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4화
“대체 왜 저러는 건데?”
사장은 황대찬을 구하려는 진우의 행동이 당최 이해가 가질 않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피를 흘리는 진우를 보며 난 씩씩거리며 놈의 앞을 막아섰다.
“진우한테 손대지 마!”
일생에 단 한 번도 남에게 주먹을 휘둘러 본 적이 없었던 나는 상대를 때리기 위해서 어떻게 팔을 뻗어야 하는지도 알지 못했다.
어설프게 주먹을 휘적거리는 내 몸짓을 무표정하게 지켜보던 오른팔이 태연히 바닥에 떨어진 단도를 주었다.
“와! 나 진짜 어이가 없네? 오늘 내 손에 다 죽자.”
공중에 팔을 휘젓고 있는 와중에 사장이 내 어깨에 가만히 손을 올렸다.
“야…. 진정해. 차라리 마법을 써.”
오른팔이 다시금 칼을 들고 사방으로 휘둘렀다. 사장은 개의치 않고 천천히 그에게로 다가갔다.
그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오른팔이 뒷걸음질 치다가 소파 가장자리에 걸려 넘어졌다.
“적의 적은 동지라는 말이 있어. 헌데 이 친구한테는 그 말이 해당이 안 되나 보다. 그냥 적은 적일 뿐이라는 거지.”
“뭔 개소리야!”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 오른팔이 사장에게 달려들었지만 그의 손끝 하나 건드리지 못했다.
놈은 휘두르던 주먹을 거두고 갑자기 자신의 옆구리를 꼬집기 시작했다.
“아아악!!!”
오른팔은 자신의 옆구리를 꼬집다 못해 비틀어 쥐어짜기 시작했는데 얼마나 아픈지 상반신이 한쪽으로 쏠렸다.
“씨발! 이게 뭐야! 그만! 제발 그만해!! 그만!!”
오른팔은 급기야 바닥에 데굴데굴 구르면서 비명을 질렀다.
그럼에도 한 손으로는 자신의 옆구리를 끈질기게 잡고 늘어졌다. 입고 있던 하얀색 옷에 붉게 피가 묻어났다.
“이제 알겠어? 넌 나를 어찌할 수 없다는 거.”
오른팔은 흐느끼며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내뱉었는데 그중에 ‘제가 잘못했습니다.’라는 말이 그나마 선명하게 들렸다.
손으로 생살을 뜯어내는 고통은 날카로운 칼에 베이는 것에 비할 바 없이 고통스러웠다.
“그럼 이제 네가 챙겨 온 이 밧줄로 네 발이랑 손목을 스스로 묶도록 해.”
사장은 오른팔의 옆구리를 꼬집던 손을 풀어 주었다.
놈은 어찌나 아픈지 두 눈에 그렁그렁하게 맺힌 눈물을 후두둑 떨어뜨리며 스스로 자신의 발목을 묶었다.
사장의 눈치를 보면서 그는 있는 힘껏 최선을 다해 밧줄을 묶었다.
힘이 자랑인 사람에게는 더 큰 힘을 보여 주면 됐다.
사장은 내게 기대어 위태롭게 서 있던 진우의 입에 보라색 젤리 하나를 넣었다. 입을 오물오물하던 진우는 갑자기 메스꺼운 듯이 헛구역을 했다.
“우… 우엑!”
진우는 온몸을 부르르 떨다가 자신의 팔뚝만 한 애벌레를 토했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애벌레가 거실에서 꿈틀거렸다.
형광 녹색에 노란 반점을 한 애벌레는 몸을 잔뜩 쪼그렸다가 벌리면서 바닥을 기어갔다.
“윽! 저게 뭐예요?”
“증오를 부추기는 벌레야. 원래는 머리카락처럼 가늘었을 녀석인데 사람의 피와 영혼을 먹으면 이만큼 자라기도 하지.”
사장이 바닥에서 구부러진 칼을 들어서 애벌레에게 던졌다.
동그랗게 말려 들어갔던 칼날은 어느새 다시 예리하게 서서 애벌레의 몸통을 관통했다.
애벌레의 몸 사이로 진득한 주황색 액체가 흘러내렸다.
“이 벌레는 네 친구에게 황대찬을 죽이라고 속삭였을 거야. 보통은 애벌레의 말을 거역하지 못해.”
“근데 어째서 진우는 황대찬을 구한 거죠?”
