
단상 위에서 핏대를 세워 가며 소리를 지르던 황대찬의 뒤편에 고등학교 졸업 사진이 큼지막하게 떴다.
관중들은 그의 사진을 보고 영문을 모르면서도 일단 환호성을 질렀다.
뒤를 돌아 자신의 사진을 확인한 그는 설핏 당황했지만 이를 넉살 좋게 넘기며 말했다.
“제 고등학교 졸업 사진이네요. 어때요? 잘생겼습니까?”
사진 속의 황대찬은 현재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지금처럼 안경을 쓰고 있지는 않았는데 그래서인지 미간이 유독 넓어 보였다.
매서운 눈매에 무표정하게 굳은 입가가 인상을 한층 날카롭게 보이게 만들었다.
“제가 정말 공부밖에 모르는 바보였거든요. 그때 저희 반에 다리를 심하게 저는 학생이 있었는데 제가 그 친구의 등하교를 늘 도와주곤 했습니다. 사진을 보니 그때 생각이 나는군요.”
황대찬이 노련한 애드립으로 돌발 상황을 넘기려는데 그때 다른 사진 한 장이 떴다.
개두식의 졸업 사진이었다. 통통하게 오른 볼살을 화농성 여드름이 뒤덮은 남자애는 누가 봐도 껄렁한 분위기를 풍겼다.
사진 속 개두식은 어깨만큼 내려오는 머리카락을 한데 묶고 기름진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가 이번에는 상황을 유려하게 넘기지 못하고 행사 진행 요원들을 향해 정색하며 말했다.
“이거 꺼. 당장.”
그때 화면 속 개두식의 사진 옆에 궁서체의 글씨가 조악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이름: 개두식
現 연천파 두목
최근 마약 밀매 중 경찰에 검거. 남부 교도소에 수감 중.]
[개두식과 황대찬은 절친 관계.
개두식이 운영하는 술집에서도 만나고, 최근에는 교도소 접견을 가기도 했음.]
그간 미행하며 찍었던 두 사람의 사진이 차례대로 재생됐다. 사진 속의 두 사람은 서로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활짝 웃고 있었다.
[깡패 개두식과 황대찬 변호사의 사이는 각별함. 두 사람이 일진 행세를 하던 이때부터.]
마지막 사진이 뜨자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구름처럼 단상 아래에 깔렸다.
[이게 황대찬의 실체입니다.]
사진 속 진우의 모습은 옷을 입고 있고, 얼굴은 알아볼 수 없게 뭉뚱그려져 있었다.
진우의 적나라한 모습이 세상에 퍼지지 않길 바란 나의 조치였다.
하지만 옷을 입히고 얼굴을 가린다고 해서, 그 잔악무도함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었다.
비참한 몰골로 엎드려 있는 사람의 목덜미에 발을 올리고 비열하게 입꼬리를 올리고 있는 그의 얼굴이 크게 확대됐다.
방송사 카메라도 이를 찍고 있었고, 기자들은 아예 바닥에 주저앉아 키보드가 부서져라 기사를 전송하고 있었다.
“이건 제가 아닙니다. 착오 없으시길 바랍니다. 누군가 저를 음해하려고 이런 영상을 튼 거 같네요. 기자분들, 허위 사실을 기반으로 기사를 써서 국민을 호도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만약 그런 일이 발생할 시에는 민·형사상의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기자들이 앞다퉈 단상 쪽으로 몰려들어 질문을 퍼부었다.
“사진 속 인물, 정말 본인 아니십니까? 얼핏 봤을 땐 동일인 같은데요.”
“개두식과는 무슨 사이시죠? 교도소 접견은 왜 가신 겁니까?”
“학교 폭력 가해 사실을 부인하시는 겁니까?”
방금까지 황대찬의 이름을 연호하던 관중들은 순식간에 자기들끼리 수군대며 의심 섞인 눈초리를 쏘아 대기 시작했다.
흥분해서 기자들과 싸우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폭주하길 기대했지만 그는 하수가 아니었다.