“하지만 네 친구는 용케도 버틴 모양이야. 벌레가 자신의 몸과 마음을 갉아먹는 동안에도, 자신이 죽어 가면서까지 남을 죽이지 않고 버틴 거지. 뭐, 대단하다면 대단하네.”
사장은 이해할 수 없었다. 황대찬같이 사라져 마땅한 사람을 해하지 않고, 끝끝내 보호하려 했던 진우가 마뜩잖았다.
벌레에게 잡아먹혀 죽을지언정 살인을 할 수 없다는 그의 맹렬한 내적 전투는 대체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
경찰로서의 사명감? 남을 해치고 살진 못하는 타고난 성정 때문에?
“이만 가자.”
사장에 말에 난 의식을 잃은 진우를 부축해 집을 나갔다. 황대찬은 먹통이 된 휴대 전화를 붙잡고 있었다.
사장이 문을 나서면서 뒤를 돌아 거실에 남겨진 오른팔과 황대찬을 번갈아 봤다.
그녀가 희미하게 미소를 짓자 오른팔을 묶고 있던 밧줄이 힘없이 풀렸다.
오른팔은 사장이 나간 것을 확인하고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시선이 황대찬에게 향했다.
잔뜩 겁먹었던 오른팔의 얼굴에 다시 분노가 스미기 시작했다. 언뜻 느껴지는 광기와 함께.
이제 둘만의 오붓한 시간을 방해할 사람은 없었다.
***
진우의 집, 그는 침대에 죽은 듯이 누워 있었다. 자세히 보아야 들숨, 날숨으로 부풀어 오르는 가슴을 볼 수 있었다.
엉망이었던 진우의 집은 내가 며칠 전에 깨끗이 청소해 놓았다. 진우가 걱정됐던 난 거의 이 집에서 출퇴근을 하다시피 했다.
“어때요? 깨끗하죠?”
“엉망이라더니 네가 청소한 거야?”
나는 사장을 향해 씨익 웃어 보이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럼요. 제가 했죠.”
“야, 너희 집이나 청소해. 자기가 사는 집은 돼지우리면서.”
“그 정도는 아니거든요?”
사장 말대로 내 방도 이렇게 청소를 깨끗이 해 본 적이 없었다. 내가 이렇게 정리를 잘하는 사람인지도 처음 알았다.
별건 아니지만 어쩐지 자신감이 생기는 기분이었다. 그렇다고 내 집을 이렇게 청소하겠다는 것은 아니었지만.
“네 친구 취향은 참 앙증맞고 멋지네.”
커다란 덩치의 진우는 보기와는 다르게 아기자기한 소품을 사 모으길 좋아하고, 특히 파스텔 톤의 색감을 사랑했다.
우중충한 우리 집과는 다르게, 벽지부터 책상, 주방, 러그까지 온통 그의 취향이 흠씬 반영돼 있었다.
뽑기 기계에서 데려온 인형들이 침대 맡에 서로 기댄 채 나란히 놓여 있었다.
통통하게 살이 올라 둥그스름하고, 햇볕에 그을려 건강해 보였던 진우의 얼굴은 이제 볼이 해쓱하게 들어가 옆 광대가 도드라져 보였다.
사장이 주방에서 사부작거리는데 과일 같은 게 채에 갈리는 소리가 들렸다.
노란 즙을 내온 사장이 진우의 입에 물을 흘려 넣었다.
“일단 독기를 좀 빼야겠어.”
“오, 이게 뭐예요?”
“뭐긴 뭐야. 넌 파프리카도 모르냐?”
사장의 입에서 낯설지 않은 재료가 튀어나오자 내심 김이 빠지는 느낌이었다.
“아. 난 또 뭐라고.”
“넌 어째 생전 처음 보는 것만 좋아 보이냐? 어리석긴.”
사장은 파프리카즙을 다 먹이고, 건더기는 진우의 얼굴에 팩처럼 올려놓았다.
“안색이 저게 뭐니? 죽을 날 받아 놓은 사람처럼. 그러니까 몸속에서 벌레를 키우면 어쩌자는 거야.”
“진우가 벌레를 키웠다고요?”
“네 친구가 벌레의 지시를 거부하니까, 벌레는 계속해서 몸집을 키운 거야. 쇠약해진 네 친구는 결국 벌레가 시키는 대로 황대찬의 집까진 찾아갔겠지.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엔 결국 황대찬을 해치기는커녕 그를 보호했어.”
“맞아요. 진우는 항상 그런 녀석이었어요.”
나는 얼굴에 파프리카를 잔뜩 얹고 있는 진우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강한 사람이야. 그리고 보기 드물게 선한 사람이지. 으…. 난 이런 사람이 딱 싫어.”
사장은 양쪽 입꼬리를 내려 질색하는 표정을 지으며 넌더리를 냈다.
“선한 사람이 왜 싫어요?”
“보고만 있어도 피곤해지는 기분이잖아.”
“사장님도 선하잖아요.”
“내가? 넌 눈치도 없고, 감도 없고. 그런 건 타고난 거니?”
사장은 날 째려봤지만, 이제 더는 그 눈빛이 무섭지 않았다. 불현듯 진우가 토했던 벌레가 떠올라 사장에게 물었다.
“근데 그 벌레는 어디서 난 거죠? 누가 진우에게 먹인 걸까요?”
“그 벌레는 악초 할아범 텃밭에서 구할 수 있어.”
그럼 설마 이 일련의 사건에 그 할아범이 개입되어 있을 수도 있다는 걸까?
“당장 가서 물어봐야겠네요.”
당장이라도 집을 나설 기세인 나를 사장이 막았다.
“말 안 해 줄 거야. 그 할아범이 입 하나는 무겁거든. 아! 그 할아범이 ‘아가’라고 부르는 나무한테 피 한두어 그릇 준다고 하면 알려 줄지도?”
“윽…. 그건 좀…. 저 진짜 죽을 뻔했다고요. 그 나무, 겉보기엔 평범한데 소름 끼치는 구석이 있었어요.”
난 질색하며 과장된 몸짓으로 손을 저었다.
“근데 네 주위에 누군가 있는 것 같아. 증오를 부추기는 벌레가 네 친구 속으로 들어간 게 우연이라고 생각해?”
“음….”
“네 친구가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정확히 알고 있고, 네가 절대 바라지 않는 상황이 무엇인지도 완전히 꿰뚫어 본 자가 꾸민 일 같다고. 이를테면 네 친구가 살인자가 되는 거지. 그리고 그 사실을 버티지 못하고 자살하는 상황 같은 거.”
사장이 뱉는 말들이 하나같이 소름 끼치게 느껴졌다.
진짜 그런 놈이 내 주변에 있다면, 그건 조용히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게 누굴까요?”
“글쎄.”
그때 진우의 집 거실에서 틀어 둔 텔레비전에서 속보가 나왔다. 앵커가 긴급하게 소식을 전했고, 화면 하단에는 헤드라인이 떴다.
[속보] 황대찬 전 후보, 자택에서 괴한에게 습격당해 중태
[속보] 현장에서 범인 검거… 개두식이 시켰다고 시인
개두식은 황대찬의 보복이 두려워 그를 먼저 치기로 했다.
하지만 팔에 새긴 충심에도 불구하고 오른팔의 입은 가벼웠고, 경찰에 체포되자마자 자신의 배후로 개두식을 불었다.
이제 개두식은 살인 교사 혐의가 추가되었고, 그가 교도소에서 나올 날은 점점 아득해졌다.
속보에 이어서 앵커가 다음 소식을 전했다.
“저희가 개두식과의 단독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알아낸 사실이 있었는데 이를 토대로 경찰에 수사를 협조하고 추가 취재를 하느라고 미뤄 뒀던 소식이 있었습니다. 김 기자가 전해 주세요.”
앵커의 옆에 앉아 있던 기자가 이어 말했다.
“개두식은 저희와 진행한 인터뷰 도중에 과거 18년 전 황대찬이 반에서 다리를 저는 동급생을 죽여서 야산에 묻었다고 말했습니다. 경찰이 그 진술의 토대로 야산을 수색한 결과 18년 전 실종된 당시 17살 황모 군이 백골 사체로 발견됐다는 소식입니다.”
난 텔레비전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머릿속엔 개구리 틀니가 필사적으로 그의 입 밖으로 튕겨져 나왔던 모습과 함께, 그가 연설 중에 반에서 다리를 저는 친구의 등하교를 도왔다던 말을 떠올렸다.
먹은 것도 없이 속이 울렁거렸다.
“난 이만 가야겠어. 미고가 걱정하겠다.”
사장은 늘 그렇듯 시크하게 별다른 인사 없이 훌쩍 사라졌다.
난 진우가 덮고 있는 침구에 얼굴을 묻고 눈을 감았다.
이불에서 세탁소에서 갓 찾은 세탁물 냄새가 났다.
그 체취에 마음이 편해진 나는 진우 옆에서 간만에 깊이 잠들었다.