그는 기자들에게 사실무근이라는 말만 남기고, 끝까지 점잖은 모습으로 현장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그가 작게 입 모양으로 내뱉은 말은 아무도 포착하지 못했다.
“개두식 개새끼, 가만 안 둬.”
황대찬의 학폭 의혹은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로 올랐다.
내가 보낸 메일을 받은 기자들이 기사를 쓰기 시작했고, 그 사진을 본 또 다른 피해자들의 제보가 SNS에 줄줄이 올라왔다.
[황대찬 후보, 알고 보니 학창 시절 일진으로 유명]
[청년 대변인 황대찬의 두 얼굴… 학폭 의혹 일파만파]
[“나도 황대찬에게 당했다”… 잇따른 피해 제보에도 발뺌하나?]
[황대찬 학폭 증거 사진 감정 의뢰 “조작 가능성 없어”]
[황대찬 후보 조폭 연루설… 여당 손절 수순 밟나]
황대찬의 몰락은 순식간이었다. 당 지휘부의 사퇴 압박에 그는 결국 선거를 치르기도 전에 물러났다.
그는 선거 캠프에 조폭과 연루된 자금이 흘러갔다는 한 시민 단체의 고발 건으로 검찰 수사를 받았다.
갖은 뉴스의 비평을 맡았던 그는 이제 뉴스의 당사자가 되었고, 종편 채널에선 온종일 황대찬 이야기뿐이었다.
일을 마친 사장과 미고와 난 커피숍 주방에 쪼그려 앉아 조촐하게 티타임을 즐겼다.
사장이 한 손으로는 커피잔을 들고 오면서 말했다.
“얼추 두 사람에 대한 복수가 마무리된 거 아닌가?”
“이제 진우를 찾아야 해요. 한 달째 집에도 안 들어오고, 대체 어디에 있는 거지.”
난 한 언론사에서 진행한 개두식의 단독 인터뷰 기사를 성의 없이 넘기며 말했다.
[단독] 개두식 인터뷰 ⓵ “황대찬과 친한 거 맞아. 사진 속 인물도 황대찬과 나.”
“개두식은 교도소에 있으니까, 황대찬 주변에 있지 않을까?”
“진우가 여전히 황대찬 주변을 맴돌고 있다고요? 설마….”
사장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느낌인데 네 친구가 아직 이 정도 복수에 만족을 하지 못한 거 같아서 말이야. 만족스러웠다면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이유가 없잖아?”
“그런가. 그럼 진우의 마음이 풀리려면 대체 어떤 복수를 해야 할까요. 죽이기라도 해야 되나….”
“그렇게 걱정되면 황대찬의 집에 가 보자. 왠지 거기에 있을 거 같아.”
사장은 주섬주섬 나갈 채비를 하는 미고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오늘 넌 빠져. 넌 나 대신 가게를 지켜야지.”
미고가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반박했다.
“왜요? 저도 갈래요!”
“요즘 가게 문을 자주 닫는다고 손님들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야. 그니까 오늘은 네가 수고 좀 해 줘야겠다.”
미고는 아쉬운 듯이 입술을 삐쭉 내밀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황대찬의 집은 남산을 등지고, 앞엔 한강이 흐르고 있어 풍수지리상 명당으로 꼽혔다.
그의 고급 주택 앞, 거대한 담장을 보며 난감해하며 물었다.
“오긴 왔는데 어떻게 들어가죠?”
“어떻게 들어가긴? 이미 열려 있구만.”
사장이 현관문을 검지로 톡 하고 건들자 문이 끼익 소리를 내며 열렸다.
“우리 말고도 손님이 더 있나 본데?”
바깥문은 열려 있었고, CCTV도 신문지 같은 종이로 어설프게나마 가려져 있었다.
사장은 대수롭지 않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나는 괜히 주변을 살피며 그의 뒤를 따랐다.
현관문 틈 사이로 찬바람이 비집고 들어가는 소리가 스산하게 났다. 사장이 현관문을 열자 바람이 더 세게 불었다.
나와 사장은 숨죽이고 조심조심 거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인기척이 없는 거실에 커다란 암막 커튼이 휘날렸다.
커튼이 다시 제자리를 찾아가자 그제야 거기 서 있던 남자의 실루엣이 보였다.
‘진우다.’
반가워할 새도 없이 진우 옆에 서 있는 또 다른 그림자가 보였다.
검은 복면을 쓴 괴한은 한 손에 긴 사시미 칼을 들고 있었다.
얼굴을 가린 것이 무색하게, 입고 있는 반 팔 티셔츠 사이로 ‘오른팔’이라는 문신이 엿보였다.
개두식이 보낸 부하였다. 그리고 그 칼날은 진우가 아닌 거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황대찬을 노리고 있었다.
진우는 본능적으로 괴한의 앞을 막아서다가 놈이 들고 있던 칼에 왼쪽 허벅다리를 찔렸다.
“으윽!”
진우가 고통에 신음하며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달빛에 피골이 상접해서 푹 꺼진 눈자위에, 해쓱하게 들어간 볼때기를 한 그의 얼굴이 보였다.
진우는 예전의 모습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한 몰골을 하고 있었다.
오른팔이 바닥에 엎드려 있는 진우의 등에 칼을 꽂으려 하자 사장이 황급히 지팡이를 꺼냈다.
그러자 놈이 들고 있던 칼날이 쪼그라드는듯하더니 둥글게 말렸다.
이어서 오그라들듯이 말린 칼날이 진우의 등을 치는 소리가 둔탁하게 들렸다.
“시발! 이게 뭐야?”
오른팔이 말려 들어간 칼날을 보며 얼떨떨한 표정을 지으며 욕을 뱉었다.
“진우야!”
다친 진우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그는 힘없이 축 처져서 내 품에 안겼는데, 이전보다 가뿐한 것이 몸무게가 족히 10킬로그램 이상은 빠진 게 분명했다.
“너희 새끼들 누구야!”
그제야 거실에 있던 사장과 날 발견한 오른팔이 무용해진 칼을 바닥에 거칠게 던졌다.
심상한 표정을 짓고 있던 사장이 좋은 아이디어라도 떠오른 듯이 앞으로 한 발짝 내디디며 말했다.
“우리가 굳이 싸울 필요가 없을 거 같은데? 너 황대찬 죽이러 왔지? 난 쟤가 어떻게 되든 아무 상관이 없거든? 그냥 이 친구만 데려가면 돼. 나머지는 네가 알아서 해.”
오른팔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혼란스러우면서도, 사장의 말이 싫지는 않은 눈치였다.
이상한 옷을 입은 여자는 자신의 칼을 구부러뜨린 것부터 범상치 않은 아우라를 풍겼으니.
“해그냥, 친구 챙겼지? 이만 가자.”
난 진우의 어깨를 부축하며 일어섰다. 사장의 말대로 일단 진우를 안전한 곳으로 데려가는 게 우선이었다.
바닥에서 눈치를 살피던 황대찬이 이 틈을 이용해 휴대 전화로 경찰에 신고를 하려고 하자, 오른팔이 순식간에 그의 볼기짝을 후려갈겼다.
황대찬이 들고 있던 휴대 전화가 힘없이 날아갔다. 연이어 복부를 맞은 그가 바닥에 누워 숨을 헐떡일 때쯤 오른팔이 재킷 안쪽 주머니에 있던 짧은 칼을 뽑아 들었다.
그때 내 품에 있던 진우가 다리를 쩔뚝이면서도 재빠르게 튀어 나가 칼을 들고 있는 졸개의 팔을 비틀어 잡았다.
손아귀에 힘이 풀린 오른팔이 단도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놈은 진우에게 잡힌 팔을 풀기 위해 몸을 휘둘렀고, 팔꿈치에 얼굴을 맞은 진우의 코에서 코피가 흘렀다.
“가만, 이제 보니 네 친구 말이야. 황대찬을 해치려는 게 아니라 지키려는 거야? 대체 왜? 이게 말이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